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10
110
드래곤 하트
찌란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익숙해졌지만, 장소가 장소였다. 지하 3천 미터의 밀폐 공간. 셋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곳에 등장한 외인에는 현도 놀랐다.
찌란의 등장에 흠칫했던 에이네는 곧 그가 한 말을 깨닫고는, 눈을 크게 뜨고 황금빛 선반과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봤다.
“그럼 이게 다 훔친 것들이라고?”
여긴 보석함도 아니고 무기 가게도 아니었다. 창고다. 물건을 대량으로 넣어 보관하기 위한 장소. 그리고 보관된 물건도 그냥 물건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보물이라 불러도 아깝지 않을 물건들이다.
그런 물건이 창고 가득하다. 이만한 물량을 훔치려면 몇 년이 걸리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감탄이 나왔다.
“평생 월담이나 하던 노인치고는 제법 잘 모으지 않았나?”
찌란이 말했다.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그이지만 자신이 평생 일군 결과 앞에서는 초연할 수 없었다. 그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나열된 찬란히 빛나는 삶의 결과들을 보았다.
리센이 말했다.
“찌란의 말대로다. 그가 만들던 장소를 내가 개조하며 동시에 물건을 추가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렇다 해도. 장소를 옮기는 건 가능했을 텐데.”
“도둑의 일은 도둑이 안다. 여기가 근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라고 찌란이 그러더군.”
현은 보물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살폈다. 못 보던 물건이 대부분이지만, 현이 봤던 것들도 있었다. 전투, 또는 전쟁의 전리품으로 분배한 리센의 아티팩트들이었다. 여기서 보이는 것들만 몇 개나 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찌란의 물건만 아니라 리센의 물건도 있다. 그는 찌란의 말만 듣고 이런 장소에 자신의 물건을 보관한 것이다. 배포가 크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타인에게 일을 맡길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뢰와는 달랐다. 현이 아는 리센은 남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찌란의 의견이 합당하다 판단하고, 그냥 그의 말대로 행한 일일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재산의 태반을 맡겨둔다. 재산의 일부라거나 대비책이 있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현이 아는 리센이라면 자신의 재산을 모두 여기 때려 박았다. 예전부터 리센의 사고는 범인과는 달랐다. 현은 그걸 그릇의 차이라고 이해했다.
“이쪽이다.”
리센이 둘을 안내했다. 드래곤 하트는 영약 칸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었다. 드래곤 하트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영약 칸의 가장 안쪽에는 세 개의 상자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저 세 개가 전부 드래곤 하트야?”
세 개의 상자를 보고 에이네가 물었다.
“아니, 하나다.”
“그럼 저 두 개는?”
“드래곤 하트의 유명세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드래곤 하트와 비슷한 영약을 찾으라면 없지는 않다. 반대로 드래곤 하트보다 더한 영약들도 있다.”
“대신 부작용이 엄청나지. 마력을 억지로 응축해 붙잡아두고 있는 건데 그게 멀쩡할 리 없잖아?”
현이 끼어들었다. 드래곤 하트가 영약의 대명사로 알려진 것은 그 마력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친화성 때문이다.
마력만 무식하게 늘려주는 영약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인신공양을 통해 만들어진 드래곤 하트 몇 개 분량의 마력을 가진 영약도 있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영약은 약이 아닌 독이다.
전성기의 현이 먹어도 몸이 버티지 못해 죽는 독약이다. 현도 몇 번 본 적 있다. 가까이 가기도 꺼려지는 저주의 덩어리와도 같은 영약은 방치하면 사방에 저주를 뿌려 몇 겹으로 봉인해둬야 하는 위험 물질이었다.
그것 말고도 담고 있는 마력이 드래곤 하트에 필적하는 영약은 많다. 부작용을 줄이고 줄여 간신히 사람이 먹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것들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급되진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실패한 건 아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일어난다. 기어코 드래곤 하트에 비견되는 영약을 만들어낸 사람도 있다.
드래곤 하트 양옆에 장식된 영약이 그 완성품이었다.
“드래곤 하트급의 마력에 부작용도 거의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 중 최상에 위치하는 영약이다.”
“반대로 말하면 드래곤들은 저런 심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잖아?”
“그게 이 세상의 불공평함이다.”
