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43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43)
120. 주사 (13)
일본 대표팀이 묵는 호텔.
학생들이 휴게실에 모여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PlayerZ 월드 챔피언십 경쟁전 예선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중국 대표팀과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거 언제까지 봐야 해?”
“몰라. 재미없네. 게임에 관심 없었는데 앞으로도 없을 거야.”
“아가씨도 방에 돌아가셨으니까 우리도 해산하면 안 되나?”
“안 돼. 코치들이 끝까지 남아서 응원하라고 했어. 예선전 끝나기 전에 해산하면 보기 안 좋대.”
아가씨의 열렬한 신봉자가 나서서 학생들을 만류하자 여기저기에서 한숨을 삼키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들은 현재 일본 내에서 진행되는 플젯 예선전 중계를 강제로 보고 있었다.
‘대표팀과 어울려 또 다른 일본 플레이어들을 응원하는 렌조인 카렌’의 사진을 공식 SNS 계정에 업로드하기 위함이었다.
학생들에 둘러싸인 렌조인 카렌이 세계 최고로 인기 있는 게임 중계를 감상하며 약체로 평가받는 일본 플젯팀을 응원하는 모습은 학생다우면서도 일본을 사랑하는 티가 나 자국민을 뿌듯하게 만들어 줬다.
정작 렌조인 카렌은 사진을 업로드한 후에 자신이 있으면 불편할 것이라며 학생들을 배려해 준다는 명목으로 자리를 비웠다.
히라노 세이지는 디바이스를 꺼내 딴짓을 하기 시작한 선수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화면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옛날 같았으면 아가씨가 있든 없든 저런 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고, 말없이 참고 중계를 봤을 텐데.’
히라노 세이지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렌조인 카렌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했으니 저들이 아가씨 때문에 태도가 변한 건 아닐 것이다.
렌조인 카렌은 두 번이나 MVP로 뽑혀 최근 일본 내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었으며 세계 제일의 천재가 탄생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저러한 분위기는 일본 내부에서만 해당했으며, 일본 학생들은 현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반 아가씨파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비웃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아가씨파도 미묘한 반응을 보인 게 의외였어.’
한국 거리를 걸으면 한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염준열은 알아봐도 렌조인 카렌은 알아보지 못했다.
평소라면 코즈카 야시로가 향으로 인해 어그러진 사고를 하는 아가씨파들은 곧바로 ‘여기는 외국이라서 그렇지’ 라는 등의 정신 승리를 하거나 ‘아가씨의 위대함을 널리 알려야 해’ 라며 충성심을 불태워야 하는데, 어째 반응이 미묘했다.
학생들은 코즈카 야시로의 영향력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코즈카 야시로는 렌조인 카렌이나 라이벌의 여론 관리에 애를 먹긴 했지만 내부 관리를 소홀히 한 건 아니었다.
평소대로 이능파를 끌어 올려 향을 썼고, 학생들은 여전히 반쯤 여우에 홀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지력이 강하게 흐르는 호족의 신역에 있었고, 무의식중에 모든 것을 정화해 버리는 안다인과 경기장에서 만나야 했다.
그 덕에 코즈카 야시로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예선전을 관람하기 직전에 토모아키가 이딴 일로 불러낸 게 짜증 난다면서 여기에 있는 연꽃 장식품을 다 부쉈지. 평소라면 아가씨파 아이들이 자진해서 치우고 새 장식품을 가져다 놨을 텐데, 오늘은 달랐어.’
무의식중에 아가씨를 위해 움직이던 학생들이 변했다.
그들은 누가 다칠지도 모른다면서 청소용 로봇을 호출하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게다가 평소라면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재미없는 경기도 참고 볼 텐데, 반응이 다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를 욕할 정도로 마음이 변한 건 아니라 렌조인 카렌 대신 재미가 없는 PlayerZ 경기를 탓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를 참을 수 없던 PlayerZ의 유저인 학생이 항변했다.
“플젯은 원래 안 이래! 하는 것도 재밌고, 보는 것도 재밌어. 오늘 재미있는 경기 많아. 다들 방패병 경기랑 어스름의 공격대장 거 봤으면 잘 봤을 거야.”
