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34
1034화 영제의 일검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과연 예상했던 대로 싸구려 공법이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대황에서 수련하는 공법이 아닌 신수족이 사용하는 공법이라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을목정기의 힘을 받아 수련을 할 수 있는 공법이었는데, 목(木)의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에게 가르쳐준다면 상당히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했다.
흔한 이름답게 크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평온하고, 조금도 조급하지 않으며, 매우 안정적인 그런 공법이었다.
굳이 특징을 하나 꼽자면 이 공법을 익히면 수명이 조금 연장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대황에는 없는 공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생적으로 특수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도 극소수인데, 그중에 목의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더더욱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발견하는 즉시 희생양으로 삼고 말지 누가 이런 공법까지 줘가며 투자를 하겠는가?
그래도 싸구려 공법 중에서는 꽤 희귀한 공법이었다.
나중에 선물로 삼기에 딱 좋았다.
과한 선물은 아니면서도 마음을 표현하기엔 제격인 것이었다.
진양은 결과를 열어보고도 무덤덤했다.
처음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 곧바로 살펴보지 않은 것도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하얀 광구를 살폈다.
이번에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기억 장면이 들어있었던 것이었다.
하얀 광구에 기억 장면이 들어있는 경우 대부분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기억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 들어있다.
그러나 보통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경우라면 죽기 직전의 모습이 담겨있다.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
진양은 언제든 바로 기록을 할 수 있도록 소책자와 붓을 꺼내 들었다.
* * *
이제 막 신수를 사용하여 천화를 막아낸 신수족이 지친 채 널브러져 있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때, 갑자기 검은 기운이 몰려오며 이들을 뒤덮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마음에 공포심이 생기려는 순간, 검은 기운에서 힘이 뻗어져 나왔다.
이 힘은 점점 더 강력하게 이들의 이성을 왜곡시켰다.
강한 왜곡에 이성이 붕괴되려는 순간.
누군가의 희미한 대화가 흘러나왔다.
“약빙, 고개를 돌려.”
“돌릴 수가 없어.”
무언가에 의해 방해를 받은 것처럼 목소리가 완전히 변조되어 대화를 나누는 자들의 성별조차 구분이 불가능했다.
대화 내용조차도 흐릿하게 들리는 게 전부였다.
* * *
기억 장면은 여기까지였다.
장면이 어두워진 것으로 보아 기억을 가지고 있던 자가 숨을 거둔 듯했다.
흑포 여인에 대한 기억을 살펴보았으나 이전처럼 누군가 훔쳐보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진양은 피식 웃어버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들고 있던 소책자는 다시 집어넣고 계속해서 남은 두 개의 광구를 살폈다.
이것은 검은 옥련에 능력을 사용하여 얻은 광구다.
즉, 추격수의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처음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미쳐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중상을 입은 탓도 있었지만 무언가 기괴한 게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탓이기도 하다.
게다가 손에 넣은 이것이 흑포 여인과 관련된 물건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하여 일단은 넣어두기로 했었던 것이었다.
우선 파란 광구부터 살폈다.
예상과는 다르게 기억 장면이 흘러나왔다.
* * *
어두운 외층 공간 너머로 황금빛이 번쩍였다.
이어서 온몸에서 황금빛을 뿜어내는 거인 하나가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무표정으로 선 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휘두르며 칙령(敕令)을 외쳤다.
“주(誅)!”
강한 황금빛이 일어나며 눈앞을 베었다.
거대한 황금빛 빛줄기가 외층 공간 전체를 두 동강으로 잘라버린 듯했다.
추격수의 조부와 부친은 분명 그 빛에 닿지 않았음에도 두 동강이 나버렸다.
보통 이 정도 경지에 오르면 설령 몸이 두 동강 난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 * *
기억 장면은 여기서 끝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억 장면을 끝까지 살펴보며 검이 완전히 뻗어지는 걸 보고 있을 때.
진양이 번쩍 눈을 뜨며 선혈을 토했다.
마치 번개에 맞은 것처럼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고, 머리에는 한 줄기의 검흔이 생겨나며 피부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뼈에 의해 가로막혔다.
상처는 점차 회복되었고 진양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영제가 실로 무시무시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과연 수만 년 동안 대황의 수많은 강자들을 압도적으로 짓누른 인간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제와 맺은 원한은 절대로 풀릴 길이 없을 듯했다.
현재 영제는 일념의 바다에 갇혀 무한한 윤회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당분간은 밖으로 나올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 장면에서 휘두른 검으로 자신을 벨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고 있었다면 남의 기억 속에서 영제의 검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진양이 연체 수도사라 이 정도로 끝나고 남은 것이다.
이런 공격은 결코 막을 방법이 없다.
