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07
1107화 살아남으면 각오해라
진양은 관을 짊어진 채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 왔던 길이 아닌 어느 한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나가는 출구가 없는 건 이미 확인했다.
그러나 들어오는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을 리는 없다.
명황의 궁전 바깥에는 외부 출입을 막는 방어 장치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부에 강력한 방어 장치가 존재할 리는 없다.
아니, 어쩌면 다른 방어 장치는 세월의 흔적에 의해 모두 지워졌을지는 몰라도 이곳에는 여전히 강력한 방어 장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궁전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곧바로 근처에 절벽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양은 들고 있던 관을 절벽을 향해 던져버렸다.
관은 허상을 남기며 절벽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재빨리 뒤따라갔다.
눈앞의 모습이 바뀌며 다시 궁전 내부로 돌아왔다.
진양은 다시 한번 장정의의 관을 해안 안으로 집어넣어 보았다.
여전히 해안 안으로 넣을 수가 없었다.
진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면 이 세계가 장정의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장정의가 다시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미 이곳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나락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관에 겹겹이 쌓여있던 봉인을 해제했다.
이어서 뚜껑을 열자…….
“진유덕, 네 녀석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살아있는 사람을 관에 가둬버리다니!”
장정의가 관에서 튀어나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지금 상황이 좀 심각해졌어.”
“네? 무슨 일인데요?”
진양의 심각한 표정에 장정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너 여기 완전히 갇혀버렸다고. 게다가 내가 떠날 때 순목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연 종주도 나무 구멍에서 빠져나왔어.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어. 다만 지금 우리 상황을 고려한다면 썩 좋은 일은 아니겠지.
만약 연 종주가 성공적으로 수명을 되돌렸다면 분명 실력도 엄청 늘어났을 거야. 도군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수준으로 말이야. 그럼 분명 우릴 죽여서 입막음하려고 할 거라고.
하지만 순목이 그를 속인 거라면 십중팔구 명황과 관련되어있을 테니 전자보다 훨씬 더 귀찮아질 거고.
어느 쪽이 되었든 결국은 둘 다 죽게 될 거야.
일단 네 몸의 변화가 일어난 걸 봐선 분명 명황과 이 죽음의 세계에 엮인 게 분명해. 만약 녀석들이 쫓아온다면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죽일 수 있으면 곧바로 죽이도록 해. 정 안 되면 내가…….”
한참 떠들어대던 진양의 눈에 멀리 멍하게 서 있는 묵양의 모습이 보였다.
“묵양?”
묵양은 특유의 무표정을 띈 채 아무 말 없이 진양의 곁으로 다가왔다.
“휴, 됐다.”
진양은 장정의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어쨌든 자칫 잘못하다간 죽게 될 거라는 거 명심해. 정 안 되면 묵양에게 보호해달라고 하고 최대한 버티면서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거야.”
장정의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곧바로 묵양을 해안 안으로 집어넣은 뒤 장정의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금화를 하나 꺼내 하늘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대형, 아직 거기 계신가요? 거래 하나만 하죠.”
어두운 하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곳으로 들어올 땐 불길한 존재를 통해 들어왔었다.
그렇다면 분명 나갈 때도 같은 방법을 통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길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봤자 쓸 곳이 있으면 소용이 없는 법.
장정의도 금화를 꺼내 들고 진양처럼 손을 흔들어보았으나 하늘은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진양은 은표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놓으며 소리쳤다.
“좋습니다. 곱절로 드릴게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하늘에서 검은 기름이 갑자기 나타났다.
검은 기름에서 뻗어져 나온 촉수는 진양과 장정의, 그리고 진양이 꺼내둔 금화와 은표가 든 상자를 휘감았다.
그러나 촉수가 불길한 존재 안으로 이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순간.
갑자기 힘이 풀린 듯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그리곤 다시 불길한 존재 안으로 쏙 들어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일부러 웃돈까지 얹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는 건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때, 진양의 시선이 궁전 쪽으로 향했다.
연 종주가 천천히 궁전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밖으로 나온 그는 마치 계단을 밟듯 허공을 밟으며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등이 활처럼 굽은 순목이 따라오고 있었다.
연 종주는 높은 하늘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발걸음을 멈추었고, 순목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명황 대인, 저기 있는 깡마른 녀석이 진양이라는 녀석이고 옆에 있는 뚱뚱한 녀석이 신봉 혈맥을 가진 장정의라는 녀석입니다.”
순목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진양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은 분명 똑똑히 들었다.
‘명황이라고?’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럼 순목은 명황을 부활시키기 위해 모든 일을 꾸민 건가? 명황에게 새로운 육신을 찾아주려고? 아니지. 연 종주는 애초에 신봉 혈맥도 없잖아. 부활은 무슨…….
