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52
1352화 그저 욕심이 전부
“사형, 결정했습니다. 이미 태호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의 적은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고 지부 사람들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함께 태호와 맞서 싸울 수 있잖아요. 그러니 태호 세계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상고 지부로 가도록 해. 어쨌든 양쪽 다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인 건 마찬가지니까. 이왕 가는 김에 이간질도 하고 오도록 해. 서로 박 터지게 싸우도록 말이야. 그리고 태호 세계는 위험하니까 가지 않는 걸로 하자고.”
“아, 아닙니다. 역경이 두렵다면 어떻게 수련을 하겠습니까?”
“너,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또 나중에 가서 나한테 속았다고 난리 치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건 사형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 단지 사부님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입니다.”
“쯧…….”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알았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자살해서 다시 돌아오도록 해.”
말을 마친 진양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재빨리 그를 다리 안으로 차버렸다.
장정의가 사라지고 난 뒤.
진양의 곁으로 빛이 모여들었다.
이어서 빛 가운데서 몽의가 걸어 나왔다.
“사숙님,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대황은 녀석의 안방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니 다른 수도사들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게지.
이대로 가다간 평생 제자리걸음만 하다가 폐인이 되든지, 아니면 자만에 빠져있다가 결국은 죽게 될 게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건 명황도 마찬가지다.”
단호한 몽의의 모습에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임 명황은 진양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자신이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부활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진양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실 진양도 몽의의 의견에는 공감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
장정의는 겉보기에도 상당히 나태해진 모습이었다.
죽음의 공포는커녕 죽음 자체를 단순히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어떤 일에도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고고학 연구’마저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악작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양은 장정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순진한 녀석.’
그는 이렇게 하면 사부의 괴롭힘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를 역경으로 몰아넣은 것은 순전히 몽의의 의견이었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진양도 장정의를 속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만으로도 함정에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진양의 입장에선 이보다 훌륭한 실험체는 없었다.
난파선을 대황에 뿌리 내리게 만들 순 없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구주 전체를 파서 옮기는 것도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연화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신목 때문에 쉽지 않다.
연화된 난파선은 진양의 힘에 둘러싸인 채 호량에서 회복기를 가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도문이 다시 살아났다.
그것을 본 진양은 생각했다.
만약 도문을 다른 곳에 이식한다면 그것을 하나의 ‘통행증’으로 사용할 수 있진 않을까?
도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어디서든 난파선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뜻이고, 그렇게 하면 천겁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험체는 반드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해야 한다.
너무 약하면 천겁이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강한 실력을 갖춘 사람은 차마 실험체로 삼을 수가 없다.
그러던 와중 너무나도 완벽한 실험체가 나타났다.
바로 장정의였다.
물론 이 모든 건 진양이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 * *
장정의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 지하에 있는 용암의 바다로 왔다.
이곳으로 넘어오자마자 입 안에 무언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용암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장정의는 입 안에 있던 것을 뱉었다.
그것은 옥간이었다.
옥간에는 ‘비단 주머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봉인을 풀자 진양이 남겨둔 정보들이 나타났다.
태호 세계의 전반적인 상황부터 이곳에 있는 호량의 상황까지.
여러 정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는 ‘수소문해 보고 태호에게 붙잡힌 십이라는 소녀를 구출하도록’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장정의는 옥간을 쥔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형께서 말씀을 아끼신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 소녀를 구출하라니. 내가 형수님께 일러바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난 거였구나. 쯔쯧, 진유덕. 이 인간아!”
장정의는 그제야 진양이 자신을 속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진유덕, 드디어 네 녀석이 내 앞에 무릎 꿇고 비는 날이 오는구나!’
장정의는 스스로 엄청난 비밀을 쥐었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태호 세계의 호량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체불명의 한 여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미소를 띤 채 의자에 앉아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놓고 조용히 장정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정의는 처음에는 놀라긴 했으나 이내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곤 자신도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진유덕이라고 합니다. 소저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인은 다리를 꼰 채 흥미롭다는 듯 장정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진 소협, 여기가 어딘지 알고 계십니까?”
