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66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66)
122. 나이트 아웃포스트 (9)
“저건 호족 최고의 무재 백호!”
“어째서 둘이나 있는 거냐!”
백호를 알아본 자들이 경악했다.
황호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긴 시간 친우로 지낸 황호의 눈에도 두 명의 백호는 전부 진짜로 보였다.
만약 조의신의 광림에 관해 알지 못했다면 분명 백호가 둘로 분열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는 조의신인가!’
친우들에 이어 은인까지 이 자리에 왔다고 깨닫자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조의신이 둘 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안도감이 컸지만, 그 수에 본인의 안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작지 않았다.
“한쪽은 가짜겠지!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게 진짜를 찾아서…….”
“진정 그렇게 생각하나?”
두 명의 백호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둘의 목소리는 마치 한 사람이 낸 것처럼 같은 속도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선 둘 중 하나가 가짜라고 우기던 자가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머릿속을 공유하는 것처럼 호흡이 딱딱 맞았기에 가짜가 진짜 쪽에 맞춰 주는 건 불가능했다.
실제로 맞춰 주는 건 진짜 백호 쪽이었고, 가호를 통해 머릿속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릉.
두 명의 백호가 동시에 파운참뢰의 백아를 불렀다.
백호의 광림은 무기를 소환하는 것이고, 누가 봐도 두 백아는 모두 진짜였다.
눈앞에서 백아까지 소환하자 의심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두 명의 백호에게 넋을 놓은 것 같았던 자들이 백아가 뿜는 빛을 보고 다급히 외쳤다.
“어서 실드를 전개하라, 스킬을, 아니, 아이템도 아낌없이!”
말이 끝나기 전에 흰빛이 번뜩였다.
빛을 눈에 담은 순간, 이를 마주한 자들이 저 빛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기 전에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
콰아아아아!
무거운 검격을 받아 내는 방어 스킬을 유지하기 위해 이능파가 쑥 빨려들어 갔다.
충격으로 아득해지는 와중, 두 백호가 동시에 백아를 크게 휘둘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무심한 움직임이었으나 수많은 방어 아이템을 부수고, 지하 홀에 깊은 칼자국을 남겼다.
가장 앞에서 지휘하던 자는 몸이 양단되는 건 면했으나 로브의 내구도가 다해 찢겨 나가 얼굴이 드러났다.
그자가 가느다란 동공으로 백호를 노려보았다.
“수천 년 동안 내가 아무 성취도 얻지 못했다는 쪽이 더 이상하다만.”
두 명의 백호가 동시에 오만한 목소리로 비웃듯이 말했다.
저 말을 듣자 로브를 쓴 자들은 확신했다.
끔찍하게 강하고 오만한 백호가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 만 게 분명했다.
모두가 저 오만한 백호가 진명을 가호로 줘 버리고 누군가가 제 모습을 취하는 걸 허락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백호가 자신과 똑같은 수준의 분신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고 결론 지었다.
호족 최고의 무재 백호가 얻은 새로운 경지라면 설득력이 있다.
물론, 황호는 그런 경지는 없고 그저 백호가 조의신의 머릿속을 읽고 저 촌극에 어울려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건에 백호는 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어찌 신역의 수인이 이곳까지 온단 말인가!”
“백호는 천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백호가 저 정도의 힘을 쓸 수 있다면 천신도 허락하겠지.”
“그래 봤자 호랑이 아닌가!”
로브를 쓴 자 중 한 명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자는 백호의 일격으로 넝마 조각이 된 로브를 집어 던지자 학의 깃이 달린 쇠갑옷이 보였다.
또한, 그자를 시작으로 몇 명이 개조된 총검을 꺼내 들었다.
화승총에 장착된 날붙이는 일반적인 단검이 아닌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황호는 저 날이 호랑이 잡는 구덩이 아래에 꽂던 정창(阱槍)을 짧게 다듬은 것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이들은 여태까지 거리를 두고 명적이나 쇠뇌, 그물 등으로 황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저자들은 지금 근거리 전투를 상정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만약 황호나 적호, 청호가 호랑이 사냥용 덫과 무기를 뚫고 접근했을 경우를 대비한 듯했다.
‘착호갑사가 사용하던 호랑이 사냥용 무기와 방어구를 업그레이드한 형태로군. 하지만…….’
황호는 백호를 지원하는 대신 수조를 향해 달렸다.
수조 주변에서는 여전히 공청훤과 적호가 싸우고 있었다.
막 로브를 벗어던진 자들은 그들 쪽에서 멀어지는 황호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건 긴 동공의 진족이었다.
“그만둬! 백호는……!”
타앙! 탕! 탕!
화승총에서 격발음이 울린 것과 동시에 그자들이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호족은 수많은 호랑이를 사냥한 포수들이 애용했던 총탄을 막을 수 없었다.
피하거나 다른 힘을 사용해 막는 방법밖에 없는데, 저 오만한 백호는 피할 생각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호족 최고의 무재가 둘로 늘어나 봤자 총탄에 꿰뚫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훈련한 대로 성하지 않은 몸을 정창의 창으로 난도질해 빠르게 숨통을 끊고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착탄 직전, 이변이 발생했다.
서걱.
백호의 검이 총탄을 갈랐다.
갈라진 총탄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나 완전히 터지기 전에 백호가 한 번 검을 휘두르자 가루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발사된 총탄들이 모두 같은 꼴이 되어 흩어지자 돌진하던 이들이 멈추었다.
