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14
1414화 도리를 다했다
영감에게 다가간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건 대신관께서 전심을 다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대신관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태호 녀석은 여전히 구름 위에서 존귀한 생명들을 한낱 개미 새끼 정도로 여기고 있었겠죠.
대신관을 만나게 된 건 저 진유덕 일생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관께서 앞으로 저를 적대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간의 은원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멍한 얼굴로 서 있던 영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 번째 층의 태양은 더 이상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공기처럼 느껴졌던 태호의 영광도 더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넋이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천제께서……. 어째서 사라지셨단 말이오?”
“뭐, 이젠 말씀드려도 상관은 없겠죠.”
진양은 십이의 일을 제외한 나머지의 일들을 간략하게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영감이 최후의 일격을 날리며 일을 마무리 한 부분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진곤으로부터 대검을 받았다고 해도 진양의 실력으론 기껏해야 이곳의 겨울을 베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한동관을 여는 건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영감이 절묘한 순간에 맞춰 관을 열어둔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영감이 다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며 천제에게 다시 족쇄가 씌워진 것이다.
진양은 간략하게 지금까지 있던 일을 요약해 주면서도 태호의 계획이 대신관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던 것이라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양의 말을 듣는 영감은 점점 더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무사히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전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좌절감과 망연함이 몰려왔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콰광-!
돌연 영감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피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폭발로 인해 흩어졌던 그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머리카락 한 올 상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말이다.
도저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이 모두 무너졌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 날뛰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죽는 건 고사하고 피부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영감은 멍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는 천천히 영감궁을 향해 걸어가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천제를 죽였다…….”
“내가 천제를 죽였다…….”
태호는 사라졌다.
아홉 명이나 되는 대신관도 사라졌다.
더 이상 영감이 존재하는 의미는 없었다.
영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동관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눈에선 더 이상 일말의 생기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활짝 열린 관에 그의 이름이 적힌 저주 위패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영감은 저주 위패를 들어 올리면서도 계속해서 같은 한마디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저주 위패를 품에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 영감 권력이 천제께 족쇄를 채운 거야. 그러니 영감 권력이 사라진다면 천제께서도 다시 강림하시겠지…….”
“이만 포기하세요. 태호는 이미 망자의 세계로 갔습니다. 권력으로 인한 족쇄가 사라진다고 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양의 말에 영감은 고개를 훽 돌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은 진양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닥쳐! 그럴 리 없어!”
그리곤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에 들린 저주 위패를 바라보며 또다시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주 위패는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영감의 모습도 완전히 소멸되어버렸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빛 덩어리 하나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군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주 위패로군. 이런 물건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겁대가리 없이 이런 물건을 쓰다니. 정말 미쳤군.”
“이게 뭔지 아십니까?”
“물론이오. 예전에 본존이 본 적이 있소.
예전에 본존이 인간에게는 고심주를 쓰지 말라고 말했던 적이 있소. 하지만 그 얘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간덩이가 부은 자가 저주 위패를 뒷배 삼아 날뛰고 다니기 시작했소. 그리고 이 일은 본존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소.
결국 본존은 그자의 저주 위패를 찾아냈고 그것은 완전히 파괴시켰소. 때문에 그가 누구를 죽였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을 마친 부군이 영감이 남긴 권력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대로 놔둘 거요?”
“아뇨. 당연히 챙겨야죠.”
“태호가 정말로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까 봐 걱정되지 않소?”
“어쩔 수 없죠. 정말 나타나면 제가 재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요.”
진양은 부군의 화신을 힐끔 흘겨보곤 영감 권력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절대로 봉신서는 밖으로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참 옹졸하군!’
“허허…….”
목을 쭉 빼고 지켜보고 있는 부군의 모습만 봐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때려 죽어도 봉신서를 꺼내선 안 된다.
아무리 부군이 대단하다고 해도 진양의 해안 안까지 꿰뚫어 볼 순 없을 것이다.
그때, 진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죽음의 기운은 거의 다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는 부군의 화신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부군 대인,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는 같은 편에게는 끝도 없이 잘해주지만, 한번 등을 돌린 적에게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웬만해선 척을 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랬다간 부활은커녕 아예 소멸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진양이라면 충분히 부군 대인의 화신을 전부 베어버리고도 남을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어서 진양에게 말했다.
