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70
1170화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진양은 열심히 동분서주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에 황야를 지나면서 챙겨두었던 자원을 아낌없이 뿌렸다.
물론 고수들에겐 질리도록 볼 수 있는 흔한 자원에 불과했지만, 어느 곳이든 고수는 소수인 법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이왕 진상을 퍼뜨리기로 한 거 대다수의 사람부터 계몽시켜주기로 했다.
새로운 성지에 들릴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영약을 꺼내놓고 한참의 연설을 했다.
그리고 나면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영약을 뿌렸다.
결과가 어찌 되던 상관은 없다.
그저 듣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건 진양이 새롭게 발견한 방법이다.
덕분에 진양의 이름은 날이 갈수록 유명해져 갔다.
연설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우스갯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로써 시간도 절약하게 되었으니 진양의 입장에선 이득이었다.
* * *
황야를 따라 걷고 있는 미음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진양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진심으로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동안 자신의 인맥을 너무나도 맹신했던 것이었다.
알고 있는 고수들은 많았지만 그를 위해 선뜻 나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이름 모를 사람과 원한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니 미음의 기분은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산 위에 지어진 초가집.
미음이 손을 뻗자 빛이 번쩍이며 짚으로 만든 발이 걷혔다.
안으로 들어서니 산명수려한 비경이 펼쳐졌다.
입구를 지키는 소년은 미음을 발견하고는 곧장 얼굴을 찌푸렸다.
“어르신께서는 지금 집엔 안 계십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지요.”
“허, 이 녀석 보게. 겨우 몇백 년 못 봤다고 날 잊은 게냐? 상관없다.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마.”
미음은 껄껄 웃으며 소년의 볼을 꼬집고는 팔자걸음으로 안쪽으로 향했다.
마당 안으로 들어선 미음은 익숙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한 정자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학자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는 한 남자가 화려하게 붓을 놀리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남자의 가벼운 붓놀림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글자는 종이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고, 마치 흑룡이 위엄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듯 미음을 향해 다가왔다.
미음은 전혀 놀란 기색 없이 껄껄 웃으며 소매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결인을 맺어 두루마리에 새겨넣었다.
그러자 새하얀 백지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쇠사슬의 형상을 이루었다.
쇠사슬은 허공으로 날아오른 흑룡을 단단히 속박한 뒤 종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종이 안쪽으로 끌려 들어간 흑룡은 몸부림치며 포효성을 내질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미음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며 감탄했다.
“참으로 훌륭한 솜씨로군.”
그는 두루마리를 다시 말아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꽤나 한가한 것 같은데 잠시 시간 좀 내주지 않겠나? 그럼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도록 하겠네.”
그러나 남자는 미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탁자에는 새로운 백지가 하나 생겨났다.
이어서 허공으로 손을 뻗으니 새로운 붓이 잡혔다.
그가 빠르게 붓을 놀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쥐 하나가 그려졌다.
작은 눈에 볼록하게 솟은 배, 옹졸한 눈, 거기에 뭘 잔뜩 묻혔는지 꾀죄죄한 몸까지.
그림을 모두 그린 남자는 그 옆에 시를 한 수 적었다.
남자의 붓이 움직이며 그림에서 쥐가 튀어나와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미음은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으로 쥐를 탁- 하고 쳤다.
그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새까만 먹물이 튀며 종이가 지저분해졌다.
“그냥 몇 글자 써달라고 한 게 전부 아닌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하다니 말이야.”
남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옆으로 돌아앉아 버렸다.
그때, 하나의 그림이 스스로 펼쳐졌다.
아름다운 여인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어서 미음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미 대인을 뵙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무슨 일이긴. 오랜 친구를 보러 왔지. 온 김에 새롭게 알아낸 엄청난 비밀로 얘기해 주려고 말이야.”
미음이 웃으며 탁자를 가리켰다.
“차라도 좀 내어오지?”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으니 차탁이 하나 생겼다.
이어서 한 장의 두루마리가 날아와 스스로 펼쳐졌다.
두루마리엔 화(花), 한 글자만 적혀있었다.
여인이 손을 뻗어 가볍게 만지자 노란 꽃잎이 그녀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어서 꽃잎은 순식간에 말라버리며 화차가 되었다.
여인은 뜨겁게 끓인 물에 꽃잎을 넣은 뒤 잔에 따로 담아 미음에게 권했다.
“대인, 말씀하신 차입니다.”
