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23
1023화 여기까지다
계속해서 앞으로 향하던 진양은 사방에 함정이 깔려 있는 구역에 도착하고 나서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검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늪에 여섯 개의 꽃송이가 달린 꽃이 피어있었다.
늪에 살고 있는 독충들은 마치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끊임없이 검은 꽃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꽃잎에 닿는 순간 독충들은 마치 비처럼 후두둑 늪으로 떨어져 버렸다.
늪으로 떨어진 독충들은 층층이 쌓이며 늪을 뒤덮었다.
활짝 핀 꽃의 중앙에는 엄청난 크기의 검은 꽃이 피어있었다.
꽃잎 하나만 해도 그 크기가 무려 수 리에 달했다.
진양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거대한 꽃의 중앙을 살폈다.
내부는 텅 비어있었고, 마치 통로가 만들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분신을 만들어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잠시 뒤.
분신이 사라지며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신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래로 방대한 크기의 줄기가 이어져 있었는데, 이 긴 통로는 신수가 있는 곳까지 연결되어있었다.
줄기에선 강한 독을 품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분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렸다.
“신수족, 이 끈질긴 녀석들. 아직도 살아있을 줄이야…….”
신수족은 이미 새카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강풍층을 뚫을 때 마주하는 힘은 상당히 위험하다.
설령 신수가 막아준다고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때문에, 대부분 강풍층을 뚫을 때 골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보아하니 아직 신수족의 고수들은 살아있는 듯했다.
녀석들이 자발적으로 흑포 여인의 수하가 된 것인지, 아니면 이성을 왜곡 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튼, 녀석들이 앞서가고 있으니 뒤를 쫓을 순 없다.
어떻게든 먼저 도착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양은 예전에 지났던 길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흑석 궁전을 발견했다.
다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흑석 궁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었다.
보아하니 최근에 이렇게 된 모양은 아니었다.
반나절 넘게 폐허를 뒤지고 다닌 끝에 삼 척 정도 되는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동굴이었다.
설령 누군가 이곳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동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과거 진양은 온갖 개고생을 한 끝에 이 통로를 파냈었다.
통로 끝은 당시 해안마석이 봉인되어있던 곳, 그러니까 봉인의 핵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흑포 여인의 목적이 왼손 본체라면 분명 과거 해안마석이 있었던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진양은 동굴 안으로 들어선 뒤 주변에 있던 돌을 이용해 입구를 막았다.
* * *
지하통로 내부.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덩굴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며 이곳의 지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검은 덩굴의 뿌리는 신수족의 몸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그때, 한 신수족의 입에서 ‘웩’하는 기괴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순식간에 몸이 말라버렸고, 피부 표면에는 나무의 무늬가 생겨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무조각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덩굴이 조각상에서 뽑혀 나오자 푸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상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곁에 있던 또 다른 신수족은 아무 말 없이 꿈틀거리는 덩굴 뿌리를 붙잡아 자신의 팔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덩굴이 계속해서 뻗어나가도록 했다.
무리의 뒤쪽.
흑포 여인은 검은 옥련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옥련를 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신수족이었다.
옥련에선 검은 가루가 조금씩 떨어져나오고 있었고, 그와 중시에 옥련의 크기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녀는 궁전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벗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전의 형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위력은 강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부서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궁전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끝장이다.
검은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고, 이곳에 있는 검은 기운과 하나로 뒤엉켰다.
두 기운은 하나로 합쳐지는 걸 거부하는 듯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켰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처럼 검둥이의 방해도 없었고 이들의 실력은 과거 진양보다 훨씬 더 월등했기 때문에 전진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잠시 뒤.
한 신수족이 덩굴을 통해 목표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 * *
같은 시각.
건장해 보이는 신수족 하나가 거대한 지하 동굴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몸은 점점 고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진양을 발견했으나 목소리를 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진양은 상대가 가루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수족의 몸에 서려 있는 검은 기운은 일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이성을 왜곡한 게 아니라 아예 강제로 점령해버린 듯했다.
사실 이성을 점령당한 순간부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현재 눈앞에서 사라진 건 그의 껍데기인 육신에 불과하다.
보아하니 여인은 애초부터 신수족을 이용할 계획을 모두 세워두었던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상대의 의지를 파고드는 것만 할 줄 알았던 게 아니다.
이런 악랄하고 잔혹한 수단까지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상당히 빠르게 효과가 작용하는 듯했으나 그만큼 후유증도 심각했다.
이성을 점령당한 사람은 그저 하나의 도구로써 사용되는 게 전부였을 뿐 육신은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진양은 조용히 한 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신수족이 검은 덩굴을 따라 이곳에 나타났다.
