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47
147
마녀의 왕
현이 처음 마녀의 왕이 됐을 때, 마녀의 나라의 늙은 마녀들은 악을 쓰며 반대했다. 적통성과 현의 성별이 그 이유였다.
마녀의 나라는 금남의 지역. 현이 마녀의 나라에 체류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선왕 에인젤라 덕분이었다. 그리고 에인젤라가 죽고 현이 마녀의 왕이 됐을 때 마녀들의 불만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마녀조차 아닌 남자가 왕이 됐다. 자격시험을 치르지도 않았고, 여왕의 적통도 아니었다.
반발을 살만하다는 건 현도 알았다. 그래서 힘으로 증명했다.
공격해오는 과학을 물리치고, 반발하는 마녀들을 처형하고, 그렇게 권력을 안정시켰다. 마녀의 나라 안에 존재하는 반발 세력은 모두 정리했을 터였다.
설마 또 헛짓거리를 하는 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왕이 버젓이 살아 있다고 하는데도.
“그게 왜 네 탓이야?”
“내가 확실히 해두지 않았으니까. 왕위 계승 의식만 완성해뒀으면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마녀의 나라에 왕이 부재했을 때 새로운 왕을 정하는 법은 두 개가 있다. 나라를 관리하는 마녀들의 투표, 그리고 선왕이 정한 의식을 통과하는 것.
현은 왕위 계승 의식을 완성하기 전에 죽었다. 그때는 계승 의식을 만들 시간도 없었다. 북대륙을 희생하며 마신을 죽일 초월자들을 모았다. 패배는 세계의 멸망과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현은 왕위 계승 의식을 완성하기보단 마신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왕위 계승 의식은 그 뒤에 완성할 예정이었다. 아니면 바로 수아람에게 왕위를 넘겨주거나.
수아람이 여왕이 아닌 공주로 남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수아람은 여왕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보좌만 잘해 줬어도 여왕의 직무는 수행할 수 있었을 거야. 연락이 끊어지는 일도 없었겠지.”
현이 작게 이를 갈았다. 마녀의 나라는 그가 에인젤라에게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하나라도 잘못되는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수아람의 일과 함께 마녀의 나라가 잘못됐다는 사실 자체에 현은 분노했다.
“저게 마녀의 나라?”
무성한 숲과 그 뒤로 펼쳐진 광대한 산맥을 보며 에이네가 말했다.
마녀의 나라는 국토 전체와 그 근처까지가 모두 공간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나라 구성원 모두가 마녀로 이루어진 마녀의 나라이기에 가능한 대주술이었다.
마녀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근처 공간이동이 가능한 지역으로 먼저 이동한 다음,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달리는 일행 앞에 사람이 보였다.
아종 드래곤의 한 종류로 취급받는 리자드맨 하나. 수인 남자 하나. 그리고 마족으로 보이는 여아 하나였다.
현은 한 번 크게 뛰어올라 기세를 죽이며 그들 앞에 착지했다.
수인 남자가 두 사람을 지키는 형태로 가리며 앞으로 나섰다. 셋은 현을 향해 높은 두려움과 경계심을 보였다.
“망명자인가?”
“맞다.”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에 깃든 경계심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현은 남자를 이해했다. 마녀의 나라에 망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고, 절박해질 일들을 겪었다는 뜻이다.
마녀의 나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남자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을 게 확실했다. 이미 상당한 신뢰를 쌓은 걸로 보이는 뒤에 있는 저 둘을 빼고.
“최근 마녀의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소식이 있나?”
“… 마녀의 나라에 무슨 일이?”
남자는 물론이고 뒤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도 공포가 서렸다. 이해할 수 없는 셋의 반응에 에이네는 인간 사전을 찾았다.
“왜들 저래?”
“망명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있는 거겠지.”
이성철이 대답했다.
“망명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이런 고생을 할 정도로?”
에이네는 뒤를 봤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평지가 있었다. 300km 정도를 달려왔고, 앞에 보이는 나무와 산의 크기로 계산해보면 100km 정도가 남았다.
