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어리석군요
‘우수는 지금까지 나의 약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인질을 교환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많은 사람들은 우수를 나의 약점으로 생각하고 그를 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양범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우수는 이미 연로했어. 이렇게 앞으로 나의 약점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상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다.
만약 진양이 우수를 죽이지 못한다면 놈은 날 속이고 있는 것이고, 반 시진 후에 정말로 우수가 죽게 된다면 결국 나의 또 다른 추측이 맞다는 뜻이 되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양범은 곧장 마당으로 향했다.
양범은 마당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이 가득 잔을 든 양범은 가볍게 앞쪽으로 몸을 숙였다.
“우수, 잘 가시오.”
양범은 깨끗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제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 * *
같은 시각. 무량도원 바깥.
몽의가 소리와 흔적, 기척 등을 숨기는 금제를 층층이 설치하고 있었다.
수많은 금제들이 층층이 겹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금제는 수십 층으로 겹쳐진 지척천애 금제였다.
지척천애 금제는 나무 아래로 손톱만 한 공간을 무려 백 장이나 늘려놓았다.
이렇게 되면 무량도원의 발아래 숨어 있어도 사람을 풀어 구석구석 뒤지거나 무량 노조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결코 이들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금제 속에서 몽의는 우수를 풀어주었다.
“사숙님, 다시 찾아봐 주세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이러다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갈 거라고요. 전 일단 우수와 얘기를 좀 해 보도록 할게요.”
진양의 말에 몽의가 무언가 대답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괜히 일을 망친 것이 생각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진양의 말을 따르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습을 감추었다.
“방금 양범과 대화를 나누고 오는 길입니다. 앞으로 반 시진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반 시진 후에도 제 사제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제 죽게 될 겁니다.”
진양은 탁자와 술병, 술잔을 꺼냈다. 그다음 우수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받으시죠. 이건 우연하게 얻게 된 취생몽사주(醉生夢死酒)입니다. 훌륭한 맛을 가진 미주(美酒)지만 취하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술이죠.”
“하하!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소.”
술잔을 받아든 우수는 잔에 든 내용물을 단숨에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그리곤 눈을 감으며 음미하기 시작했다.
“과연 좋은 술이오. 목 넘김도 아주 좋고 느껴지는 맛도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느낌이군. 매우 특수한 환경에서 족히 수천 년은 묵혀둔 술이 분명하오”
“그렇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좋은 취생몽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보다 좋은 술은 적어도 수만 년 내에는 나오기 힘들 겁니다.”
어느새 세 잔이나 받아먹은 우수의 얼굴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소주님께선 인질 교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실 게요. 그분께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만큼 그분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당신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아쉽지만 전 그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단지 주도권을 먼저 상대에게 넘겨준 것뿐입니다. 그는 결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반 시진 뒤에 제가 당신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 지켜볼 생각일 테니까요. 만약 반 시진 뒤에도 제가 당신을 죽이지 못한다면 주도권은 완전히 그의 손안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 뚱보가 죽든 말든 상관없단 말이오?”
우수는 다소 의외라는 듯 놀란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제 손으로 직접 죽일 겁니다. 녀석의 사부께서 옆에서 보고 계신다고 하더라도 결코 절 말릴 순 없을 겁니다.”
진양이 피식 웃으며 가벼운 농담을 하듯 말했다.
그러나 우수는 그의 말에 느껴지는 진심에 매우 놀랐다.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오?”
“당신은 깊은 충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직접 손을 쓰진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 취생몽사주를 꺼낸 것이고요. 사양하지 말고 받으시죠. 모두 마시고 나면 아무런 느낌도, 고통도 없이 조용히 갈 수 있을 겁니다.”
진양은 우수의 잔에 술을 가득 따라준 후 안주로 먹을 먹거리들을 꺼내놓았다.
“딱히 좋은 안줏거리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편히 드시지요.”
우수는 진양이 자신을 정말로 죽이려 한다는 것에 대해 완전한 확신하게 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젊은이군.”
우수는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의 앞에 놓인 술을 쭉 들이켰다.
우수는 어느새 취기가 오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이 되었다.
얼큰하게 취한 우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소. 나의 시신을 온전하게 남겨 소주님께 보내주실 수 있겠소?”
“그렇게 하죠.”
“고맙소.”
우수는 미소를 띤 채 스스로 술잔을 채워 계속해서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죽음의 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달아 열 잔 넘게 술잔을 비운 우수는 마침내 잔을 내려놓으며 큰소리로 세 번 웃었다.
“주인님, 이 늙은이가 충성을 다하지 못한 점 용서하시옵소서.”
이 말을 마지막으로 우수는 쓰러졌다.
그리고 코를 골며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진양이 손을 뻗자 능력이 발동되었다.
이어서 진양이 손을 쥐자 두 개의 광구(光球)가 잡혔다.
