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33
1233화 내 꿈에 나타나시다니
진양이 이름을 추가하는 순간.
다리 어귀에 서서 다리를 바라보고 있던 털보의 머릿속에 그것의 이름이 떠올랐다.
‘내하교’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상당히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마치 이 다리가 애초부터 이러한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처럼.
털보가 손을 뻗자 비석 하나가 날아와 다리 어귀에 박혔다.
이어서 손가락을 뻗어 손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사방에 돌가루가 튀기며 다소 날카로운 서체의 고대 글자가 새겨졌다.
‘내하’
비석을 세운 털보는 멀리서 목을 길게 내빼며 상황을 살피고 있는 소설가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이런 이름이 떠오른 건 아니다.
그렇다고 세계의 변화 과정 중에 스스로 만들어진 이름일 리도 없다.
분명 누군가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진 건 소설가가 유일하다.
소설가는 털보를 향해 엄지를 치켜 보였다.
“내하라. 아주 좋은 이름이군. 나도 다리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내하’라는 이름이 떠올랐는데. 그대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줄은 몰랐구려.”
진지한 눈빛으로 소설가를 바라보던 털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보는 안목이 있으십니다.”
소설가는 껄껄 웃으며 다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잘 알고 있다.
머릿속에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이것을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양 외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이번에 지은 이름 하나는 상당히 훌륭했다.
* * *
이름을 지은 진양은 황천 다음으로 새롭게 나타난 규칙이 없는지도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규칙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완벽해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왠지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공허 속에 가득 차 있는 광구, 그리고 오색찬란한 세계까지.
눈을 감고 한참의 생각 끝에 한 기억에서 멈춰 섰다.
예전에 입몽술을 시전할 때 이성이 지나갔던 곳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곳에도 광구로 가득찬 오색찬란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다만 입몽술을 시전하면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길이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계에는 아무런 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면 입몽술의 시전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하좌우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광구를 살폈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몽경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라 그런지 감히 만져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광구가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책이었다.
사방에 가득 차 있는 광구와 달리 상당히 눈에 띄었다.
마치 다가오라고 유혹을 하는 것처럼.
진양이 가까이 다가가자 책이 스스로 펼쳐졌다.
책장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진양이 처음 대황에 와서 눈을 떴을 때의 순간이었다.
심지어 일인칭 시점이었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또 내 인생을 몰래 살펴본 거야? 영원의 연옥을 괜히 수련한 줄 아나…….”
진양은 선천충각에 자신의 영원의 연옥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영원의 연옥 첫 번째 단계를 수련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집어넣은 뒤 금단으로 만든 선천충각을 삼켜 도기에 박아넣었다.
영원한 연옥 공법을 익히게 되면 영원한 연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영원의 연옥 안에서는 더 이상 그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죽었을 때, 소설가의 책에 진양의 인생이 그대로 나타났었다.
당시의 일은 생각만 해도 황당했다.
그런데 이젠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진양의 인생이 나타나다니.
진양은 조용히 영원의 연옥 공법을 사용했다.
첫 번째 단계가 시전되며 금단 안에 있는 진양의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금단에서 뿜어져 나온 빛무리는 하나의 고리를 이루며 끝없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책에 흘러가고 있던 장면이 멈췄다.
장면 속에 나타난 진양은 직접 만든 복면과 단출한 방호복을 입은 채 멍석에 말려있는 시신을 짊어진 채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화면은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하며 마침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화면이 사라지고 나자 진양은 영원한 연옥 두 번째 단계를 시전했다.
허무와 혼돈이 반복되는 두 번째 금단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빛무리가 흘러나와 책으로 흘러들었다.
텅 비어있던 책장에 빛이 번쩍였다.
책장은 혼돈과 허무를 오가며 사라질 듯 말 듯한 모습이었다.
이어서 책장이 전부 사라지며 책의 표지만 남게 되었다.
손을 뻗어 표지를 만졌지만, 능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야?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으면서 내 인생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내게 속한 게 아니라고?”
그러나 그 순간, 능력이 반응했다.
손에 실물이 아닌 빛으로 만들어진 책장이 잡혔다.
진양은 그것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제 그만 정체를 드러내지. 텅 빈 표지 따위에 누군가를 주인으로 인정할 만한 이성이 있을 리는 없잖아.
이건 누가 나에게 준 거지? 어서 정체를 드러내지 못해?”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진양이 겉표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입몽술을 시전하자 이성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세계가 펼쳐졌다.
