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15
1415화 체면을 차리시오
삼천제부터 삼신보술이 가진 모든 단점들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게 된다.
삼신술을 익힌 자는 예외 없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건 어쩌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사람이 태호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초를 쥐고 있는 태호는 삼신술에 예기치 못한 변화가 생길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만들어진 삼천제는 그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니까.
결과는 처음부터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에게 과정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삼신도군은 중요하지 않다.
선초도 중요하지 않다.
삼신도군이 일으킨 사건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신도군으로 인해 죽은 수도사들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이도 중요하지 않고, 진양도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잔혹함 때문이 아니다.
냉정함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천제라는 존재다.
대입을 하기만 했을 뿐인데도 진양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고심주에 걸렸을 때 나타났던 냉정한 진양이 떠올랐다.
다른 점이라면 냉정한 진양은 오직 진양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아군이라는 점.
진양은 자신을 태호에 대입시킨 뒤 냉정한 진양으로 바꿔보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이젠 모든 게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태호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삼신술을 익힌 사람은 반드시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규칙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십이의 정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을 희생하여 진양을 도우려고 하는 순간부터 그런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이는 스스로 인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진양도 그녀가 인간이라고 믿어주면 그만이다.
* * *
진양은 구름에 누워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부군이 다가와 진양의 곁에 앉았다.
그가 물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생각이오?”
“글쎄요. 상황이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가서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아마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태일과 싸우게 되지 않을까요?”
진양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태일과는 아무런 은원도 없으니 좋게 서로 대화로 풀어나가면 된다고 말한다면 아마 아무도 믿지 않겠죠.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간신히 숨이 붙어있던 태미는 진양의 동귀어진에 당해 죽었고, 진양은 그의 권력을 재료로 써버렸다.
성공을 코앞에 두고 있던 태호는 진양의 난입으로 모든 게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세 천제 중 둘이나 진양의 손에 험한 꼴을 당한 것이다.
세 천제가 아무리 서로 앙숙 관계라고 하지만, 태일이 이런 상황을 보고도 진양이 일부러 천제만 노리는 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물론 양심에 손을 얹고 얘기하자면 진양은 그저 ‘정당방위’를 한 것뿐이다.
기껏해야 개인 은원에 불과한 일이지, 결코 종족의 대의라는 것을 대변할 만한 일도 아니다.
진양은 비록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긴 하지만 사리 분별만큼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 버린 이상 그가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당장 마음만 먹는다면 천제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을 모아 대군으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천제에게 반감을 가진 자라면 심지어 상고의 거물급 인물들조차 기꺼이 진양의 휘하로 들어올 것이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진지한 얼굴로 부군을 바라보았다.
“사실 천제와 척을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어요? 만약 태일과 만나게 된다고 해도 평화롭게 대화로 풀고 싶을 뿐입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워봐야 남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태일과 척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부군은 다소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진양을 훑어보았다.
그리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게 믿으라는 것이오? 나조차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 누굴 속이겠다는 게요?”
“진짜라니깐요. 결코 천제를 노릴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닙니다. 전 일개 수도사에 불과해요.
태호의 실력이 바닥을 칠 정도로 약해졌다곤 하지만 전 여전히 엄청난 절망과 공포를 느꼈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희생해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심지어 망자의 세계로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까지도 했었다고요.”
“하하하! 하하하하…….”
부군은 아예 배를 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눈앞엔 절망이 가득했다.
만약 태미의 일이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면 진양에겐 영원히 벗을 수 없는 감투가 씌워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칭할 때마다 ‘천제 살수(殺手)’라는 수식어를 함께 붙일지도 모른다.
아직 태일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잔뜩 상대의 적개심부터 불태우게 된 꼴이었다.
“부군 대인, 혹시 지금 이 화신에 태일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까?”
“태일과 한가롭게 대화로 풀어나가겠다고? 놈이 죽고 나서야 대화를 나눌 셈이오?”
진양은 더 이상 해명하는 것도 귀찮아졌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상대는 믿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태일의 이름을 언급한다면 그가 눈치채게 될까요?”
“그럴 리 없소. 약한 기운은 아예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강한 기운도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느끼진 못할 것이오.”
“그럼 다행이군요.”
