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993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93)
117. 개막 (3)
개막식 다음 날 아침, 일본 대표팀의 숙소.
히라노 세이지는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일어났다.
이제 막 교류전이 개막했는데 이미 며칠은 지난 것처럼 몸이 피로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자고 잘 일어나는 버릇을 만들었는데 오늘은 유독 잠들기 어려웠다.
첫 종목을 두고 전략을 구상하거나 팀을 짜는 등의 일은 코치가 도맡아 하므로 히라노 세이지가 할 일이 없는데도 그랬다.
‘어차피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그냥 푹 쉬고 컨디션만 유지하면 되는데…….’
히라노 세이지는 애써 피로의 원인을 무시하며 평소보다 느리게 몸단장을 마쳤다.
하지만 방문을 나서기 전, 그 원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히라노 세이지는 연꽃을 연상하게 하는 선수단복 겉옷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옷을 입고 이만 나가야 하는데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안 입고 갈 수는 없어. 눈에 띌 거야.’
억지로 옷을 입는 동안 어제 일이 생각났다.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선수단복을 입은 아이들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의 대상에는 물론 히라노 세이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꽃을 상징하는 의상을 입은 채로 아가씨의 뒤를 따르는 모습은 어릿광대 떼를 보는 것처럼 우스웠을 테니 그렇게 쳐다보는 아리하라 토모아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히라노 세이지가 우울한 기분을 억누르며 방문을 열고 나간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 앞에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서 있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네. 오늘 데뷔하시는 건 아가씨인데, 왜 네가 긴장한 거야?”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아침부터 시비를 걸기 위해 기다린 듯했다.
소꿉친구가 이따위의 옷을 입고 있으면 그야 시비를 걸고 싶어지는 마음도 이해가 갔다.
히라노 세이지는 적당히 받아치기로 했다.
“아직 조식 시간도 안 됐어. 너야말로 여기에서 뭐 해? 긴장해서 잠을 못 잤어?”
“그럴 리가.”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코웃음을 치고선 가만히 히라노 세이지를 바라봤다.
“네가 데려온 걔, 머리는 괜찮냐?”
“……무명의 초신성을 말하는 거야?”
“그래. 네가 여우의 먹이로 던져 준 한국인 말이야. 여우의 부하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들었는데 걔 이름이 나왔거든.”
히라노 세이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코치들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는 건 헛소리겠지만, 그냥 해 본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아리하라 토모아키를 위시한 반 아가씨파가 코치진을 캐보는 건 알고 있었고, 그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코즈카 야시로를 염탐하긴 어렵더라도 ‘여우의 부하’라고 부르는 코치진 중에선 입이 가벼운 자도 있었으니 캐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조의신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건 별로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세이지, 그 녀석이 한국 대표팀 정보를 흘린 바람에 공격대와 수비대를 재편성했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정말로 모르는 거야?”
히라노 세이지는 대답하는 대신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아리하라 토모아키는 코치진 숙소로 향하는 소꿉친구를 지켜봤다.
여전히 선수단복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쓰긴 했지만, 그는 히라노 세이지를 방해하지 않았다.
한편, 히라노 세이지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수습하기에 바빴다.
‘대체 의신이가 왜?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히라노 세이지는 코즈카 야시로가 향을 이용해 수작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우의 향은 흔적이 잘 안 남기에 증거로 삼아 규탄하기도 어려웠고, 향에 당한 사이에 붙잡힌 약점 탓에 반항하는 것도 어려웠다.
조의신이 그날 호텔에서 무슨 짓을 당한 바람에 한국 대표팀의 정보를 전한 건 아닌지, 히라노 세이지는 몹시 걱정이 되었다.
아리하라 토모아키가 잘못 알고 한 소리였으면 했지만, 그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히라노 군, 소식을 들었나 봐요?”
코즈카 야시로가 생긋 웃으며 히라노 세이지를 반겼다.
그녀의 앞에는 플레이어 목록이 떠 있었는데, 어젯밤에 통보받은 것과 구성이 달랐다.
공격대와 수비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어제는 어떤 이계가 나타나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면, 오늘은 특별한 상황을 상정해 짠 편성 같았다.
