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93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35)
112. 밤 산책 (8)
한밤중, 청소년 수련원.
어제 1학년 학생들은 소등 시각이 지난 후에도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하지만 어제와 달리 오늘은 대부분 피곤한 나머지 일찍 잠들고 말았다.
오늘 주요 일정은 등산과 래프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반 대항 타임어택 대결이 펼쳐진 탓이었다.
‘0반은 그렇다 쳐도 1, 2반 아이들까지 의욕이 그렇게 넘치다니…….’
은호는 올해 0반 정원이 금방 차는 바람에 차석원을 비롯한 0반스러운 아이들이 일반반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1반, 2반에도 그런 아이들이 배치된 덕에 전원 장난질이나 쓸데없는 경쟁에 관심이 참 많았다.
1반의 차석원이 래프팅용 패들을 개조해 지나치게 급류를 빨리 타는 바람에 배가 뒤집어질 뻔하기도 하고, 2반에서는 헬멧에 방수 기능이 붙은 조명과 거울을 붙여 빛을 반사해 대며 상대 팀의 시야를 방해하기도 했다.
물론, 0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보트의 속도를 높인다며 이능파를 쏴 댔고, 강도 조절에 실패해 전복하자 윤여랑이 용왕신의 오색 채운을 불렀다.
결국 보트 대신 구름으로 래프팅하는 바람에 그 조는 전원 실격해 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지칠 만도 해. 하지만 그 덕에 수고를 덜었어.’
은호와 같은 숙소를 쓰는 0반 아이들은 오늘 밤늦게까지 비장의 은광고 괴담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들떠 있었다.
하지만 피곤한 청소년이 수면욕을 떨쳐 내긴 어려웠다.
그 결과 은호를 제외한 전원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베개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들었다.
정말로 같은 숙소 아이들이 밤새 괴담을 떠들 생각이었다면 은호가 손을 써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은호는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일어나 시각을 확인했다.
‘이제 노영미 교사와 신인께서 불침번을 교대할 타이밍이야. 이제 산책하시러 가겠지.’
공청훤의 산책은 은호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말이 산책이지 공청훤은 온갖 위험한 일을 자처하고 다녔다.
공청훤이 산책이라는 명목으로 은광구에서 세운 위업을 헤아리면 어지간한 중견 프로 플레이어 팀의 전체 실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 짓을 하는 동안 공청훤은 단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
아마 그의 능력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어지간한 일로는 터럭 하나 다치지 않겠으나 신인을 모셨던 자로서 그냥 내버려 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은광구와 떨어진 지역에서 밤 산책이라니 좌시하긴 어려웠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러셨지. 정말 변함이 없구나.’
은호는 풍요롭진 않았지만, 전쟁의 위협 없이 지내던 옛 시절을 떠올렸다.
신인의 경호는 보통 청호가 담당했는데, 청호나 그 제자가 아니더라도 호족이나 풍백, 우사, 운사 중 하나를 데리고 행동했다.
그러나 신인은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홀연히 자리를 비울 때도 있었다.
은호가 한발 늦게 이를 파악하고 신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움직였던 기억이 생생했다.
―내 동생이 한참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신인을 발견했을 때, 백호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 백호는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해 아주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신인을 상대로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은호가 백호 대신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은호는 백호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직접 나섰다.
―신인이시여, 이런 곳에서 홀로 무엇을?
언령으로 상대를 누른 건지, 목소리를 가다듬던 신인이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은호와 백호를 바라보았다.
신인은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개운한 건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천신이 아닌 신의 진노를 산 짐승이에요. 무서운 것을 모르고 그 신이 이 땅에 선물한 신물을 흙발로 짓밟았더군요. 신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폭주하기 전에 제가 처리했습니다.
―명해 주셨다면 청호 님께서 기쁘게 명을 받들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제가 나설 자리가 없었겠지요.
신인과 은호는 웃으며 대화를 나눴지만 둘 사이에선 서릿발 같은 기운이 몰아쳤다.
은호는 어지간한 말로 신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대신 신인의 행보를 막기 위한 수를 생각하고자 했다.
‘신인께서는 어찌 이 짐승의 폭주를 예견하고 홀로 움직이신 걸까.’
은호는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둔 산짐승을 내려다보았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는 하나 잘 보니 기혈이 전부 뒤틀려 있어서 신인의 말대로 폭주할 기미가 역력했다.
문제는 신인이 이를 어찌 알고 와서 대처했냐는 것이었다.
아직 폭주하지 않았으니 멀리서 이를 감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천신이 아닌 신이 내린 신물이 더럽혀진 것을 알 만한 힘을 얻은 걸까?
하지만 천신은 신인을 몹시 아껴 강한 독점욕을 보이고 있으니 신인이 다른 신과 연관된 힘을 얻는 건 불가능했다.
‘누군가 다른 신과 엮인 가호를 내리거나 선물을 줬다면 저 짐승이 폭주하기 전에 천신께서 먼저 분노하셨겠지.’
그렇다고 해서 누가 호족의 경호를 뚫고 신인에게 저 짐승에 관해 조언하거나 의뢰했을 리도 없었다.
은호가 웃는 낯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을 때, 신인이 말했다.
―제가 어찌 이곳에 왔는지 궁금한가 보군요.
―잘 알고 계시네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지면 안 되니까요.
