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46
146
마녀의 왕
우가혁은 윌리엄의 앞에 있었다. 윌리엄 앞에 선 건 두 번째였다. 예전에는 같은 시선에 있었던 동료 앞에서 군기 바짝 든 모습을 연기 하는 건 익숙해지지 않았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익숙해지기 전에 위원회에서 도망칠 거였다.
‘보나마나 그 자리에서 형과 뭘 하고 있었냐고 물으려는 거겠지.’
이매망량의 왕과 충돌할 당시 우가혁은 현과 함께 있었다. 우가혁은 당연히 윌리엄이 그에 대해 추궁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윌리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네가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무신답게 우가혁은 신체 반응을 완벽히 통제해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샬롯이 6번 신위 부대가 사라진 장소의 기억을 읽었어. 이래도 시치미 뗄래?”
“그 셜록키언이……. 아군일 땐 좋았는데 아니니까 참 성가셔.”
우가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실수였다. 샬롯의 능력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머리를 안 썼더니 머리가 아예 굳어버린 듯했다.
“못 본 척해 줄 수도 있었지만, 알다시피 최근 정세가 좋지 않아서.”
“그 좀비를 이용해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정리한 사람이 할 말인가?”
윌리엄 자신은 무고하다는 듯 양 손바닥을 보였다.
“먼저 나를 죽이려한 건 그놈들인데 왜 나한테 그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괜히 설레발은. 원하는 게 뭐야? 현재 내 무력은 위원회 전체와 비교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여전히 네가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건 현밖에 없구나.”
우가혁이 피식 웃었다.
“불만이면 동양인 되시던가. 외국 생활이 길어서 외국인한테는 반말이 익숙해서.”
“지금 그거, 인종차별 발언이다?”
“그래서 날 죽이시게?”
윌리엄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 앞에선 명실상부한 무신이면서 현 앞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리 순한 양이 되는지. 현의 과거와 관계가 있다곤 하는데, 윌리엄은 그 부분은 잘 몰랐다.
윌리엄이 현을 만났을 때, 우가혁은 이미 현과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말해두지만 난 위원회를 떠날 거다. 요원이 된 건 이게 가장 지원이 좋기 때문이지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예상은 했어. 위원회에 돌아오고 싶었다면 나나 리센에게 먼저 연락했을 테니까. 그래도 지원만 빼먹고 도망가겠다니, 위원회 간부로서 넘어갈 수 없는 말인데.”
“어차피 무너질 건데, 조금 빼 먹는 건 문제 없잖아?”
“위원회가 무너져?”
“형 쪽에 있는 회귀자가 말한 정보니 거의 확실하겠지. 그런데 별로 안 놀라네?”
말은 그렇게 해도 윌리엄의 태도는 뚱했다. 누가봐도 놀란 건 아니었다.
“이번 좀비 사태만 해도 위험했지. 권능 중화제를 만들어 배포할 수 있는 조직이 위원회가 유일하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기업, 국가 단위로 위원회에 가맹한 놈들 반 이상이 빠졌을 거야.”
윌리엄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들을 협박했다. 그들의 영향력이 아무리 커도, 위원회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건 일부 초월자들이었다.
윌리엄은 좀비 사태가 터지자마자 권능 중화제를 만들 수 있는 위원회 소속 죽음의 신자와 역병의 신자를 포섭했고, 권능 중화제의 숫자를 통제했다.
“하지만, 그러면 국가가 역병과 죽음과 손을 잡게 돼. 자신 있어?”
재앙에 버금가는 좀비 사태. 그리고 그 해결책이 죽음의 신자와 역병의 신자다. 다시 좀비 사태가 터졌을 때 위원회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국가와 기업은 죽음의 신자와 역병의 신자를 포섭할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역병이 원할 것이야 뻔했다. 남에게 핍박받지 않을 권력, 사람 위에 서는 힘. 핍박받는 일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타인을 아래로 둘 수 있다는 유혹은 그 어떤 보물보다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권력의 끄트머리에 죽음과 역병이 끼어든다. 그것도 대대적으로. 근원 세계에서 죽음이 국가를 세우거나, 역병이 권력을 얻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대적인 등용은 전례가 없었다.
역병과 죽음은, 그들이 선한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존재 자체로 혐오 받는 재앙이었다.