“공격대와 수비대 구성을 변경했어요. 무명의 초신성이 정보를 흘렸거든요. 한국 대표팀의 편성을 고려해 재구성해 봤죠.”
코즈카 야시로는 홀로그램 하나를 더 보여 줬다.
그 안에는 한국 대표팀의 공격대 구성이 적혀 있었다.
발신자는 조의신으로, 디바이스 코드가 히라노 세이지에게 알려 준 것과 동일했다.
“무명의 초신성과는 앞으로도 좋은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히라노 세이지는 눈앞이 깜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리하라 토모아키의 말대로 자신이 조의신을 여우의 먹이로 던져 준 게 분명했다.
* * *
첫 종목인 ‘무작위 이계 공략’에 도전할 날이 시작되었다.
한국 대표팀의 아침은 느긋하게 시작했지만, 아닌 곳도 있을 거다.
‘일본 대표팀은 우리 라인업을 보고 다시 팀을 편성하겠지. 안다인보다 그 아가씨가 돋보일 만한 구성을 짜고 싶을 테니까.’
코즈카 야시로와 여우가 소개한 자에겐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오늘 안다인과 사이좋게 같이 입장한 모습을 보면 의심을 할 수 있으니, 줘도 그만인 정보를 뿌리되 고생 좀 해 보라고 일부러 새벽에 메시지를 보냈다.
아마 저녁에 편성을 마쳤을 텐데, 이걸 보고 다시 짜느라 아침 일찍 움직여야 했을 거다.
참고로 나는 미리 정보를 뿌릴 거라고 예고했다.
―저는 공격대에 속해도 상관없고, 제 의견대로 공격대를 편성해도 괜찮아요. 단, 조건이 있어요.
―물론이야, 말해 봐.
―후배님아, 무슨 조건을 건다고 그래.
염준열은 내가 무슨 제안을 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2학년 후배놈이 뭘 저리 비싸게 구냐고 생각하는 건 정해온 하나인 듯했는데, 사실 저게 틀린 소리는 아니긴 했다.
그냥 좋게 받아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넓은 것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제가 공격대 멤버를 다른 팀에게 미리 공개해도 상관없는 분만 지원해 주셨으면 해요.
이 말에 아직도 손을 들고 있던 지원자들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내가 무슨 의도가 있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일종의 도발을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전에 합숙할 때, 곽경구와 마진승을 실컷 도발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사실 반쯤은 의욕을 북돋을 겸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자신 있는 사람만 지원하라는 소리잖아. 난 할 거야.
―미로 말이 맞아. 알려져도 별 차이 없어.
―나도 동감해.
독고미로의 말에 동의한 건지 2학년들은 여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저렇게 자신이 넘치니 상관없겠다 싶어서 나는 내가 두고 싶은 수를 고려해 공격대를 편성했고, 새벽에 예약 메시지로 코즈카 야시로에게 보냈다.
덤으로 이른 시각에 미안하다, 알려도 될지 말지 고민하다가 보낸다라는 쓸데없는 말도 덧붙여서 우유부단한 척도 해 뒀다.
아마 저쪽에선 일본의 손을 잡을지 말지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일 거다.
물론, 그런 척을 한 것과 달리 나는 매우 잘 잤다.
‘흰 호랑이가 불침번을 섰으니 악몽 문제도 없겠지.’
이번 숙소는 1인실이긴 하지만, 은광고 거주 구역에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합숙으로 들뜬 사람도 있어서 장난질을 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이를 대비해 흰 호랑이를 부려 먹기로 했다.
벡호군은 요새 낮에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밤에 멋대로 방문을 지킬 테니 그냥 방치하기로 했다.
아마 오늘도 내가 깨어날 때까지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돌아갔을 거다.
어쩌면 아직도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밥이나 잘 챙겨 먹길 바란다.
“와, 평소에도 밥이 잘 나왔는데 더 잘 나온다.”
“교류전 덕분에 지익회가 특별 예산을 받았어. 아, 참고로 간식은 달토끼떡인데, 그건 후원받은 거야.”
아침은 지익회관 식당에서 기숙사생들 사이에서 섞여서 먹었다.
