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13
1413화 마음에 든다면 그렇게 하세요
참동지법이 시전되는 순간 앞쪽의 세계에서 네 개의 계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겨울은 진양의 일 검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어버렸다.
그러자 영감궁이 있던 자리 위로 거대한 얼음 관이 나타났다.
얼음 관은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있었다.
한편,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한동관에 갇혀있던 영감이 갑자기 일어난 변화를 놓칠 리는 없다.
그는 가장 먼저 변화에 반응하며 관뚜껑을 열었다.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관이 열렸다.
그러자 영감궁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얼음 관이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태호의 육신이 극심하게 뒤흔들렸다.
마치 어떤 족쇄가 그의 육신과 이성, 그리고 권력에 채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천지의 힘에 의해 강제로 속박되었다.
공들여 쌓은 탑이 모두 완성되기도 전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이다.
태호는 다시 족쇄에 묶인 원래의 태호 천제가 되어버렸다.
진양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망자의 세계에 가고 싶다고 했었죠?”
진양은 천천히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무자비하게 그를 난도질했다.
권력이 회복되며 힘이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회복할 틈조차 없었다.
이제 막 다시 되살아난 생기를 꺼뜨려 버린 진양은 천천히 손을 뻗어 태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능력을 발동시켰다.
“자, 그렇다면 네놈이 바라는 대로 망자의 세계로 보내주도록 하마!”
태호는 최후의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태호의 신분을 고려해 본다면 그는 성불되자마자 망자의 세계로 가게 될 것이다.
태양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진리인 망자의 세계로.
태호의 육신은 먼지가 되어 진양의 손끝에서 사라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진양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분노의 불길도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태호가 사라지고 진양의 손에는 두 개의 광구가 남았다.
이 중 하나는 기이한 기운을 품고 있는 복숭아꽃이 들어있는 광구였다.
진양은 그것을 깨뜨리며 감각에 집중했다.
광구 안에 들어있던 방대한 양의 정보가 하나로 합쳐지며 완벽한 삼신술이 되었다.
삼천제(三天帝)라는 이름을 가진 공법이었다.
두 번째 광구를 깨뜨리자 이번에는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천겁을 보내는 방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책이었다.
처음에는 기능서라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가지 세세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태호의 ‘천겁 극복 계획서’였다.
십이에게 얻은 방대한 양의 정보와 자신이 가진 정보를 기반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크게 무리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태호는 여러 가지 대비책을 준비했다.
그는 자신이 산 자의 세계에서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람 재앙 뒤에 찾아올 물 재앙에 의해 자신이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간단한 대비책은 ‘살육’이다.
바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전부 죽이는 것.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인간의 경우, 완전히 멸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아예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수를 줄여놓는 것.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며 모든 생명체의 개체 수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계획이었다.
상당히 단순해 보이는 계획이었다.
시간도 충분하므로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두 번째 계획은 망자의 세계가 나타나고 나서야 확정이 된 계획.
바로 망자의 세계로 피난을 가는 것이다.
망자의 세계에 침투하는 것은 태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망자의 세계에선 태양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호의 권력은 태양이다.
때문에 망자의 세계로 건너가는 건 불가능했다.
산 자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 모두 그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때문에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세 번째 계획이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대신관의 권력이 누군가에 의해 박탈되었다.
그것도 한 번에 두 개나.
천제라는 족쇄를 풀기 위해 길러오던 선초가 돌연 성장의 희망을 바랄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던 도중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대신관의 권력을 박탈할 능력을 가진 자가 놀랍게도 십이와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굳이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어졌다.
완벽한 계획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
열 명의 나약한 대신관들이 전부 그자에게 죽고 권력이 박탈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대신관의 권력을 모두 박탈한 진양이 십이를 구하기 위해 상층부에 도착하는 순간.
그는 기다리던 승리의 과실을 취하면 된다.
십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잠재력,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
이것을 터뜨려 선초를 완전히 성장시킨다.
그러면 태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된다.
순조롭게 천제라는 자리로부터 만들어진 족쇄를 제거하고, 천제의 힘과 권력을 모두 쥐었지만 천제는 아닌 절세 강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원한까지도 전부 끌어들일 수 있다.
죽게 된다면 조용히 망자의 세계로 건너가면 된다.
