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50
1350화 난파선
진양이 손을 뻗자 세 척이나 되는 거대한 책 세 권이 가까이 날아왔다.
이어서 해안에 넣어두었던 분신을 꺼내 동시에 세 권의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내용을 모두 살펴보기까진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분신을 해산시키고 나니 모든 정보가 진양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눈을 감으니 수많은 정보가 떠올랐다.
대황에 관한 정보도 있었고, 태호 세계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대황에 대한 정보는 오랜 세월 속에 잊힌 고대 유적에 대한 내용이나 어느 정상급 강자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강자는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기연이나 마찬가지다.
그 자체만으로 공법, 보물, 그리고 재화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상급 강자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라면 과거 대형 문파가 남겨둔 동굴보다도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진양은 정보를 열심히 뒤지며 과거 봉호도군에 올랐던 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장해도군에 대한 일부 정보가 전부였다.
과거 이름을 날렸던 남해도군이나 청련검선 등의 고수에 대한 정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뜻밖의 정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유령호와 유령 비경에 대한 정보였다.
유령 비경은 지금까지 유령 경매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유령 비경은 대황에서 분리된 곳으로 마치 혜성처럼 일정 주기마다 대황과 가까워지는 비경이다.
이때 대황에 있던 사람들은 비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경매 참가자들에게 보내지는 초청장은 비경 입구의 일부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때문에, 초청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황 어디에 있든 곧바로 비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비경은 대황 전체를 통틀어 유령 비경이 유일하다.
비경이 열리는 날 사방에 있던 강자들이 이곳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방에 있던 보물도 한곳으로 모이게 된다.
이것이 유령 경매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전임 유령 선장은 일반적인 수도사가 가진 사상의 족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진양은 절세 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전보책으로 다른 물건을 사들이는 걸 전혀 아깝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수도사들은 그렇지 않다.
새로운 문파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가치를 가진 보물을 어떻게 쉽게 팔아넘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십이가 보내온 소식을 보니 유령 비경은 단순한 비경이 아니었다.
이것은 한 척의 배의 잔해이자 신산(神山)의 잔해였다.
상고 세계가 무너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해안마석이 떨어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산의 잔해가 해안마석의 영향을 받아 대황 부근에 떨어지게 되었다.
유령 비경은 대황과 해안마석의 영향을 받아 점점 더 안정을 찾게 되었고, 결국 일 년에 며칠 동안은 대황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유령호는 바로 이 유령 비경을 기반 삼아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풍림호와 해응호는 유령호를 기반 삼아 제작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세 척의 배는 과거 오지도를 봉인하고 있던 열쇠이자 오지도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의 역할을 했었다.
십이가 굳이 이런 정보를 함께 보내온 것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지금의 유령 비경을 만든 신산의 잔해가 처음에는 호량도에 떨어졌었기 때문이다.
신산의 잔해는 한때 ‘난파선’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호량의 등대였다고 한다.
상고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량은 가장 먼저 습격을 받게 되었다.
모든 요충지와 이어진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파선는 기운을 잃고 부서졌으며 호량 역시 부서지고 말았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상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만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대황이라는 대세계 자체가 함께 소멸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십이의 기록에 따르면, 난파선를 찾게 된다면 호량이 다시 과거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 가운데 난파선도 과거의 기운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사통팔달으로 뻗은 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 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천겁을 당하지 않고도 마음껏 대세계를 오갈 수 있게 된다.
당장은 제대로 된 정보인지 검증할 시간은 없었기에 따로 적어둔 뒤 계속해서 다른 정보로 눈을 돌렸다.
진양이 요청했던 태호 세계와 관련된 정보는 꽤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이 현재의 상황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예전의 얘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수도사의 세계는 겨우 천 년 정도로는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은 아니니까.
진양은 문득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난 천여 년 동안 곳곳에 진양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이런 흔적을 남긴 건 진양이 유일했다.
보통 도군 경지에 오른 다른 수도사들의 경우 한번 폐관에 들어가면 최소 수백 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촉룡과 같은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존재들은 보통 한번 잠에 빠지면 수만 년은 기본이다.
때문에, 겨우 천 년 정도 가지고는 딱히 엄청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 손에 넣은 정보는 상당히 가치 있는 정보라고 볼 수 있다.
태호 세계는 대황과 비슷했다.