그저 맨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이마를 문지르는 진양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분하긴 했으나 일단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다시 기억을 돌이켜보니 영제의 일격은 아무리 봐도 단순한 일격으로 보고 넘길 만한 일격이 아니었다.
놀란 병사들이 몰려왔으나 진양은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진양은 눈을 감고 다시 영제가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장면이 끝나기 무섭게 강한 힘이 몰아닥치며 진양을 베었다.
진양은 굳은 얼굴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당할 때와는 달리 검의 현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것을 똑같이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번이나 공격을 당했으나 되갚아 줄 방법은 없다.
어차피 영제가 직접 그에게 공격을 가한 건 아니니까.
그러나 남의 기억 속에서 영제의 검법을 배운다면?
적어도 손해는 아닐 듯했다.
한편, 왕백강은 이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이마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까지도 머릿속이 웅웅거리며 울리는 기분이 들었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다.
진양을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
멀리 진양이 눈을 감은 채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침 한 장군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진양이 무언가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처럼 뒤로 날아가 버렸다.
놀란 장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선혈을 토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진양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있었다.
“이, 이건 저와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전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요. 당신들도 봤잖아요!”
군영 내부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자는 누군가 습격을 한 것이라고 착각하기까지 했다.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난 왕백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인이 되어있었다.
그나마 진양이 제때 나서 해명해 주어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쉽지만 진양은 일단 여기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대로 두 대나 얻어맞았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괜히 얻어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제서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검을 받아내는 순간부터 많은 정보들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을 기능서처럼 사용하는 건 크게 문제가 없다.
다만 조금 어려울 뿐.
그러나 난이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일자결만큼 높을 리는 없다.
애자결과 우자결 모두 온전한 공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문턱조차 밟지 못한 걸 보면 확실히 일자결의 난이도가 훨씬 높은 편이었다.
적어도 영제의 일검에 대해선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으니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천천히 익히면 될 것이다.
진양은 이번 일로 크게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단순히 광구의 색깔이나 등급으로 가치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광구의 색이나 등급은 결코 가치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무엇을 얻든 절대 색깔이나 등급으로 가치를 단정지어선 안 된다.
경전을 얻는다고 해도 배우기 적합하지 않으면 하얀색 광구나 파란색 광구와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하얀색 광구보다도 못할 수도 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공법을 손에 넣을 바엔 차라리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 하얀색 광구가 훨씬 낫다.
이번에 습득 능력을 통해 살아생전 상대의 머릿속에 가장 깊게 남아있던 기억 장면을 손에 넣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얻는 기억 장면들은 대부분 상대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던 장면 중 한 장면이다.
때문에 크게 이상하게 여길 건 없다.
하지만 기억 장면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이전에는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영제가 사용했던 검법을 기능서로 변환한다면 아마 보라색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상당히 높은 급의 공법이었다.
다만 기억을 반복적으로 돌려보며 강제로 돌파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일반 기능서를 통해 익히는 것보다는 훨씬 높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그냥 보라색이 아니라 옅은 보라색 정도 되는 공법으로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보라색 기능서를 살폈다.
보라색 광구에는 대부분 쓸만한 공법이 들어있기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공법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공법은 함부로 배울 수가 없었다.
이에 비하면 영제의 검술은 공법보다는 기예에 가깝다.
때문에, 배운다고 해도 백옥 신문의 강도가 대폭 강화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배우기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다.
보라색 광구 안에는 예상대로 공법이 들어있었다.
이라는 공법이었다.
이족의 공법이라 그런지 인간의 공법처럼 품이나 경, 전, 법, 결 등으로 나뉘진 않았다.
대충 살펴보니 인간 수도사의 수행 공법보다는 오행산의 오신보경에 훨씬 더 가까웠다.
연체와 신통력 중 연체에 조금 더 치중된 수련법이었는데, 신통력은 그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수련법은 지금까지 진양이 익힌 연체 공법과는 달랐다.
정통적인 연체법에 상당히 상당히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다.
때문에, 수련을 할 때 위험한 상황과 마주할 확률이 높았고, 수련자의 자질에 대한 요구도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이 정도 위험은 추격수 일족에겐 아무것도 아닌 수준에 불과하다.
일단 당장 쓸 만한 곳은 없었다.
우선 놔뒀다가 시간이 나면 살펴보고 타산지석 정도로 삼으면 될 듯했다.
이로써 획득한 네 개의 광구를 모두 확인했다.
하나는 평소에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죽기 직전의 기억이 담긴 장면에 불과했으나 그 어떤 광구보다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가치는 파란색 광구의 범주를 월등히 뛰어넘고도 남을 정도였다.
두 개의 공법은 가지고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는 꽤 쓸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