세 사람에게는 수련 삼아 달려도 되는 거리지만, 저 셋에게는 아니었다. 마력도 거의 없는 저들에게 4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는 고된 여정일 게 분명했다. 리자드맨과 마족 소녀의 얼굴에는 이미 병색이 완연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차별이 없는 국가. 그게 마녀의 나라다.”
“차별이 없다고?”
“마녀의 나라는 핍박받던 마녀들이 뭉쳐 만든 나라다. 차별받던 마녀들은 우선 차별을 금지했다. 마녀의 나라에 의견 충돌에서 나오는 다툼은 있어도 차별에서 오는 다툼은 없다. 내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그렇다.”
“역시 대백과사전.”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이군. 어쨌든, 마녀의 나라는 모든 다름을 포용한다. 차별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 마녀의 나라는 마지막 낙원이다.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들여 줄 낙원. 낙원에 들어가는 길이 막힌다는 데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마녀의 나라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리자드맨도, 놀도, 그리고 기타 괴물도, 공용어를 사용하고 의사소통만 된다면 받아들여진다.
차별과 억압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속에는 다름이 있고, 다름이 있으면 차별이 있다. 마녀의 나라는 그 모든 차별을 받아들인다.
“뭐야 그거. 대단하잖아.”
에이네가 감탄했다. 근원 세계 전체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국제법인 차별 금지법이 있음에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종족 차별, 인종 차별은 어디에나 만연해 있었다.
유일하게 중앙 대형 산업 단지에선 종족 차별이 덜했지만, 거긴 다른 의미로 차별이 극에 달해 있었다.
차별 없는 나라. 마녀만 있는 칙칙한 나라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두 사람이 대화할 동안, 현은 망명 희망자 셋에게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건질 정보는 없었다. 차별을 피해 망명을 원하는 자들이다. 큰 기대도 없었다.
“그럼, 무운을 빌지.”
현이 물러나자 그제야 남자가 경계를 풀었다.
“가자.”
“저 사람들 데려가면 안 돼?”
연민에서 나온 말이었다. 병든 둘은 물론이고, 남자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몇 군데의 뼈가 부러져 있었고, 혹사당한 근육은 한계를 넘었고, 옷에 가려졌지만 흉터도 많았다.
“이 길은 시험이야.”
“시험?”
“마녀가 될 자격을 보는 시험. 여기서 도와주면, 저들은 쫓겨나. 그게 진짜 잔인한 일이지.”
마녀의 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는 걸어서 3달 이상 걸린다. 지금도 위태로운 저들이 여기서 쫓겨나면, 뒤에 기다리는 건 죽음이다.
낙원은 거저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낙원을 손에 쥐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했다.
“마녀의 나라에서 다시 보면 좋겠군.”
한 마디 안부 인사를 남기고 현은 다시 발을 떼었다. 마녀의 나라 초입이 가까웠다.
***
현이 숲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무 위에 지어진 통나무집에서 마녀들이 뛰어 내려왔다.
“왕이시여. 돌아오셨습니까.”
마녀들은 황망히 현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가며 현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진짜네.”
에이네는 마녀들의 면면을 보고 놀랐다. 정말 사람뿐만 아니라 몬스터라고 분류되는 지성체도 있었다.
“릴리리카.”
“네, 왕이시여.”
“수고가 많다.”
“치하를 거둬주십시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현은 리자드맨과 마족, 시험을 치르고 있는 자들과 같은 종족의 마녀를 봤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넣는 시험을 통과했을 때 그 앞에 같은 종족이 팔을 벌리고 있으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저 둘은 그걸 위해 불려왔을 것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파수꾼, 백 년 넘게 마녀의 나라 입구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 그게 릴리리카였다.
“대답해라. 너는 문제를 모르기에 여기 있는 것이냐. 문제가 없기에 여기 있는 것이냐?”
파수꾼들의 대장인 그녀는 마녀의 나라 중진이기도 했다. 수인이며 나이가 3백 살을 넘은 그녀는 대전 참전 경험도 있는 마녀였다.
