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32
132
기업 국가
현은 자신이 보아왔던 자본주의는 소꿉놀이였음을 깨달았다. 윤리가 존재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풍조가 깔린 세계에선 진짜 자본주의는 꽃필 수 없다. 그리고 꽃피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현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회귀자는 회귀자답게 할 일이 있다며 가버렸고, 에이네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한다는 말만 남기고 두 사람에게 용돈을 한가득 타서 가버렸다. 중소 도시에 가면 건물 몇 채는 살 금액이었지만, 이성철이 말하길 히름에서 버티려면 저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현은 이성철에게 히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물었고, 이성철은 도박장을 추천했다.
그렇게 도착한 도박장은 현이 생각한 모습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일단 카지노. 온갖 종류의 도박이 준비된 장소. 이건 여느 도박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한 쪽에 있는 그건… 한 마디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공기를 가진 장소였다.
굳이 말하자면, 세상의 돈벌이를 모두 모아둔 듯한 마경.
일단 로또가 보였다. 그리고 주식 시장이 보였다. 투기장, 경마장, 투계鬪鷄, 개싸움, 투우 등 눈에 다 담기도 힘든 토토 목록도 있었다. 현은 목록을 보자마자 저것들은 조작되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세 번째로 상점이 보였다. 여기가 진짜 마경이었다. 상점에는 팔지 않는 것이 없었고 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잡화를 거쳐 귀중품을 넘어 사람까지. 노예 중에는 재앙의 신자도 있었다. 힘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재앙의 신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몇 중의 구속을 차고 상품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목숨도 사고팔았다. 암살 전문 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암살자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있었다. 웃긴 건 그들의 의뢰 성공과 실패에도 배당이 걸려 있었다는 점이다.
의뢰주와 표적을 모두 공개하고 누가 먼저 죽을지 배당을 시작하는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런 짓을 하면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건 자신들일 건데, 그들은 그조차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목숨보다 돈을 우선하는 사람은 현도 본 적 있다. 그러나 그들도 히름의 인간들만큼은 아니었다. 히름 전체의 풍조가 그랬다.
현은 가볍게 카지노 노름판에 끼었다. 얼굴은 숨겼다. 도박장까지 가는 길에 몇 번이나 현상금 사냥꾼을 만난 탓이었다.
현은 돈을 땄다. 따고 또 땄다. 현의 능력이라면 도박으로 돈을 잃는 게 더 어려웠다. 한창 따고 있을 때 좀 쉬라며 카지노 측에서 준비해준 방이 이 방이었다.
“단체로 약이라도 빨았나.”
히름에 대한 감상은 딱 그거였다. 도시 전체가 황금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리고 그 황금은 허상이다. 실제로 황금을 가진 건 상위 0.1%다. 그들이 가진 것을 뺀 나머지는 모두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상이었다. 그러나 허상이기에 그것들은 자유로웠고, 허상이기에 사람을 현혹해 빠져들게 하기 좋았다.
현은 방에서 내려와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카지노에 딸린 호텔의 외견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벽에 벽지 대신 금박을 씌운 건 다양한 종류의 사치를 보아온 현도 처음 보는 돈 낭비였다.
눈 돌아가는 사치 속에서도 현을 즐겁게 해준 건 식사였다. 식사도 사치의 일환인 건 만 차원 공통이다. 호텔에서 나오는 식사는 맛있었다.
한 남자가 현의 정면에 앉으며 말했다.
“당신 같은 거물에게 카지노는 필요 없지 않습니까?”
“한 마디만 더 지껄여봐.”
현의 반지가 희미하게 빛났고, 남자의 목을 감는 실이 생겨났다. 실은 현의 반지와 이어져 있었다. 현이 말했다.
“넌 누구지? 입만 움직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알지?”
현은 남자를 살폈다. 외모는 20대 중반. 레벨은 400 언저리로 보였다. 몇 가지 방법을 써서 검증해도 마찬가지. 마력을 숨긴 걸로는 안 보였다. 저 레벨이면 노화도 그다지 느려지지 않는다. 나이도 외견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되겠지.
