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30
1030화 건강하셔야 합니다
사해를 빠져나온 해룡호는 남해가 아닌 동해로 향했다.
사실 해족이라는 호칭은 어느 한 종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낮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괴수들도 포함이 되어있다.
해족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서식지를 가지고 있다.
동해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가다 보면 끝없는 바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해족은 이곳에 있는 해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해의 해족들은 동해의 해족들과 쉽게 어우러지지 못한다.
그 예로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고래 조련사를 꼽을 수 있다.
동해 해족들에게 대시강두경은 타락한 존재나 다름없다.
해룡호가 남해로 향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심지어 온순하던 용경 대요조차 남해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다.
무시무시한 적과 싸워야 한다고 하면 아무 불만 없이 나서겠지만 남해에 들어서는 건 죽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진양은 적당히 눈치껏 해룡호를 빠져나왔다.
여기까지 도우러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괜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남해는 순조롭게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물론 서로 간의 경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피를 튀길 만큼 치열한 마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진양은 대략적으로 이곳을 둘러본 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볼 생각이었다.
제대로 자리만 잡는다면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제일 평범한 백수랑에게조차 기대감을 품어볼 수 있다.
남해는 남만, 대영, 그리고 동해와의 교류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굳이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다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을 죽이고 돈을 빼앗는 것보단 정직하게 일을 하여 버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정직하게 일하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수련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인 만큼 별종이 나타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진양은 남해가 바뀐 모습을 살피며 상당히 흡족스러워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꽤 큰 공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만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황천마종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최양평에게선 더 이상 마도 수도사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인자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자의 분위기도 함께 풍기고 있었다.
진양은 그동안 손에 넣는 모든 서적들을 탁본을 떠서 그에게 보냈다.
대영 황실의 서적 중에서 외부로 유출해도 큰 상관이 없는 것들도 전부 탁본하여 보냈다.
탕을 끓이는 것 외에 유일하게 가진 취미는 독서뿐인 최양평에게 나름의 효도를 한 것이다.
진양이 영맥을 보내왔을 때 최양평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실전된 고대 서적을 보냈을 때는 매우 기뻐했다.
오늘 진양이 최양평을 찾아온 건 이제 막 손에 넣은 따끈따끈한 식재료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잘 돌아왔다. 게다가 이런 선물까지 챙겨오다니.”
최양평은 간만에 만난 진양을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선물로 받은 거대한 나뭇잎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흔한 재료는 아니구나. 곧바로 탕을 끓여주도록 하마. 잘 보고 배우도록 하거라.”
“마음에 드신다면 가지고 계셔도 무방합니다. 배울 건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먹기만 하면 되죠.”
괜히 겸손을 떠는 진양의 모습에 최양평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잘 배워두거라. 이러다 내가 덜컥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울 테니까. 최근에 대황에서 나와 같은 경지를 가진 한 고수가 수명을 다해 죽었다고 하더구나. 이제 이 늙은이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사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기운도 정정하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 이대로라면 수만 년은 더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전 손재주가 영 없어서요. 마땅히 실력이 늘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먹는 것만 집중할 겁니다.”
최양평은 가볍게 진양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을 뿐,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얘기하진 않았다.
그는 진양을 뒷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곧바로 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기를 사용하여 끓였던 탕과는 달랐다.
고기로 탕을 끓일 때는 센 불로 뼈가 녹을 때까지 한참을 끓였으나, 야채를 이용하여 탕을 끓일 때는 약한 불을 사용했다.
게다가 과정도 조금씩 상이했다.
진양은 솥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곁에서 탕이 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사흘 뒤.
싱긋한 초록색을 띤 탕이 완성되었다.
최양평은 완성된 탕을 한 그릇 퍼서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그릇에 담기 무섭게 탕의 향기는 조금씩 사라졌고, 색깔도 연해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탕은 평범한 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한 입 마셔보았으나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마치 물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배 속에서 날렵하고 민첩한 기운이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복부를 통해 사지로 뻗어나간 기운은 여덟 개의 맥을 기나 모공을 통해 배출되었다.
순간 지독한 악취가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진양은 진원을 운용하여 불결한 것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이어서 미간을 통해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 외에 마기도 육신 깊은 곳에서부터 밖으로 흘러나왔다.
탕을 한 그릇 마시고 나니 체내에 남아있던 잡다한 기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강한 힘이 마구 솟구치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온몸이 맑아진 기분이 들었다.
몸이 가벼워진 것이 한층 더 민첩해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오른팔의 회복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새로 만든 야채탕은 힘을 증가시켜주진 않지만 몸을 맑게 하여 상태를 호전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꽤 강한 육신 안에서도 이 정도의 효과를 내다니.
