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39
1539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진양은 제이검군의 검부를 꺼내 발동시켰다.
대략 삼 다경 정도가 흐른 뒤.
제이검군이 멀지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죄송하지만 사숙님과 스승님께 말씀 좀 전해주세요.
앞으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결전을 앞두고 있는지라 그 전에 먼저 식을 올릴 생각이라고요.”
제이검군은 넋이 나간 얼굴로 진양을 쳐다보았다.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그는 검까지 뽑아 든 상태였다.
제이검군은 조용히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뿜어져 나올 준비를 마친 채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던 강력한 힘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제이검군은 적지 않게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은 아닌 듯했다.
오늘날의 진양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도군이 되고 나면 경지 등을 통해 대략적인 실력을 가늠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진양의 경우 경지만으로는 아무것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젠 진양이 그를 불러 부탁해야 할 만한 일도 거의 없어진 상태다.
솔직히 자신이 현재의 진양을 실력으로 꺾을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건 승패를 반드시 갈라야 했을 때의 경우다.
정말로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가 마음먹고 도망친다면 그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확실히 장단점이 명확한 편이었다.
잡념은 여기까지.
제이검군은 미소를 지으며 진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축하하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다니.”
대영 신조 내에서 어느 정도 실력과 지위를 갖춘 사람이라면 가희와 진양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국운의 화신은 물론이고 궁성 문지기 환수조차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진양은 다른 사람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마음껏 궁성을 드나드는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사실 진양이 가희를 절경에서부터 업고 나올 때부터 이미 곳곳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가희는 대제희라는 봉호를 박탈당하고 장공주의 신분이 되었다가 점차 오늘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누구도 감히 이 얘기를 함부로 하고 다니지 못했을 뿐이다.
진양은 매우 쪼잔한 사람이다.
이런 인간이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다 죽어가는 대제희를 신조의 대제 자리로 올려놓은 것도 모자라 봉호라는 절세강자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해 준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가 봐도 숨겨진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제이검군은 진양의 일생의 큰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신선이 되거나 절세강자의 경지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일자결을 유지하며 시시각각 고통을 받아온 건 위태로운 아내의 목숨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편히 쉬며 요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시 전씨 가문으로 돌아간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려 도군에 경지에 오른 천하제일 검도인.
대황 역사상 가장 널리 명성을 알렸던 청련검선과 동일한 수준으로 비교되는 존재.
이런 인물이 아무런 야심도 없이 매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므로 제이검군 부부는 진양의 경지보다는 진양과 가희의 관계 진척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그의 아내는 궁성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나마 그녀가 사자결을 익혔고, 또 총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희와 마주하고도 평범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엄청난 경지를 이룬 대제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이검군은 예를 갖춰 가희에게도 축하의 말을 한 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잠시 뒤.
제이검군은 아내를 데려왔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렇게 몇 다경이 지난 뒤.
촉룡, 몽의, 최양평, 연운 등.
진양과 가까운 사람들은 전부 하나씩 이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있는 전씨 대장로도 철면피를 깐 채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도착한 모든 이들은 알아서 눈치껏 자신의 기운을 모두 숨겼고, 평범한 범인 노인인 척하며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일상적인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물론 같은 수준의 일상은 아니었지만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기에 대화는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한편 가희 쪽의 손님으로는 청란과 자란 등이 찾아왔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가희를 따른 충성스러운 부하들이다.
가희가 행방불명 되었을 때도 순천사에 남아 신조의 공역을 지켰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조에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어 가희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서로가 상관과 부하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부 측 하객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인물들이었다.
같은 황실 출신의 사람들은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직계는 대부분 영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나마 남은 방계의 후손들도 자신이 어떤 핏줄을 타고났는지 모를 정도로 먼 존재가 되어버렸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조사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황실의 사람이라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덧 석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자 둥근 달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대지를 비췄다.
