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227
227
마魔와 천天
자동차의 기어를 올리듯 천마와 오르가는 조금씩 힘을 높여갔다. 천마가 강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옅은 검은색 강기를 막을 것은 잿빛의 강기밖에 없었다.
천마의 손을 벗어난 강기가 뱀이 되어 오르가의 목을 노렸다. 수십 개의 강기 안에 섞인 뱀은 은밀하게 오르가에게 다가갔다. 사각에서 날아드는 뱀을 오르가는 보지도 않고 잡아챘다. 마찬가지로 강기를 두른 손에 뱀의 색이 물들었다.
적에게 약탈하는 식량 1석은 후방에서 보급하는 식량 100석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보급과 약탈은 전쟁의 기본이다. 마력도 다르지 않다. 오르가와 천마 사이에는 절대적인 마력량의 차이가 있었다. 권능으로도 메울 수 없는 차이였다.
마력이란 건 권능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마력은 또 하나의 권능이라 보아도 된다. 느낄 수 있으며 분석할 수 있고 연습만 하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권능.
그렇게 보면 오르가는 마력도, 권능도 천마에게 밀린다는 것이 된다. 천마에게 이길 요소가 무엇 하나 없는 그가 천마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면 바로 약탈이다.
빼앗고 빼앗아 차이를 줄인다. 10의 마력을 흡수해 돌려주면 10을 상쇄하기 위해 천마는 최소한 1 이상의 마력을 쓸 것이고, 그럼 천마는 11을 사용한 것이 된다. 오르가가 흡수에 1 이상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계산상 오르가의 이득이다.
오르가는 약탈한 마력을 천마에게 되돌려주었다. 천마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뱀의 머리를 쥐고 터뜨렸다. 투신의 권능 중 약탈의 권능이 있는 건 맞지만, 그건 마력 흡수와는 달랐다. 마력 흡수는 흡수한 마력을 자기 것으로 바꾼다. 약탈한 마력은 마력의 통제권을 빼앗는 것뿐으로, 마력 그 자체를 건드리지는 못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선 다른 권능이 추가로 필요하다. 소모를 피하고 싶은 투신의 성인에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철컥.
기어가 한 단계 올라갔다. 오르가는 들릴 리 없는 그 소리를 확실히 들었다. 그도 가만있지 않았다. 몸에 걸어둔 권능의 숫자를 추가하고 천마에게도 몇 가지 권능을 걸었다. 권능은 모두 무효화 되었지만, 권능을 튕겨내는 비용도 공짜는 아니기에 무의미한 짓은 아니었다.
천마가 초식이라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체를 뒤로 빼 무게 중심을 옮긴 천마가 발끝으로 땅을 쓸었다. 반원의 원이 그려졌고, 원 앞쪽의 땅이 폭발했다.
지룡각(地龍脚). 용처럼 튀어나온 직사각형의 정육면체가 오르가의 전면을 가득 메웠다.
오르가도 권능을 사용했다.
땅의 이치는 전쟁의 기본이니.
매복 또한 땅의 이치에 따른다.
지리를 다루는 권능과 매복의 권능을 사용한 오르가는 정육면체를 향해 뛰어들었다. 강기로 강화된 흙뭉치는 그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정육면체 안으로 스며든 그는 흙 안을 헤엄쳐 천마에게 다가갔다.
천마가 있는 방향을 아는 데는 권능도, 마력 적성도 필요 없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인간은 숨만 쉬어도 주변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가는 강기로 창을 만들며 정육면체에서 빠져나왔다. 바로 앞에 천마가 보였다. 휘두르는 그의 창에 불가사의한 힘이 실렸다. 매복의 권능은 숨는 게 끝이 아니다. 숨어서, 상대에게 기습을 날리는 것까지가 매복이다.
천마는 무릎을 쳐올려 창을 튕겨냈다. 천마가 손을 뻗었다. 이름 없는 장법도 천마의 손에서 펼쳐지니 개세신공의 위력을 발휘했다. 손바닥에 닿은 창이 바스러졌고, 격산타우의 수법이 공간을 격해 오르가를 때렸다. 그의 옆으로 스쳐 지나간 힘이 거대한 정육면체를 날려버렸다.
