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16
1116화 진양 망할 자식
진양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대연 신조의 영토를 가로질러 대영 신조의 영토로 들어올 수 있었다.
비주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비록 몇몇 강자들은 엄청난 존재가 나타났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선수에 서 있는 진양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저 멀리서 힐끔 한 번 쳐다보고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입마한 진양을 발견하고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재 대영 신조에서 가장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 누군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산수들조차도 잘 알고 있었다.
진양은 한때 전국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졌었기 때문에 그의 초상화는 전국 곳곳에 퍼져있었다.
때문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진양이 어째서 입마한 것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신경 쓸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진양이 북쪽을 통해 대놓고 대영 신조로 들어왔는데 이 사실을 정천사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이들이 가만히 있는데 굳이 다른 이들이 나서서 난리를 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미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진양이 입마했다는 소식은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대형 세력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천사 역시 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다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대제에게 보고를 올리기로 했다.
대제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대영 신조는 온통 진양에 대한 소식으로 떠들썩했으나 정작 장본인인 진양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진양은 조용히 괴산으로 향했다.
굳이 자신의 마기를 감추는 데 힘을 쏟진 않았다.
그렇게 했다간 수련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기운을 숨기자고 귀한 수련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한편, 진양은 이곳까지 오며 어느덧 소모했던 힘의 절반 이상을 복구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진양은 어느새 괴산 범위 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장 먼저 진양의 존재를 알아차린 백여우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며 그를 맞이했다.
그는 입마한 진양의 모습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류(異類)가 배척을 당하는 건 단순히 스스로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괴산의 산귀인 응백도 이류다.
그러나 감히 누가 그녀에 대해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히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앞장서라.”
진양이 무표정을 손가락을 튕기니 지도가 하나 튀어나왔다.
지도의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진양과 눈을 마주친 백여우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털이 쭈뼛하고 섰다.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진 것이다.
그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재빨리 신통력을 펼쳤고, 진양과 묵양을 데리고 괴산을 가로질렀다.
백여우의 신통력 덕분에 진양은 일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평범해 보이는 어느 산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생명체가 많지 않은 곳이다.
척박한 환경 때문에 강력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조차 없다.
설령 운 좋게 이곳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다른 곳으로 움직일 정도였다.
진양은 산 아래 펼쳐져 있는 골짜기로 향했다.
이어서 골짜기 앞에 도착한 진양은 동술을 펼쳤다.
힘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있던 부문이 눈앞에 드러났다.
진양은 부문의 힘을 가늠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렇게 골짜기 끝에 도달하고 나자 평범하게 보이던 골짜기는 다른 곳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우뚝 서 있던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주변은 황폐한 돌밭으로 변했다.
일말의 개발 가치조차 없는 비경이었다.
영기는 고갈에 가까울 정도로 희박했고 크기도 겨우 수십 리에 불과했다.
설령 누군가 이곳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진양은 돌밭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팔백 장쯤 파 내려갔을 때 작은 공간이 하나 나타났다.
공간 내부는 각종 악랄한 진법이 설치되어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접근한 것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어두운 초록색와 선혈과 같은 붉은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악한 진법이었다.
진양은 진법 파해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해 보고는 파해를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묵양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안으로 던져넣었다.
멍하게 서 있던 묵양은 속수무책으로 진법 안으로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진법에 닿기 무섭게 각종 악랄한 공법들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혈육 위장이 힘없이 찢겨나갔으나 묵양은 맨몸으로 진법을 받아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일 다경 정도 흐르고 나니 모든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수 장에 불과한 작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탁자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세 개의 주머니 반지가 놓여져 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주워들었다.
징표가 없었기에 누구든 연화가 가능했다.
진양은 곧바로 습득 능력으로 그것을 연화시킨 후 내용물을 살폈다.
첫 번째 반지에는 그동안 장정의가 모아둔 여러 잡동사니가 들어있었다.
영석부터 각종 자원까지 있을 만한 건 전부 있었고 심지어 칠 품 영석도 몇 개나 있었다.
두 번째 반지에는 음침한 죽음의 기운이 잔뜩 묻어있는 물건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마 장정의가 무덤 속에서 도굴해온 물건들인 듯했다.