역병 의사와 사의가 그 대표였다.
다 죽어가면서도 역병 의사에게 치료받길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노예로 들여 줬으면 하지만, 사도급과 손잡는 멍청한 것들도 나오겠지. 그러다 나라를 빼앗기는 놈들도 나오겠고. 흠… 진짜 위원회가 망할지도.”
윌리엄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다른 재앙도 아니고 죽음이나 역병의 사도와 손잡는 놈들이라면 망해도 싸다는 심정이었지만, 위원회가 망할 거라는 우가혁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게 아니었다.
위원회의 전력은 점점 줄고 있다. 고질적인 문제는 인력이었다.
만성적인 요원 부족이야 위원회 창설 때부터 그랬으니 둘째 치고, 요원 외 전력. 가맹 조직들의 협력이 시원찮았다. 위원회의 통보를 살살 무시하거나 뭉그적거리기 일쑤고 무시하기도 했다.
협력 잘 하는 곳도 없진 않았다. 그런 곳들은 협력을 너무 잘해 조직을 보전할 최소한의 전력만을 남기고 모든 병력을 상실했다.
일어나는 사고에 비해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그렇다고 초월자들을 움직일 수도 없고.’
초월자가 어떤 인종인지는 천마를 보면 안다. 독선적이고 남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설치는 인간들. 정도는 다르지만 초월자는 모두 그런 면이 있다.
비교적 말을 잘 듣는 검신조차 멋에 대해선 죽어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 비합리적인 가격의 정장이라거나.
“떠보기는 이만하면 된 것 같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날 부른 이유는?”
“무신을 부른 이유가 뭐겠어?”
우가혁이 이를 갈았다. 이게 싫어서 죽어서까지 위원회에서 벗어나려 한 건데,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우가혁의 표정을 읽은 윌리엄이 말했다.
“오래 붙잡진 않아. 지금의 혼란이 정리될 때까지만 움직여주면 돼. 보상으로는… 영약과 양자폰이면 되나?”
영약과 양자폰, 둘 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 두 가지면 미련 없이 위원회를 버릴 수 있다. 그의 승진 속도가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양자폰을 얻기까지는 까마득했다. 우가혁은 특수 임무라도 얻어 양자폰을 보급받을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흔한 게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위원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가혁에게 윌리엄의 제안은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우가혁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일은?”
윌리엄이 서랍에서 꺼낸 서류 몇 개를 던져주었다. 종이에는 마녀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현재 위원회에 체류 중인 마녀의 나라 중진들이야. 흔적 없이 납치하는 거, 가능해?”
“주술 방어용으로 만들어진 부적 몇 개. 그리고 예비용으로 남아 있는 내 도복들. 그것들이 있다면.”
“오늘 안으로 준비될 거야. 최대한 빠르게 부탁해.”
윌리엄의 태도에선 약간이지만 초조함이 묻어났다. 윌리엄은 마녀와 연이 없다. 마녀의 나라 중진들을 납치할 이유가 없었다.
“수아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 아마도.”
윌리엄이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우가혁도 마찬가지였다. 막 소환되어 아무것도 모르던 소녀 시절의 수아람을 거둬 키운 게 현이었다. 키운 건 현이지만, 현만 키운 건 아니었다. 그를 비롯한 지구 출신 모두가 수아람의 교육에 크고 작게 관여했다.
특히 두 명의 신. 검신과 무신이 현이 없을 때 그녀를 돌봤다.
우가혁은 수아람의 대부였다.
“지랄 났군. 그년들이 수아람을 건드렸다는 증거는?”
“마녀의 나라에 들렀다 오겠다는 걸 끝으로 소식이 끊겼어.”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대령하겠다. 목숨만 살려서.”
우가혁은 이를 갈며 방을 나섰다. 우가혁이 나가고 혼자 남은 윌리엄은 한숨을 쉬었다.
마녀의 나라는 위원회 내부에서도, 그리고 마녀의 나라 자체로도 특별하다. 마녀의 나라 내부에 일이 생기면 그걸 해결 가능한 사람은 세계에 단 한 명뿐이다.
공주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있고, 그게 나라 내부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라면 왕의 분노를 누가 감당할까.