방패병은 한국어였기에 발음하는데 다소 고생하긴 했으나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PlayerZ의 팬이 방패병과 공격대장이 세운 업적에 대해 줄줄 늘어놓자 따분해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흥미를 느낀 학생들도 나왔다.
적어도 지지부진한 경기보다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플레이어명이 한국어네. 둘 다 한국 경기야?”
“맞아. 플젯 경기하는 사람이면 지금 자국 예선전 안 보고 다 한국 거 보고 있을걸? 뷰어십이 지금 일본 경기가 비교도 안 돼.”
처음부터 몰래 개인 디바이스로 한국의 예선전을 보고 있던 일본 학생이 화면을 확장해 영상을 보여 줬다.
영상 속에서는 최대 공헌자로 선정된 방패병의 플레이 요약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PlayerZ의 싸움은 플레이어의 전투 방식과 몹시 닮아 있었기에 학생들은 방패병의 실력을 단숨에 알아보고 ‘오’하고 탄성을 뱉었다.
스킬을 굴리는 타이밍이나 캐릭터 무빙, 화면 전환 속도 등이 과연 우승 후보로 꼽힐 만했다.
“그런데 방패병 경기 끝난 거 아냐?”
“아, 우리 예선전은 언제 끝나냐.”
“공격대장 쪽은 아직이야. 지금부터 볼 수 있어!”
“저거 꺼 버리고 이거 보면 안 되냐?”
학생들은 고민 끝에 한국 예선전도 같이 보기로 했다.
대형 홀로그램이 동시에 두 개 떠올랐는데, 전원 시선이 한국 예선전 쪽에 쏠려 있었다.
마침 그 팬이 몇 번이나 칭찬한 공격대장이 입장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명이 공격대장이 아닌데?”
“대회 나오면서 이름 바꿨나 봐.”
“공격대장은 좀 헷갈리긴 하지. 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용어를 쓰잖아. 모든 공격대마다 공격대장이 있을 테니 구분을 짓는 게 좋을 거야.”
모처럼 희귀한 플레이어명을 먹었지만, 공격대장은 편의를 위해 이름을 바꾼 듯했다.
마침 영어로 자막이 나오고 있었는데, 공격대장의 바뀐 플레이어명은 ‘DUSK’였다.
워낙 주목을 받는 플레이어다 보니 바뀐 플레이어명에 관한 간단한 일화가 적혀 있었다.
경쟁전 출전을 위해 이름을 바꿨다는 것부터 유래가 적힌 게 그러했다.
DUSK에는 황혼, 어스름으로 해석되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이는 공격대장이 이름을 알리게 된 공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어스름의 푸른 계곡은 그냥 깨지 말라고 낸 게 아닌가 싶었어. 권장 도전 레벨이 50인데, 그때 유저 레벨 상한이 40이었거든? 그런데 공격대장…… 그러니까 DUSK가 레벨 40 찍자마자 거길 도전했어.”
팬인 학생이 전 서버 최고 난이도의 최초 공략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몸짓을 섞어 열심히 설명하는 사이, 화면 속에서 예선전 무대로 선수들이 입장했다.
하얀 교복을 입은 DUSK는 공격대원들을 이끌고 무대에 올랐다.
처음으로 DUSK가 모습을 본 학생이 흥분해서 말했다.
“저거 교복이지! 우리랑 나이대가 비슷한가 봐!”
“저거 어디에서 많이 본 교복 같은데.”
“은광고 교복이랑 디자인이 비슷하네.”
“흰색이잖아. 걔네 교복은 검은색 아니야?”
“야, 그런데 영어 자막 끄면 안 되냐? 화면만 가리는데.”
“어? 설정 변경되나? 그냥 디폴트로 되어 있는 거 켜 놓은 건데.”
“일본어 자막도 될걸.”
“쟤는 게임만 하고 살아서 스트리밍 사이트 잘 모르나 봐.”
PlayerZ의 팬이 서투르게 자막 설정을 변경하다가 한국어 자막이 한 번 떴다.
마침 하얀색의 은광고 교복 차림의 DUSK가 클로즈업된 순간, 밑에 자막이 떠올랐다.
‘땅거미’.