마냥 황송해하던 릴리리카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고양이과 수인인 그녀가 인상을 쓰니 호감상이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죽여주십시오.”
“됐다. 네가 모른다면 정말로 모르는 것일 테니까. 성으로 가겠다. 모닥불을 준비해라. 다른 아이들은 물리고.”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필요 없다. 때가 되면 부를 것이니 그리 알아라.”
릴리리카를 제외한 마녀들이 파수 일로 돌아갔고, 셋은 릴리리카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사람 사는 나라 맞지?”
에이네가 말했다. 그녀가 탐색할 수 있는 최대 거리까지 모두 탐색해봤지만, 감지되는 건 동물뿐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녀의 나라에 사는 마녀의 숫자는 100만이 안 돼. 대전 때 많이들 죽었으니 훨씬 더 적겠지.”
“이 넓은 땅에 사람이 그것밖에 안 산다고?”
에이네의 기억에 있는 마녀의 나라의 영토는 중앙 대형 산업 단지의 영토보다 넓었다. 사람을 수용하면 십억이 넘는 사람이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옥토다.
“몇 군데 마녀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고, 혼자가 편한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장소를 잡고 살아. 대부분의 땅은 주술의 재료를 키우는 천연 양식장 비슷한 거고.”
그래서 이 넓은 영토를 줄일 수도 없었다. 희귀한 약초의 경우 지금도 모자라서 바깥으로 사러 나가는 마녀가 있을 지경이었다.
릴리리카가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모닥불이었다.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모닥불이 다 타고 재만 남아 있었다. 릴리리카가 모닥불에 약초를 던지고 주문을 외웠다.
“불의 길이여.”
화륵. 모닥불이 거세게 타올랐다. 전혀 뜨겁지 않은 모닥불을 향해 현이 발을 옮겼다.
“불초 릴리리카, 다시 한번 인사 올리겠습니다. 진정으로 잘 돌아오셨습니다. 저희들의 왕이시여.”
뒤바뀌는 풍경 뒤에서 릴리리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닥불을 통과하자 익숙한 방이 보였다. 마땅한 장식도 없는 돌로 만들어진 통로와 그 끝에 있는 거대한 문. 역대 마녀의 여왕이 살던 성의 입구였다.
“금남의 지역에서도 그 최심부에 이렇게 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성철이 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마녀의 나라는 유명한 금남의 지역이었다. 이성철이 알기로 마녀의 나라에 남자가 발을 들일 수 있는 경우는 마녀의 여왕에게 허락을 받았을 때뿐이다.
아까 망명을 위해 오던 수인 남자의 경우, 망명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비약을 먹고 여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게 마녀의 나라의 규칙이다.
사람이 아닌 지성체마저 받아들이는 마녀의 나라에서 유일하게 거부하는 게 바로 남자였다. 마녀 여왕의 제자로 마녀의 왕의 자리까지 간 현은 마녀의 나라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존재였다.
현이 다가가자 거대한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 너머에는 긴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그 끝에는 돌로 된 삭막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보석으로 치장된 의자가 있었다.
현은 주저 없이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중심으로 마력이 퍼졌다. 왕의 증명은 몸이 아닌 혼에 새겨진다. 몸이 바뀌었어도 영혼이 그대로인 한 현은 마녀의 왕이었다.
퍼져나간 마력이 마녀의 나라 전체로 퍼지며 마녀의 왕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현은 의자에 앉아 정면을 보았다. 열린 문 너머에서 모닥불이 타오르며 쉴 새 없이 사람을 토해냈다. 백여 명의 마녀가 쉬지 않고 모닥불을 통해 성으로 건너왔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마녀들이 옥좌를 기준으로 좌우로 갈라섰다.
에이네와 이성철은 옆에 떨어져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마지막 마녀까지 자리가 모두 차자 저절로 문이 닫혔다. 옥좌에 앉은 현은 턱을 괴고는 마녀들을 내려다봤다.
“지금 자수하면 사지를 찢어 외물에게 던져주는 걸로 끝내주마. 그러니 자수해라. 내 딸을 괴롭힌 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