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33
1533화 마치 온 세계를 굽어보는 존재
부군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세 천제를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그러나 부군에게 이러한 희생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다만 진양은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자신과 부군에겐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군의 본질은 과거에 튀어나왔던 진양의 또 다른 내면인 ‘냉정한 진양’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 역시도 인간은 아니었다.
진양은 ‘냉정한 진양’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특징, 그리고 신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탄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 그에게 씨앗을 심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러한 모습 가운데 그의 마음속은 괴로움으로 가득 찼고, 이것은 곧 진정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거대한 집념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진양의 마음속에는 한층 더 대담한 이 떠오르기도 했다.
과거 도천사는 우주 밖에서 정보를 훔쳐 왔다.
이 정보와 세계의 힘이 서로 합쳐지며 죽음의 땅이 만들어지고, 세 명의 불사의 존재가 나타나는 순간.
도천사는 희생할 때 이미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죽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존재이면서 냉정한 진양과 같이 냉혈한이라니.
세 천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인물로 성장할 것은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했다.
어쩌면 도천사의 희생은 호랑이를 쫓고 사자를 불러오는 꼴이었을지도 모른다.
세 천제는 죽였지만 어떤 방면으로는 세 천제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존재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부군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고 완벽한 인상까지 갖게 된 것.
이 모든 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열두 번째 십이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진양은 부군 앞에서 열두 번째 십이사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높은 확률로 열두 번째 십이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군을 통해 진상에 대해 듣게 된 진양은 열두 번째 십이사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다.
열두 번째 십이사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존재는 물론이고 흔적까지도 모두 사라졌다.
마치 세계 자체도 이 일에 상당히 적극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도천사가 저지른 일들을 다시 되돌리면 되는 것 아닌가?
열두 번째 인물은 더 이상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그의 이름, 흔적 등 모든 것들도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십이사에 대한 전설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상고 시대에 그들은 빛과도 같은 존재였고, 심지어 십이사들은 잊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부군이 이곳에 왔을 때 십이사는 아직 존재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얘기가 된다.
상고 시대 내내 말이다.
마찬가지로 열두 번째 십이사도 분명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상고 인족 십이사가 아닌 십일사로 불렸을 테니까.
열두 번째 십이사가 남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지금으로선 부군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부군은 외부인이다.
때문에 이 세계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다.
악작처럼 자아이성조차 갖지 못한 존재는 고려해 볼 필요도 없다.
그는 존재와 소멸의 애매한 기로에 놓여 있는 ‘반제품’이나 다름없으니까.
서혼수는 처음부터 자아이성을 성장시키는 길은 걷지도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두 번째 후보는 선초다.
세계의 기적이자 유일하게 ‘선’이라는 정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세 번째는 신의 권력이다.
형상을 갖춘 세계의 규칙이라면 충분히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세 천제의 권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태미는 소멸되었고, 태호 역시 권력이 모두 사라졌다는 걸 고려한다면,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진 건 태일이었다.
그가 왜 이렇게 했는지는 충분히 의구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었다.
후일 부군은 도천사의 힘을 이용하여 바람 재앙이 다가온 틈을 이용하여 진양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양은 죽음의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양은 나타날 때부터 육신을 가지고 있었고, 당당하게 산 자의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부군이 외부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게임 본캐로서 유저를 안으로 끌어들일 만한 힘 따위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건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바람 재앙의 힘을 ‘우연히’ 빌리게 된 것뿐이다.
이곳으로 넘어온 이후에도 진양은 현재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
그는 제대로 된 자아이성을 갖추고 있었고, 그 자아이성은 순수한 외부인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이곳에 온 것일 수도 있다.
단지 봉인되어 있던 것일 뿐.
그래서 지금 시대가 되어서야 눈을 뜬 것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이곳으로 오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강림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뭐가 되었든 전부 부군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보와 영혼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부군을 도운 것일까?