“전 수상한 사람이지만, 수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군. 당신의 잠재적 우군입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제 눈은 선천적으로 조금 특별합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죠. 전 이걸 인지도라고 부릅니다. 그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를 볼 수 있죠.”
“계속해.”
“10년 전, 당신이 히름을 찾았을 때 당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천마, 리센과 함께 제가 본,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지도였습니다.”
“인지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저도 제 능력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팔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죠.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여긴 근원 세계지 않습니까?”
“그렇지.”
남자의 목에 감긴 실이 사라졌다. 반지가 빛났다. 이번에 실은 남자의 전신을 감고 있었다. 흰색이었던 실은 투명해져 일반적인 시야로는 보이지도 않았다.
은은한 마력이 흐르는 실이 사지를 파고드는데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눈에 힘을 주었다.
현은 그 점을 높이 샀다.
“반군이란 걸 자세히 설명해봐.”
“히름은 이상합니다. 체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드렸죠? 제 인지도를 보는 능력. 편의상 인지도라 부르고는 있지만, 살짝 복잡합니다. 말주변이 없어 잘은 설명 못 드리겠는데. 저는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히름은 명백히 일그러져 있습니다. 저는 그걸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만든 반군입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이용해 성공하는 게 더 빠를 텐데.”
“제 눈으로 보는 세상을 모르셔서 그럽니다. 히름은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히름을 벗어나면?”
“히름을 중심으로 한 일그러짐이 세계 전체로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히름에서 벗어나봤자 시간 벌이에 불과합니다. 벌써 세계 반대편에서까지 일그러짐이 보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현은 한탄하듯 내뱉는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히름에서 시작된 일그러짐이 세계 반대편까지 퍼지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말이다. 남자의 말은 이성철이 말한 미래, 히름이 위원회에 큰 권한을 가지고 근원 세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한테 원하는 건, 반군 협력이냐?”
“그렇습니다. 당장 대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히름엔 오래 머무르실 생각이십니까?”
“아마도.”
“히름에서 며칠 지내시다 보면 아실 겁니다. 그때 다시 찾아올 테니. 이것 좀 풀어주시죠.”
순박하게 웃으며 조여드는 팔을 가리키는 남자를 보며 현은 이런 남자가 어떻게 반군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한 스카우터인가?’
그런 것치곤 태도가 너무 당당했다. 현은 남자의 몸을 묶고 있는 실을 없애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묶여 있던 사지를 주무르며 말했다.
“호의로 정보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상당한 인지도의 무리가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인지도는, 12신위 중 6번 부대의 인지도군요.”
무슨 수를 써 사라질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남자는 걸어서, 정말 평범하게 걸어서 호텔을 나갔고, 그래서 현은 더 혼란스러웠다.
가진 능력의 비범함에 행동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할까. 보고 있으면 묘한 위화감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현은 호텔을 나왔다. 남자가 준 정보 때문이었다.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포섭하려는 사람을 상대로 가짜 정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심리까지 노린 함정이라면, 그때는 알고 있는 금주 중 하나를 쓰면 된다. 금주 중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발동하는 종류도 있다.
무신이나 천마가 공격해오는 게 아니면 그 정도 시간은 벌 수 있다고, 현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판단했다.
현은 가면을 벗었다. 카지노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잠깐 쓰고 있던 가면이다. 벗어도 문제는 없었다.
윌리엄의 부탁을 생각하면 반대로 벗고 다녀야 한다. 현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식겁해 자리를 피하거나, 위험하게 눈을 빛내거나.
과연 회귀자의 식견은 탁월했다. 어제 하루 카지노에 있으며 현은 히름이 어떤 나라가 되었는지 가닥을 잡았다.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돈은 무력마저 대신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며, 운만 있으면 누구나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쥘 수 있다.