리센이 드래곤 하트가 담긴 상자를 열었다. 한입 크기의 심장이 피 대신 마력을 순환시키며 뛰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가 뛸 때마다 근처의 마력도 함께 움직였다.
“진짜 심장이었어?!”
정제된 알약을 상상했던 에이네가 입을 벌렸다.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적도 있지만 에이네는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 막 완성되어 마력을 채우는 과정에서 드래곤 하트가 사용되었고, 에이네는 그때 의식이 없었다. 당연히 드래곤 하트도 본 적 없다.
“죽은 드래곤의 심장에 소형화 마법과 각종 마법을 사용해 보존한 것. 그게 드래곤 하트다.”
“씹으면 진짜 심장 씹는 맛이 나서 조금 소름 돋지.”
현이 드래곤 하트로 손을 뻗었다. 리센이 현에게 물었다.
“혈고를 사용한 다음 먹을 줄 알았는데?”
혈고를 사용하면 마력을 더 잘 받아들이도록 체질이 바뀐다. 마력 적성이 높을 때와 낮을 때, 어떤 체질이 더 영약을 잘 흡수할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현이 생각 없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걸 먹어서 초월자랑 싸워볼 만하다면 그러겠는데, 그게 아니라서.”
현이 망설임 없이 드래곤 하트를 잡고 입에 넣었다. 현은 드래곤 하트를 씹지도 않고 삼켰다. 한입 크기의 드래곤 하트가 넘어가자 목구멍이 아팠다. 씹어 삼켜도 되지만, 씹으며 빠져나올 마력 한 줌도 아까운 게 현의 처지였다.
막대한 마력이 몸 안쪽에서 용솟음쳤다. 현은 유가축골공과 천마신공으로 외부로 나가는 마력을 몸에 가뒀다.
유가축골공으로 유연하고 질겨진 몸 내부는 폭주에 가까운 마력의 폭풍에도 견뎌냈다.
‘됐나.’
드래곤 하트의 친화성은 먹을 때마다 놀라웠다. 그 많은 마력이 현의 마력과 거의 비슷한 성질로 변했다.
보통 영약을 먹으면 그 마력을 다스리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다른 성질의 마력이 몸 안에서 날뛰는 걸 잡지 못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이다. 그건 드래곤 하트라도 다르지 않았다. 거의 비슷한 마력으로 변하긴 했지만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현의 마력과 같은 건 아니었다.
조심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지구 최강이라 불릴 때는 드래곤 하트의 몇 배에 달하는 마력을 평소에도 다뤘다. 몸만 버텨주면, 드래곤 하트 하나의 마력은 졸면서도 제어할 수 있다.
“정말 정령사가 아닌 무인이 될 건가?”
리센이 현에게 물었다. 현과 같은 상태로 영약을 섭취하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소화하지 못한 마력이 전신에 퍼져 몸에 녹아든다는 것이다. 몸에 녹아든 마력은 전신에 골고루 흡수되며 신체 자체를 강화한다.
마력 적성이 낮은 사람이 감당 못 할 영약을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마력이 몸에 녹아들 때까지 몸 안에 마력을 잡아두고 있어야 하는 데, 그게 가능한 사람은 마력 적성이 높은 사람이다. 그리고 마력 적성이 높은 사람은 저럴 필요도 없이 몸이 마력을 다 흡수해버린다.
현과 같은 상태를 고의로 연출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이미 저런 방법이 필요 없는 레벨이다.
낮은 마력 적성에 비정상적인 마력 제어력을 가진 현에게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저런 식으로 영약을 섭취하면 영약의 본래 목적인 마력 증진 효과는 크게 볼 수 없었다.
“혈고를 먹어도, 이 몸으로 예전 같이 정령술을 쓰며 싸우려면 드래곤 하트 10개를 먹어도 부족해.”
현의 마력이 드래곤 하트 10개를 합친 양보다 많다는 게 아니다. 몸이 가진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지구 최강이라 불렸던 김우현의 몸은 마력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력 적성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로 이 몸은 지구인의 평균에 간신히 걸치는 마력 적성을 가지고 있다.
마력 적성을 아무리 높이고 영약을 아무리 먹어도 전생의 그 경지까지 도달할 확률은 희박했다.
차라리 이 몸의 재능, 사기적인 육체 능력을 이용해 무공으로 과거의 무력을 되찾는 것이 더 가능성 있었다.
