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54
1254화 두 사자결
“당신의 진짜 능력은 본인이 가진 힘으로 상대의 생각을 강제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제 말이 맞죠?”
“잘 알고 있군.”
사상은 흔쾌히 인정했다.
“네 이름은?”
진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처음 보았던 죽음의 기운 안에 퍼져있는 느낄 수 없는 미세한 무언가를 떠올렸다.
세 번째 금단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양은 영향을 받고 말았다.
진양이 적극적으로 막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단순히 세 번째 금단의 힘만으로는 완전히 막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일전에 역린은 단순히 육신의 힘만으로도 기억검의 모든 힘이 체내로 흘러들지 않게 막아줬었다.
즉, 역린의 힘이 부족하거나 허점이 생긴 게 아니었다.
사상의 힘이 너무나도 특수했기 때문에 소리 없이 파고든 것이다.
상대는 아직 망자의 세계에 적합한 공법을 손에 넣지 못한 듯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신통력을 펼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그의 신통력은 망자의 세계의 제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망자의 세계의 제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통력.
그건 오직 일자결뿐이었다.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냈지만 어떤 일자결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같은 일자결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 익히느냐에 따라 다른 신통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계산을 마친 진양은 사상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일자결을 익힌 거죠?”
사상의 표정이 한층 더 상기되었다.
“그걸 알아보다니! 놀랍군. 뭐, 얘기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난 사자결을 익혔다.
사상(思想). 나의 이름 사상(司相)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 거지.
자,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사자결이라…….”
진양은 다소 놀랐다.
이런 곳에서 같은 일자결을 익힌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놀랍군요. 저도 마침 사자결을 익혔거든요. 다만 제 사자결은 사고(思考)지만요.”
진양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더 잘 됐군!”
사상의 얼굴에 한층 더 광기 어린 웃음이 피었다.
“아무리 같은 일자결의 힘이라도 나의 힘을 막을 순 없을 게다.”
진양은 대답 대신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진양이 눈을 감는 순간.
이성 세계가 잠시 멈칫하며 멈춰 섰다.
이어서 마치 시간이 가속된 것처럼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이 빠르게 수축하며 진양의 몸으로 모여들었다.
진양이 다시 눈을 뜨는 순간.
이성 세계는 완전히 멈췄다.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진양 한 사람뿐이었다.
사상의 눈에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그의 시선이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진양의 눈에는 무려 몇 달이나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진양의 해법이었다.
완벽하게 사상의 힘을 제압할 수 없다고 느낀 순간 자발적으로 상대의 의도에 협조했다.
그리고 반대로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것이다.
오직 이곳에서만 확실하게 상대보다 더 많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진양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상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백피등롱이 나타나 손에 잡혔다.
백피등롱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진양과 사상 사이에 소용돌이와 비슷한 거대한 검은 문이 나타났다.
검은 문은 굵직한 쇠사슬로 꽁꽁 묶여있었다.
진양은 흑검을 소환하여 쇠사슬을 베어버렸다.
“과연, 방심하고 있던 모양이군. 그 누구도 남의 사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의 심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죠?”
이어서 열쇠 구멍조차 없는 심문처럼 생기지 않은 심문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스스로의 판단에 한층 더 확신이 생겼다.
그는 자신을 맹신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단 한 번도 누군가 자신이 뛰어난 부분을 파고들 거라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이다.
진양은 손을 뻗어 사상의 심문에 가져다 댔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죠. 당신이 제게 공감을 얻기 위해 했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의 심문을 여는 방법은 더욱 단순해집니다. 그저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면 되는 거죠.”
소용돌이처럼 생긴 심문은 점점 실체화되며 소용돌이로 변했다.
진양은 곧장 심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진양은 자신의 이성 세계를 돌아보았다.
이미 꽤 많은 곳이 사신의 허상에 의해 침식되었다.
사상의 말이 맞다.
아무래 사자결을 익혔다고 해도 진양이 익힌 사색이나 사고의 힘으로는 사상의 힘을 익힐 수 없다.
사상을 안으로 들인 이상 사상의 침식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사상이 바뀌고 침식당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사람.
그건 오직 사상 본인뿐이다.
진양은 사상처럼 남의 사상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이건 상당히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심지어 진양은 사상의 사자결 신통력이 진양의 보조 신통력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남의 생각을 함부로 고치는 건 굉장히 지저분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사상보다 많은 우위를 점하게 된 이상 해결할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진양은 훨씬 더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사상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이성 세계가 침식되고 사상이 왜곡되기 전에 먼저 진양의 생각을 바꿔버리려는 상대의 의도를 베어버리는 것이다.
