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두 번째 능력
“별것도 아닌 게.”
겨우 자신을 함정에 밀어 넣으려던 노인네 하나 처리한 것이 전부였으나 진양은 왠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까지 진양은 항상 압도적인 힘에 당하는 위치에 있었지, 압도적인 위치에 있어 본 적이 거의 없다.
처음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압도적인 위치에서 적을 처치하고 나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과 후련함이 몰려왔다.
물론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전투가 생각보다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기이과 덩굴에 살아있는 사람이 닿는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실험해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까웠다.
‘뭐,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진양은 자리에 털썩- 하고 앉았다.
그리고 몸속으로 들어간 기이과의 힘을 느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덩굴에서 또다시 꽃이 피고 지더니 열매가 맺혔다.
아까 보았던 흑진주를 닮은 열매와는 달리 맑고 투명한 백옥색의 열매였다.
열매는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생선 썩는 고약한 냄새를 풍겨댔다.
악취가 진양의 코를 자극하는 순간 진양은 금방이라도 먹은 것을 몽땅 게워내 버릴 듯한 역겨움이 올라왔다.
“으윽, 도저히 못 참겠다.”
진양은 호흡을 멈추며 재빨리 뒤로 일정 거리 물러섰다.
그리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에 있는 바위 위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양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몸속에 일어나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와 같이 일어난 기운은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뜨거운 기운의 힘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육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반 시진 만에 지난 세 달간 회복되었던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회복이 되었다.
심지어 줄어들었던 수명까지 절반 가까이 복구된 느낌이 들었다.
쿠르르-
그때, 대지가 진동하며 지면의 작은 돌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했다.
진양은 곧바로 방향을 파악하며 그곳과 반대되는 쪽으로 물러섰다.
잠시 뒤, 이십여 장 정도 되는 새까만 역청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성큼성큼 기이과 덩굴로 다가갔다.
입에서 흘러내린 검은 물이 땅에 닿는 순간 치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연기가 피어올랐고, 침이 닿은 자리는 숭숭 구멍이 뚫렸다.
사람에겐 역겨운 악취였으나 놈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냄새였던 것이었다.
심지어 가까운 곳에 있는 진양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다.
진양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못 알아볼 리는 없을 텐데…….’
이미 죽은 괴수에게 살아있는 자의 기운은 마치 어두운 밤 속에서 밝은 달을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느껴질 것이었다.
그런데도 진양을 발견하지 못하다니?
놈은 입을 크게 벌리며 백옥을 닮을 열매를 한입에 삼키려 했다.
그러나 놈의 몸이 덩굴에 닿는 순간 덩굴이 퍽- 하고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괴수는 포효성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괴수는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괴수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순간, 검은 기운이 천천히 덩굴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러자 백옥처럼 하얗던 열매는 조금씩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흑진주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코를 자극하던 악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졌고, 맡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취하게 만들 것 같은 달콤한 향기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진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기이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는 생명체와 역청괴를 잡아먹고 나면 그제야 흑진주 색깔의 기이과가 열리는 건가?’
진양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만약 저 덩굴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새로 열린 기이과는 이전에 복용했던 것에 비해 훨씬 작은 크기였다.
그만큼 효력도 이전보다 못한 수준일 것이다.
아마 재료로 사용된 노인이 가진 힘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허접한 수준의 기이과가 열린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만약 덩굴을 가지고 나가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바다 괴수에게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훨씬 더 효과 좋은 기이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괴수 고기를 직접 먹는 것보다 기이과를 먹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덩굴을 어떻게 가지고 나가냐는 것이다.
놈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닿는 순간 곧바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게다가 뚫는 힘 역시 보통이 아닌 듯했다.
재수 없게 잘못 건드렸다간 진양도 골로 가버릴 수 있었다.
진양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음? 잠깐! 분명 전생에서 ‘일품수선’ 캐릭터인 일급 소호를 만들었을 때 ‘습득 능력’ 말고도 또 다른 능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습득 능력’ 하나만 가지고 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일급 소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지는 진양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진양은 여러 잡다한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채집 능력!’
풀이나 꽃 등을 채집하여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능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초가 필요하면 상점에 가서 사면 그만이지, 뭐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온몸에 흙을 묻혀가며 구하러 다닌단 말인가?
괜히 재수 없게 강력한 괴수라도 만났다간 찍소리도 못하고 골로 가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설령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채집 능력을 실제로 사용할 일은 크게 없었다.
그냥 손을 뻗어서 꺾으면 그만인 걸 뭐하러 귀찮게 능력을 발동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현재 진양의 눈앞에 있는 덩굴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위험한 식물이었다.
‘설마…….’
