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85
1385화 돌아가기엔 많은 공을 들임
빈집털이가 무섭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계 밖에 있는 두 명의 대신관을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이런 상황에서 대신관들은 결국 차악을 선택하기로 했다.
겉보기엔 상당히 비이성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면 겉으로는 서로 단합을 이를 수가 있게 된다.
천궁에 남아있는 다른 신들이야 죽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아마 이번 일로 상고 지부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여자 수도사와 그녀의 두 수하도 골로 가버릴지도 모른다.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대신관에게 공격당하고도 멀쩡하길 바라는 건 사치나 마찬가지다.
진양은 몸을 숨긴 채 천궁 두 번째 층 곳곳을 누볐다.
영감을 죽이면 천궁으로 숨어드는 일이 훨씬 쉬워질 거라고 예상했었다.
더 이상 발각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진양은 곧바로 십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 * *
십이는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여러 기록들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때, 한 장의 꽃잎이 책상으로 날아들며 편지로 변했다.
십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와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 눈치 보면서 천궁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됩니다. 영감이 죽었거든요.
게다가 천궁에 있던 대신관들도 전부 밖으로 나가버렸답니다.
태호는 어디 갔는지는 몰라도 자리를 비운 건 확실하고요. 즉, 천궁은 이제 제 손바닥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어쨌든 지금 바로 구하러 갈 테니까 어디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앞으로는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십이는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진양에게 답장을 보냈다.
‘저는 지금 구름 최상층에 있어요. 하지만 조심하셔야 돼요.’
* * *
편지를 받은 진양은 곧바로 최상층으로 향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진양이 있는 이곳 두 번째 층은 십 대 대신관들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다만, 주변을 전부 살펴봤지만 다른 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태호는 하급 신들은 전부 소모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들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하급 신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은 이미 태호의 수단에 넘어가 완전한 소모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당히 지독한 놈인 건 확실하군.’
이제 여기서 한 층만 더 올라가면 태호의 처소가 나온다.
잠시 뒤.
진양은 빛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찾아냈다.
높은 곳에서 쏟아진 햇빛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높은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양은 곧바로 계단을 따라 태양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올라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운무가 피어올랐다.
운무에 햇빛이 비치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진양은 이곳을 지나 한 층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거대한 태양이 걸려있었다.
계단을 이루는 강렬한 햇빛은 바로 이곳에 있는 태양에서부터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단지 한 번 쳐다봤을 뿐인데도 무력감과 초라함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태양에서 쏟아져나오는 강렬한 빛은 눈을 자극하며 통증을 자아냈다.
진양은 가지고 있는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여 눈을 보호해 줄 묵경(墨鏡, 색안경)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왜 아무것도 없는 거야?’
* * *
‘세 번째 층에 도착했어요. 근데 눈부신 태양 말곤 전부 구름밖에 없는데요. 당신이 말한 구름 저택은 어디에도 없다고요.’
편지를 받은 십이는 황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고사하고 진양이 말한 눈부신 태양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자료를 살폈다.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그녀가 있는 이곳은 구름의 최상층부가 확실하다.
이건 이미 수도 없이 확인한 사실이다.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그렇게 한참 자료를 뒤적이고 있을 때.
진양의 편지가 또 하나 날아들었다.
‘서둘러요. 곧 있으면 대신관들이 돌아올 겁니다. 놈들에게 발각되면 전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이쯤 되니 십이도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진양에게 답장을 보냈다.
* * *
‘제가 있는 이곳은 구름층의 최상층이 확실해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한 층 더 올라가야 할 거예요.’
답장을 확인한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런 거라면 진작 얘기 좀 해 주지.’
진양은 곧바로 거대한 태양의 꼭대기를 향해 날아올랐다.
매우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지만 태양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기 때문에 마치 매우 느리게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십이는 누굴까?
십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는 마치 권력처럼 고정적이고, 확정적이며, 절대불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건 진양에게도 마찬가지고, 십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사이에 거짓말이나 기만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다.