심문 내부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공허의 폭풍, 무질서, 혼란, 그리고 파괴력까지.
이것은 사상의 광기였다.
원하는 것을 찾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된 이상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심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버리는 것이다.
진양의 생각을 바꿔버리려는 의도까지도 전부 다.
어면안신곡과 흑검이 어우러지며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눈에 모이는 것들은 전부 소멸되었다.
이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도 최대한 꼼꼼하게 ‘세탁’시켰다.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심문의 뒤편에 무언가 있는 게 보였다.
소용돌이처럼 생긴 심문 뒤로 동그란 징표가 새겨져 있었다.
진양의 ‘세탁’에도 징표는 조금도 상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고대의 언어로 무언가 적혀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보는 순간 그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망자는 죽고 난 뒤 망자의 세계로 가게 된다.’
뜻을 깨닫자마자 마음속에 그것이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말의 의심할 여지도 없는 진리 중의 진리.
망자의 세계가 실제로 나타났으니 이 말은 당연히 진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양은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이게……. 이게 바로 상고 지부 놈들이 심지어 자신의 사람들까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진리처럼 믿도록 만든 방법이었단 말이야?”
진양은 지금까지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상고 지부의 계획 속에 존재하는 몇 가지 문제점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의 ‘세뇌’를 통해 ‘죽은 자는 망자의 세계로 가게 된다’라는 거짓말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포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겼다.
여기까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당시 상고 지부가 가지고 있던 세력과 지위를 생각한다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째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고위층의 고수들까지 이 사실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의심조차 하지 않는 건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도 고위층만 믿게 만들면 된다.
모두들 이들이 퍼뜨린 소식을 자연스럽게 사실이라고 믿게 될 테니 말이다.
많은 정보를 섭렵하고 있는 고수들이 굳건하게 믿는 사실이라면 당연히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처음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은 이런 식의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모두가 거짓말을 맹신하도록 만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징표는 사자결에서 파생된 어떤 신통력이 분명하다.
들어본 적도 없고 관련된 기록을 본 적도 없다.
문득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본 일자결 중 사자결과 관련된 신통력이 가장 많았던 게 떠올랐다.
오직 생각만으로 강제로 마지막 숨을 붙잡는 쇄혈(鎖血) 신통력.
제이검군의 순간이동 신통력.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빠르게 머리를 굴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진양의 신통력.
다른 이의 사상을 바꿔버리는 사상의 신통력.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상의 낙인까지.
이미 직접 보고 느꼈던 것만 해도 몇 가지나 되었다.
게다가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일자결을 익히면 남아있는 일자결의 힘을 막을 순 있어도 일자결을 사용하는 사람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진양은 사자결을 익혔음에도 사상의 사상 왜곡을 막아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사상도 사자결을 익혔지만, 누군가 자신의 심문 안으로 들어와 사자결 신통력으로 낙인을 찍는 건 막지 못했다.
일자결을 사용하여 정면으로 일자결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조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파생된 신통력, 양쪽의 수련 경지, 본연의 실력 등 많은 요소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문에 찍힌 징표는 진양의 ‘세탁’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진양의 힘이 먹히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아마 낙인을 찍은 사람의 실력이 진양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양은 마지막으로 사상의 심문 안쪽을 살핀 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보니 백피등롱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사상의 모습이 보였다.
백피등롱을 파괴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동작은 너무 느렸다.
이곳은 진양의 이성 세계 안.
여기에 사자결까지 발동되며 진양의 움직임은 사상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빨랐다.
즉, 진양의 시간은 사상이 느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이었다.
덕분에 사상이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도 진양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심문 밖으로 나온 진양이 손을 휘저으니 백피등롱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자결을 거두며 시간은 다시 원래의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사상은 거칠게 몸을 내밀며 손을 뻗었지만, 허공만 만져졌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다시 중심을 잡고 선 그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한편, 사신은 진양의 이성 세계의 절반 이상을 침식해나가고 있었다.
사신이 이성 세계를 완전히 침식하는 순간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왜곡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사신의 허상은 우뚝 멈춰 섰다.
이어서 사방으로 뻗었던 촉수를 힘없이 다시 거둬들이며 조금씩 희미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어둠으로 가득 찬 절반의 세계에서 다시 빛이 흘러나왔다.
수평선 너머로 다시 태양이 떠오르며 눈부신 빛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진양은 멍하게 서 있는 사상의 손을 잡고 이성 세계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