***
히름 다음에 정리할 기업과 국가를 열 개 정도 정해놓은 현이었지만, 좀비 사태로 본의 아니게 일정이 미뤄지게 되었다. 세계를 강타한 좀비 사태에 현도 당연히 휘말렸고, 죽어서도 못 고칠, 죽었다가 살아나서도 못 고친 그놈의 오지랖 때문에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움직였다.
서로의 이념을 둔 다툼이라면 억지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건데, 이건 악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재앙이었다.
일방적으로 재앙에 유린당하는 사람들에겐 이념은 없고 살고자 하는, 이 재앙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었다. 그래서 현은 더더욱 그들을 버릴 수 없었다.
중화제를 만들 수 없으니 현 일행은 좀비를 죽여서 안전 구역을 만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좀비를 상대로 무공 수련을 질리도록 했다.
천마 신공의 평소 안 쓰던 영역까지 사용해볼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 1년간 누가 내 앞에서 좀비 이야기를 꺼내면, 그놈을 물어버릴 거야.”
광란의 한 달이 끝나고, 겨우 좀비 사태가 진정됐다. 에이네는 이제 좀비라면 치가 떨렸다. 처음에는 분명 부수는 손맛이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딱 닷새까지였다. 점점 물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좀비만 봐도 신물이 났다.
“세계 인구 1할이 한 달 사이 사라졌다.”
“1할?”
현이 위원회 어플에 나온 피해 상황을 말해주자 이성철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되물었다. 옆에서 에이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넘을 수도 있고, 조금 작을 수도 있고, 어쨌든 1할 근사치. 피해가 특히 큰 쪽은 전의가 피에 흐르는 종족과 인간이니까 수십 년 전후로 복구되긴 하겠네.”
“그래도 1할이라니…….”
“왜 이만한 재앙은 처음이야?”
“당연하다. 사회 인구의 1할이 줄었는데 어떻게 사회가 유지되는 거지?”
“익숙하니까. 다른 세대는 몰라도 지금 세대는 그래. 열세 번째와 열네 번째, 그리고 다른 자연재해와 인재까지. 많은 재앙이 지나갔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 현세대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야. 사람이 없어도 망하지 않는 법을 몸으로 알아.”
아무리 근원 세계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나. 이성철은 생각했다.
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원흉을 잡아야지. 그놈들이 살아 있으면 또 언제 이런 일이 터질지 몰라.”
“범인은 당연히 노벨 화학상 수상자라는 그놈이겠고, 잡을 방법은 있어? 나한테 뭘 바라지 마라? 난 안드로이드지 신이 아니니까.”
“그게 골치지.”
프로만 리슈타인, 범인의 이름을 알아도 잡을 수가 없다. 현이 아는 프로만 리슈타인은 죽었다. 그가 죽으며 추적할 단서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어플을 상시 확인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어놨던 양자폰이 울렸다. 현이 전화를 받았다.
“뭐야?”
-수아람에게 일이 생긴 것 같다. 마녀의 나라에서 연락이 끊겼어.
“그래서 나보고 가보라?”
-안 갈 거냐?
“아니, 가야지.”
-위원회에 있던 마녀들을 고문해보니 수아람이 스스로 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거면 연락 하나 없을 리가 없지. 뭔가 있긴 있을 거다.
“하나만 묻자.”
-뭐?
“마녀가 멸종하면 위원회 입장에선 타격이 클까?”
-…… 없진 않겠지.
현이 전화를 끊었다. 이성철이 말했다.
“다음 목적지는 마녀의 나라인가?”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아니, 마녀의 나라는 나도 가본 적 없다. 남자라면 입국조차 힘드니까. 아니, 불가능하니까.”
“위원회가 망할 때 무슨 태도를 취하긴 했을 거 아냐.”
“중립. 네가 왕이라는 것과 수아람의 존재. 그 두 개 때문에 마녀의 나라에 손대려는 인간은 없었다. 서로 싸우기 바쁜데 가만있는 마녀에게 손대는 미친놈도 없었고. 하지만, 수아람은 적극적으로 둘을 말리려 했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나?”
공주가 싸움을 말리고 있는데, 공주를 도와야 할 마녀의 나라가 구경만 했다. 마녀의 나라에서 수아람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눈에 선했다.
현이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분노와 경멸, 그리고 자기혐오를 담은 웃음이었다.
“알고말고. 전부 내 부덕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