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22
1022화 무조건 막아야 한다
멀리 용귀왕과 거대한 고래의 모습을 한 해족 대요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진양은 간단하게 견례를 올린 뒤 곧바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 이렇게 된 상황인 겁니다. 추격수는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나 인간 연체 수도사와 매우 흡사한 점이 많은 녀석입니다.
진짜 조심해야 할 건 흑포를 입은 여인입니다. 그녀는 상대의 의지를 왜곡시키는 힘을 부리는 존재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일자결을 다룰 줄 아는 것 같습니다.
그 여인보다 약한 사람이 아무런 방비 없이 달려들었다간 무조건 수에 당하게 될 겁니다.”
대략적인 설명을 마친 뒤에도 진양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해룡호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접근해선 안 된다고 했던 건 바로 흑포 여인 때문이다.
그녀를 상대로 머릿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머릿수가 많을수록 부릴 수 있는 사람만 더 가져다주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이성 왜곡의 힘이 깃든 검은 기운을 막아낼 수 있는 건 그녀와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전에 방비를 마친 사람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그녀가 수련을 통해 일자결의 힘을 손에 넣은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이나 되는 고수의 도움을 받게 되니 진양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송충이와 칠채조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썩 믿을 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송충이는 비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나 전투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뇌겁까지 맞아 힘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런 상태로 두 적과 맞서 싸우는 건 오히려 목을 내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칠채조 역시 마찬가지다.
거의 빈사 상태일 뿐 아니라 번개까지 맞아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은 솥에 넣고 끓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에 비해 용귀왕과 용경(龍鯨) 대요는 믿을만했다.
용귀왕의 방어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용경 대요는 비록 처음 보는 존재이긴 했지만 상당히 강하고 농후한 기혈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추격수 녀석을 꺾진 못하더라도 절대 끌려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흑포 여인을 대신하여 공격을 막아줄 추격수가 빠지고 나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
상대에게 맞아 죽지 않는 이상 진양은 반드시 그녀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을 때.
땅에 엎드린 채 조용히 기운을 살피던 검둥이가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엄청난 양의 기혈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네가 말한 그 추격수라는 녀석 같은데.”
“알았어. 자, 그럼 가시죠.”
진양은 문득 자신이 한 가지를 크게 간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신수가 추락하며 비경에 구멍이 뚫렸고 본래 이곳에 존재하던 여러 특성들이 강제로 소멸되어버렸다.
덕분에 상대는 반드시 다섯 손가락의 위치를 통해 상륙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진양 일행은 곧바로 검둥이가 말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멀리 수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가 천연 함정을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검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늪을 강제로 부수며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다만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의 위세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한 몸집은 여전했지만, 이전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영양실조에 걸린 검둥이처럼 변하여 전체적으로 뼈의 윤곽이 드러난 모습이었다.
두 볼은 쏙 들어가 있었고, 눈두덩은 퀭했으며, 몸 곳곳에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새까맣게 변한 피부에선 회복될 기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화산처럼 뿜어져나오던 기혈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기혈이 최소 수백 배는 줄어든 듯했고, 싸울 힘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녀석의 모습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일전에 벌였던 소모전이 꽤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이제야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진양 일행과 추격수는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움직였다.
몸에서 기혈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며 다섯 번째 단계의 패왕사갑이 시전되었다.
몸 주위에서 양기가 뿜어져 나와 마치 타오르는 것 같은 대일신광을 이루었고,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추격수를 덮쳤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녀석이 약해진 틈에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면 그만이다.
용귀왕과 용경 대요도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합세했다.
닭도 힘을 보탰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천화가 뿜어져 나왔고, 집중적으로 불에 그을려 회복되지 못하는 곳을 노렸다.
검둥이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지금 실력으로 괜히 덤벼들어 봐야 오히려 묵사발이 되어 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았다.
추격수는 이미 힘이 심하게 빠진 상태라 그런지 진양 일행의 협공에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반격에 실려있는 힘도 미미한 수준이었고, 한 번 가격을 당할 때마다 심하게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황은 진양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참을 싸우던 진양은 돌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그 여자는 어디 가고 추격수 혼자 남아있는 거지?’
추격수는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반격을 가할 힘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에 차가워졌다.
