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약해 빠졌군
진양은 계속해서 미궁을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 보면 갑자기 공간이 뒤바뀌며 전혀 처음 보는 낯선 곳이 나타났고, 고개를 돌리거나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이전에 걸어왔던 길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를 헤맸지만, 여전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공간 미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그그그그그-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또 한 겹의 쇠창살이 무너져내렸다.
섬 전체가 크게 뒤흔들리며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왜곡, 그리고 무중력감은 강렬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진양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시 모든 것들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을 때,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해있었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동된 곳은 지하 미궁이었다.
혼탁한 공기, 묵직한 기운,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 듯한 냉기가 미궁 내부를 빈틈없이 채웠다.
지면에는 두텁게 재가 깔려 있었고, 검은 돌로 만들어진 성벽이 높게 세워져 있었다.
성벽에선 금속에서나 느낄 수 있는 차가움과 특유의 광택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진양은 성벽을 톡톡 두드리며 이전에 채광으로 획득했던 검은 돌을 꺼내 비교해 보았다.
성벽은 아까 습득한 바깥의 검은 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했으며, 힘껏 주먹을 내질러도 실금 하나 생기지 않았다.
화르륵-
양쪽 석벽에서 갑자기 화염이 피어올랐다.
여러 모양의 검은 석상이 벽에 달려있었다.
여러 종족의 형상을 한 석상이었는데, 전부 고통스러운 얼굴로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불꽃은 석상의 입에서 피어오른 불꽃이었다.
피어오른 불꽃이 성벽 아래의 통로를 환하게 비추었다.
이런 장치는 비교적 흔한 편이었기에 진양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석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공포심이 피어올랐다.
진양의 옆쪽으로 용의 머리를 가진 이수의 석상이 달려있었다.
몸을 반쯤 석벽 밖으로 내민 채 무서운 표정으로 진양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놈의 입에선 푸른색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쪽의 석벽에는 장포를 입은 나이 든 인간의 모습이 있었는데, 사지가 석벽에 달라붙은 채 고개를 들고 절규하는 모습이었다.
분노, 아쉬움, 그리고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입에선 푸른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이 외에 앞쪽으로 서로 다른 종족의 석상이 이어져 있었다.
석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들은 살아있을 때 벽에 매달린 상태로 석상이 되어버린 게 분명했다.
때문에 이들은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무덤이 따로 없군.”
강자들은 보통 죽고 난 뒤 누군가 자신의 무덤에 들어와 영면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는 편인데, 때문에 자신의 무덤에 온갖 장치와 함정 등을 설치해놓는 경우가 있었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 역시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영면천등(永眠天燈).
함부로 이곳에 발을 들이는 자들은 그대로 석상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그리고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무덤의 벽에 걸리게 된다.
석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은 아마 사자(死者)의 영혼을 연료로 사용하는 천등혼화(天燈魂火)일 것이다.
매번 새로운 침입자가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석상은 불을 뿜어내며 침입자에게 경고를 전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덤 내부의 모든 함정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함정은 천등혼화의 힘으로 움직이게 된다.
진양은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양쪽 벽에 걸려있는 석상 중에 화염을 내뿜지 못하는 석상이 여럿 있었다.
아마 연료로 사용할 영혼이 모두 바닥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인적이 끊기고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만큼 힘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가장 위험한 시기는 피해서 들어오게 된 것이니 말이다.
예전에 도문에서 공부할 때 이러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수만 년 전, 대황에 좌악(左樂)이라는 악랄한 인간이 있었는데, 그는 수천 년간 온갖 잔학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다 결국 함정에 걸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맞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동굴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이 아닌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만들어두었었다.
그리고 동굴에는 그가 그동안 마음껏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며 빼앗은 각종 공법, 재물, 그리고 보물들이 전부 쌓여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보물을 얻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동굴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동굴의 위치를 잘 보이는 곳에 만들어둔 만큼 그곳엔 함정이 가득했다.