“좋은 차군. 역시 이곳에 와야지 이런 좋은 자차(字茶)를 맛볼 수 있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네 주인 녀석 말이야. 어째 날이 갈수록 성질이 고약해지는 것 같아.”
“흥. 입만 살아가지곤.”
남자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콧방귀를 뀌었다.
여인이 미음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 대인, 혹시 새로 알아내신 비밀이라는 게 이 세계가 사실은 신이 죽어 만들어진 곳이고 이곳에 있는 우린 허망된 존재라는 걸 말씀하시는 건지요?”
“응? 그걸 어떻게…….”
미음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존경심이 들었다.
이제 보니 그는 진작 이 세계의 진상을 꿰차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인, 매일 동분서주하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겠습니까? 날이 갈수록 명성이 바닥을 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데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주의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인은 ‘네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헛소문을 퍼뜨린다는 얘기가 사방에 돌고 있는데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라는 말을 돌리고 돌려 최대한 완곡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미음은 도무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며칠 동안 사방에 흩어져있는 친구들을 찾아다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왜 명성이 바닥을 치는 일이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란 말인가?
여인이 말했다.
“미 대인께서 좋은 분이시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아무래도 자중하시는 편이 이로울 듯합니다.”
또다시 퇴짜를 맞긴 했지만, 미음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고약한 성질머리를 가진 녀석이라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밖으로 나온 그는 다시 한번 여인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조용히 어느 한 성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주루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피하려고 했던 이유.
최대한 그와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
누군가 미음의 모습으로 미음을 사칭하며 사방을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것이다.
게다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싸움까지 몇 번이나 벌였다고 한다.
심지어 이틀 전에는 그에게 보복을 하러 찾아온 이들을 전부 죽이고, 역으로 그들의 문파로 찾아가 ‘죽은 사람이 아니면 지나갈 수 없다’라는 팻말까지 세워 들고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모든 이들의 눈총을 사게 된 것.
아무래도 미유덕이라는 이름과 외모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듯했다.
원래 같았으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고도 남았을 일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미음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이 진양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자신도 모르게 누명을 뒤집어쓰게 됐으나 미음은 그저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깨끗한 척 올바른 척하는 도문 사람들의 가식에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후손 중에 이런 전도인이 태어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뭐, 이 정도 누명쯤이야.’
어차피 그의 마음속에서 불필요한 집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진짜 미음도 아니다.
진양의 방법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정인군자인 척하더라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야 하는 법.
밑천도 없이 그럴싸하게 가식을 떨었다간 몰매를 맞기 마련이다.
마음은 조용히 조사를 해 보았다.
그리고 진양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상당히 대단한 녀석이었다.
어떨 때는 소문을 퍼뜨릴 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찌나 신묘한 방법을 쓰는지 도무지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몰래 행적을 뒤쫓으려고 해도 도저히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진양이 뭘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미음은 외모를 미유덕의 모습으로 바꿨다.
그리고 진양이 했던 것처럼 사방을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진양은 허공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그를 흉내 내며 한창 연설을 하고 있는 미음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그는 진양을 속이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나서 진양이 하는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있단 말인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진양을 속이려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황은 더욱 어색해지게 된다.
진양은 그가 완전히 숨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의 모습으로 날뛰고 다닌 것이다.
심지어 미치광이라는 악명까지 씌워버렸다.
‘안 되겠어. 일단 직접 만나서 대화를 좀 나눠봐야겠어.’
* * *
거대한 코끼리 등에 올려진 궁전 위.
미소를 머금은 채 부하의 보고를 듣던 혈라마의 얼굴이 순간 움찔했다.
“그자의 이름이 뭐라고 하였느냐?”
“미유덕이옵니다.”
어두운 황금빛을 뿜어내는 호법장군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그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문파에서 축출된 제자로 수많은 가명을 가진 자입니다. 최근에는 미유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유덕…….”
그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설마 진양이 아직 이곳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만약 진양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실력이 이토록 강할 리 없다.
정보에 따르면 미치광이의 전투 능력은 법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양은 결코 이렇게 강하지 않다.
혈라마는 합장을 하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공법을 통해 마음에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이 세계에 대한 인상을 새겨넣었다.
혈라마는 일반적인 인간 수도사와는 전혀 다른 성도(成道)의 길을 걷고 있다.
때문에, 그는 인간 수도사보다 많은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기억 일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지워진 것 같았다.
그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이제 막 깨어났을 때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억을 되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