그렇다면 상당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영약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엄청난 효과나 마찬가지였다.
몸 상태가 호전된 건 최양평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거 이성을 잃고 날뛰며 주화입마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 바람에 기반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비록 많은 걸 배워 박식한 그였지만 자신의 몸 상태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탕을 마시니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오랜 숙환들이 회복세에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에 최양평도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호전적인 반응에 진양은 크게 기뻐했다.
진양은 원래 최양평에게 주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나뭇잎을 주었다.
어차피 당장 나뭇잎을 많이 가지고 있어봤자 송충이 녀석에게 간식으로 주는 용도 외에는 딱히 쓸 곳이 없었다.
야채탕을 끓이는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긴 했으나 이 정도 효과를 이끌어 낼 정도로 익히는 건 불가능했고, 설령 익힌다고 해도 이 정도의 효과를 이끌어 낼 자신이 없었다.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똥만 될 뿐이었다.
“전 아직 사부님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한참 더 저를 위해 탕을 끓여주셔야 해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최양평은 자신의 체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느껴지지 않았던 활력의 불이 다시금 피어난 느낌이었다.
그는 진양이 건넨 주머니 반지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운 좋게 주웠다는 말 말고 사실을 듣고 싶구나.”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이건 신수의 잎사귀입니다.
얼마 전에 역외에서 무언가 사해로 떨어졌잖아요. 그게 바로 이 신수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구할 순 없을 겁니다. 강풍층을 통과할 때 남은 가지랑 잎사귀가 전부 다 타버렸거든요.
아는 친구가 그러던데 그 신수는 잘못 자란 선초라고 하더군요. 비록 선초는 아니지만 그래도 신묘한 힘은 여전히 품고 있는 것 같아요.
걱정하실 것 없어요. 생각보다 많이 주워왔거든요. 하지만 지금 손재주로는 괜히 건드려봤자 귀한 재료만 버릴 것 같아서 말이죠.”
진양이 이렇게까지 얘기하자 최양평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재료를 받아들었다.
진양은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하진 않았다.
최양평은 매우 박식한 사람인 만큼 강풍층이라는 얘기 하나만으로도 많은 걸 이해했을 것이다.
게다가 탕을 마시자마자 진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잡다한 기운과 마기.
사실 잡다한 기운에서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기는 아니다.
굳이 길게 설명을 할 것도 없었다.
진양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사를 몇 번이나 오갔던 게 분명했다.
입마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순수한 마기를 가지고 있었을 리도 없다.
마음 같아선 ‘정 안 되겠으면 다시 황천마종으로 돌아오거라’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최양평은 말을 도로 삼켰다.
* * *
어느덧 황천마종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과 만나며 회포를 풀었다.
진양이 떠날 때만 해도 조영휘가 제일의 후계자로서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해왔었다.
비록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맡아 처리하고 있었지만 종주의 자리를 계승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듯했다.
황천마종의 장로들은 마음 같아선 진양에게 종주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진양에게 말을 꺼내 보기도 전에 최양평에 의해 가로막혔다.
황천마종은 과거에 비해 세력이 꽤 불어났다.
하지만 그에 따라 최양평의 지위도 더욱 올라갔다.
평소에는 마종의 일에 크게 관여하진 않지만, 가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상당한 힘을 가졌다.
한편, 진양이 황천마종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진양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대영에도 전해졌다.
소식을 들은 수하들은 지금까지 쌓여있던 수많은 보고서를 들고 진양을 찾아왔다.
진양은 수십 개의 호리병에 소분한 야채탕을 챙겨 황천마종을 나섰다.
여족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편지로 간단히 신수에 대한 일만 전한 게 전부였다.
황천마종을 나선 진양은 곧바로 대영으로 돌아왔다.
쌓여있는 보고서 중에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가 많이 들어있었다.
수하들이 보낸 정보들 외에 가희가 직접 보내온 것도 있었다.
부서진 양관성 성문 재건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은 조정 단계이긴 하나 이제 곧 외층 공간과 연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외층 공간의 일은 흑포 여인과 추격수를 모두 제거했기에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대연과의 전쟁은 어느덧 소강상태에 이르며 국가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황태손과 태자의 싸움은 한층 더 발전하여 이제는 아예 대놓고 싸우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순목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장정의조차 오랜 시간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폐관을 마치고 나온 가희는 직접 정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이 외에 숙청해야 할 자들도 대량으로 잘라냈다고 한다.
수많은 정보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가운데 진양의 눈길을 끄는 정보가 있었다.
진양이 떠날 때만 해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왕백강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진양이 주목한 건 또 다른 정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