때문에 동굴으로 들어가는 자들 중에 살아서 나오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한몫을 챙겨 살아나오는 이도 가끔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얘기가 소문이 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동굴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동굴 내에 만들어진 영면천등의 개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그로 인해 함정의 힘과 위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때문에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평민들만 죽어 나갔으나,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실력 있는 수도사들까지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쯤 되자 더 이상 두고만 볼 수가 없었던 누군가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한다.
이곳은 좌악의 음모로 인해 만들어진 곳이며, 발을 들이는 자는 누구든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의 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 따위가 통할 리는 없다.
사람의 욕심은 그렇게 쉽게 통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누구든 위험한 모험만 감당해낸다면 진귀한 보물을 들고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동굴엔 소문이 퍼지기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되었는데, 그러다 어느 봉호도군의 동생이 이곳에서 죽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봉호도군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직접 나서게 되었다.
그는 동굴을 곧장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깊은 땅속으로 처박아버리며 영원히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도록 만들어버렸다.
현재 진양의 눈앞에 있는 석상들 중엔 인간의 모습도 꽤 많이 보였다.
하나같이 생전에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 외에 생전에 호량 따위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족들도 꽤 있었다.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석벽으로 빼곡하게 수많은 불꽃이 매달려있었다.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이곳에서 숨을 거두고 영면천등이 되어버린 것인지 도무지 가늠되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영면천등의 불꽃이 꺼져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의 함정의 위력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전부 불타오르고 있었다면 진양은 이미 진작 골로 가버렸을 것이었다.
진양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나가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무 방향이나 골라 계속해서 걸어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각 정도를 걷고 나자 앞쪽이 탁 트이며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중앙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내부는 메말라 있었다.
연못엔 물 대신 강력한 원기(怨氣)가 구름처럼 몰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몰려와 악에 받친 포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진양은 새하얗게 질린 채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아무리 연못 안에 속박되어있는 원기라도 해도 그 기운까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흘러나온 기운은 진양의 이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길래 저 정도로 무시무시한 양의 원기가 모여 있는 거냐고.”
진양은 연못을 최대한 멀리 돌아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살아있는 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까 미궁에 진입하면서 갑자기 사라졌던 장로의 곁에 있던 그 중년인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달리며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바깥에서 괴수를 퇴치할 때 썼던 바로 그 재였다.
그는 재를 뿌리면서도 연신 이상한 주문을 외워대며 자신을 뒤쫓는 무언가를 떨쳐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양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뒤, 갑자기 재 위로 거대한 발자국이 나타났다.
발자국 위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치직- 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발자국은 천천히 중년인의 발아래까지 이어졌고, 발자국이 가까워질수록 중년인의 주문을 외우는 소리는 더욱더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때, 중년인 앞으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주문에 의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강력한 바람이 일어나 그가 중년인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문을 모두 외운 중년인이 잠시 멈추는 사이,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중년인의 몸속을 뚫고 들어갔다.
“크아아악!”
중년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있었으나, 괴상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진양, 드디어 왔구나.”
말을 하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에선 살덩이가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땅 위로 떨어진 살덩이는 곧바로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여섯 걸음도 채 되지 않아 그의 몸은 털썩 쓰러지며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약해 빠졌군…….”
뒤에서 누군가의 탄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진양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재빨리 십여 장 정도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곽순풍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건 진짜가 아닌 환상이 분명했다.
“정말 약해 빠진 몸뚱이로군. 겨우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망가져 버리다니. 하지만 진양, 넌 달라. 난 느낄 수 있어. 네 몸은 완벽하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습이라도 좀 바꾸지 그래?”
진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헷갈리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겠냐?”
“그래? 그렇다면 이 모습은 어때?”
그는 차례대로 외눈, 선장, 요리사의 모습으로 자신의 외모를 바꾸었다.
“날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틀린 말은 아니야. 나의 힘을 외부에 있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건 환상에 불과하지. 하지만 이곳에선 다르다. 진양, 준비는 됐겠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
상대는 괴상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진양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진양의 이마에선 식은땀에 흘러내렸고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진양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눈앞에 있는 존재가 이곳에 봉인된 사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중년인의 처참한 죽음.
그것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환상일 리는 없었다.
생기가 끊어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