진양은 허공 상태로 들어가며 손을 뻗어 상대의 뒤통수를 만졌다.
능력이 반응하자마자 곧바로 습득을 시전하여 그를 성불시켰다.
신수족은 곧바로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썩은 나무토막처럼 부서져 버렸다.
진양은 손에 쥐여진 하얀색 광구와 파란색 광구를 차례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능력은 이들을 모두 사망한 상태로 판정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성은 전부 강제로 왜곡되어 파괴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양은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숨기며 계속해서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뒤.
몸에 검은 기운을 두른 신수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옥련에 앉아있는 흑포 여인도 함께 나타났다.
진양은 최대한 곁눈질로 그녀를 살폈다.
혹여나 들키기라도 할까 봐 그녀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언가 눈치를 챈 듯 주위를 날카롭게 살폈다.
진양은 그녀가 타고 있는 옥련으로 시선을 옮겼다.
옥련에선 검은 가루가 끊임없이 떨어져나오고 있었다.
검은 옥련에서는 검은 궁전과 똑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이 검은 궁전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떨어져나온 검은 가루에서 특별한 기운이 반짝이며 스쳐 지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진양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진양이 가장 익숙한 기운.
바로 죽음의 기운이었다.
이것은 오직 죽은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기운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죽은 사람에게서 떨어져나온 죽음의 기운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진양은 처음 이 세계에 건너와 먹고 살기 위해 시체를 처리해 주었었다.
당시의 기억과 기술은 아직까지도 뼛속에 새겨진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절대 잘못 느꼈을 리는 없다.
진양은 눈을 감은 채 사자결을 발동했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스쳐 지나가며 다른 기운에 의해 완전히 뒤덮인 죽음의 기운을 포착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사자결을 통해 불필요한 기운들을 걸러내자 마침내 아주 미세한 죽음의 기운이 드러났다.
이건 이제 막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진 죽음의 기운이었다.
사자결이 계속해서 발동되며 수많은 정보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정보는 각자 자리를 찾아 날아갔고 온전하면서도 합리적인 하나의 선을 이루었다.
진양은 그제서야 사자결을 해제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만약 예상이 맞다면 손꼽아 기다려온 일격을 날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만약 틀리다면 도군에 버금가는 적을 상대하며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잠시 신중하게 상황을 두어 번 정도 머릿속으로 그려본 뒤 눈빛을 반짝이며 몸을 움직였다.
진양은 벽에 바싹 붙은 채 조금씩 흑포 여인이 타고 있는 옥련 쪽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옥련의 뒤쪽으로 다가간 진양은 손을 뻗었다.
허공 상태에서 벗어나며 뻗어진 손이 가볍게 옥련을 건드렸다.
그러자 능력이 발동했다.
‘다행이군!’
검은 흑련은 애초부터 그녀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습득 능력이 발동할 리 없다.
능력이 반응함과 동시에 흑련에 타고 있던 흑포 여인이 훽-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서 어두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마치 날카로운 창끝처럼 순식간에 검은 옥련에 닿아있는 진양의 오른손 손바닥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빛은 계속해서 진양의 오른팔을 꿰뚫었다.
진양은 강력한 힘에 의해 뒤로 날아가 버렸고, 마치 못에 박힌 것처럼 석벽에 걸리게 되었다.
진양의 몸은 순식간에 검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눈의 흰자도 빠르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성난 고함과 함께 흑포 여인이 다시 한번 진양에게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그녀가 타고 있던 검은 옥련이 펑- 하며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여인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은 순간 그림자처럼 흐릿해졌고, 피부 표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이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덧 미소를 짓고 있는 진양의 손에는 파란색 광구와 보라색 광구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여기까지다.”
진양은 왼손을 뻗어 못 박힌 오른손에 들려있는 두 개의 광구를 집어 머릿속에 넣었다.
동작을 마치기 무섭게 왼손은 검의 형상이 되었다.
진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팔을 잘라낸 진양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오른팔을 타고 온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기운도 펑- 하며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진양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상처에선 여전히 검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은 후련하다는 듯 큰소리로 웃으며 도망쳐버렸다.
멀리 모퉁이를 돌자마자 사자결을 발동했고, 오른팔에 아직 남아있는 검은 기운들을 조금씩 몰아냈다.
그와 동시에 신수의 수액과 용혈보술, 그리고 미리 만들어둔 탕을 동원하여 잘려 나간 오른팔을 회복했다.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팔이 다시 자라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육신이 강해지며 일어난 일이었다.
평범한 수준의 상처라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흑포 여인의 공법에 의해 팔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원상복구가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팔 하나 자라게 만드는 건 크게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과 똑같이 회복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팔이 하나 없어서 그런지 진양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내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