“그럼 완전히 무인이 되기로 했나?”
“아예 갈아타는 건 아니고, 정령술도 쓰긴 써야지. 내가 걔들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도 주는 무공이 될 거야.”
“잘 됐군.”
“내 십 년 적공이 무너진다는 데 그런 소리가 나와?”
“입을 잘만 여는 걸 보면 흡수에 문제는 없겠고.”
리센은 현을 무시하고 걷기 시작했다. 현도 어쩔 수 없이 리센을 따랐다. 리센이 현과 에이네를 데려간 곳은 아티팩트가 모여 있는 장소였다.
이쯤되면 현도 리센이 뭘 하려는지 알았다.
“무기는 쓰나? 아니면 박투?”
“현絃.”
“실이라… 찌란 적당한 게 있나?”
“흔치 않은 무기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물건이기도 하지.”
앞으로 걸어간 찌란은 그대로 창고 안쪽으로 쭉 들어가더니, 한 선반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흰색 안개가 지팡이 끝에 걸려 나왔다.
찌란은 안개를 손으로 잡아 현에게 건넸다. 현이 안개를 잡았다. 안개는 있는 듯 없는 듯 신기한 감촉이었다.
“이매망량의 왕이 지금의 이매망량의 왕이 되기 이전,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10가지 신기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물건일세.”
“그게 이매망량의 무기라고?”
“그렇다네. 첫 번째이기에 가장 불안정하지만, 반대로 가장 이매망량의 힘을 잘 받아낸 무기이지. 왕년에 나도 애용했던 거라네. 나는 주로 함정으로 활용했어.”
이매망량의 힘을 가지고 있는 무기. 현은 이 안개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안개를 손에 들고 집중하니 안개가 뭉쳐 실뭉치로 변했다. 현이 다시 상상하니 실이 안개로 돌아왔다.
현은 끼고 있던 반지를 모조리 빼고 안개를 두 개의 반지로 바꿔 양손에 끼웠다.
“대충 이런 건가.”
“사용법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군.”
“뭔데, 뭐야? 나도 좀 알자. 이매망량의 무기는 뭐고 이매망량의 힘은 또 뭐야?”
에이네가 현의 반지를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실수로 머리라도 흔들었다간 아티팩트가 대량으로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아까부터 머리카락 흔들리는 것에도 조심하고 있던 에이네는 답답함에 환장할 지경이었다.
쌓여 있던 답답함이 이매망량의 무기를 보며 폭발했다.
“이매망량의 무기. 세상에 10개 밖에 없는 물건으로 이매망량의 왕이 자신의 몸 일부로 만든 신기들을 그리 부른다네. 내가 훔친 물건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것이야.”
“이매망량의 힘은?”
“나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저기 두 사람에게 묻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에이네의 눈빛에 찌란이 흠흠, 헛기침했다. 에이네가 표적을 바꿔 잘 알 것 같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현과 리센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네가 할래?”
“내가 하지.”
리센이 말했다.
“마법서 종장은 기억하고 있나?”
“몇 페이지?”
자신 있다는 듯 똘망똘망한 에이네의 눈빛에 리센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 하나도 기억 안 하고 있군. 종장의 주제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그, 그래…? 그러고 보니 전부 믿음에 관한 건가?”
에이네가 급히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지만 역효과였다. 리센은 숙제를 안 한 학생을 보는 선생의 눈으로 에이네를 보았다.
보기만 해도 고개를 숙이게 되는 그 눈의 효과는 에이네에게도 유효했다. 실제로 그녀는 숙제, 마법 수행을 거의 안 했으니까. 에이네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제안은 거절할 걸 그랬군.”
“앞으로 열심히 하면 되잖아.”
에이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리센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고, 에이네의 시선이 땅에 처박혔다.
“알아서 절대 손해 볼 건 없으니 떠올리기라도 해라. 익숙해지면 하루 10분이면 가능하다.”
훈계하는 선생처럼 리센이 말했고, 에이네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센이 말을 이었다.
“이매망량은 설화, 신화, 민화의 집합. 전 차원에서 등장하는 보편적인 존재들이 형체를 이룬 것이다. 대표적으로 도플갱어. 도플갱어는 바뀐 사람, 거울 속 세계, 이면의 세상 등의 이야기가 형체를 이룬 것이다. 여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플갱어들에게 일관된 ‘본모습’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