저택 안팎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심지어 각자의 집에 수저가 몇 개나 있는지도 서로 알고 지낼 정도였으니, 그만큼 누군가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모두가 자기 일처럼 나서주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작고 평범한 마을에 대황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고수들이 모여있었다.
평범한 범인과 정상급 강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매우 화목했다.
대략적으로 준비가 끝나자 소박한 혼례도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가희는 이미 오래전에 한 무리의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촌장의 집으로 갔다.
일단은 이곳을 임시로 신부의 집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촌장은 본인이 더 신난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막상 식이 시작되자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 하나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이 필요한 과정이란 과정은 전부 챙겼다.
화려한 예복으로 갈아입은 진양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진양의 입은 금방이라도 귀에 걸릴 듯한 기세였다.
몽의 등의 하객들은 정당에 앉아 두 부부가 안으로 들어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모든 과정은 차분하게 이루어졌다.
가희가 있는 곳에 도착한 진양은 그녀를 꽃가마에 태워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집 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멀리서 누군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 바람에 모래바람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사형, 이런 좋은 일이 있으면서 어째서 절 부르시지 않은 겁니까! 하마터면 늦을 뻔했잖아요.”
장정의는 얼굴이 창백했고,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의 파동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녀석이 사고를 치다가 늦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진양은 미소를 띤 채 장정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장정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주체할 수 없던 힘의 파동이 제압되었다.
마치 모종의 힘에 의해 봉인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장정의는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자신도 모르게 ‘이쯤이면 내 등이 보여야 할 시점인데…….’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뭘 그렇게 쫄아? 설마 네 사형이 아무 이유 없이 남의 목을 비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장정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이곳으로 왔다.
사실 제이검군은 그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대략적인 방향은 알았지만 가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데려오는 건 불가능했다.
진양이 장정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 이런 자리에서 피를 볼 수는 없지.”
“…….”
장정의는 잠시 얼어붙은 듯했으나 이내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실실 웃으며 꽃가마를 향해 포권을 취하곤 꽃가마 옆에 섰다.
혼례가 진행되는 내내 쫓아다닐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음 놓고 진양을 놀릴 수 있는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진양이라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장정의를 죽일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장정의가 겁대가리 없이 까불고 있을 때.
장정의 머릿속에 몽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의야, 그리고 보니 네 사형이 이런 얘기를 전해달라고 하더구나.
산 자의 세계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겠지만, 죽음의 세계의 범위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곧바로 죽게 될 거라고.”
장정의는 자연스럽게 꽃가마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형수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사형과 백년해로하시길 바랍니다!”
인사를 마친 그는 조용히 몽의의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스승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정 궁금하면 가서 네 사형을 자극해 보도록 하거라. 그럼 알게 될 테니까.”
“그, 그건……. 됐습니다.”
장정의는 목을 움츠리며 단념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며 선물로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진양과 가희에겐 잘 보일 필요가 있다.
망자의 세계는 거의 진양의 땅이나 다름없었고, 산 자의 세계 역시 가희가 통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정의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혼례 선물로 줄 만한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장정의가 홀로 허둥지둥하는 사이.
진양은 가희를 업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함께 정당으로 들어섰다.
붉은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가희의 모습을 보니 진양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예전에 가희를 그곳에서 업고 나올 때도 지금과 똑같았었다.
그때만 해도 오늘과 같은 날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진양은 천천히 가희의 손을 붙잡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희 역시 이 순간만큼은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생명의 은인으로부터 시작된 연은 어느덧 부부의 연으로 이어졌다.
“아니에요.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는걸요.”
옆에서 보고 있던 촌장이 두 사람을 다그쳤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마침 길일이더군요. 마침 날씨도 완벽하니 예식을 치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죠. 자, 어서 서두릅시다!”
촌장은 마당 정중앙에 놓인 천지의 위패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첫 번째 절은 천지신령께 올리시오!’
진양과 가희는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위패에 절을 올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