그렇다면 혹시 연 종주를 방패막이로 쓰려고 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명황에게 육신을 빼앗기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무엇보다 명황에게선 기괴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에 진양의 의문은 한층 더 짙어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명황은 아직 성공적으로 육신을 빼앗지 못한 걸까?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이 상당히 복잡하게 꼬였다는 점이다.
빠르게 생각을 마친 진양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순목을 쳐다보았다.
“순목, 아무리 날 놀라게 만들 생각이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 유치한 거 아냐?
그러니까 지금 저 사람이 명황이라는 거야? 명황이 신봉 혈맥조차 가지지 않은 사람의 육신을 빼앗는다고? 누굴 바보로 아나.
누군가의 육신을 빼앗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육신을 빼앗는 건 불가능하다고. 특히 이런 강자들은 더더욱 말이지. 설령 다시 육신을 빼앗으려 한다고 해도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거든.”
“허허…….”
명황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이 시대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이구나.
네가 가진 두터운 기혈, 튼튼하고 온고한 기반, 거기에 선천지기까지. 이 정도면 상고 어디에 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보아하니 이 시대 역시 그건 마찬가지인 듯하군.
다만 넌 그저 내가 왜 부활한 건지 알고 싶은 게 아니더냐? 그런 수작질을 부리며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느냐?
과거 순목이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까지 원한다면 모두 알려주도록 하마.”
“명황 대인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진양은 진지한 얼굴로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지랄하고 있네.’
첫 등장부터 잔뜩 허세를 부리며 진양과 장정의를 살려두는 건 고사하고 많은 정보를 주겠다고 하다니.
그렇게 되면 아무리 상대가 명황이라도 승산은 크게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충분한 정보만 갖춘다면 묵양처럼 허점 없어 보이는 완벽한 존재조차도 꺾을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방법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이 가능한지는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신봉 혈맥을 가지지 않은 몸에서 부활한 명황이다.
게다가 그는 지금 온전한 상태로 부활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었다.
진양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살폈다.
처음 그를 봤을 때의 놀랐던 마음은 어느덧 조용히 가라앉았다.
만약 전성기 시절의 명황이 이런 식으로 허세를 부렸다면 허세가 아닌 진짜 실력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유사 명황은 그런 허세를 부릴 만한 실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건 말건 명황은 개의치 않다는 듯 진짜로 사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시절 오랜 시간 이어지던 논쟁이 한 가지 있었다. 누군가는 자아 이성이야말로 생명체의 핵심이라고 주장했고, 또 누군가는 기억이야말로 생명체의 핵심이라고 주장했지.
전자는 오직 이성만이 핵심이며 기억이 없어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저 그 사람일 뿐, 기억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후자는 기억이야말로 사람이 존재한다는 가장 큰 근거이며 자아 이성의 변화와 탄생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기억 속에 기록된 것들이야말로 근본이며 자아 이성은 그저 기억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
이 논쟁은 당시에는 끝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이 시대에는 전자가 득세한 모양이구나.”
명황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과거 나는 이러한 논쟁에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허나 나는 사실 후자에 속했었지.
내게 자아 이성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만약 자아 이성을 핵심으로 삼았다면 한없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했을 것이다. 나의 주체는 오직 기억뿐이다.
명황이든 무엇이든 결국은 악작의 기억을 담는 껍데기일 뿐. 수많은 기억들은 한없는 세월을 따라 시간과 함께 흐를 뿐이다.
과거 한 고수가 이러한 사실을 알아내고 악작이라는 이름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때문에, 나는 몰아닥칠 풍파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명황은 고개를 숙여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참을 질질 끌며 많은 것을 얘기해 주었는데 이 정도면 만족할지 모르겠구나. 그래, 이제 난국을 헤쳐나갈 방법이 떠올랐느냐?”
“아뇨.”
진양은 솔직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만 그걸 내게 넘기도록 하거라. 난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만 넘긴다면 널 살려주도록 하마.”
“솔직히 허세 부리는 꼴이 상당히 꼴불견이네요.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더는 못 들어줬을 정도로 말이에요.”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사실 아직 안전하게 난국을 해쳐나갈 방법은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만 끌 수 있다면 눈앞에 있는 ‘자칭 명황’이라는 녀석을 해결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듯했다.
솔직히 일을 너무 크게 벌이고 싶진 않았다.
이 방법은 완전히 모 아니면 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도박은 진양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정의야, 만약 무사히 살아남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번엔 네 녀석을 한두 번 죽이고 화풀이하는 걸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장정의는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한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진양은 일부러 장정의의 화를 돋우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라 힘내라는 의미에서 돌려서 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죽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다만, 진양이 어떤 식으로 눈앞에 펼쳐진 곤경을 헤쳐나갈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