해탈의 상태로 훨씬 더 크고 강한 세계에서 천천히 정상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만약 상대가 너무 약해서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이후의 길은 다시 선택하면 된다.
계획들은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분노와 증오가 극에 달한 인간은 죽음을 한층 더 뛰어넘는 결정도 기꺼이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물론 진양은 늘 깔끔하게 처리하는 걸 좋아했기에 웬만해선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없었다.
죽음 대신 죽는 것만 못한 상태로 만들어둔다고 해도 어쨌든 살아있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혹여나 그가 갑자기 돌연변이가 되어 자신의 뒤를 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적을 죽인다고 해도 기껏해야 망자의 세계로 보내는 게 전부다.
괜히 나중에 망자의 세계에 갔을 때 처리해야 할 일만 하나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인 것이다.
한 번에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되도록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게 좋다.
어쨌든 상황은 이미 모두 종료되었다.
더 이상 계획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었기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태호를 성불시켰지만 아쉽게도 그의 권력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권력이라는 족쇄에 잡혀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 태호를 떠올리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진양은 자신의 백옥 신문 앞에 섰다.
그리고 손바닥에 들린 복숭아꽃을 복숭아나무를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꽃잎이 은은한 분홍빛을 뿜어내며 나무 안으로 녹아들었다.
“이거, 당신 거죠? 다시 돌려드릴게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지에 꽃이 활짝 피며 향긋한 냄새와 신선한 선초의 기운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것들을 느끼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도하게 사자결을 사용하며 쌓인 부작용들은 이 순간 눈 녹듯 전부 사라졌다.
지쳐 늘어져 있던 진곤도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형상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던 부군 역시 기운이 닿는 순간 다시 형상이 복구되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상처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진곤이 갈라놓은 세계의 장벽도 다시 회복되었다.
하늘에 남아있던 흉터 같은 흔적도 점차 소멸되었다.
“소협, 전 어떤 존재인가요?’
십이의 목소리가 진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다시 냉정을 되찾고 나니 마음속엔 의아함과 망연함이 가득했던 것이다.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나뭇가지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당신은 저보다 아는 게 많은 분이시잖아요. 그러니 굳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인간은 혈맥이나 외모 등의 기준으로 인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인간이라면 인간인 것이죠.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인간 할래요. 인간 십이요.”
십이가 황급히 대답했다.
그 모습에 진양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십이를 위로해 주고 난 진양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십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녀는 완전히 성장한 선초다.
만약 여기 그대로 둔다면 그녀를 노리는 수많은 자들로부터 엄청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죽음조차도 인간의 욕심은 막을 수 없다.
어느새 회복된 부군과 진곤이 다가와 진양의 백옥 신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백옥 신문에 붙어있는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아직 신문을 열지 못한 모양이군.”
진곤은 마치 불구경이라도 하듯 진양을 비웃었다.
“여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아예 열지 못한 건 아닙니다. 다만 이제 겨우 한 번밖에 열지 못하긴 했지만요.”
“…….”
진곤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이어서 그는 깡마른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영감이 멍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처리할 셈인가? 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네.”
“그건 잠시 뒤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죠. 일단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진양이 십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십이, 다른 곳으로 바꿔줘도 괜찮을까요?”
진양은 흑옥 신문을 꺼냈다.
흑옥 신문이 열리며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중심에선 죽음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십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진양은 흑옥 신문을 닫아버렸다.
“아니면 일단은 조금 불편해도 백옥 신문에서 지내고 있어도 됩니다. 대신 다시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소모해버리는 짓은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소협, 전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안에서 지내도 될까요?”
“뭐, 마음에 든다면 그렇게 하세요.”
진양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복숭아나무는 천천히 백옥 신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뒤, 신문의 정면에는 복숭아나무 모양의 조각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진양은 혀를 끌끌 찼다.
‘나도 열지 못한 백옥 신문에 저렇게 쉽게 녹아들다니.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나 보군.’
백옥 신문은 온갖 현묘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십이라면 상당히 좋아할 만한 환경일 것이다.
이어서 진양은 멍하게 서 있는 영감에게 다가갔다.
영감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절대 죽지 않을 것 같던 존재인 천제가 그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심지어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던 태양도 지금 이 순간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