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51
1351화 다녀오렴
십이는 그동안 이곳에 있는 여러 자료를 훑어보며 진양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상고가 막을 내리며 호량은 무서지고 여러 신산들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각각의 대세계는 갈라지게 되었다.
각 세계마다 적용되는 규칙도 어쩌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 규칙은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준다.
특히 강한 실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세계가 가하는 강한 제약을 받게 된다.
제약으로 인해 받는 피해는 단순히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천지의 배척을 받게 된다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한참의 노력 끝에 마침내 난파선에 관한 정보를 찾아낸 것이다.
진양이 조금이라도 순조롭게 이곳에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진양은 늘 그렇듯 위협조로 답신을 보내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기뻤다.
십이는 한숨 돌렸다는 듯한 얼굴로 편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택에 남겨진 여러 기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록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종일 작업에 매달린다고 해도 당분간은 전부 끝내지 못할 듯했다.
* * *
“사형, 절 찾으셨습니까?”
장정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황급히 진양이 머물고 있는 잡화점 뒷마당으로 달려온 그는 마치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있다가 오랜만에 바람을 쐬러 나온 죄수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연민이 느껴졌다.
지난번 장정의는 몽의의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죽은 상태로 수많은 고수들 앞에 나타났다.
비록 몽의는 평소에는 별다른 얘기를 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이건 보통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도문의 현임 묘지기이자 신임 명황이 이런 꼴이라니!
진양이 정의를 조금 더 단련시켜야겠다고 지나가듯이 했던 말을 몽의는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호량에서의 소란이 모두 잦아들기 무섭게 그를 데리고 다니며 강도 높은 수련을 이어나갔다.
수련은 장정의가 몽의의 속도를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때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설령 버텨낸다고 해도 이건 첫 단계의 수련이 끝난 것뿐이다.
그는 진양이 자리를 비운 수백 년 동안 실력이 거의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진양은 천겁을 이겨내고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도군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했다.
수백 년 동안 법상 경지에 머물러있는 장정의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솔직히 사숙께서 요즘 네게 각별히 엄해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사실 아직 천 살도 되지 않았는데 법상 경지에 오른 거면 대황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운 수준은 아니잖아. 게다가 수련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끝낼 수 없는 거잖아. 그래서 잠시 숨통이라도 트이게 해 줄 생각으로 널 이렇게 부른 거야.”
진양의 말에 장정의는 곧장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그전에 주위를 살피며 무려 여덟 개나 되는 공법을 펼쳤다.
이어서 주변에 몽의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잔뜩 울상이 되어 말했다.
“사형, 어찌 그렇게 제 마음을 잘 아십니까?
사형이 도군이 되어 돌아오고 난 뒤로 사부님께선 마치 주화입마에 빠지신 것처럼 절 못살게 굴기 시작하셨습니다. 벌써 사부님께 끌려다니며 여덟 번은 죽은 것 같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대연이고, 또 죽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사해고……. 사형께서 저를 불러주지 않으셨다면 사부님은 아마 저를 끝없는 바다에 던져놓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어떡하겠냐. 전부 다 네가 게으른 탓을 해야지. 명황의 자리를 이어받았으면 가만히 누워서도 실력을 쌓을 수 있는데,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상에 머물러있다면 그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숙님의 방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는 방법인 것 같아. 오히려 반발심만 더 키울 뿐이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수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아 왔는데. 어때, 한번 해 볼래?”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정의는 흠칫 놀라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리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사형, 또 뭘 하시려는 겁니까?”
그는 진양이 다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목을 부러뜨렸던 일을 아직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진양은 애초에 그를 엿 먹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본능적으로 그를 괴롭히려고 하는 인간이 분명했다.
“쫄긴. 넌 신임 명황이잖아. 게다가 네가 부리는 온갖 수단을 생각해 본다면 감히 누가 널 쉽게 함정에 빠뜨리겠어? 심지어 일자결에도 죽지 않는 녀석이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불안함은 여전히 감출 수가 없었다.
진양은 발아래를 가리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사방을 가리켰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부끄럽지만, 대황 어디를 가든 네가 내 사제라는 사실을 말하기만 한다면 모두가 널 용서해 줄걸. 설령 네가 남의 집 무덤을 파헤친다고 해도 충분히 수습이 가능할 정도다 이 말이야.”
장정의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형께서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있으신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영야의 땅에 갔을 때 촉룡 대인을 뵈었는데, 그분조차도 제게 예를 갖추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대황에선 네가 수련할 만한 곳이 없다는 거야. 설령 네가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도 네게 진짜로 살초를 펼칠 만한 사람도 없으니까.
