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99
1299화 바보로 만들어버리면 그만
진양은 수라에게 가까이 다가와 보라는 듯 손짓했다.
“괴상한 여인입니다. 눈치챌 틈도 없이 독을 쓰는 건 물론이고, 안개로 변하기까지 합니다. 방금 전에도 베어버렸지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하더라고요.”
“알았으니까 이쪽으로 와보라니깐.”
진양은 곧장 수라를 끌고 약수 수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대는 수라의 일 검을 정면에서 맞고도 멀쩡했다.
그렇다면 진양도 그녀를 꺾을 방법이 없다.
진양은 수맥이 뒤덮인 범위 안으로 수라를 끌고 왔다.
특별한 게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주변에 흐르고 있는 약수는 두 사람을 피해서 지나가고 있었다.
“저 여자는 또 뭐야?”
“삼사숙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에 중독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독을 전부 불태웠죠. 그리고 나니 저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더라고요.
이번엔 절대로 제가 먼저 사고를 친 게 아닙니다. 여자가 먼저 절 찾아온 거라고요.
여인이 쓴 독은 제게 먹히지 않았고, 반대로 제 검도 여인에게 먹히지 않았죠. 그래서 그냥 삼사숙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겁니다.”
수라는 진양이 떠나고 벌어진 일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사고를 친 게 아니라니.
이대로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그랬다간 그는 진양을 겁쟁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라야, 잘 기억하렴. 만약 누군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면 무조건 상대를 죽이도록 해. 죽일 수 있다면 최대한 철저하게 죽이고, 죽일 수 없다면 괜히 힘 낭비하지 말고 얼른 도망치고. 일단 기억만 해뒀다가 나중에 상대를 꺾을 힘이 생기면 그때 다시 죽여도 되잖아.
사고를 치지 않은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다가오는 적을 무서워하면 안 돼. 겁먹을 필요 없어. 네 뒤에는 대진마문이 있잖아.
대진마문에서 감당 못 할 만한 일이라면 이 삼사숙이 직접 다른 고수를 모셔오면 되는 거고.”
진양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약수 수맥 중간에 나타난 텅 빈 지대를 가로질렀다.
두 사람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절대로 거대한 약수 수맥을 피해서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양은 마치 수맥이 어떤 위치로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안전한 경로로만 움직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유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녀는 진양이 걸어간 길을 따라 조용히 뒤를 밟았다.
반 시진 후.
진양의 미간이 또다시 찌푸려졌다.
오천 리나 되는 넓이의 거대한 수맥이 마치 은빛 이무기처럼 몸부림치며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넓은 범위에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수도사의 힘을 월등히 능가하는 천지의 힘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천 리 내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공격에 당하게 될 것이다.
진양은 수라와 함께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안개 상태로 뒤를 밟던 유무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뒤이어 이번에는 하늘과 땅과 맞닿아있는 듯한 거대한 은색 벽이 덮쳐왔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무려 일만 장이나 되는 훨씬 더 강력한 수맥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망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뒤쪽에 교차한 수맥이 변화를 일으키며 뒤쪽의 모든 길을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뒤를 돌아보며 차갑게 웃었다.
자신의 독이 약수에 녹는 걸 보고도 겁대가리 없이 여기까지 따라 들어오다니.
게다가 안전한 길이 혹여나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상당히 가까이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때문에, 진양은 그녀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안개 상태로 약수를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 아마 높은 확률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만약 견뎌낼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바싹 붙어서 쫓아오진 않았을 테니까.
“오감을 차단하고 몸의 긴장을 풀도록 해. 절대 움직이지도, 저항하지도 마.”
수라는 군말 없이 진양이 시키는 대로 했다.
진양은 곧바로 그를 해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약수 수신 상태가 되어 약수 안으로 들어갔다.
옅은 안개가 모여들며 유무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만약 진양이 자신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함정에 빠뜨릴 것이라는 점은 미리 각오하고 있었다.
처음 오천 리나 되는 약수 수맥이 덮쳐오는 걸 봤을 땐 진양이 이 틈에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불과했다.
그 뒤에는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인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야가 가로막히기도 하고, 또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다.
간신히 고비를 하나 넘겼나 싶었더니 이번엔 더 큰 고비가 나타나고 말았다.
피하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대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진양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요염하던 모습을 거두고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 유무라고 합니다. 잠시 대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메아리치듯 들렸다.
수신 상태에서조차 무언가에 의해 중독되는 게 느껴졌다.
육신이 중독된 건 아니었다.