녀석은 시간을 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힘을 아끼지 말고 몰아붙여야 됩니다! 단숨에 꺾어버려야 돼요!”
말을 마친 진양은 멀리 구경 중인 검둥이에게 날아가 목덜미를 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오지도 깊은 곳으로 향했다.
진양이 전장을 이탈하려 하자 아무런 반격조차 하지 않던 추격수의 몸에서 갑자기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바싹 말라 있던 녀석의 몸은 마치 공기를 불어 넣은 것처럼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포효와 함께 녀석의 얼굴에 붙어있던 피부가 떨어져나왔고, 드러난 살점 너머로 날카로운 송곳니의 모습이 보였다.
눈은 점점 초점을 잃었고,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살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녀석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흉폭한 이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가 손을 들어 대지를 내려치니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일어나며 덮쳐왔다.
용귀왕과 용경은 충격파에 휩쓸려 전부 날아가 버렸다.
추격수의 거대한 몸뚱이는 모습을 감추었다.
진양은 속도를 높여 간신히 뒤따라온 충격파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속도에 모든 육신의 힘을 끌어모은 추격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쌩-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진양의 곁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처럼 멀리 날아가 산봉우리에 부딪혔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산봉우리는 무너져버렸다.
온몸의 뼈가 부러졌는지 곳곳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쿨럭!”
기침을 하니 선혈과 함께 찢어진 내장 조각들이 튀어나왔다.
온몸으로 감싸고 있던 검둥이 녀석을 살폈다.
녀석의 상태 역시 성하진 않았다.
전신의 뼈가 부러진 듯했고 등껍질마저 다소 모양이 변형되었다.
심지어 등껍질 한쪽 구석에는 미세한 실금까지 나 있었다.
“괜찮지?”
“쿨럭……. 걱정 마……. 난 괜찮으니까…….”
검둥이가 힘겹게 대답했다.
진양은 곧바로 녀석을 해안으로 들여보낸 뒤 용혈보술을 사용하여 몸을 회복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을 완전히 잃은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추격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녀석의 이름에 수(獸)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폭주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해 힘이 없는 척했던 걸까?
과연 남은 힘으로 진양 일행을 모두 쓰러뜨릴 순 있을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진양은 동술과 사자결을 동시에 펼치며 추격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었고, 사자결을 발동하고 남은 힘을 최대한 동원하여 방대한 양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거대한 추격수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녀석은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날렵하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힘도 극강의 수준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가 달려올 때 함께 서 있던 공간도 함께 밀려오며 부딪치게 된 것이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모습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힘이 방원 수십 리 내의 땅과 하나가 된 모습이 보였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와 공간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에 부딪힌다면 추격수에게 부딪친 것 같은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방원 수 리 내에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부딪치면 죽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추격수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백여 장 높이의 거북이 등껍질이 하늘에서 떨어져 추격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두 줄기의 하얀 기운이 양쪽으로 흘러나왔다.
기운은 마치 거대한 검처럼 주위에 있던 모든 것을 두 동강 내버렸다.
등껍질을 벗어던진 근육질의 용귀왕이 등껍질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패기롭게 등껍질을 붙잡고 있었다.
이어서 하늘에서 떨어진 용경은 용귀왕을 도와 난동을 부리는 추격수를 함께 막아냈다.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가시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죽지 마세요.”
“이 몸이 일개 이수 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 걱정 말고 어서 가거라.”
용귀왕의 목소리에선 패기가 흘러넘쳤다.
진양은 포권을 취한 뒤 곧장 오지도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분명 진양은 이곳에 오자마자 모든 감각을 개방하여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흑포 여인은 도대체 무슨 수로 진양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일까?
추격수는 이미 힘이 바닥을 드러낸 모습이다.
그렇다면 흑포 여인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은 이상 그녀는 절대 궁전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양처럼 창고로 쓸 수 있는 해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 큰 궁전을 숨긴 채 자신보다 먼저 안쪽으로 들어간 걸까?
더 이상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자신보다 한발 먼저 앞서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조건 막아야 했다.
진양은 남은 기억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끊임 없이 속삭임이 귓가에 맴돌았었다.
오래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현재 검둥이가 떠나며 더 이상 속삭임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종(異種)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녀석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진양 역시 그만큼 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