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64
1064화 손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
시간 개념마저도 사라져갈 즈음.
멀리 옅게 깔린 안개 너머로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보니 마침내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은 산봉우리만 한 거대한 나무였던 것이었다.
나무는 하늘에 거꾸로 비친 대지 그림자의 경계를 뚫고 솟구쳐있었다.
줄기의 아랫부분은 직경이 수십 리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러나 위로 갈수록 십여 장씩 줄어들고 있었다.
줄기의 위쪽 끝부분은 직경이 겨우 수 리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신수가 있는 곳까지는 족히 수천 리는 더 걸어야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몸이 신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크게 기뻐했다.
과연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온전한 한 그루의 명령신목은 아닌 듯했고 일부인 듯했다.
그러나 이런 신목은 태생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존재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말라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다.
재료로 삼아 일부를 흡수하고 장해수수전을 통해 체질에 녹여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적당한 크기의 상고 지부 조각도 살펴보고 싶었다.
생기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명령신목을 다른 곳으로 이식한 뒤 나무 정령이 살려낼 수 있을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비록 명령신목은 음의 성질을 가진 나무 정령이 심은 것이지만, 어쩌면 나무 정령에게 살려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명령신목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삐딱하게 지면에 박혀있는 명령신목이 점점 가까워지자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까만 밤이 펼쳐졌다.
새까만 대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건물들이 마치 환상처럼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길게 뻗은 길도 나타났다.
모든 길은 전부 거대한 명령신목을 향해 뻗어있었다.
이어서 수많은 귀신들이 길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녀석도 있고, 약한 녀석도 있었고,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처럼 강한 기운을 가진 녀석도 있었다.
금세 귀신 소굴의 우두머리 귀신보다 훨씬 더 강한 몇몇 귀신의 존재가 느껴졌다.
귀신들은 길게 뻗은 길을 따라 명령신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명령신목 아래 도착한 귀신들은 계단처럼 신목 위를 올랐고, 꼭대기에 도착하면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줄기의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반복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새롭게 나타난 귀신들 중 꽤 많은 녀석들이 진양을 의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방향을 바꿔 진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것보다 더 문제인 건 귀신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명령신목 위에는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귀신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있었다.
대지에도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귀신이 몰려있었다.
어느덧 하늘에서 귀신이 생겨났다.
이들은 폭우처럼 쏟아지며 시야를 가렸다.
그때, 한 귀신이 포효성을 내지르며 광기에 사로잡힌 듯 진양을 향해 돌진해왔다.
녀석의 포효성이 신호탄 역할이라도 한 것인지 순간 수많은 귀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팔을 휘둘러 녀석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듯싶던 귀신들은 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며 진양을 향해 돌진해왔다.
진양이 묵양을 쳐다보자 묵양은 곧바로 훼멸구 하나를 꺼내 귀신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동그란 구체를 만들어 진양을 보호했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버섯 구름이 피어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귀신들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훼멸구의 힘이 걷히고 나자 귀신들은 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더럽게도 끈질긴 녀석들이군!”
진양은 이를 바득 갈며 풍도령을 꺼냈다.
시간이 흐르며 이곳의 환경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에 조금씩 빛이 드리워지기 시작했고 사방에 건물들이 세워졌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처음에는 폐허가 먼저 생겨났고 그다음에 빠른 속도로 건물이 복구되었다.
울퉁불퉁하던 검은 흙길도 탄탄하게 다져진 황톳길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단단한 돌길로 바뀌었다.
다양한 귀신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귀신들 중에 진양을 향해 달려오는 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산봉우리같이 거대하게 솟아있는 명령신목을 향해 달려가거나 명령신목 위를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광범위하게 살상력을 가진 훼멸구까지 썼는데도 불구하고 귀신들을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 듯했다.
진양은 꺼낸 풍도령을 목에 걸었다.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며 눌려있던 진양의 힘은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기운이 풍도령에서 흘러나왔다.
이 영패가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 또 누구의 것인지는 진양도 잘 모른다.
다만 이것을 사용하면 상고 지부의 땅에 있는 천지진압(天地鎮壓)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상고 지부의 어느 관원의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아마 말단 관원의 영패일 것이다.
풍도령의 기운이 퍼지자 광기에 사로잡힌 채 달려오던 귀신들은 일제히 우뚝 멈춰섰다.
과연 예상대로 귀신들은 본능적으로 관원들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러나 진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바로 머릿수.