“이만 시간이 되었으니 난 가봐야겠네. 꽤 오랫동안 망자의 세계에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잠깐만요!”
진양이 옥간을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왕 가시는 김에 이것 좀 전해주세요. 전하는 김에 괜찮은 사람들도 몇 소개해드릴게요. 망자의 세계엔 풍도대제 세력이 상당히 큰 힘을 쓰고 있거든요.”
진곤은 조용히 그가 건넨 옥간을 받아들었다.
옥간에는 수많은 전언이 적혀있었다.
그중 가장 마지막 내용이 눈에 띄었다.
망자의 세계에 도착하면 태호가 죽었다는 사실과 그가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꽤 자세하게 그려진 태호의 초상화도 함께 끼워져있었다.
진곤은 다소 복잡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진양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진곤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그가 과연 제대로 전언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동안 전하고 싶었던 말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렵게 스스로 망자의 세계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난 이상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진곤은 과거 수많은 사람을 베었던 고수다.
과거 그의 손에 죽었던 모든 사람들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들이다.
이런 그가 망자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면 과거 그의 손에 쓰러졌던 적들은 이미 그곳에 나타나 진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꽤 시간이 지났으니 일부 망자들 중에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제 막 망자의 세계로 넘어간 진곤은 산 자의 세계의 범인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맞아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태다.
진곤이 그의 곁에 숨어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전부 진곤 덕분이다.
그는 모아두었던 모든 힘을 끌어모아 태호를 베었다.
그리고 힘이 바닥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망자의 세계로 가는 것뿐이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진양이 진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건 사실이니까.
심지어 확인 사살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별개로 두어야 할 것들은 별개로 둬야 하는 법.
때문에 망자의 세계에 보내는 전언에 진곤을 죽이지 말라는 내용도 함께 적어 보냈다.
그리고 망자의 세계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과거의 적을 보고 똥과 된장도 구분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순순히 고개를 숙일 진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진양은 이미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
이제 남은 건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일 일이다.
이번 전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태호에 대한 소문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진양은 태호가 정말로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까 봐 두려웠다.
물론 태호는 천제의 신분인 상태에서 진양에 의해 성불을 당했다.
그리고 망자의 세계는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가 지배하는 곳.
망자의 세계의 기반을 모두 갈아엎지 않는 이상 그가 나타날 확률은 거의 무에 가깝다.
하지만 를 연구해 보고 나니 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삼천제는 상당히 기괴하고 사악한 공법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얻은 것들 중 유일하게 삼(三)이나 신(身) 등으로 명명되지 않은 삼신술이다.
이를 위해 치른 대가를 다시 반복할 순 없다.
천제가 죽으며 권력은 인간의 혈맥으로 흘러들었다.
부활한 후에는 인간의 영성과 창조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베어버리며 하나의 방향을 짚었고 새로운 씨앗을 심었다.
진양은 처음 십이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비록 머리 모양이나 표정, 눈빛 등은 달랐지만, 이목구비는 확실히 황천에서 보았던 그 소녀의 모습과 똑같았다.
처음에는 태호가 죽은 삼신의 영성을 찾아 선초의 양분으로 삼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십이로부터 받은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 알았다.
사건의 전후 관계가 전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부활한 태호는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정보를 태호의 입장에서 대입해 보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오직 하나다.
세월이 의미가 없어지면서 최후의 결말이 마치 눈앞에 나타난 듯했다.
태호는 오랜 시간 동안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인간의 몸에서 부활하긴 했지만 진정한 인간 강자와 같을 순 없었다.
그래서 영성과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베어버리며 다시 천제가 되었다.
그가 심었던 방향의 영성은 처음에는 삼신도군이 아닌 소녀가 되었다.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른다.
태호가 심은 씨앗에서 싹이 트며 젊은 삼신도군은 초창기의 삼신술을 만들어낸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기에 누구든 익히는 자는 반드시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는 삼인신과 같은 최하급 삼신술부터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등급인 삼명신, 삼세신까지.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궁극의 삼신술인 삼천제를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