하나는 보라색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파란색이었다.
파란색은 성낙진보라는 이름을 가진 진법 전적(典籍)이었다. 대황에 있는 적성종(摘星宗)이라는 문파로부터 전해진 진법이었다. 원래는 적성종의 호산대진으로 사용되던 진법이다.
적성종은 부도마교에 의해 멸문당했었다. 그 이후 성낙진보는 적성종이 멸문한 뒤로 이곳저곳을 떠돌다 우수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호산대진을 펼치기 위해서는 무려 일곱 개나 되는 진정한 성진(星辰)을 진안(陣眼)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휴대가 가능한 진판의 형태로 만든다면 한 개의 성핵(星核)을 핵심으로 삼고 스물여덟 개의 유성을 붙잡고 사면의 진기(陣旗)에 연화시켜야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수가 제련한 성낙진판(星落陣盤)은 성핵이 없었기에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진기 역시 한 면조차 연화시키지 않았다.
잠시 살펴보던 진양은 조용히 전적을 내려놓았다. 이 안에는 단순히 진법을 펼치는 방법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수가 가졌던 진법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 그리고 방대한 양의 각종 지식들이 모두 녹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소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이런 걸 연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보라색 광구에서 나온 물건은 전혀 예상 밖의 물건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 장의 지도였다.
지도를 이리저리 살피던 진양은 대우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진양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응? 설마 장해도군이 진짜로 묻힌 곳?”
놀란 진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당시의 기억에다가 이제는 지도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건 장해도군의 능침이 완전하게 진양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실력만 충분히 갖춰진다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실력만 좀 더 쌓으면 됐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되면 장해도군의 능침을 파헤치러 안 갈 수 없잖아?’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진양은 우선은 이런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어서 진양은 우수의 몸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수가 죽고 나자 그의 오른손에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건을 보관하는 주머니였다.
지난번 얻었던 팔찌보다 조금 더 큰 공간을 가진 반지였다. 대략 살펴보니 진법을 사용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 몇 개와 약간의 영석, 영약, 단약이 있었다.
그리고 방대한 수량의 서적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우수는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듯했다.
법보 중에는 다소 의외의 물건이 발견되었다.
한눈에 봐도 하급 법보인 물건들을 제외하고 나니 두 개의 팻말이 있었다.
대략 성인 남자의 키만 한 사각형의 팻말이었다.
금속으로 만든 이수의 머리가 입을 쫙 벌린 채 팻말의 윗부분을 물고 있었고, 팻말 아래쪽에는 대략 사 척 정도 되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팻말에는 각각 ‘정숙’과 ‘회피’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이 세계에도 이와 같은 물건이 있다니?”
습득 능력을 사용해 그것을 연화시키려던 진양은 그제야 그것이 영기(靈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대황에는 무시무시한 신조(神朝)가 군림하여 천하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부 신조는 그 위세만으로도 성종을 짓누를 정도였다고 했다. 때문에 신조 범위 내에 있는 종문들은 신조의 눈치를 봐가며 행동을 해야 될 정도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밉보인다면 곧바로 멸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문(衙門)의 팻말이 영기라는 사실에 진양은 대황의 신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략 가늠이 되었다.
보통 높은 사람들이 행차하면 가장 낮은 하인들이 이런 팻말을 들고 먼저 앞길을 열게 된다. 놀랍게도 가장 낮은 하인 따위나 사용하는 팻말조차도 영기인 것이다.
‘이 팻말의 주인 되는 신조는 도대체 얼마나 강력하단 건가?’
이 정도라면 작은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정도에 세력으로도 호량의 성종 하나와 맞설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진양은 더 이상 물건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주머니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한곳에 모아 한 번에 습득 능력을 발동시켰다.
물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진양은 오른손에 반지를 끼웠다.
겉보기엔 평범한 적갈색의 반지였다.
정리는 마친 진양은 우수의 시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수가 대황의 어느 신조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양범이 가지고 있는 어느 신조의 보물이 떠올랐다.
바로 흠천보감이었다.
양범은 바로 이 보물을 사용하여 진양의 정체를 파악하고 진양이 자소도경을 전수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어휴, 이건 충성이 아니라 미련한 거라고요. 곧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시신을 통해 주인에게 소식을 전할 생각을 하다니. 그저 당신이 불쌍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껴져서 잔인한 본 모습에 대해선 얘기해 주지 않은 겁니다. 죽는 순간에 조금이라도 그리워할 수 있게 말이죠.”
진양은 중얼거리면서도 이전에 사둔 관을 꺼내 우수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
그다음 관 뚜껑을 닫은 뒤 영향을 꺼내 피웠다.
오랜만에 해 보는 의식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어색할 지경이군. 그러다 이 관은 청림성의 관곽장이가 만든 것보다 못 만들었잖아. 나중에 손재주가 좋은 사람 걸로 따로 구해놔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