진양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덩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
당연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번에는 등에 숨겨두었던 등껍질을 꺼내 자신을 보호했다.
그리고 손톱 끝으로 조심스럽게 덩굴을 건드렸다.
팟-
손톱이 덩굴에 닿는 순간, 덩굴은 곧바로 진양의 등껍질로 날아왔다.
콰광-
엄청난 괴력에 의해 진양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고, 진양이 부딪힌 검은 바위엔 수 장이나 되는 균열이 일어났다.
“쿨럭……. 젠장.”
진양은 몸을 털고 일어나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덩굴에 손에 닿는 순간에도 능력을 발동할 수 있다는 알림은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있는 덩굴을 바라보았다.
“잠깐. 설마 게임에서처럼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채집 능력에 대한 아무런 알림이 발동하지 않았던 것도 말이 됐다.
진양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만약 생각대로 도구를 사용하여 덩굴을 가져갈 수 있다면?
진양은 곧바로 오동염을 유지하는 데 쓰이던 숯을 꺼냈다.
현재 오동염은 진양에 의해 완전히 연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숯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보통 약초 등을 채집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도구는 모종삽이다.
모종삽은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금속 성분이 포함된 삽을 사용한다면 연약한 식물의 경우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꺼낸 숯을 모종삽 모양으로 조각했다.
그리고 잉생(孕生)과 같은 각종 금제를 걸어 삽을 완성시켰다.
‘이왕 만드는 거 좋은 재료로 만들면 좋지. 앞으로 어떤 영화나 영초를 채집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진양은 만든 삽을 들고 조심스럽게 덩굴로 다가갔다.
그리고 삽을 뻗어 조금씩 덩굴로 가까이 들이댔다.
삽이 아직 덩굴에 닿기도 전에 진양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피었다.
놀랍게도 능력 발동이 가능하다는 알림이 보인 것이다.
진양의 손등의 번쩍이는 빛으로 만들어진 작은 도안이 떠올랐다.
손으로 모종삽을 잡고 있는 모습의 도안이었다.
마음속으로 발동을 외치자 도안 속에 있던 손이 날아가 모종삽으로 덩굴의 뿌리 쪽을 푹- 하고 찔렀다.
그러자 은은한 빛무리가 흘러나와 덩굴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어서 손은 모종삽 위에 얹혀있는 동그란 광구에 갇혀있는 덩굴을 진양의 앞으로 가지고 왔다.
광구 속에 들어있는 덩굴은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졌다.
땅에서 파내고도 한동안은 살아있는 듯했다.
손을 뻗어 광구를 쥐어 터뜨리자 곧바로 연화가 완료되었다.
진양의 손에 들린 덩굴은 마치 죽은 뱀처럼 얌전해진 모습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며 힘을 불어넣으니 덩굴이 꿈틀거렸다.
다행히 놈은 여전히 살아있는 듯했다.
진양은 덩굴을 팔에 휘감은 뒤 소매로 보이지 않게 잘 덮었다.
“흐흐흐…….”
흡족스러운 얼굴로 모종삽을 다시 집어 든 진양은 순간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눈빛을 반짝였다.
이어서 진양은 가지고 있는 금속 재료 중 가장 단단한 재료를 꺼냈다.
그리고 오동염을 피워 그것을 녹인 뒤 짙은 금색의 곡괭이를 만들었다.
곡괭이를 든 채 단단한 검은 바위를 향해 내려치는 순간, 예상대로 또다시 능력 사용이 가능하다는 알림이 보였다.
진양은 곧바로 마음속으로 능력 발동을 외치며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렇게 몇 번을 휘두르고 나니 일 장 조금 더 되는 범위 내의 검은 바위가 사라지며 주먹만 한 광구에 둘러싸인 무언가가 진양의 손으로 날아와 잡혔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예상대로 되는구나!”
힘을 주어 광구를 터뜨리자 검은 바위는 곧바로 연화되었다.
원래의 크기에서 다소 줄어든 크기의 주먹만 한 돌이었는데, 철이나 옥 종류는 아닌 듯했다.
“채광이라니!”
곡괭이를 거둬들이는 진양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밝은 모습이었다.
무려 두 가지나 되는 기능이라니!
물론 전투와는 상관없는 기본적인 기능이긴 했으나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진양은 새로 만든 도구들을 모두 집어넣은 뒤 새로 얻은 기이과를 쳐다보았다.
고민하던 진양은 우선은 먹지 않고 나중에 안전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기이과, 그리고 덩굴까지.
진양은 원하던 것을 모두 손에 넣었다.
‘음……, 불안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리는군.’
진양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빛의 쇠창살을 바라보았다.
번쩍이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붕괴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