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14
1214화 날파리는 용납할 수 없다
진양은 예리하게 미세한 부분들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추산해 보았다.
지금까지 얻은 단서만 놓고 본다면 이 세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모두 현실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존재하며 속한 상태로 이러한 점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건 곧 이 세계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양이 아는 건 세계도 알게 되는 것.
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길게 이어진 해안가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해안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해안에 상륙할 수 없었던 거다.
새로 만들어진 해안가를 직접 보고 있으니 자신이 처음으로 바다를 건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해안가가 필요하지 않았기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즉, 이제서야 뒤늦게 해안가가 생긴 것.
다만 해안가가 나타난 방식은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
해안가가 갑자기 바다에서 솟구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면 이렇게까지 의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안가는 그려진 것이다.
진양은 미간을 긁적이며 수경 하나를 만들어 자신을 비춰보았다.
원래 미간에는 화사가 남겼던 붉은 점이 있었다.
일념의 바다에 들어갔을 때 진양에게 권력을 더해주기 위해 화사는 많은 것들을 진양에게 넘겼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흉하다는 생각에 한시라도 빨리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워낙 바빴던 탓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나중엔 결국 죽게 되어 아예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점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탓에 언제 사라진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검은 바다에 들어올 때만 해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번에는 옷을 들어 안쪽을 살폈다.
요사가 가슴에 남겼던 푸른 비늘도 사라지고 없었다.
의사가 손목에 남겼던 손도장도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잊어버렸다.
하지만 해안가가 나타난 방식을 보고 나니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이 방식은 분명 화사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하다.
화사 등에게 받은 전승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몸에 남겨진 징표가 더 중요한 듯했다.
문득 환해가 떠올랐다.
환해는 화사가 그리고 환사가 직접 운영해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며 완전히 다른 세계가 만들어졌고 그곳에는 특별한 생명체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화사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본 경험이 있기에 문제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엄밀히 말해서 기예와 일반적인 공법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
기예를 통해 도를 깨닫는 것과 공법을 통해 도를 깨닫는 것 역시 뿌리 자체가 다르다.
순수한 기예는 이곳에서 그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떠한 종족도 입신의 경지에 오를 만큼 기예를 닦은 사람은 없다.
기예를 통해 도를 깨닫고 자신의 길을 새롭게 열어낸 건 오직 상고 인간 십이사가 유일하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눈앞에 벌어진 상황들을 살펴본다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하나의 판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투자된 것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관되었단 말인가?
일단 머리 아픈 것들은 제쳐놓고 자기 자신부터 챙기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룻배는 해안가에 닿았다.
진양과 소설가는 배에서 내려 땅을 밟았다.
해안가에는 검은 모래가 깔려있었다.
뱃사공은 해안가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고맙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죠.”
진양도 포권을 취했다.
뱃사공과 작별한 진양은 소설가와 함께 내륙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뱃사공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며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극진히 예를 갖추었다.
“고맙네, 진양.”
돌연 그녀의 뒤로 황천의 허상이 번쩍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허상은 바다 안으로 흘러 들어가며 고해와 뒤섞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에 있던 허상은 고해로 바뀌기 시작했다.
진양을 건너게 해 주며 그녀는 비로소 고해 뱃사공의 모든 권한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로써 그녀는 마침내 과거와 과거의 영광, 그리고 과거의 업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 성실하게 만 년 동안만 버티면 자기 자신도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망자의 세계가 열린 덕분이자, 진양이 건넨 배표 덕분이다.
이 순간 그녀는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조차 완전히 다른 사람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녀가 황천마종 지하에서 귀신에게 수명을 빌려오는 엄청난 금기를 범하던 뱃사공이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지부의 뱃사공이 아니다.
배표는 진양이 준 것이지 지부가 준 것이 아니다.
그녀를 사면시키고 새로운 삶을 준 것도 진양이다.
설령 진양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진양이 부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완전히 깨달았다.
만약 그가 부군이었다면 결코 그녀를 사면시켜주진 않았을 것이다.
뱃사공은 한참 동안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천천히 노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 * *
“도대체 왜 이러는 겐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내 사정이라면 자네도 다 알고 있지 않나?”