머릿수가 너무 많았다.
일정 범위 안으로 접근해온 귀신들은 풍도령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뒤에선 계속해서 수많은 귀신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잔뜩 몰려든 귀신들은 쌓이고 쌓여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앞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진양과 가장 가까운 귀신은 겁에 질린 듯 비명을 연달아 질러대고 있었으나 뒤에서 미는 힘에 의해 점점 더 진양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양은 곧바로 후광 장비를 꺼내 착용했다.
두 겹의 동그란 후광이 머리 뒤에 피어오르자 귀신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요동치던 악의의 일부가 후광의 힘에 의해 밀려났다.
그러나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진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많이 있다.
다만 그 방법이 먹힐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흑옥 신문이 그렇다.
흑옥 신문을 개방하기 전에는 일부러 그것을 부수고 다시 만들 생각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었다.
하지만 이미 흑옥 신문을 개방한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흑옥 신문 안쪽은 진양의 도궁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아무나 들일 수는 없는 법.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귀신들을 들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었다.
물론 귀신들을 안으로 집어넣는 방법 대신 흑옥 신문으로 때려잡는 방법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겹겹이 쌓인 귀신은 어느새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진양과 가까워진 녀석들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뒤에 있는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있는 녀석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앞쪽에 있는 귀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점점 더 진양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다!’
천 장이나 되는 거대한 흑옥 신문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흑옥 신문에 맞은 귀신들은 곧바로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흑옥 신문을 유심히 살폈다.
응룡 조각상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흑옥 신문도 잠잠했다.
그러나 흑옥 신문에 맞아 연기가 되어 사라졌던 귀신들은 또다시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강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급 귀신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한 게 느껴졌다.
진양은 흑옥 신문을 손바닥에 거두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귀신 중 아무나 하나 붙잡아 아직 문이 열린 흑옥 신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잠시 흑옥 신문 내의 기운을 느껴보았다.
과연 예상대로 귀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양은 녀석을 다시 끄집어내 밖으로 던진 뒤 흑옥 신문을 체내로 회수했다.
이젠 알 것 같았다.
상고 지부 조각의 입구는 여러 곳이지만 단 한 곳에도 방해물이 없는 이유.
이곳에 들어왔다가 멀쩡히 살아나가는 사람이 몇 없는 이유.
이 두 가지는 허공에 비친 진실의 그림자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명령신목에 관한 기록이 있음에도 아무도 명령신목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이유.
손에 넣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손에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만약 지금 이 순간 허공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던져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귀신들을 물리치며 강행 돌파하는 것도 그다지 가능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귀신들 틈에 끼어 죽든지, 아니면 모든 힘을 소진하여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
진양은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이곳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건 이곳에서 살아서 돌아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난관을 극복했을까?
명령신목을 눈앞에 두고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몸을 돌려 밖으로 빠져나간 것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기록을 남긴 이는 이곳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갔었다.
그때, 귀신 무리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강력한 우두머리 귀신의 기운이 점점 가까이 접근해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던 묵양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강한 녀석이 몰려온다면 내 스스로의 목숨밖에 지켜낼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되면 이곳에 영원히 갇힐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널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수 장이나 되는 키에 장포를 입은 귀신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에 낡은 청동종을 들고 있었다.
녀석이 깡마른 손가락을 뻗어 종을 건드리자 둥- 하는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이 지나간 곳에 있던 귀신들은 전부 옆으로 물러나며 길을 열었다.
동시에 묵양의 눈에서 초점이 풀렸다.
마치 조각상이 된 것처럼 멍한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진양의 머리 뒤로 피어난 후광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서 퍼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후광 장비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순간 머리가 묵직해지며 생각이 둔해졌다.
어질어질한 것이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양은 곧바로 사자결을 발동했다.
사자결의 힘이 돌자 어지러움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둔해졌던 생각도 다시 빨라졌다.
수많은 정보들이 물 밀듯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눈을 한 번 깜빡이니 동술이 발동되었다.
동술을 펼친 상태로 보니 빈틈없이 겹겹이 쌓여있던 귀신들은 전부 투명색으로 변했다.
귀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전부 제거되었고 마지막엔 한 종류만 남았다.
이렇게 처리한 정보를 토대로 눈앞에 새로운 실체가 나타났다.
귀신들의 머리 위로 긴 실이 뿜어져 나와 하늘 위 안개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어쩌면 녀석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