기숙사생들은 우리를 발견하자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덕분에 자기들 식사도 좋아졌다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선수단복 차림이 신기한 건지 같이 사진을 찍자며 요청하기도 했다.
‘옛날 생각이 나네. 선수촌 생활을 할 때 식당에서 사진 많이 찍었는데.’
후배들과 사진을 몇 번 찍은 후, 잠깐 옛날 생각에 잠겼다.
국제 체스 대회나 체스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종합 스포츠 대회에서 대표로 선발되면 이렇게 선수단복을 입고 사진 찍을 일이 많았다.
외국인 선수들이나 국적은 같지만 다른 종목의 선수들과 사진을 찍는 게 번거롭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이번 교류전에서는 각자 다른 숙소를 쓰느라 외국인 선수들과 마주칠 일이 없어 사진을 찍을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나는 정식 코치도 아닌데, 선수단복을 입어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김신록 선생님, 저희는 교류전 기간 지익회에 머물고 지익회의 고문은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생활 서포트를 해 주셔서 정말 기뻐요. 같이 사진 찍어요.”
선수단복을 입은 김신록 주변에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어색해하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안다인의 다정하고 논리적인 말에 설득되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김신록이 자진해서 선수단복을 입고 지익회관 식당에 등장한 게 의외였다.
이 해답은 용제건이 쥐고 있었다.
“김신록 선생님이 선수단복을 안 입을 것 같아서 다른 옷을 숨겨 놨어. 잘했지?”
자진해서 입은 건 아닌가 보다.
일단 정식 코치 중 한 명으로서 선수단복을 입고 나타난 용제건이 자신의 업적을 떠들었다.
평소엔 학교 밖으로 출퇴근을 하던 코치들은 교류전 기간에는 교직원 사택에 머물기로 했는데, 용제건도 그러기로 했다.
용제건은 교직원 사택 생활을 만끽했고 그 바람에 김신록이 아주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평소라면 안다인이 대신 화를 내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안다인은 김신록과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사진이라면 제가 찍어 드림! 아, 마침 주 반장님이 식사를 다 하셨네. 인원 배치는 이렇게…… 님도 사진 찍어야지, 어디 감!”
문새론에게 붙들린 바람에 덩달아 나도 사진을 찍게 되었다.
선수단들 전원 개인 사진을 비롯해 각종 조합의 사진을 찍은 후에야 지익회관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은광 글로벌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꽤 일찍 왔는데도 스타디움 주변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어제와 비슷한 풍경이었으나 눈에 띄는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돔이 닫혀 있어.’
은광 글로벌 스타디움은 경기장, 공연장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이계 시뮬레이터이기도 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굳이 돔 지붕을 닫아 둔 건 시뮬레이터의 출력을 올리기 위함일 거다.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니 이계 시뮬레이터 구동과 중계를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몸 풀면서 들어. 공격대, 수비대 편성은 예정대로 갈 거야. 수비대는 중간에 후보로 교체 가능하지만 공격대는 그게 안 되는 거 알지?”
천동하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무작위 이계 공략’은 나름의 현실 반영을 했다.
수비대의 경우, 외부에서 지원을 하기 용이하므로 후보를 활용해 인원 교체가 가능하도록 룰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계의 틈 안으로 들어간 공격대는 그게 안 된다.
저 말을 듣고도 공격대로 선발된 이들 중에는 긴장한 티를 내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공격대원들을 호명할게. 먼저, 공격대장 염준열.”
“응!”
“기운이 넘치네. 대답은 안 해도 돼.”
염준열은 자연스레 공격대의 대장, 공격대장을 맡았다.
공격대를 뽑은 내가 대장을 맡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극구 거절했다.
염준열은 자리가 파한 후, 제자로서 ‘스승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처음부터 공격대장의 자리는 염준열의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반응하기가 곤란했다.
“그럼 다음, 공격대원.”
천동하는 차례대로 이름을 불렀다.
곽경구.
독고미로.
박승현.
그리고 나, 조의신.
공격대는 다섯, 수비대는 다섯 그리고 후보는 셋.
어떤 이계가 등장해도 완벽하게 공략할 팀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