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06
1106화 자랑거리가 웃음거리로 전락하다
천하가 혼란스럽던 아주 오랜 옛날.
천정과 지부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며 매년 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올 때의 얘기다.
당시 순목은 수많은 신들 틈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개미 새끼에 불과했다.
그는 죽은 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신이 가지고 있던 자원부터 보물, 신통력까지.
그는 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훔쳐 조금씩 힘을 키웠다.
점점 더 강해지며 손기술도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강자들조차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순목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명황 악작이 중상을 입어 열반을 앞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죽는 게 진심으로 두려웠던 순목은 만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수많은 신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기연을 손에 넣게 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닥치는 대로 정보를 긁어모으고 그것을 정리하여 살펴보았다.
심지어 다른 신봉 혈맥을 이용하여 명황의 근처까지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는 백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명황이 열반에 들려는 순간이 다가왔다.
순목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신통력과 보물을 사용하여 명황이 열반에 들 장소에 몰래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명황이 사망하고 열반에 드는 순간 숨겨둔 비수를 꺼냈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영혼이 소멸되어버릴 모험까지 감수하며 마침내 명황의 근원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명황의 근원은 열반의 뿌리다.
심지어 그는 명황의 궁전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까지 훔쳐 달아났다.
백 년에 걸쳐 준비한 모든 계획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몸에 명황의 근원을 녹여 넣었다.
그리고 욕화중생(浴火重生)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영혼이 소멸하더라도 약간의 수명만 소모한다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엄청난 신통력이었다.
이때 그는 신통력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온전한 신통력을 갖추기 위해선 흑오동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그가 가지고 있던 책에서 악작의 이름, 그리고 악작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심지어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악작이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술 더 떠서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 모든 이들이 악작이라는 글씨조차 쓸 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극도로 두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순목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성공의 기쁨은 이미 십만 리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강력한 악작이 굳이 열반에 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이유를.
정상급 거물이 손을 쓴 게 분명했다.
그는 일개 도둑에 불과하다.
평범한 도둑보다는 조금 더 뛰어나긴 하지만 하찮은 존재인 건 여전했다.
그는 잡히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털어 시간을 몰래 건너뛰었다.
심지어 만일을 대비하여 자신을 여러 개로 나누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소에 뿌렸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곳일 집중적으로 노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일부는 자폭했다.
이로써 모든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남긴 혈맥은 계속해서 대를 이어나갈 테니 언젠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꽤 먼 훗날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시대는 이미 바뀌어있을 것이다.
모든 과정 중에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누구도 그가 시간을 몰래 건너뛰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수많은 생명체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전부 다 죽이지 않는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만인의 표적이 되고 말 테니까.
그렇게 순목의 계획은 또다시 성공했다.
그는 악작으로부터 열반의 근원을 훔치고 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지금까지도 이 일만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뿌듯함이 밀려왔다.
과거에 존재했던 신들은 시간이 흐르며 전부 소멸되었다.
그러나 신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도둑 순목은 시간을 몰래 건너뛰어 살아남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은 버려질 장기 말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명황이 가장 만족스러워 할 장기 말이었다.
순목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눈에 띄지도 않고, 도둑질에 특화된 신통력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니 말이다.
명황은 열반의 결과가 썩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순목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 순간부터 이미 장기 말이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애초에 그가 접한 모든 정보는 다른 사람의 손에서부터 전달된 것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최선을 다하며 온갖 역경을 겪은 결과…….
명황을 데리고 시간을 건너뛴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누구도 하찮은 일개 도둑 따위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높은 곳에 앉아있는 신들이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순목에게 시선을 돌렸을 땐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여지도 없었고, 막을 방법도 없었다.
순목의 표정은 어두울 대로 어두워져 있었다.
문득 진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상고 놈들은 죄다 되먹지 못한 녀석들 뿐이라니깐.’
진양을 떠올리니 문득 장정의가 생각났다.
