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94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94)
124. 긴 싸움의 끝에 (4)
황호는 인선오가 조의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선오가 등교를 결심한 계기도 조의신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인선오는 찾고 있는 것이 있으니 등교할 계획이 없다고 면접 중에 선언한 것을 계기로 0반행이 결정되었고, 등교 거부자들을 등교시키려는 포부를 지닌 구슬비와 옹길동도 좀처럼 그 뜻을 꺾지 못했다.
양족의 영역에 침입하려다 실패한 후에도 인선오의 뜻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인선오가 갑자기 임시로나마 등교하겠다고 선언한 건, 조의신이 그들의 아지트를 방문한 이후였다.
‘조의신은 그때 추가 시험을 앞둔 그 아이들을 깨우러 갔지. 양족의 수장에게 당해서 잠들어 있었으니 보통 수단으로는 깨울 수 없었을 거야. 이능파를 썼겠지.’
그들은 잠든 상태에서 조의신의 이능파에 접했다.
잠든 플레이어는 특별한 이능이 없는 한 무력하지만, 무의식은 열려 있는 상태가 된다.
잠들어 있던 인선오가 조의신의 이능파에 접하는 순간, 그녀는 악몽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선오는 이 몸의 정체를 눈치챘겠지. 그렇다면 호족이 조의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도 알아차렸을 터.’
최근 들어선 0반의 급우들과 어울릴 때 딱히 정체를 숨길 마음이 없었기에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쩌면 황호가 정체를 숨기려 해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황호가 봤을 때에는 인선오에게선 진명의 기척이 없기에 인간으로 보이긴 하나, 진명 없이 싸돌아다니는 백호나 인간의 동생으로서 인간 흉내를 내는 은호를 생각하면 딱 잘라 단정 짓기 어려웠다.
“오늘은 한이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잖아. 나보다는 한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오늘은 한이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인선오는 황호의 제안을 적당히 흘려 넘기며 말했다.
인선오의 표정은 흠잡을 틈이 없었다.
놀랐거나, 경계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도전적인 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사교성 있는 급우로 보였으나 황호는 마치 반상 너머에 있는 기사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 싸움을 하는 조의신을 보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 몸과의 대화를 피하면서 청호의 정체를 캐 보려는 건가.’
인선오의 말을 들은 청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잘됐네. 나도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
청호에게는 대략의 사정을 말해 뒀다.
조의신이 악몽과 엮여 있고, 악몽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으며 어쩌면 인선오가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인선오가 조의신 안에 있는 악몽을 감지하고 주변을 캐는 중인 듯하다는 말도 전하자 청호는 곧바로 자신도 인선오와 대화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밤에 묘족의 몸통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장기를 파괴하며 정보를 캐던 걸 보면 다소 거친 성정이 어디 가지 않았으나 일단 인선오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는 듯, 청호는 어디까지나 대화에 응할 생각임을 밝혔다.
“혹시 저기에서 지호가 한이랑 선오를 귀찮게 하는 중은 아닌가요?”
“메뉴 고르는 중이라 그런 거 아냐? 지호는 음식에 까다롭잖아. 아, 애피타이저 고르는 거 도와주라. 종류가 많아서 정하기 어렵네.”
황호 주변의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진 탓인지, 메뉴판을 보며 떠들던 급우 몇 명이 이쪽 눈치를 봤다.
김유리가 적당히 화제를 바꾸어 버렸기에 딱히 큰 주목을 받고 있지 않지만, 어차피 이 자리에서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식사부터 들지. 속이 비어 있으면 하고 싶은 말도 하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황호는 주변의 신경을 분산시킬 겸, 인선오와 청호의 메뉴를 직접 골라 줬다.
인선오는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황호는 메뉴를 시작해 소스, 토핑, 사이드까지 세심하게 선택했다.
인선오가 0반 학생들과 어울리게 된 후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식사나 간식을 같이했던 적은 적지 않았기에 취향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황호가 선택한 메뉴를 본 인선오가 감탄했다.
“굉장하다. 전부 맛있을 것 같아.”
“이 몸은 아주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다. 기억력도 뛰어나기에 한 번 본 것은 전부 기억하지. 특히 은광고에서 본 것들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렇구나.”
황호의 말은 일종의 경고였다.
인선오가 은광고에서 보인 행적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 셈이었다.
인선오는 그저 붙임성 있게 웃으며 맞장구쳤지만, 황호의 뜻을 못 알아들은 것 같진 않았다.
“……지호가 또 자기 자랑 해.”
“그린아,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먹자.”
“응? 그럼 아몬드 들어간 걸로 먹을까?”
평화로운 식사 자리였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긴장하여 상황을 주시하는 이들이 몇몇 있는 가운데, 대놓고 황호의 대화를 방해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아, 너 왜 우리 선오 옆에 있는 거야!”
“빠른 음료 공급을 위해 서두른 탓에 자리를 잡지 못했군. 크나큰 실책이다!”
구슬비와 옹길동, 두 관종들의 손에는 화려한 색으로 섞인 음료가 있었다.
음료는 셀프로 제공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관종들은 자신들이 가져오겠다며 나섰다.
옹길동은 음료들의 맛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기가 막히게 배합해 화려한 색으로 만들어 왔는데, 그러느라 쓸데없이 늦어지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시오. 자리는 가장 눈에 띄는 자리로 잡아놨소.”
“크윽, 우리에게 어울리는 자리로군!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선오가…….”
“선오가 아지트를 저 저택으로 옮기면 큰일이야. 그럼 또 등교하는 사람이 줄어서…….”