“호량도 아닙니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장정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포권을 취했다.
“그래서 소저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함부로 남의 이름을 묻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군요. 제 이름은 알아서 뭐 하려고요? 저주라도 하려는 건가요?”
여인은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장정의는 한층 더 경계심을 낮추며 계속해서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애석하게도 전 저주를 거는 술법 같은 건 할 줄 모릅니다. 마음 같아선 하나 배우고 싶긴 합니다만 그럴 수가 없군요. 혹시 소저께선 할 줄 아십니까?”
“물론 아니죠. 저도 배우고 싶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여인은 계속해서 미소로 대답했다.
장정의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고도 크게 개의치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장정의는 어느덧 여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여인은 계속해서 미소를 띤 채 장정의를 바라보았다.
얼굴부터 아래로 향하던 장정의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 쪽에서 멈췄다.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목걸이를 만졌다.
“혹시 이걸 보고 있는 건가요?”
신비한 빛을 품고 있는 목걸이는 기운을 완전히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소용돌이 형태의 안쪽에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기 드문 좋은 물건이군요.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말았습니다. 혹여나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장정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직접 만져보시겠습니까?”
“네? 하지만 그건…….”
“괜찮습니다.”
여인은 목걸이를 빼서 징장의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원한다면 그냥 드릴 수도 있습니다. 대신 그 전에 소협께서 어디서 오셨는지 알아야겠습니다. 그 정도는 말씀해 주실 수 있죠?”
“이런 물건을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이대로 거절하면 결례이니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장정의는 목걸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돌연 여인의 가슴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인은 아무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뒤늦게 반응하고 나서야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허상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몇 겹이나 겹쳐져 있던 지척천애 금제도 천천히 소멸되었다.
지척천애 금제는 여덟 개의 방향으로 뻗어지며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인은 장정의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은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했지만 이건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진유덕이라고 소개한 자가 가까이 다가와 살초를 펼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목걸이만 가지고 도망쳐버렸다.
“진유덕이라고 했지? 좋아. 이 몸이 널 기억해 주마.”
여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앞으로 빛이 모여들며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 나타난 건 뚱뚱하고 게으르게 생긴 장정의의 모습이 아닌 진짜 진양의 모습이었다.
빛 가운데 하나의 옥간이 튀어나와 그녀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잠시 뒤.
새까만 얼굴의 덩치 큰 사내가 그녀의 곁에 나타났다.
그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상당히 빠른 놈이라 놓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어디로 도망쳤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세계의 호량 조각이 다시 합쳐진 듯합니다. 지하에 있는 용암의 바다 아래서 튀어나왔다는 점은 확실하나 정확하게 어디서 온 건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인은 들고 있던 옥간을 사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놈을 찾아라. 죽이진 말고 살려서 내 앞으로 데려와라. 놈은 내게 살의를 품지 않았다. 단지 날 보고 조금 놀랐을 뿐 조금도 살초를 쓸 생각은 없었다.
허나 놈은 겨우 인간 법상 수도사에 불과한 자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아야겠다.”
옥간을 건네받은 사내는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홀로 남은 여인은 허공에 앉아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제 막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녀석이 앞길을 막는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다니.
누가 봐도 수상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무력을 쓸 준비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에겐 살의나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욕심이 전부였다.
애초에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그런 반응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숨기기 어려운 것이다.
마음을 먹는 순간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진유덕은 그게 가능했던 걸까?
상대가 인간 수도사인 걸 감안해 본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
진유덕은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눈치채고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하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녀는 돌연 불안해졌다.
그녀는 매우 강하다.
그러나 원숭이도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특히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밑천을 간파당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게다가 그는 겨우 일개 법상 수도사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세계의 경계를 넘어왔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어딘지 모를 곳으로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분명 엄청난 보물이나 공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