부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라는 허점 가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열두 번째 십이사뿐이었다.
심지어 도천사가 남긴 힘과 도는 어쩌면 높은 확률로 열두 번째 십이사가 몰래 부군이 계승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부군은 아무것도 아닌 약자이던 시절 도천사의 힘과 도를 계승했다.
사실상 새로운 도천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도천사의 신념도 함께 계승하게 되었다.
열두 번째 십이사는 여기에 몰래 부군에게 인간성을 부여했고, 처음 만들어진 자아이성과 직접적으로 뒤섞이게 만들었다.
세 천제보다도 훨씬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존재를 완전히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설령 부군이 최강자가 된다고 해도 결국 그는 인간이다.
무엇을 하든 그는 인간이다.
선천적인 사고방식이 정해지며 한계도 정해졌다.
신선이 되든 악마가 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설령 천하를 통치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세 천제처럼 반드시 인간을 철저히 멸망시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천사처럼 대단한 자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훔쳐 온 변수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데, 전혀 두렵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열두 번째 십이사도 두렵지 않았던 걸까?
십이사와 다른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걸까?
당연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 변수를 인간에게 유리한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므로 부군은 높은 확률로 처음부터 모종의 계획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고수들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양은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어쩌면 부군을 통해 교훈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예 두 번째로 데려올 때는 인간을 데려온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진양은 사자결을 해제했다.
감히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진양이 부군 앞에서 사라진 열두 번째 십이사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린 이유다.
부군에게 존재하는 빈틈은 열두 번째 십이사를 언급하는 순간 곳곳이 거짓말처럼 채워지게 된다.
더 이상 추측을 하거나 생각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가다간 십이사 자체가 두려워질 것만 같았다.
마치 눈빛만 드러내고 배후에서 온 세계를 굽어보는 존재처럼 말이다.
진양은 지금까지 떠올린 모든 것들을 전부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 부군의 상태를 고려한다면 얘기를 꺼내는 순간 폭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돌아가자마자 머릿속에 떠올렸던 모든 추측을 베어 해안에 보관해야 할 듯했다.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간 정상적인 사고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인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진양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과거의 고수들이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길. 또 시작이군.’
한 번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니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 * *
진양은 이 외에도 대황과 십방계 사이에 벌어진 전투와 대영 신조와 신방 신조의 대략적인 사정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었다.
그 외에 왼손을 다시 돌려받고 싶다면 언제든 얘기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화를 마친 진양은 몽경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본존으로 돌아온 진양은 눈을 뜨자마자 몽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차마 십이사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 물론 묵양은 예외지만.
어쨌든 무시무시한 추측과 생각에 대한 부분은 전부 잘라내어 해안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과연,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건 때론 독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이어서 복제 십방계와 십방계의 융합 진도를 살폈다.
어느덧 구 할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정도 진도라면 십방계에도 점차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직접 살펴보고 오는 게 좋을 듯했다.
진양은 다시 조윤의 몸으로 돌아왔다.
이미 매염의 사람 중 누군가 이상 현상을 감지한 듯했다.
맹가 일족의 혈맥을 가진 누군가 일부 능력을 각성하며 태생적으로 입몽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든지 등의 일이 그랬다.
이 외에 일부 지역도 어떤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특별한 생명체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 자체의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애초에 이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기괴한 생명체들이 나타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 대한 일은 크게 신경 쓸 게 없었다.
그러나 맹가 일족의 혈맥을 가진 이는 진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이 세계에서 수상한 기척을 느낄 만한 일족이라고 한다면 단연 맹가 일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물론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십방계가 복제 십방계와 융합이 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십방계는 여전히 십방계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맹가 일족의 사람이 일념의 바다에 있던 몽사와 같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을 진양에게 전달해 준 사람은 매염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봐도 찔러보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진양이 대몽진경의 계승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상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윤은 돌아가면 꼭 진양에게 물어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상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는 이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이런 쪽으로 정통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