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55
1255화 일단은 남겨두자
눈을 뜨니 눈을 감고 진양의 미간에 손가락을 얹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사상의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생기에 불을 붙이고 흑검으로 베어 실험체로 만들려는 순간.
사상이 눈을 번쩍 떴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지도 않았고, 이전처럼 광기에 휩싸인 모습도 아니었다.
오히려 맨 처음 봤을 때처럼 평온하고 나태한 모습이었다.
“과연, 자네는 참 귀찮은 사람이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높이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신의 허상이 사상의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온 세계는 마치 유리가 부서지듯 무너져내렸다.
조각 뒤로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의 모습이 보였다.
사신의 촉수는 태양을 완벽히 가리며 온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자, 이젠 어떻게 할 셈이지?”
진양의 동공은 빠르게 수축되었다.
사상의 사상 개조 과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이미 완전히 변한 상태다.
다만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과 똑같이 변했을 뿐.
그러나 과정이 한 차례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고 해도 이성은 바뀌지 않는다.
진양은 분명 상대의 심문 안에 있던 징표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자아이성이 남아있단 말인가?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진양은 재빨리 손을 뻗어 사상의 손가락을 잡았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를 가까이서 만지고 애자결의 침묵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사상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힘의 파동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사신의 허상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설마 또 다른 일자결?”
사상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며 진양이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고 있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고 있었던 것이다.
“강력한 신통력이구나. 허나 안타깝게도 네가 막을 수 있는 건 나의 힘과 내가 시전한 다른 신통력뿐. 이미 시전한 사자결 신통력은 막을 수 없다.
네가 막을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힘. 그것은 바로 나의 이성과 사상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머리 위로 수많은 장면과 함께 이성이 흘러나와 힘으로 바뀌며 사상 왜곡 신통력이 계속해서 펼쳐지도록 만들었다.
“일자결을 두 개나 익힌 너 같은 수재를 단순히 힘만 쓰는 곳으로 보내기엔 아깝구나. 하지만 우리 쪽 사람으로 만드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우린 처음부터 같은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함께 손을 잡고 산 자의 세계로 돌아가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촉수로 온 세계를 감싼 사신은 세계를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넌 나의 사람이다!”
사상의 말은 온 세계에 울려 퍼졌다.
진양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진양의 몸은 일그러지고 있는 세계에 휘말려 함께 일그러졌고, 곧 소용돌이와 한 몸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바닥에 앉아있는 사상은 기력이 다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기운은 상당히 미약해져 있었다.
애자결의 힘은 여전히 그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침묵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성, 사상, 그리고 기억을 힘으로 바꿔 사상 왜곡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성이 흐릿해졌고 힘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두 개나 되는 일자결에 입문하다니. 정말 강하군. 게다가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기까지 하디니…….”
그때, 사상의 표정이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진양은 눈을 뜨고 바닥에 쓰러진 사상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졌다.
진양은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의 사상 왜곡 과정은 이미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주위의 모든 것들이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
심지어 진양조차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계속해서 과정이 진행되며 더욱 깊은 곳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이 진양과의 머리싸움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다만 첫 번째 단계부터 이미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느끼지 못하도록 했다.
두 번째 단계는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성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진양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잡고만 있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두 번째 단계를 빠져나왔을 때 첫 번째 단계는 이미 침식이 완료되었다.
여기까지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마음속에는 사상이 자신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어딘가 이상한 듯 아닌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사상의 상태를 살펴본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다행히 아직 죽진 않았다.
단순 이성에 중상을 입어서 쓰러진 것이다.
어면안신곡과 기억검의 힘 때문일 수도 있고, 스스로의 이성과 사상, 그리고 기억을 불태워 사자결을 발동하는 힘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해당될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그럴 경우 상황은 설상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아직 살아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면 침묵 신통력이 사라지고 나면 사상은 다시 회복될지도 모른다.
상대를 모두 살핀 진양은 자신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전의 일들을 돌이켜보며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계획대로 한다면 지금의 상태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진양은 소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일전에 몰래 기록해두었던 ‘수행 예정 임무’ 한 줄을 읽었다.