주위를 살펴보다 보니 아주 먼 곳에서 무언가 번쩍이는 게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가 보았지만 상대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흐릿한 상대의 뒷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나의 문을 발견했다.
책장처럼 생긴 대문이었다.
진양은 흑검을 꺼내 쥔 뒤 살기등등한 기세로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그리고 안을 살펴보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건 유령호잖아?’
진양은 흑검을 쥔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 향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계속해서 배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니다 한 선실 안에 진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왕백강이 곯아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니 손이 진법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진양은 진법 안으로 들어가 왕백강의 곁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가볍게 왕백강을 건드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손은 허공을 건드린 것처럼 그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그때, 무언가 이상한 걸 느낀 왕백강이 눈을 번쩍 떴다.
“서, 선장님?”
왕백강은 크게 당황한 듯했다.
“빌어먹을 녀석. 자는 척하면서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었던 거지? 내가 죽은 뒤로 네 녀석의 책에도 나타난 모양이구나.”
“이럴 수가! 정말로 선장님이시군요.”
“무슨 개소리야!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이나 해!”
“방금 전에는 도저히 졸음을 이겨낼 수가 없어서 잠든 겁니다. 하지만 잠에 들자마자 누군가의 인생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하지만 제 의지로 제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말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왕백강은 진심으로 놀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진양이 눈앞에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 자신이 꿈속에서 남의 인생을 체험하는 것까지 막아섰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스스로 제어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중단시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진양에 의해 중단되었다.
진양은 죽은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지만, 왠지 모르게 실력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는 듯했다.
“방금 네가 날 불러낸 거 아니었어?”
“전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는데요.”
진양은 방금 보았던 장면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흐릿하게 보이던 누군가의 뒷모습은 분명 왕백강은 아니었다.
체형이나 걸음걸이 모두 달랐다.
현재 진양은 입몽술을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진짜 유령호일 리 없다.
“대황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별다른 일은 없었고?”
“크게 변한 건 없습니다. 그나마 큰일이라고 할 만한 일은 딱 하나뿐이죠.
백 년 전에 영야의 땅에 태양이 한번 떠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 떠올랐다가 다시 어둠이 뒤덮이긴 했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아직까지도 아무도 모르는 듯합니다.”
“대영 신조는?”
“무사합니다. 지금은 어쩌면 대황에 가장 평온한 시기가 찾아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형 세력 간의 마찰도 거의 사라졌으니까요.
아, 큰일이라고 할 만한 일이 하나 있긴 합니다. 해족 소공주가 꽤 오래전부터 실종된 상태입니다. 해족 내부에선 이 일로 내분까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공주가 사라진 건 내부 분열 때문이라던데…….”
진양은 피식 웃었다.
겨우 그런 녀석들이 백리칠을 소리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진양은 계속해서 한참 동안의 질문을 이어갔고, 모든 질문을 마치고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
“너무 진법 연구만 하지 말고 잠도 적당히 자둬. 아직까지도 실력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어떡해? 이 몸은 무려 백 년 만에 법상을 이뤘다고.”
다시 순백의 세계로 돌아오자 대문은 천천히 소멸되었다.
진양은 순백의 세계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왕백강을 화살받이로 쓰면 제가 믿을 줄 아셨습니까?
여긴 입몽 과정과 완전히 똑같은 곳이죠. 이걸 보고도 당신이 누군지 모를 줄 아셨습니까?
몽사, 이만 나오시죠. 일념의 바다에서 당신을 해탈시키고 망자의 세계로 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건 바로 저 아닙니까? 그런데 뭐가 부끄럽다고 자꾸 숨는 겁니까? 얼른 나와요.”
그러나 이곳에는 진양의 외침만이 울려 퍼질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 * *
동해, 유령호.
왕백강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우선 주위에 깔아두었던 진법부터 살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어서 법상서를 꺼내 살폈다.
새로 나타난 이야기는 없었다.
가슴이 철렁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방금 그 꿈, 진짜였어? 세상에. 선장님께서 내 꿈에 나타나시다니.”
잠에서 깨어난 왕백강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힌 후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한 글자도 남김없이 다시 되돌아보았다.
평소에 충분히 자라는 것 외에 별다른 지시사항은 없었다.
아무 변화가 없는 법상서를 보고 있던 그는 순간 무언가 한 가지 떠올랐다.
비록 진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잠들게 되면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편안하게 잠을 자본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비록 꿈에 진양이 나타나 한참을 비아냥거리다가 가긴 했지만, 꿈속에 있던 건 분명 자기 자신이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왕백강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혹여나 꿈속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고 난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정말로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을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