그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지 못했다.
급하게 화승총을 재확인했으나, 총신에 착호갑사의 공적을 치하하는 왕의 인장이 변함없이 새겨져 있었다.
가는 동공의 진족이 외쳤다.
“어리석은 것들, 백호에게는 호랑이를 잡는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황호나 적호를 노려라!”
저자의 말대로 백호에게는 호랑이 사냥용 무기가 통하지 않았고, 대호(對虎) 방어구로도 그 검을 막을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비상하고 걸출한 재능을 지닌 호족은 많이 등장했으나 백호가 신역의 수인 신세가 된 후에도 흔들림 없이 최고의 무재로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분신에 지력까지 쓰는 강한 황호.
삼칠일의 시련을 통과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적호.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태호권의 귀재 청호.
신화가 쓰인 시대부터 백호가 최고의 무재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 건 그가 상식을 초월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불을 물 한 컵으로 끌 수 없듯이, 상극이라 해도 이를 뛰어넘는 힘이 있는 법이었다.
백호의 기질은, 무재로서의 재능은 호랑이 사냥용 무기로 어찌할 수 없었다.
“노리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백호의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사냥하는 입장에서 사냥당하는 입장으로 바뀐 자들의 동요가 전해졌다.
이제 저들은 호랑이 사냥용 무기가 통하지 않는 호족을 둘이나 상대해야 했다.
가는 동공의 진족이 두 백호를 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외쳤다.
“두 백호 중 하나만이 진명을 지니고 있다! 그쪽을 먼저 노려라!”
그자의 말을 들은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상대를 살폈다.
백호의 무용에 기가 질려 느낄 수 없었던 것을 그제야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명의 백호 중 진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하나뿐이었다.
내내 서늘한 표정을 짓던 백호였으나, 그 말을 듣자 진명이 있는 쪽이 씨익 웃었다.
* * *
은휘관의 이사장실.
한이였던 청호가 흙으로 화한 후, 흙조차 흔적없이 사라졌다.
독고미로는 그 자리에 남은 한이의 의류, 소지품을 앞에 두고 주저앉아 있었다.
몇 방울 흘렸던 눈물은 금방 멎었지만 도통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한편, 용제건은 독고미로의 눈물을 닦아 주거나 달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옆에 쪼그려 앉아 대놓고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저리 가요.”
부담임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독고미로는 지금 저 용은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물러날 만큼 용제건의 성품이 올곧지는 않았다.
“왜? 부담임으로서 제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싶은데.”
독고미로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용제건을 노려봤다.
용제건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말하는 내용은 웃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 장례식 여러 번 해 봤거든. 친우를 보내는 데에 익숙해.”
그 말을 듣자 독고미로는 울컥함 대신 다른 기분이 차올랐다.
오랜 세월을 산 용제건은 산전수전 다 겪어 봤을 거고, 어쩌면 단명한 친구를 먼저 보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한이는 죽은 게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이렇게 사라진 걸 보고 바로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용제건이 누군가를 보낸 경험이 있다면 조언을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고미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러 번요? 친구분들을 여러 번 보내신건가요?”
“나 친우는 한 명밖에 없어.”
용제건은 친구 한 명이 있는 걸 자랑하듯이 말했다.
용제건의 말에 다소 가라앉은 울컥함이 다시 치솟아올랐다.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용제건은 장례식을 여러 번 해 봤고, 친구를 보내는 데에 익숙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다 친구 장례식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독고미로는 말장난에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 비꼬듯이 말했다.
“친구를 보내는 데에 익숙한데 한 명이요? 가짜 장례식만 해 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진짜 장례식인 적도 한 번 있었어.”
용제건의 빛나는 눈에서 잠시 빛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독고미로는 그 말의 무게를 뒤늦게 느꼈다.
친구는 한 명밖에 없고, 진짜 장례식은 단 한 번뿐.
그럼 그 하나뿐인 친구는 지금…….
독고미로가 최악의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용제건이 언제 죽은 눈을 했냐는 듯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참고로 내 친우는 잘 살아 있어. 지금 일하느라 바쁠걸?”
“아, 진짜!”
주저앉아 있던 독고미로가 분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카드화했던 모닝스타가 다시 실체화되어 독고미로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저 용을 향해 휘둘렀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휘둘러 봤자 저 유희계 용의 즐거움이 더해질 뿐이라는 걸 알기에 독고미로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전투 본능을 억눌렀다.
“나 거짓말한 건 아닌데.”
“됐으니까 그만 좀 여무시죠.”
독고미로는 용제건이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부 진실이었다.
용제건은 그동안 김신록의 예전 신분을 사장할 때마다 장례식을 치렀고, 리플레이 도중 진짜 장례식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독고미로가 이를 알 길이 없었다.
독고미로가 일어나자 용제건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은인이, 의신이가 없었으면 진짜 장례식에서 내 친우를 보내야 했을 거야.”
“……!”
용제건이 생각 없이 헛소리를 늘어놓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용제건은 지금 독고미로가 한이를 보낸 슬픔으로 조의신을 다치게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유희계 용의 성격을 고려하면 독고미로가 진심으로 조의신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다고 여길 게 뻔하지만, 용제건은 독고미로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의신이한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정말로?”
독고미로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조의신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더 중요한 무언가를 위함이 틀림없었다.
지금도 조의신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다.
독고미로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황호의 분신 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