진양은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는 게 상당히 편했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해도 되는지, 무슨 말을 해선 안 되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전달된 편지에는 전부 진실만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관계는 진양에게 매우 편안한 느낌을 줬다.
다른 곳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편안함이었다.
예를 들어, 가희에게 대놓고 얼굴이 크다거나 발에서 냄새가 난다는 등의 얘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얘기를 했다간 골로 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이는 다르다.
거침없이 무슨 말을 뱉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구름층 최상층에 있다는 그녀의 말은 분명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천궁 가장 높은 곳에 머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오직 태호 천제 한 사람뿐이다.
십이는 수상할 정도로 많은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진양은 그녀가 태호의 잘려 나간 일부가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심지어 이런 가설까지 생각했었다.
상고 시대의 태호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은 여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그의 권력이 다시 모여들었을 때 그는 인간 여자가 되어있었다.
기억을 회복한 그녀는 다시 태호 권력을 붙잡았다.
그러나 인간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녀가 가진 육신, 영혼, 이성, 감정 등 모든 것들은 더 이상 그녀와 떼려고 해도 뗄 수가 없는 ‘요소’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태호는 이 요소들을 잘라냈다.
하지만 이것을 소멸시킬 순 없었다.
소멸시키는 순간 스스로에게 큰 결점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양은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심주에 걸렸을 때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선과 악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설령 악한 부분이라고 해도 결국은 그 인간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다.
이것을 잃게 된다면 더 이상은 온전한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즉, 결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결점은 추후 더 높은 곳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태호는 자신의 ‘소녀 부분’인 십이를 천궁 어딘가에 가둬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떠올린 가설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어째서 십이는 태호의 처소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걸까?
어째서 태호는 그것을 용인해 준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바로 태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호가 가장 가진 나약한 부분이자 반드시 보호해야 할 치명적인 약점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답은 이것이 유일했다.
진양은 곧바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 * *
십이는 곧바로 진양의 답장을 펼쳐보았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른 글씨로 적혀있었고 크기도 일정했다.
반듯하게 적힌 글씨에선 진지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최상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에요. 아마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구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어떻게든 구해주긴 할 겁니다만, 대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태호의 처소가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곳입니다. 태호 세계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태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네요. 태호의 잘려 나온 일부인 거죠.
하지만 당신이 제 적이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십이일 뿐이죠.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당신은 태호의 잘려 나온 일부가 맞습니까? 만약 아니라면, 스스로도 그 사실을 확실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진지한 얼굴로 편지를 읽은 십이는 곧바로 붓을 들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답장을 적었다.
* * *
잠시 뒤.
진양의 얼굴로 편지가 날아들었다.
‘전 인간이 맞습니다. 하지만 태호가 왜 저를 이곳에 가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그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차라리 절 죽이면 더 편할 텐데, 어째서 가둬두기만 하는 건지 의문을 가졌던 때가 있었죠. 소협의 말을 듣고 나니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는 느낌이네요.
저는 제가 이토록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몰랐었습니다. 저택에 있는 수많은 기록들과 문자들을 어째서 전부 알아볼 수 있는 건지도요. 심지어 분명 저는 처음 보는 공법이라고 생각했던 공법들조차도 그것이 어떤 공법이고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답니다.
아니면, 일단은 구하러 오지 않는 게 어떨까요? 이 부분을 확실하게 알아보고 난 다음 다시 생각해 보는 거예요.
어차피 전 이곳에 오랜 시간을 갇혀있었습니다. 조금 더 늦게 구조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고요.’
답장을 확인한 진양의 표정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사실 지금 와서 되돌아간다고 해도 많이 늦은 건 아니다.
지금 당장 십이에 관한 모든 기억을 베어버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여겨버리면 그만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어쩌면 이게 지금으로선 가장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양은 금세 이런 생각을 날려버렸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순 없다.
적어도 확인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설령 십이가 태호의 잘려 나온 일부라고 해도, 지금의 그녀는 그저 십이일 뿐이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되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진양은 마른침을 삼키며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층 더 속도를 높여 최상층부를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