―조용히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빨리 문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신인이 다정하게 사과하자 흉흉한 기운을 뿜던 백호의 기세가 눈에 띄게 누그러지고 은호 또한 날 선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신인은 온유한 성품이나 사과를 쉬이 하지 않는데, 호족들은 그 가끔 하는 사과에 몹시 약했다.
신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과하는 데에 이어 말했다.
―저는 이 땅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알 수 있어요.
―무엇을요?
―이 땅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이요. 전부는 아니지만요.
신인은 자신이 느끼는 감각에 관해 설명했다.
신과 인간의 피를 이은 신인은 특별한 힘과 감각을 타고 났고, 특히 이 땅을 아꼈기에 그에 걸맞은 능력을 얻은 듯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밑도 끝도 없이 그런 감을 의지해 경호도 없이 나서다니.’
은호는 신인의 힘과 호족을 향한 신뢰가 느껴져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를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은호는 억지로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다.
―스스로를 아끼셔야 합니다. 아무리 저희를 믿는다 한들 그런 힘의 존재를 함부로 밝히시면 아니 되고, 그 힘을 행사해 홀로 위협과 맞서서도 아니 됩니다.
은호의 차디찬 말을 듣고도 신인은 따사롭게 웃었다.
밤중인데도 신인 주변에만 훈풍이 부는 것 같았다.
―알았어요, 다음에는 혼자 가지는 않을게요.
이후 신인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전쟁이 시작되자 적이 노리는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하였고, 홀로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 약속을 지켜 신인은 청호와 함께 사라졌다.
그 약속은 신인이 공청훤이 된 후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산책이란 명목으로 공청훤이 떠도는 것이 그러했다.
‘하지만…… 어제 밤 산책을 갈 거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지.’
공청훤은 어제 밤 산책을 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은호는 현재 일개 학생에 불과하므로 굳이 그걸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공청훤이 신인으로서의 약속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지는 않으셨어. 따라올 능력이 없으면 오지 말라는 걸까?’
공청훤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든 은호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은호는 다른 학생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며 공청훤의 밤 산책 코스를 검토했다.
이미 황호를 경유해 밤 산책 건을 알렸기에 산 주변에는 호족이 순찰을 돌고 있는 상태였다.
‘아직 황호 님으로부터 온 소식은 없어.’
호족은 공청훤의 밤 산책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면 아직 딱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아 보고할 게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은호는 따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곳에 파견된 호족의 경호원들은 은서호와 은이호의 존재는 알고 있어도 은호가 일어난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저들은 은호를 일개 학생으로 대할 테니, 마주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했다.
‘호족의 순찰 루트와 겹치지 않는 방향을 노려서 움직여야겠어.’
은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신중하게 발을 옮겼을 때였다.
갑자기 기척이 느껴지더니 저편에서 벽으로 보였던 것이 ‘휘리릭’ 하고 뒤집어졌다.
벽으로 위장되었던 것은 벽의 형태를 한 위장 천막이었다.
그 밑에서 나타난 건 1학년 1반의 괴짜, 차석원이었다.
래프팅을 할 때 그렇게 날뛰었는데 저 괴짜는 지치지도 않은 듯했다.
“어? 은하야. 너도 일어나 있었네.”
“응, 안녕.”
은호는 당황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고 웃는 낯으로 답했다.
괜히 이상하게 굴어 흥미를 끌면 일이 귀찮아졌다.
은호는 순식간에 전략을 짰다.
자신에게 흥미를 잃도록 하여 저 괴짜는 할 일을 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여기가 공기가 좋아서 별 보기가 좋거든. 그런데 해는 늦게 지고, 밤늦게는 외출이 안 되잖아? 그래서 몰래 나와서 보고 있었어.”
“그렇구나.”
“오늘 구름이 적어서 별 보기 엄청 좋아. 지금 위장 벽 세우고 망원경 세팅 중이었거든?
아, 그리고 방금 내 위장 천막 어땠어?”
은호는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차석원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붙임성도 좋고, 기숙사 옆방인 은호와의 관계도 매우 원만하다.
게다가 은호의 제작 능력과 차석원의 실험 정신에는 통하는 구석이 있어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기도 했다.
그러니 수련회 중 밤늦게 마주쳤을 때 이렇게 간단한 잡담을 나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호는 적당히 답하면서 차석원이 계속 별이나 보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좀처럼 일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은하야, 넌 뭐 할 거야?”
은호는 모호하게 웃으며 어떻게 답할지 고민했다.
배가 고파서 야식을 먹으러 나왔다고 하는 핑계를 댈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같이 먹겠다고 나올 듯했다.
또 숙소 내에 화장실이 있으므로 그 핑계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모순이 생겨 후일 추궁당할 우려가 있었다.
모순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가장 재미없는 대답을 떠올렸는데, 하필 그게 정답이었다.
“밤 산책을 하려고.”
은호가 고민 끝에 말했다.
은호는 부디 차석원이 ‘잘 가’라는 시시한 답변을 해 주길 원했다.
그러나 차석원은 은호의 뜻대로 답하질 않았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은호는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최악의 경우 기절시키고 혼자 갈까 생각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수를 두기 전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나도 같이 갈래!”
“나도!”
은호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주 잘 아는 목소리가 멋대로 답했다.
낮에 그 난리를 치고도 지치지 않는 괴짜들이 차석원 외에도 더 있었다.
차석원처럼 높은 레벨의 위장 벽을 제작하는 능력은 없지만, 진족의 눈을 속여 가며 죽은 척할 수 있을 만큼 기척을 죽이는 데 능한 자들이었다.
은서호와 은이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