오르가는 성벽과 같은 방어로 압박을 막아내며 발을 땅에 고정했다. 하늘을 읽는 건 주술사와 술법사만이 아니다. 책사 또한 하늘을 읽고, 뛰어난 책사는 나아가 하늘을 조종하는 듯한 신기를 보여준다.
투신은 책사이며 장군이며, 지휘관이며, 병졸이며, 보급관이며, 암살자이다. 전투란 하늘과 땅과 사람과, 공간과 시간과 죽음과 본능과 역병과 조화와 악의와 기술의 집합체다.
투신은 그 모든 것이었고, 투신의 성인은 그 모든 것을 이어받았다.
대지에 뿌리내린 오르가는 바위가 되었다. 쇠가 되었다. 하늘의 벌이라 불리는 자연 현상에 버텨낼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이 치고, 치고 쳤다. 떨어지는 벼락에 세상이 밝아졌다. 눈이 멀 것 같은 빛에 물러나 있던 병사들이 눈을 감싸고 고통을 호소했다.
천마와 오르가는 그 빛 속에서 움직였다. 강기로 몸을 보호한 천마는 떨어지는 번개를 몸으로 막았다.
“기후까지 다루다니, 꽤 쓸만하지만.”
천마가 하늘로 손을 들었다. 파지직. 그녀의 손에 검은 번개가 생겨났다. 검은 번개가 떨어지는 벼락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번개가 벼락을 타고 올라갔다. 하늘까지 닿는 검은 번개가 천마의 손에 들렸다.
파지직. 번개가 요란하게 스파크를 튀겼다.
“흑천마뢰(黑天魔雷). 이 규모로 써보는 건 처음인데.”
비 오는 날이나 진법을 설치해 뇌기를 모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초식으로 마력 효율 때문에 천마도 살면서 몇 번 사용한 적 없는 초식이었다. 마법이나 술법이 아닌 순수한 번개는 상당히 다루기 힘든 종류의 힘이었다.
대신, 그만큼 파괴력도 확실하다.
하늘로 들린 천마의 손이 내려왔다. 하늘까지 닿았던 번개도 손을 따라 내려왔다. 파지지직. 천마신공의 강기에 물든 번개는 닿는 것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모래도 바위도 예외는 없었다.
흑천마뢰의 경로상에 있던 산 하나가 번개에 닿아 사라졌다.
마신이 지상에 내리는 재앙과 같은 일격이 천천히 떨어졌다. 오르가는 다가오는 벼락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번개에는 무게가 없다. 천마는 저 흉악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다.
사거리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지만, 천마가 그걸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천마의 발은 묶여 있지 않다. 당연하지만 천마는 저 말도 안 되는 무기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투신의 성인으로서 후퇴가 아닌 도망은 용납되지 않는다. 천마가 후퇴하는 그를 놔둘지도 의문이었다. 권능을 써도 도망치지 못할지도 몰랐다.
오르가는 숨을 골랐다. 아랫배까지 깊이 들이마신 숨이 전신에 활력을 공급했다.
투(鬪)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 문명의 발전에 따라 싸움 또한 발전해왔다. 돌도끼에서 철창으로, 철창에서 주술과 마법으로, 그리고 빛을 쏴대며 달을 부수는 싸움으로.
투신의 싸움이란 하나를 콕 집어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모든 게 투신의 싸움이었고, 그의 권능이었다. 세상 모든 전투는 투신에게 있으며, 전의가 피에 흐르는 종족에게 있다. 그 모든 게 싸움이기에 투신의 권능은 만능에 가까울 수 있다.
투신의 성인의 정신은 주술과 마법과 무공의 세계에 있었다. 그 세계에서도 오르가는 패배를 몰랐고,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정신으론 저걸 막지 못한다.
투신의 성인은 정신의 규모를 키웠다. 구시대적인 권능으로는 저걸 막지 못한다. 그가 생각하는 싸움의 영역이 새로운 지평선에 접어들었다. 그건 별들이 폭발하고 태양조차 빛을 잃는, 물리법칙의 끝을 본 자들과 물리법칙을 비트는 자들의 싸움이었다.
오르가는 하나의 기계가 되었다. 달을 부순 드래곤 로드의 브레스조차 과학의 모함의 방어는 뚫을 수 없었다. 하나의 천재지변이 된 천마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는 모함이 되었고, 모함의 방어를 빌려왔다.