그러자 마음속 일어난 갈등이 천천히 해소되었다.
소책자에 적혀있는 건 반드시 일 순위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진양은 영원의 연옥을 시전했다.
세 개의 금단이 서로 이어지며 빛을 뿜어냈다.
모든 힘이 첫 번째 금단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금단으로부터 힘이 뿜어져 나왔다.
진양의 뒤로 원형 고리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곳에선 진양의 일생이 순환되고 있었다.
진양의 인생은 진양이 사상에게 다가가 그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에서 멈췄다.
원형 고리는 다시 진양의 체내로 들어갔다.
눈을 감은 진양은 마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번쩍이며 진양의 허상이 밖으로 밀려 나왔다.
허상은 진양의 몸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실체화된 진양과 허상화된 진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실체화된 진양은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놈이군. 그나마 녀석이 암시나 최면 등의 힘을 쓸 수도 있다는 걸 미리 눈치채고 방비를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녀석에게 완전히 세뇌당할 뻔했어.”
첫 번째 금단 안으로 진양의 인생이 흘러들며 실시간으로 갱신되었다.
진양은 이곳에서 상처를 입으면 금단의 힘을 빌려 회복을 한다.
금단에 존재하는 인생을 기준으로 삼아 자기 자신을 강제로 기준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육신만 복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금단까지 수련하고 나니 첫 번째 금단이 품고 있는 위력은 한층 더 올라갔다.
그 덕분에 점점 더 많은 부분을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양은 사상의 힘이 이성과 관련된 힘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자마자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상, 생각 등의 모든 상태를 첫 번째 금단의 인생 속에 새겼다.
일전에 실험자들을 역성불시키는 동안 틈틈이 시간을 내서 영원의 연옥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했었다.
아마 영원의 연옥만으로는 이러한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영원의 연옥에 선천충각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어쨌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사상과의 싸움에서 진양이 이겼으니까.
진양은 자신의 옆에 생긴 허상 진양을 바라보았다.
허상이 모여들며 소용돌이 모양의 징표의 모습을 이루었다.
징표 안에서는 사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거슬리는 속삭임처럼 그의 머릿속을 수도 없이 맴돌았다.
‘오늘부터 넌 나의 사람이다!’
진양은 징표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느껴보았다.
확실히 일자결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힘이 느껴졌다.
만약 이것을 강제로 끄집어내 징표의 상태로 만들지 않았다면 존재를 깨닫는 것은커녕 지우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밖으로 끄집어내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이 징표는 일전에 보았던 아무도 조종하지 않는 일자결의 힘과 같았다.
이론상 진양도 일자결을 익혔기 때문에 이것을 지우는 게 가능하다.
손을 뻗어 징표를 소멸시키려는 순간.
진양은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과연 징표를 소멸시킨다면 사상은 이를 느낄 수 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진양이 가진 사자결에서 파생된 신통력은 빠르게 생각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신통력이므로 사상의 신통력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징표를 소멸시키고 바보가 된 사상을 역성불시킨다면 일자결을 익힌 매우 희귀한 실험자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심문에서 했던 모든 일들은 사상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자아이성 역시 멀쩡했다.
어쩔 수 없이 희귀한 실험자는 포기하고 완전히 소멸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사상을 소멸시키면 결국 나중에 각개격파 해야 하는 귀찮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게다가 돌연 강력한 적이 나타나 진양을 짓눌러버리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 버린다면 진양 혼자 풍도대제와 한패인 모든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기껏 적을 쓰러뜨렸더니 계속해서 적이 쏟아져나오는 국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모두 죽이지 못한다면 진양은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소용돌이 징표를 소멸시켜야 하나?’
한참의 고민 끝에 진양을 징표를 다시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금단 아래 봉인한 뒤, 원형 고리의 순환에 그것을 완전히 가둬버렸다.
일단은 남겨두기로 했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니까.
이걸 가지고 있으면 사상은 그를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신의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이는 곧 풍도대제와 한패인 자들 사이에서도 신뢰할 만한 인물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