마치 이성이 중독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통해 남을 중독시키는 능력을 가진 게 분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 자체가 독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독이 되어 진양의 몸으로 침투함과 동시에 약수 해일을 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약수 안에 있던 진양은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수에서 다시 뛰쳐나왔다.
약수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육신 상태가 회복되었다.
그러자 독이 몸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지. 도망은 꿈도 꾸지 마라!”
성난 포효성과 함께 진양은 사자결을 펼쳤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마치 멈춰버린 것처럼 느려졌다.
진양의 육신도 함께 느려졌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진양은 곧바로 독소가 빠져나가려고 하는 곳을 포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곳을 막아 독소가 체내에 갇히도록 만들었다.
녀석의 길을 막은 뒤 사자결을 한 단계 낮춰 시전했다.
그다음 수라를 가뒀던 뼈로 만든 철장을 꺼냈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철장을 가리켰다.
그 순간 손가락에 작은 틈이 만들어졌다.
유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곳을 통해 밖으로 튀어 나갔다.
진양의 손가락에서 쏘아진 회색 기운은 곧장 철장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 기운이 모두 뿜어져 나와 철장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진양은 철장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이어서 해안에 있던 수라를 풀어주며 철장을 지키도록 했다.
한편, 유무는 철장 이곳저곳을 마구 부딪쳤다.
겉보기엔 굉장히 거대해 보이는 철장의 틈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허사였다.
안개가 다시 유무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긴 했으나 긴장하거나 화가 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진양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싫은데.”
이어서 수라에게 말했다.
“절대로 풀어주면 안 돼. 무슨 말을 하든 그냥 전부 무시하도록 해.”
사자결을 해제한 진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메아리치던 유무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절 데리고 약수를 지나가 준다면 약수를 다스릴 수 있는 수문도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닥치라니깐 그러네.”
“당장 절 죽인다 해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지금 이곳에 갇혀있는 건 제 몸의 절반뿐이니, 기껏해야 절반의 힘을 잃는 게 전부일 겁니다.
설령 소멸된다고 해도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할 거고요. 그러니 무슨 짓을 하든 전부 헛수고일 겁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계속해서 차분하게 진양과 협상을 시도했다.
“얘기 대충 끝난 것 같으니까 이만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어.”
진양이 흑검을 꺼내 들며 수라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 도망치지 않을 정도로 작은 틈 하나만 만들어줄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됐습니다.”
수라가 철장을 감싸고 있던 봉인을 다소 느슨하게 만들자 철장에 틈이 생겼다.
이런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가 없다.
함정인지 아닌지 알 순 없었지만 일단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검은빛이 틈을 비집고 철장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베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 완전히 잊었다.
도망가고자 했던 생각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계속해서 흑검을 휘둘러 그녀의 기억을 베었다.
그녀의 눈빛은 점점 더 멍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칼질을 했을 즘.
그녀의 몸이 돌연 안개로 변했다.
스스로의 형상을 갖추는 법조차 잊은 것이다.
그러나 진양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백여 번 정도의 칼질을 이어갔다.
설령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 있는 게 그녀의 절반이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아예 바보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분명 이곳에 있는 절반이 사라지고 나면 남은 절반의 머릿속으로 기억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예 흘러 들어갈 기억 자체를 없애버리면 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원한조차 갖지 못할 테니 모든 게 깔끔해지는 것이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독을 풀 수 있는 적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진양은 유무를 충분히 조지고 나서 다시 철장을 봉인했다.
그리고 수라는 다시 해안으로 넣었다.
진양은 직접 철장을 챙겨 약수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신 상태조차 사용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견뎌냈다.
철장은 약수의 침식에 의해 연달아 빛이 번쩍이고 있긴 했지만, 당분간은 소멸되지 않고 충분히 버틸 듯했다.
진양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설령 철장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유무는 일단 확실하게 죽일 필요가 있었다.
오천 리 정도를 지나 약수 수맥의 중심에 도달했다.
진양은 그제서야 철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약수가 안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했다.
검은 안개는 철장 안으로 퍼져나갔다.
약수가 흘러들어오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진양은 혹여나 하는 마음에 철장을 몇 번이나 약수로 씻어냈다.
그렇게 확실하게 철장이 빈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철장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약수 수신 상태로 한참 동안 약수에 머물다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약수 밖으로 나왔다.
* * *
같은 시각.
약수에서 멀리 떨어진 곳.
한참 길을 재촉하고 있던 유무가 우뚝 멈춰 섰다.
그녀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나의 절반이 사라졌군.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기억이 흘러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어서 그녀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찼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곳에서 죽었길래 아무것도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