원리도 모르는 그 방어막을, 권능이라는 힘은 조건 없이 재현해냈다. 상상해낼 수 있는 최강의 방어막의 대가는 막대한 정신력이었다. 바로 회복했지만, 한순간 오르가는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중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흑천마뢰와 투신의 권능으로 흉내 낸 문명 최강의 방패가 충돌했다.
츠츠츠츠! 번개가 미친 듯이 날뛰며 사방을 파괴했다. 산조차 없애는 마뢰는 한 명의 오크를 어찌하지 못했다. 흑천마뢰는 미친 듯이 번개를 뿜어내면서도 오르가의 머리 위에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녀는 저 방패를 알고 있었다. 장난삼아 떨어뜨린 과학의 전함이 저런 방어막을 사용했었다. 투신의 권능이 말하는 투가 무엇인지 천마도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다.
시대에 따라, 차원에 따라 변하는 싸움이란 개념이 하나로 고정되어 있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저런 것까지 해낼 줄은 몰랐는데.’
생애 최초의 ‘진짜’ 싸움은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것이 될 듯했다. 천마가 흑천마뢰를 유지하고 있던 강기를 풀어버렸다. 제어를 잃은 번개가 사방으로 날뛰며 자연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오르가는 날뛰는 번개 사이에서도 멀쩡했다. 오르가가 손을 뻗었다. 방패를 흉내 낼 수 있다면, 무기 또한 흉내 낼 수 있다.
천마가 상체를 틀기 무섭게 그녀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한 줄기 섬광이 스쳤다. 섬광은 저 멀리 날아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무방비하게 맞았다간, 천마도 무사를 장담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중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바로 근처에 있다. 그에 유쾌해진 천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르가가 쏘아내는 섬광을 연달아 막고, 피하며 천마도 반격을 준비했다.
흑천마뢰의 위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그게 흑천마뢰가 천마신공의 초식들 중 최고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천마가 완성한 천마신공에서, 흑천마뢰는 벼락 치는 날에나 한 번쯤 사용해볼 만한 특이한 초식에 불과했다.
심지어 천마가 방금 해방한 흑천마뢰, 수백 발의 번개를 모아 휘두른 일격조차 최강에는 미치지 못했다.
천마가 손가락을 뻗었다. 마염지(魔炎指), 그녀가 애용하는 초식이었고, 그렇기에 숙련도도 높은 초식이었다. 응축된 불 속성의 강기에 머리가 꿰뚫린 자는,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다섯 개의 손가락에서 날아간 다섯 개의 마염지가 정확히 똑같은 곳을 때렸고, 오르가의 권능을 관통해 그의 뺨을 스쳤다.
“운이 좋군.”
“운도 전투의 한 요소. 그렇다면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르가의 대답에 천마는 어리둥절하게 눈을 떴다가, 큭큭 소리 내 웃었다.
“그건 너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한 말이다. 이 싸움을 좀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된 나에게. 어깨를 노렸는데, 그게 휘어져 얼굴로 날아갈 줄이야. 순간 강기의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해버렸어.”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듣고도 오르가는 차분했다. 천마의 말에 그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성인의 전투력은 초월자 한 명을 웃도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자신은 성인 중에서도 전투가 전문인 투신의 성인이다.
서로 전력은 아니라지만, 천마는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
세계를 멸망시킬 뻔했다는 재앙, 그 재앙의 대표와 같은 성인. 성인을 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하는 천마는 그럼 뭐라 불러야 할까.
대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신의 성인이 되고, 천마는 한 번도 마신의 권능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마를 이리 불렀다.
천마신.
오르가는 다시 한번 전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머리에 있는 전투의 개념이 우주 전체를 향했다. 행성의 운행과 우주의 광대함과 공허함,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천지창조의 힘. 별들이 펼치는 전투.
천마는 오르가의 등 뒤로 우주를 보았다. 잿빛 마력이 흐려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별들의 전쟁에 비하면 이 거리는 엎어져 손닿을 거리보다도 가까우니… 이동에는 동작이 필요치 않다.
천마가 저 하늘 끝까지 밀려났다. 주먹을 막은 양손이 얼얼했다. 그녀가 투신의 성인의 위치를 확인했다. 오르가는 천마가 있던 자리에 서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권능을 사용한다면, 저깟 놈은 우습게 이길 수 있다.
‘꺼져.’
존재만 겨우 유지하는 마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천마는 마력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