포명백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배표는 한 장뿐이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털보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선 각자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놔야 한다.
“안 됩니다. 이야기에 진심이 없습니다. 다만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건 제가 아니라 규칙이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타수는 단호하게 포명백의 이야기를 거절했다.
“…….”
포명백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내놔야 한단 말인가?
이성도 회복되었고 기억도 회복되었지만,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평생을 살아오며 절대 잊을 수 없던 이야기인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아직 이성과 기억이 전부 살아나지 않은 자들은 전부 통과했다.
비록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던 기억을 모두 품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무덤에서부터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해온 사이다.
때문에, 모두가 서로의 사정을 훤하게 꿰고 있었다.
순간 이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무언가 떠올랐다.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었다.
뱃사공에 대한 정보도 필요한 사람에겐 떠올랐다.
이는 곧 세계의 변화가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렸으므로 이 외의 부분은 사령들이 직접 채워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얼른 서두르게나. 문주께선 이미 바다를 건너셨다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돼.”
옆에서 지켜보던 털보가 재촉하며 말했다.
포명백은 한숨을 푹 쉬며 조타수를 바라보았다.
“진심이 담긴 얘기를 듣고 싶다고? 좋네. 그럼 지금 바로 해 주도록 하겠네. 사실 난 예전에 도문을 배반했던 적이 있네.”
“아쉽지만 그건 알고 있습니다.”
조타수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명백은 다소 의외라는 듯 고개를 돌려 털보를 바라보았다.
털보는 이미 예전에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다.
“허나 자네는 도문의 신념은 저버리지 않았지. 죽는 순간까지도 말이야.”
포명백은 허탈한 표정으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괴롭게 만들고 죽어서도 집념이 되어있던 일이었지만, 도문 사람들이 보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어쨌든 입 밖으로 얘기를 꺼내고 나니 마음은 한층 편해졌다.
더 이상 자세히 얘기할 것도 없었다.
배는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으니 지금부터 바다를 건너도록 하겠습니다.”
조타수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때, 멀리서 두 개의 검은 빛이 날아왔다.
빛에서 나타난 두 사람은 쾅- 하며 배의 갑판에 곤두박질쳤다.
이제 보니 두 사람은 소설책을 빼앗으려고 난투극을 벌였던 용머리와 백포를 입은 남자였다.
“바다를 건너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누구든 바다를 건너려는 자는 배표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고, 규칙에 어긋난 게 아니라면 뱃사공은 승선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더군.”
용머리는 침묵 상태가 영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디 말해 보거라. 나의 어떤 이야기가 궁금하지? 무엇이든 묻는 대로 답해주도록 하겠다.”
한참 가속도가 붙던 배는 다시 느려졌다.
조타수는 조타에서 손을 놓고 천천히 용머리 앞으로 다가갔다.
손과 발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쇠사슬이 쩔렁거리며 소리를 냈고, 그의 체내에서는 금방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듯한 살기가 쇠사슬에 의해 간신히 봉인되어 있었다.
그 순간, 모든 도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멀리 물러났다.
배에 탑승한 두 신참의 표정은 굳어졌다.
지금 배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뱃사공이 유일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승객을 공격하는 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뱃사공은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용머리는 배 밖으로 날아가 버렸고, 허공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조타수의 팔뚝에 기괴한 문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힘이 반항을 일으킨 것이다.
뱃사공은 규칙을 잘 지키는 승객에게 승선 거부를 할 수 없었고, 때려죽이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이는 곧 뱃사공 스스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다.
만약 이를 위반한다면 그동안 뱃사공으로 지냈던 모든 시간은 수포로 돌아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즉,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을 태워줬어도 다시 일만 년을 뱃사공으로 살아야 하는 것.
그러나 조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 배에 날파리가 꼬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이 몸은 바다를 건널 생각도 없다.”
백포를 입은 남자는 하얗게 질린 채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가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껏 많은 뱃사공들을 만났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은 바다를 건너게 해 줄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러다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하게 된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도문의 사람들은 자신을 건널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규칙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걸 하나 잊고 말았다.
규칙이 있으면 당연히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조타수는 애당초 바다를 건널 생각이 없었다.
고해에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겐 수련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키지 않으면 승객을 내쫓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