DUSK는 한국어로 땅거미로도 해석되었는데, 공격대장은 한국 플레이어명을 어스름이나 황혼 대신 땅거미로 택한 듯했다.
한편, 히라노 세이지는 땅거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의신이랑 같은 반 학생이잖아. 0반 아이들 중 하나였어.’
관객이 워낙 많다 보니 다른 일본 학생들은 알아보지 못한 듯했지만, 히라노 세이지는 기억했다.
조의신을 주목하다 보니 그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히라노 세이지는 땅거미, 인선오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인선오는 마치 거미줄 안에 먹이를 가둬 두는 것처럼 상대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 갔다.
‘같은 반이지만, 의신이와는 플레이스타일이 조금 달라.’
인선오가 거미줄을 쳐 두고 기다리는 타입이라면 조의신은 수를 두고 필요에 따라선 직접 뛰어드는 타입이었다.
히라노 세이지를 만나러 나타나고, 코즈카 야시로의 초대에 응한 것처럼 말이다.
조의신의 생각에 미치니 히라노 세이지의 기분이 우울해졌다.
두 번째 시합에서 조의신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히라노 세이지는 그게 코즈카 야시로나 호족의 수작이 아닌가 하고 티도 못 내며 혼자 걱정해야 했다.
히라노 세이지가 멍하니 거미줄을 당겨 적을 묶는 땅거미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나와.”
갑자기 아리하라 토모아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선전 영상 상영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히라노 세이지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자 ‘쨍그랑!’하고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보나 마나 연꽃 형태의 장식품일 게 뻔했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더 깨부술 생각인 듯했다.
‘이대로 기다리면 더 부숴 주려나? 좀만 더 기다릴까?’
히라노 세이지는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했으나 다른 아이들이 차마 말은 못 하고 눈치를 줬다.
1차전 때 패배의 주범이 된 히라노 세이지는 아가씨파에게 암묵적인 무라하치부(村八分)를 당하고 있었다.
평소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치진이 시키는 대로 싸우고, 1차전 같은 상황에선 작전을 세우는 역할이나 책임까지 떠맡은 결과가 따돌림이었다.
점점 코즈카 야시로의 영향력이 떨어진 덕에 히라노 세이지에게 미안해하는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서지는 못했다.
히라노 세이지는 아가씨파 아이들이 대부분 가정 환경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알기에 탓하진 않았다.
그래서 아리하라 토모아키의 폭파쇼를 부추기는 대신 일어나기로 했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다짜고짜 말했다.
“세이지, 그 아가씨가 어디로 간 줄 알아?”
“예선전 경기 중계 도중에 먼저 방으로 돌아간다고 했어.”
“모르나 보네.”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혀를 찼다.
“그 아가씨가 능력을 몇 가지 숨기고 있어.”
아리하라 토모아키의 말은 대단한 비밀이 아니었다.
그야 그럴 것이, 렌조인 카렌 수준의 플레이어가 비장의 카드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히라노 세이지도 공개하지 않은 능력이 있을 정도였다.
그걸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어떻게 알아낸 건지 좀 신기하긴 했다.
“놀라지 않네. 알고 있었어?”
“아니, 놀랐어.”
“놀란 척은 하고 말해.”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히라노 세이지에게 핀잔을 주고선 말했다.
“지금 아가씨 방에 아무도 없는데, 코치들은 있다고 믿고 있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코치들은 방에 있는 연꽃을 렌조인 카렌이라고 생각하던데.”
대체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무슨 짓을 하기에 그걸 알고 있는 걸까.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일본 대표팀이 썩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렌조인 카렌을 직접 캐 보고 다녔는데, 그 일환으로 조사하다가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여우도 자리를 비웠지. 그런데 여우가 아가씨를 데리고 나간 것 같진 않아.”
“……그래서?”
“세이지, 네가 원해서 아가씨의 개가 된 게 아니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연꽃을 부술 때마다 속 시원해하지는 않았겠지.”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히라노 세이지를 곧게 보고 있었다.
아가씨의 개를 깔보는 듯한, 업신여기는 듯한 눈이 아니었다.
“코즈카 야시로는 한국에서 무언가를 벌이고 있고, 어쩌면 아가씨도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어. 역으로 협박이든 뭐든 해서 개 역할을 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