진정묵이 가장 눈에 띄는 모서리 자리를 가리키자 관종들은 기뻐하면서도 복잡해하는 시선을 황호 쪽으로 던졌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황호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두 관종들은 출석부를 훔쳐서 백호의 주소를 파악한 후, 백호를 등교시키기 위해 접촉하려 시도했다.
그 시도 중의 하나로 둘은 저택에 침입하려다 실패했다.
둘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잡아서 족치는 대신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놀아 줬는데, 저 둘은 그것 때문에 크게 삐져 있었다.
그 와중에 대저택 정원에 피어 있던 참나리, 호랑이꽃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를 모티브로 한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걸 보면 웃음이 나왔다.
‘그냥 이 몸에게 평범하게 백호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부탁하면 못 들어줄 것도 없건만. 어째서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지?’
황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도 모르고 관종들은 괴도답게 일을 처리한답시고 먼 길을 돌아갔다.
사실 황호부터 설득한다는 생각도 해 본 듯하지만, 설득 과정에서 힘을 빌리면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기한 듯했다.
관종들은 0반 아이들을 아주 좋아했고, 진정묵과 인선오가 등교했을 때 반 아이들이 기뻐했던 모습과 자신들의 노고를 치하하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한편, 청호와 인선오는 드문드문 대화를 나눴다.
인선오는 평범한 화제로 말을 걸면서도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낼 정도의 말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럼 수업종으로 나온 음악은 전부 들어 볼 예정이구나.”
“응. 예전부터 목록을 저장해 두고 반 아이들의 감상을 기록해 뒀어. 전부 들어 볼 생각이야.”
인선오는 청호가 듣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청호가 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청호가 먼 과거부터 아름다운 소리를 사랑했다는 건 딱히 대단한 비밀이 아니었고, 그 제자들도 대놓고 권제인의 팬질을 하고 있으니 숨길 일이 아니라 황호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상하군. 마치 안심한 것처럼 보여.’
수를 두는 기사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을 감추고 있던 인선오가 음악에 관한 화제가 나올수록 안심한 티를 냈다.
청호도 이를 느낀 듯 인선오가 눈을 깜빡이는 틈을 타 황호에게 눈짓했다.
음악과 관련된 화제를 파고들 테니 도우라는 뜻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나? 마침 은광고에는 연주와 연관된 동아리나 소모임이 많다. 학기가 시작되면 가입해 보는 게 어떤가?”
황호의 말에 인선오는 다시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감정을 숨겼다.
인선오는 담담하게 답했다.
“제안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연주는 그리 잘하지 못해서 어려울 것 같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반에도 1학년 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한 급우가 있는데, 지금은 멋진 연주를 하고 있지.”
“네, 레나는 멋진 연주를 합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열심히 권레나를 챙기던 목우람이 ‘바이올린 연주’라는 단어를 듣기 무섭게 한마디 말을 얹었다.
인선오는 권레나의 연주 경력이 짧다는 말에 감탄을 표했고, 권레나는 수줍어하면서도 인선오에게 권했다.
“선오도 관심이 있으면 배워 봐!”
“제안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나는 좀 어려울 거야.”
인선오가 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악기를 다루는 게 아주 어려워. 듣는 거는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데, 몸이 안 따라 줘.”
“앗, 혹시 선오도 의신이 같은 타입이 아닐까요?”
“아…… 그럼 어쩔 수 없겠다.”
“그래도 노력하면 트라이앵글이나 캐스터네츠 정도는 칠 수 있지 않을까?”
사월세음이 조의신을 예로 들자 너도나도 납득했다.
황호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조의신 수준으로 재능이 없는데 이를 극복할 만한 열정도 없다면, 연주는 그냥 빨리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이다.
세상에는 길이 많은데 굳이 연주 하나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고 조의신도 노력하면 트라이앵글을 칠 수는 있으니 자신이 딱히 악기를 못 다루는 건 아니라면서 뻔뻔하게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악기와 조의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반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결국 조의신이 은광고 축제에서 친 트라이앵글 영상 상연회까지 열리고 말았다.
인선오는 반 아이들의 화제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스럽게 청호와 황호 쪽을 돌아보며 반응을 확인했다.
‘무엇을 확인하려는 거지?’
반 아이들의 화제는 빠르게 바뀌었다.
독고미로의 노래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맹효돈의 향상된 싸움 실력에 관해 평하기도 했다.
황호와 청호, 인선오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아낀 덕에 다른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문득 인선오가 말을 꺼냈다.
“음악과 노래에는 힘이 있어. 연주로 상위 존재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연재해를 저지했다는 일화는 여러 신화에 존재해.”
청호와 황호가 식기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인선오를 주시했다.
“자장가는 우는 아이를 달래 잠의 세계로 이끌고, 좋은 꿈을 꾸길 기원하는 노래야. 대부분의 인간은 영아기나 유아기 때에 자장가를 들을 기회가 있으니 그 상징성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
인선오는 의미 없는 잡담을 하는 것같은 말투를 사용했으나 황호는 저 말을 단순한 잡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독 ‘좋은 꿈’이라는 단어가 황호의 귀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음악은 악몽이 오지 못하게 막는 단순하고도 유래 깊으면서도 강력한 수단이야.”
그 말에 황호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악몽을 매우 경계하던 양족의 수장이 몸소 이능 악기를 선물할 정도로 좋은 연주에 집착하던 것.
악몽이 한반도에서 관측된 시점과 신인이 사라진 시점과 일치한다는 것.
악몽을 짊어진 조의신이 도통 연주를 잘하지 못하는 것.
인선오는 마치 시험을 해 보듯 황호와 청호에게 말했다.
“은광고에는 멋진 음악이 넘쳐나서 안전하게 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