상황은 순목이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만약 흑오동이 아직 남아있었다면 그곳으로 들어가 신봉 혈맥과 흑오동을 이용하여 열반에 들고 신봉 혈맥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완전한 죽음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다시 깨어난 명황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고 해도 감히 판을 뒤엎을 만한 엄두가 나질 않았다.
명황의 힘은 고사하고 연 종주의 힘만으로도 한 손가락으로 그를 눌러 죽이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순목은 순순히 길을 안내했다.
다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평생을 자랑거리로 여겼던 일이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명황이 부활할 껍데기로서도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지금 명황은 장정의를 원하고 있었다.
이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진양을 탓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공들여 쌓은 탑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린 건 진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설령 진양이 방해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말은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명황은 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신봉 혈맥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반드시 흑오동을 찾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
그가 오기만 한다면 결국 결과는 같을 테니까.
사실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모르고 있던 건 오직 순목 자기 자신뿐이었다.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왔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분출할 수도 없었다.
늘 그렇듯 그냥 고개를 숙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분노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대신 남은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함, 그리고 비통함뿐이었다.
다시 돌이킬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걸 안 채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순목은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변화는 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명황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길을 안내하던 순목이 입을 열었다.
“장정의야말로 이번 세대의 신봉 혈맥을 타고난 녀석입니다. 실력은 저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진법에 능숙하긴 하나 살초는 다소 부족한 녀석이죠.
하지만 그의 곁에는 진양이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경지는 겨우 도궁에 불과하나 경지를 월등히 능가하는 능력을 부리는 녀석입니다. 심지어 명황 대인께서 신봉 혈맥을 타고나신 게 아니라면 놈을 상대하는 게 버거우실 정도죠.”
“그렇군.”
명황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이어서 물었다.
“흑오동은 어디 있느냐?”
“중상을 입고 진법에 갇혀있다가 나와보니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곳은 현시대의 수많은 강자들이 노리는 곳인 만큼 누군가 손을 썼을 수도 있고, 어쩌면 신들이 나섰을 수도…….”
순목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그의 한쪽 손이 아무 소리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흑오동을 이번 세대의 신봉 혈맥이 가지고 있는 것이냐?”
“보지 못했습니다.”
순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잠깐의 머뭇거림과 함께 한마디를 더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장정의와 진양 모두 흑오동을 가져갈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전부입니다.”
명황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시엔 그의 기억이 완전히 되살아나지 않았을 때다.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닥에 남겨져 있던 흔적으로 보아 강한 실력을 가진 고수가 흑오동을 강제로 뽑아간 게 확실했다.
일개 도궁 따위가 낼 수 있는 힘은 결코 아니었다.
또 다른 누군가 이곳에 들어온 게 확실했다.
그는 꽤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감각을 따라 느껴지는 이 기운은 왠지 어딘가에서 느껴본 적이 있는 그런 기운이었다.
하지만 기억이 온전하게 복구되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부활에 필요한 기억만 남아있고 나머지 절반은 텅 비어있었다.
때문에, 명황은 그 기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순목은 묵묵히 계속해서 길을 안내했다.
팔이 한 짝 사라지긴 했으나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분명 진양을 찢어 죽일 것처럼 원망했으면서 왜 사실을 숨긴 것인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진양이 흑오동을 뽑을 수 있는 어떤 보물을 들고 있다는 사실부터 진양이 전설로만 듣던 부군의 신통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확률로 다시 부활한 부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무엇보다 진양은 과거 악랄하기로 소문났던 부군과 똑 닮아있었다.
게다가 그는 진양이 자기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잘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관계가 상당히 원만했기 때문에 곳곳에 아군을 두고 있다.
만약 이대로 진양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놔둔다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은 명황이 잠시 머무르는 부활체인 연 종주일 것이다.
연 종주는 신봉 혈맥은커녕 도군의 경지조차 오르지 못한 존재다.
게다가 온전하게 부활한 상태도 아니었으니 굳이 대영의 대제가 나설 필요도 없다.
“명황 대인,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설령 놈들이 궁전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이곳을 떠나는 방법은 모르니 도망칠 순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매명전이 없으니 다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할 겁니다.”
명황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조급하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