“그래도 태일은 세 천제 중에선 유일하게 태호의 계획에 반대했던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소. 다른 두 천제와도 의견이 가장 크게 나뉘었던 자니까.”
“반대했던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뇨?”
“쉽게 얘기하지만 태일은 단순히 이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렇다고 인간의 편에 선 건 아니라는 말이오.
만약 계획이 충분히 실행 가능하다는 점이 증명되었다면 그도 분명 태호를 지지했을 것이오. 애초에 천제라는 존재들은 인간의 생사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존재들이니까.”
진양은 계속해서 부군과 태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진양은 그저 태일이 어떤 자인지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부군은 진양이 그를 죽일 준비를 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한다고 생각했기에 알고 있는 건 전부 다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 구름 위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천궁 첫 번째 층엔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하급 신들은 영성과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명령이 하달되지 않으면 조용히 자신의 거처에 머물며 권력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대신관과 태호가 전부 묵사발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권력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태호는 그들을 단지 권력을 담는 그릇 정도로만 이용해 먹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태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하급 신들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까지도.
* * *
일전의 전투는 비단 천궁뿐만 아니라 온 태호 세계를 뒤흔들었다.
진곤의 일 검이 대세계를 베어 가르는 것은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목격했다.
황해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여자 수도사는 멀리 천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경계심이 가득 차올랐다.
“과연, 진곤이 왔구나!”
“대인, 이렇게 되면 저희는…….”
건장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는 뭐?”
여자 수도사가 날카롭게 대꾸하며 건장한 남자를 째려보았다.
“이제 와서 뒷북이라도 쳐보겠다는 게냐? 가서 뭐 하려고? 목이라도 바치겠다는 게냐?”
건장한 남자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부군의 화신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해서 진곤까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진정 부군의 화신이 그 미치광이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의 눈에 띄게 된다면 우린 전부 다 죽게 될 것이다. 부군의 화신조차도 그를 말리지 못할 것이야.
일단 호량도로 후퇴하고 기다리도록 한다. 만약 진곤이 찾아온다면 곧바로 이 세계를 빠져나가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할 것이다.”
여자 수도사는 미련 없이 후퇴를 결정했다.
더 이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공포심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태호의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태호는 단 한 순간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진곤의 일 검이 지나가고 난 뒤 태호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군의 심기는 건드려도 되지만 진곤의 심기는 결코 건드려선 안 된다.
여자 수도사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진곤이 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한창 불가계를 오염시키고 있던 흑신도 무리를 따라 조용히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가장 큰 소요가 일어난 것은 불가계 내의 세력들이었다.
강력한 일 검이 천궁을 관통하고 세계의 장벽을 갈랐다.
그리고 천제의 기운은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조차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천궁 첫 번째 층.
별별자가 일원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천궁에 속한 신인만큼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십 대 대신관, 그리고 천제까지 모두가 사라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복받쳐왔다.
그는 상층부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장 소협, 보고 계십니까?”
* * *
당연히 장 소협은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말이다.
대화를 마친 진양은 두 번째 층과 세 번째 층 곳곳을 돌아다니며 챙길 수 있는 보물이란 보물은 전부 다 쓸어 담았다.
보물이 어디 있는지 십이에게 들은 덕분에 큰 고생을 하지 않고도 보물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 건 주워다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오?”
“잘 모르시나 본데 전 상당히 속물적인 사람이거든요. 제가 쓸 수 없는 물건이라도 일단은 챙겨놓는 게 좋습니다. 나중에 돌아가서 친구들이나 부하들에게 나눠줘도 되니까요.”
한창 부서진 영감궁 곳곳을 살피고 다니던 진양은 돌연 무언가 생각난 듯 부군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보물 같은 걸 숨겨둔 적은 없나요? 전적 같은 거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이래 봬도 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건 없소.”
“그럼 일전에 그 상고 지부 조각에 동굴 같은 건 남겨두지 않았나요?”
“그렇소.”
“다른 사람의 동굴은요?”
“……진양, 체면을 차리시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얼마나 체면을 차리는 사람인지 아십니까? 적어도 함부로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요. 게다가 웬만한 물건에는 관심조차 갖지도 않고요.”
부군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진양을 쳐다보았다.
다만 진양의 말에선 일말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