자기 목 위에 달린 것의 무게를 착각하기 좋은 환경이다. 푼돈 몇 푼에 노예가 거래되고 사람의 목숨이 배당되는 걸 보면 자기 목숨값을 착각할 만도 했다.
현은 사방에서 쏘아지는 눈빛을 무시했다. 살기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시선을 무시하며, 간혹 정말 정신을 놓고 공격해오는 상대가 있다면, 이매망량의 무기의 시험대로 삼아줬다.
연습할 때도 끝내줬지만, 직접 사람을 죽여보니 이매망량의 무기는 더욱 끝내줬다. 이매망량의 왕의 힘을 가장 잘 받아들였다는 무기의 작동방식은 이매망량의 존재 방식과 흡사했다.
믿으면 있으리라.
마치 설화를 바탕으로 이매망량이 태어나는 것처럼 현이 실이 있다고 믿는 장소에 실이 생겨났다. 실이 나타나는 걸 마력으로 감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뛰어난 직감이 없다면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현은 무기에 의존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이매망량의 무기를 쓰며 생각이 달라졌다. 세계에 10개 밖에 없는 무기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6번 부대의 마력이 현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현은 이미 도시 외곽까지 나와 있었다.
12신위. 120명의 두 번째 벽을 넘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정예부대.
‘버거워.’
호기롭게 인적 없는 장소로 오긴 했지만, 그건 죽지 않을 사람이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지 자신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맨몸으로 12신위 중 한 부대를 상대할 힘든 현재 현에게 없었다.
되지도 않는 오지랖 때문에 무덤만 판 꼴이었다. 무덤을 팠다 해도 묏자리에서 삽 한 번 꽂은 수준이지만.
12신위는 강하다. 그렇다고 숨겨둔 패를 꺼낼 정도는 또 아니다. 12신위 중 2개 부대 이상이 왔다면 거리낌 없이 썼을 건데.
고민하는 현에게 전음이 들렸다.
-아니, 형은 왜 또 여기 있어요?
우가혁이었다. 육합전성이 아닌, 일부러 방향을 추적하기 쉽게 사용한 전음이었다. 현은 우가혁이 있는 장소를 찾아, 떨어진 장소의 지붕 위에 있는 우가혁에게 바람의 정령 한 체를 보냈다.
“그러는 너는 또 왜 여기 있냐.”
-위원회 일 말고 제가 여기 있을 이유가 어디 있어요.
“요원?”
-분쟁 지역에서 구르는 건 질색이라서요. 제가 거기 있으면 약한 애들 괴롭히는 게 되잖아요.
잘못된 말도 아니었다. 요원 육성용으로 마련된 분쟁 현장에 우가혁이 끼어들면 그건 반칙이었다.
“위원회에서 나왔다면, 네 임무는?”
-6번 부대의 관찰과 여차할 때의 암살이요. 그러니까 진에 갇혀도 적당히 시간만 끌어주세요. 하나하나 암살해 무너뜨릴게요.
“정령은 너한테 붙여둘 테니까 비상 연락으로 쓰고, 그럼 난 방비에 들어간다.”
-네.
현은 주변 지리를 머리에 담았다. 이매망량의 첫 번째 무기를 쓰는 데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지형지물을 잘 알수록 더 치명적인 곳에 함정을 설치할 수 있다.
6번 부대의 마력이 가까워졌다. 그들은 합격진을 익히며 생기는 마력을 숨기지도 않았다.
120명의 사람이 현을 둘러쌌다. 누군가는 땅에, 누군가는 지붕에, 또 누군가는 허공을 딛고 하늘에.
대화도 없이 합격진을 형성하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현은 손가락의 반지를 장갑으로 바꿨다.
그리고 두 장갑을 마주쳐 소리를 냈다. 가벼운 자기 암시다.
짝.
손뼉과 함께 수천 개의 실이 하늘에 생겨났다. 강기가 흐르는 실이 합격진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