지상에는 여러 문파와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하늘에는 태호의 천궁이 세워져 있었다.
태호는 평소 천궁에 머물며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신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천궁을 빠져나오는 게 목격되긴 했지만, 이 역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곳에서 각 세력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천궁의 길을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들이 쥐고 있는 모든 권력은 유일무이한 것들이다.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돌아갈 확률은 거의 무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신도(神道)와 선도(仙道)가 복잡하게 뒤섞여있긴 했지만, 전자가 후자를 압도적으로 능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대황과는 다르게 신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신조보다는 한층 더 아래 있는 작은 국가의 형태가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평범한 문파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이 이상은 딱히 볼 만한 내용이 없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태호 세계의 세력 구도와 천궁에 어떤 신이 있는지 등의 정보를 살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유령 비경이 열리는 날이 찾아왔다.
진양은 홀로 조용히 유령 비경 안으로 들어갔다.
진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유령 경매는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물건의 질은 진양이 살아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대황 전체를 뒤진다고 해도 진양과 같은 별종은 찾아보기 힘드니까.
유령 비경 내부는 매우 고요했다.
겉보기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진양은 손을 뻗어 지면에 가져다 댔다.
체내에 있던 힘이 물처럼 흘러나오며 유령 비경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비경 전체가 진양의 힘에 의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비경의 힘만으로는 도군의 힘을 감당해내기 힘든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힘을 흘려보냈다.
거대한 산과 대지가 진양의 힘에 의해 부서져갔다.
마치 비경 전체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붕괴되는 듯했다.
무너진 곳은 그곳에 있던 모든 것과 함께 끝없는 허공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쯤 되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자라도 십중팔구 사라져버리게 된다.
돌아갈 수 있는 확률도 거의 무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주저앉는 모습을 보며 진양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십이, 이번만큼은 믿어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것은 곧 생각이 되어 밖으로 날아올랐고 허공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진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 *
유령 비경은 대부분의 땅이 사라질 정도로 붕괴가 진행되었다.
하늘도 부서지며 어느덧 새까만 허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양의 힘은 남아있는 모든 부분을 감쌌다.
이어서 진양의 오른손에 습득 징표가 나타났다.
진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극심하게 뒤흔들리던 유령 비경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사방을 뒤덮고 있는 흙과 돌이 모두 떨어져 나가며 십여 리 정도 뻗어있는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표면에 금속과 같은 광택이 흐르고 있는 회색 석산이었다.
산 표면은 울퉁불퉁했다.
희미하게 과거에 남겨진 전투의 흔적과 기운이 사라지고 난 뒤 남은 도문의 흔적들이 보였다.
진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큼은 순전히 상대의 인품을 믿고 벌인 큰 도박이었다.
만약 십이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진양은 무너지는 유령 비경과 함께 끝없는 허공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 진양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중요한 건 소중한 비경을 잃는 건 큰 손해라는 점이었다.
* * *
다시 호량으로 돌아온 진양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만 한 산봉우리가 허공에 나타나며 손에 잡혔다.
이제 난파선은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것이 기운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어서 진양은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이것을 통구주에 놔둔다면 하나의 드러나지 않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통구주 자체가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한참의 고민 끝에 대담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대황에 있는 호량도에서 진정으로 호량에 속한 부분은 오직 통구주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통구주를 아예 통째로 옮겨버린다면 대황은 안전해질지도 모른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 * *
한참 동안 같은 자세로 글을 쓰던 소녀는 마침내 지친 듯 붓을 내려놓았다.
그때, 꽃잎이 하나 날아들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손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십이, 이번만큼은 당신을 믿어보도록 하죠.
난파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가보도록 하죠. 참고로 이건 제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라지게 된다면 엄청난 손해라는 뜻이죠.
당신이 제게 준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이길 바라는 게 좋을 겁니다. 만약 가짜라면……. 그땐 정말로 태호 세계까지 찾아갈 겁니다.
당신을 죽인다면 오히려 당신의 소원을 이뤄주는 꼴일 테니, 당신에게 걸린 봉인을 온 힘을 동원하여 강화시킬 겁니다. 다시는 제게 쓸데없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말이죠.’
편지 내용을 확인한 십이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갈수록 진양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다소 거친 말을 뱉어대긴 했지만 어쨌든 난파선은 찾은 듯했다.
이것만 있으면 진양은 아무 문제 없이 태호 세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