세 번째 반지에는 각종 서적, 비석, 옥간, 죽간 등의 기록물이 들어있었다.
대략 살펴보았으나, 세 번째 반지를 제외하면 살펴볼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들뿐이었다.
반지를 챙긴 진양은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금세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 놓여있는 돌 탁자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진양의 시선이 반지가 놓여있던 탁자로 향했다.
탁자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탁자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그 안에서 돌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나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의 머리가 나왔다.
장정의의 머리였다.
아마 장정의가 만일을 대비하여 남겨둔 보루인 듯했다.
다만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게 분명했다.
장정의를 부활시키기 위해선 가장 먼저 그의 육신이 필요하다.
일전에 그는 영혼까지 완전히 소멸되는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진양은 그가 최후의 보루를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어디에 숨겼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기에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이 장소는 아주 오래전에 장정의가 진양에게 얘기해 준 장소였다.
일종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이 외에 장정의는 죽기 직전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진양에게 주겠다고 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 진양은 고심주에 맞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심지어 장정의가 정말로 죽은 것인지조차도 관심이 없었다.
비록 감정이 메말라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긴 했으나 완전히 묵양처럼 변한 건 아니다.
적어도 그처럼 멍청해지진 않았다.
굳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장정의가 보물을 숨겨둔 곳이 바로 자신의 최후의 보루를 숨겨둔 곳이었다.
세 개나 되는 반지가 있는 건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설령 누군가 이곳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반지만 가져가면 그만일 뿐, 탁자 아래 있는 돌 상자는 안전하니 말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진양은 비경을 빠져나와 다시 괴산으로 돌아왔다.
진양이 손을 펼치자 손바닥만 한 크기의 흑오동이 나타났다.
흑오동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다시 손을 뻗어 흑오동을 거둬들였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흑오동을 꺼내는 순간 천겁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이곳에선 꺼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장소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대황은 안 된다.
마찬가지로 대황에 붙어있는 비경도 안 된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흑옥 신문을 꺼내 안으로 들어갔다.
대지의 위쪽은 널찍했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졌다.
거꾸로 놓고 본다면 거대한 산봉우리가 아래 붙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의 몸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대지의 아래쪽으로 걸어간 진양은 흑오동을 중심에 내려놓았다.
흑오동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며 잘려 나갔던 뿌리가 땅에 단단히 박혔다.
이어서 미세한 흔들림과 함께 흑오동은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진양은 자신의 미간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장정의의 모든 기억과 이성이 들어있는 광구가 튀어나와 손에 들려있는 장정의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모든 걸 마친 뒤에는 장정의의 머리를 흑오동 나무 구멍 안으로 던져넣었다.
* * *
장정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꿈속의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겪은 건지는 몰라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량으로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갓난아기부터 시작하여 쫄쫄 굶다가 제사 음식을 훔쳐먹었던 일.
홀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여러 문파를 거쳐 가는 과정 중에 손에 넣은 공법을 통해 스스로 일어나게 된 일.
이 외에 누군가를 속이려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한 일까지.
그러다 귀신에 홀린 듯 어느 종문에 속하게 되었고 마지막엔 불타오르며 최후를 맞이하던 순간까지 모두 떠올랐다.
“아……!”
장정의는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주위엔 어둠뿐이었고 눈앞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이는 게 전부였다.
순간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른 그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마주한 진양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모습과 똑같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굳은 표정, 그리고 인간다운 모습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눈빛까지.
그가 어떻게 자신을 부활시켰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고심주에 걸리고도 자신을 끝까지 살려주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장정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이 아릿해지며 두 눈을 타고 굵직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사형…….”
아마 지금처럼 진지하고 진실된 목소리로 사형을 불러본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정의는 목을 움츠렸다.
어느새 목덜미가 서늘해진 것이 느껴진 것이다.
자세히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서 있던 진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뿌득-
진양은 장정의의 목을 부러뜨린 뒤 흑옥 신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빈사 상태로 누워있는 장정의를 향해 백피등롱을 꺼내 비추었다.
장정의의 심문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백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높이에 나판을 닮은 거대한 원형 대문이 달려있었다.
진양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심문이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어서 문은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의 중심에는 손바닥 자국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는 무언가 휘갈겨 쓴 듯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진양은 무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진양 망할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