우리 같은 수도사들이 어떤 사람이냐? 수련을 위해서라면 강철도 씹어먹고 기름 솥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아니더냐! 생사의 순간을 넘나들며 강해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존재들이지.
하지만 위기감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 모든 경지는 제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법. 변화 없이는 결국 썩어 문드러지게 되는 법이다, 이 말이야.”
그러자 장정의가 문득 물었다.
“이 세상에 강철을 씹어먹고 기름 솥에 들어가서 수련을 하는 사람도 있단 말입니까?”
“어허, 이것 봐. 네 녀석 또 이상한 곳부터 짚고 있잖아.
너 지금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거야. 그러다 보니까 몽 사숙님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지경까지 오게 된 거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촉룡 대인께선 네가 명황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텐데. 앞으로 그분을 무슨 낯으로 보려고 그러는 거냐?”
“사형,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장정의는 이제야 중점을 파악했는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진양은 손을 뻗어 장정의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의야, 내가 널 위해 준비한 역경의 길은 사숙님의 시선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곳이란다.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수련을 하기 위해선 나의 체면조차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니?”
“그게 어딥니까?”
“다른 세계지.”
진양은 신목을 가리켰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곳 호량은 상고 시대에는 신산이 있었던 곳이자 여러 세계로 사통팔달 이어진 땅이었지. 하지만 오늘날의 호량은 수많은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지금 호량과 확실하게 이어진 곳은 상고 지부의 땅과 태호 천제가 있는 세계 두 곳뿐이다. 이 두 곳이야말로 네가 수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 아니겠니?
하지만 태호 세계는 태호 천제가 있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니 일단은 제외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대신 상고 지부로 가는 게 적합하다 이 말씀이야.
물론 걱정할 필요 없어. 풍도대제는 없을 테니까. 부군도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어있는 상태라 직접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일부에 불과할 거야.
일단 상고 지부 땅에 도착하고 나면…….”
“잠시만요. 전 그냥 태호 세계로…….”
여기까지 말한 장정의는 씨익 웃으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사형, 사실은 절 태호 세계로 보내고 싶으신 거군요. 제 말이 맞죠?”
진양은 녀석을 흘겨보며 생각했다.
‘빌어먹을 자식. 못 보던 사이에 눈치가 꽤 빨라졌군.’
진양은 재빠르게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아는구나. 이왕이면 천궁까지 숨어 들어가 한바탕 뒤엎어줬으면 해. 듣자 하니 태호 세계에는 선초까지 있다고 하던데. 만약 그걸 손에 넣는다면 절대로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쿨럭……. 아닙니다. 전 사형께서 말씀하신 대로 상고 지부 땅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이름 그대로 역경의 길이긴 하겠지만 적어도 사부님께 끌려다니는 것보단 낫겠죠. 게다가 매번 가는 곳마다 사형과 구면인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곳을 함부로 털고 다닐 순 없잖아요.”
“그래, 그럼 다녀오렴. 마침 거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신나게 털도록 해. 하지만 부군의 일부를 만난다면 그냥 자살하는 게 나을 거야. 녀석은 상당히 음흉한 녀석이거든. 나도 녀석의 손에 몇 번이나 당했는지 모를 정도지. 아, 아니다. 이 부분은 잘라내는 게 낫겠다.”
진양은 장정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부군에 대해 얘기를 한 부분의 기억을 잘라내 버렸다.
그리고 하는 김에 주변의 기억들도 함께 정리했다.
“사형, 방금 뭐라고 하셨죠?”
장정의는 멍한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물론 방금 어떤 기억이 잘려 나갔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상고 지부에 대한 얘기인데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 무시해.”
“하지만 중요한 게 아니면 왜 말을…….”
“됐고! 시간 없으니까 얼른 떠나도록 해.”
진양은 신목 아래로 장정의를 끌고 왔다.
이어서 손바닥을 펼치니 작은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났다.
손끝으로 가볍게 산봉우리를 건드리자 이제 막 회복된 작은 도문 하나가 빠져나오며 장정의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것만 있으면 다른 세계로 넘어가도 천겁이 내리진 않을 거야. 가서 수련 열심히 하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돌아오도록 하고.”
자꾸만 다급하게 자신을 보내려는 진양의 모습에 장정의는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진양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진양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때문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의 기억을 베어낼 리가 없다.
분명 그가 알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의 기억을 베어낸 게 분명했다.
지난번 태호 천제의 화신이 나타났을 때도 진양은 이토록 신중했었다.
그러나 그때 진양은 태호 천제의 기억을 베어내기만 했지 같은 편인 사람들의 기억은 베어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신중하게 굴고 있었다.
한참 갈등에 빠져있던 장정의는 진양이 그를 발로 차서 다리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순간 돌연 생각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