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78
1478화 이만 가봐
그동안 진양은 많은 사람과 교류를 했었다.
그중에는 풍도대제의 본존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풍도대제의 첫인상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풍도대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게 확실한 듯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부분 이러한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풍도대제는 본보기로써 천제를 제압한 것이다.
풍도대제와 부군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원수지간이라는 소문은 믿을 만한 게 되지 못한다.
물론 진양도 예전에는 이 말을 굳게 믿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망자의 세계가 나타난 이후 진양은 부군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는데, 반대로 풍도대제의 사람은 질리도록 만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양은 소문은 굳게 믿고 있었다.
풍도대제는 소위 말해서 한 곳에 몰빵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대비를 해 두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풍도대제의 본존을 만나고 난 뒤.
진양은 비로소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두 사람이 과거에 박이 터지게 싸웠던 일은 어쩌면 모든 사람을 속이기 위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일부러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생각마저 들었다.
우선은 인간 사이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이어서 상고 천정의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상고 지부도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세 천제도 서로에게 등을 돌리며 각자의 생각을 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짜여진 판인 것이다.
심지어 자신 스스로도 판 위의 장기알이 되어버린 것이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직감적으로 그것이 진상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이 오랜 예전부터 이런 일을 시작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고 최후의 발악마저 단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방향을 잡아두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이런 무시무시한 고수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일전에 망자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풍도대제라고 칭하는 회색 태양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신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당시 진양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신이 없는 새로운 세계다.
때문에 세 천제를 압도할 만한 엄청난 우세를 손에 쥘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풍도대제가 본보기로 천제를 제압해버린 방법이었던 것이다.
본존은 남겨두었으나 천제의 권력을 모방하여 자신을 중심으로 열 개의 화신을 만들어낸다.
추후 망자의 세계에서 신이 탄생하게 된다면, 그는 곧 망자의 세계의 새로운 천제였다.
그것도 인간 천제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치 상황과 망자의 세계의 수준을 생각해 본다면, 만약 세 천제가 극단으로 향하게 된다면 풍도대제 역시 극단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죽게 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풍도대제의 본존이 이곳에 갇혀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만약 진양이 풍도대제를 꺼내주지 않았다면 그는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잠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쩌면 풍도대제조차도 생각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방법은 전반적인 추측만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뿌리에 있었다.
천제가 권력을 나눈 것을 모방하여 열 개의 화신을 만든 것 말이다.
문제가 생겼다.
과한 정도의 자유를 얻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된다.
이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통하는 절대불변의 진리다.
진양이 분신은 마음껏 날뛰도록 내버려 두지만 화신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풍도대제로부터 떨어져나온 열 개의 화신들은 과한 정도의 자유를 넘어서며 이미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성을 잃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진양은 일단 길을 재촉했다.
우선 도문부터 들릴 생각이었다.
이들은 모든 시대를 거쳐온 사람들이다.
때문에 비교적 높은 확률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 *
멀리 거대한 조각이 보였다.
무려 수십만 리나 떨어져있었지만 세월의 묵직한 기운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도문의 조상 사당이었다.
짙게 낀 죽음의 기운 사이로 도의 음율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것들이 수십 가지 이상 느껴졌다.
진양은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것을 느껴보았다.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과연 천하의 귀재들은 다르다.
겨우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망자의 세계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것들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진양은 도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정체가 발각되었다.
신통력을 쓸 순 있었지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진 못했다.
진양은 곧장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을 따라 조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조사는 여전히 거친 산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진양을 발견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문주님을 이런 누추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 송구합니다.”
진양이 팔을 뻗자 탁자 위에 영과가 가득 나타났다.
각각 영향이 꽂혀있는 영과였다.
조사는 영향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영과를 먹었다.
마치 상당히 그리웠던 맛을 다시 맛보게 된 것처럼 흡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 일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오시진 않았겠죠?”
“그렇습니다. 사실 이곳에 계신 분들께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렇군요.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진양은 시방계와 십방 대제의 일을 상세히 조사에게 설명했다.
그다음 은팔찌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산더미처럼 쌓여있긴 합니다만, 조사께서 충분한 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사는 은팔찌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것은 특별히 이름이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여러 명의 사(師)의 힘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죠.”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과거 부군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성을 띤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대신관의 권력을 봉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다만 필요한 보물, 아니, 보물은 안 됩니다. 제일 좋은 건 법기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을 써야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요.
풍수사, 인형사, 화사, 목사는 부군과 함께 손을 잡고 이 평범해 보이는 은팔찌를 만들어냈습니다. 덕분에 일개 하급 수도사조차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제작 난이도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조사는 은팔찌를 들어 올렸다.
그는 은팔찌에 새겨진 것들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넘기며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가장 소극적이었던 것은 태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궤멸시키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었습니다.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은 자신들이 중점적으로 노려야 할 것이 태호와 태미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목사와 부군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태일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조금도 믿을 수 없으며, 일말의 희망조차 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부군은 자신이 만들어낸 봉인 방법을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일격에 태일을 제압하기 위해서였죠.
구체적인 건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태일이 가진 열 개의 권력은 상고 말기에 대부분 봉인되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아마 부군과 목사가 함께 손을 잡은 덕분이었겠죠.
다만 그 누구도 태일이 마지막 수단을 남겨뒀을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을 뿐입니다. 다시 부활한 그가 인간 신조를 세우고, 신조의 대제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람 재앙이 닥치며 상고 말기에는 수많은 비밀들이 산산조각 나며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때문에 아무리 도문이라고 해도 모르는 비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을 얻고 싶으시다면 당사자들에게 직접 묻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겠군요. 고맙습니다. 조사님 덕분에 많은 의문이 풀렸습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한 뒤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호량 학원을 세웠다는 사실은 조사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전승을 남기고 싶은 어르신이 계신다면 누구든 부담 없이 저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겨우 반 년만에 도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산 자의 세계에 남겨두었다.
그것을 누구에게 전수해 줄지는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들은 죽어서 망자의 세계에 온 자들이다.
어떤 공법도 남겨둬봤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진양은 공법도 챙기고, 여기까지 온 김에 망자의 세계의 현황에 대해 듣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
이어서 진양은 대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풍도대제로부터 떨어져나온 화신이다.
즉, 완전히 독립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대취라면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대취라면 그 누구보다도 말도 잘 통한다.
다른 녀석들은 웬만해선 접촉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 같아선 전부 날려버리고 싶었다.
아마 그렇게 한다고 해도 풍도대제의 본존은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진양은 결국 대취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대신 진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망자의 세계로 건너온 진곤이 천제의 부하들이 모여있는 곳을 뒤집어놓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진양은 곧바로 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노화(怒火)가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진양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도 느껴졌다.
그러나 불꽃이 피어오르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진곤에게 받은 대검이 웅웅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대검이 그의 모든 분노를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양은 대검을 꺼내 들었다.
대검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마치 진곤과 공명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대검을 보고 있으니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결국은 누가 사용하는지, 또 누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다.
지금처럼 진양의 손에 들려있는 건 그냥 썩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진곤이 진양에게 대검을 선물로 준 것은 그것을 가지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돌려준다고 해도 큰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이 물건은 주인이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진양은 손을 휘저으며 대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이만 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