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꼭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배 위에 있는 마교 제자들은 전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굳어버렸다.
“팔방산하인(八方山河印) 안산하.”
차를 음미하던 야고헌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이 주위로 퍼져나가며 주위를 짓누르고 있던 위압감을 모두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 빛으로 만든 길이 되어 안산하의 앞까지 펼쳐졌다.
안산하의 얼굴이 다소 굳어졌다.
가벼운 손짓 하나만으로 자신의 발 앞까지 빛의 길을 펼치다니.
언제든 원한다면 자신의 방어를 파훼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놀라운 묘법입니다.”
감탄 한 마디와 함께 그는 웃으며 빛을 길을 따라 배로 향했다.
그리고 야고헌의 맞은편에 앉았다.
“참으로 매혹적인 향기군요.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입니다. 야 형, 그렇다면 사양하진 않겠습니다.”
안산하는 자신의 앞에 놓아진 찻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그러나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석 잔이나 더 채워서 마셨다.
그 모습에 야고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그의 손에서 찻주전자를 낚아채 왔다.
이보다 무례한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단황연은 부도마교의 특산품으로 극히 소량만 생산되는 차로, 아주 오래전 찻잎을 물고 날아가던 단황이 찻잎을 떨어트린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귀한 물건인 만큼 신비로운 효능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귀한 걸 한 번에 서너 잔이나 비워버리다니.
작은 찻주전자에 남은 차는 이제 절반뿐이었다.
“안 형, 아무리 삼계산에서 이곳까지 한 번에 날아왔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이 먹던 차를 전부 다 마셔버릴 정도로 목이 마른 건 아닐 텐데요?”
안산하는 아쉽다는 듯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맛을 다셨다.
“야 형도 장해비전의 보책 때문에 오신 것 같으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남해 녀석들이 보책을 유령 해적단 경매에 위탁했다던 소식이 돌던데. 소식 들으셨습니까?”
“듣긴 들었습니다만. 그게 삼계산과 무슨 상관이길래 물으시는 겁니까?”
“뭐, 비전 보책에 관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낙찰만 받는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물건이잖습니까?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강제로 빼앗아 올 생각이라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물론 반드시 빼앗아 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말이죠.”
안산하는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야고헌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해비전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관심 갖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강제로 빼앗지 말라고 협박을 하는 겁니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하나, 남만의 삼대 마도 세력 중 두 곳이 이번 경매에 참여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여족마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상황을 살펴 가며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늦으면 입찰할 기회조차도 빼앗기게 될 테니까요.”
말을 마친 안산하는 빛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야고헌은 찻잔을 든 채 한참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비전을 노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선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경전이 기록된 보책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문파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보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때문에 부도마교에게 정직하게 입찰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강제로 빼앗으려고 했다간 적어도 자신보다 세 경지 높은 고수들에게 견제를 당하게 될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경지가 높다고 해도 반드시 야고헌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야고헌의 발목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두기엔 충분할 것이엇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직하게 낙찰하려 해도 기회조차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직하게 낙찰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모두들 기를 쓰고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걸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책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영석만으로는 부족할 것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지고 있는 보물까지 내걸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설령 엄청난 값을 치르고 낙찰받는다고 하더라도 부도마교에겐 큰 손해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내는 건 쟁녕일맥일 것이고 보책을 소유하는 건 마교일 것이었다.
그러니 결국 쟁녕일맥만 손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곳에 올 때부터 강제로 빼앗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부도마교가 고수를 보낸 만큼 다른 세력도 그에 상응하는 실력의 고수를 보냈다.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경매 날짜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해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하지만 진양은 알 수 있었다.
여러 세력들이 부도마교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중에는 남만 삼대 세력 중 삼인자인 황천마종과 유명성종도 있었다.
분명 마도 문파인데 어째서 성종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인지는 진양도 알 수가 없었다.
듣자 하니 과거 사람들을 속여 제자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소문이 있긴 한데,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진양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양 역시 이런 식으로 도문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서 말한 두 세력 외에도 안경창이 몸을 담고 있는 삼계산도 있었다.
갑자기 삼계산이 왜 나서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단순히 부도마교의 발목을 잡아놓으려는 목적인 듯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은 진양에게 이득이었다.
어차피 진양은 경매만 무사히 끝나면 그만이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서로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점점 더 심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이목은 다른 곳으로 집중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진양에겐 오히려 이득인 상황인 것.
* * *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경매가 시작됐다.
진양은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경매장이 열리자마자 남해 세력의 대표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완벽히 봉인된 상태로 전시대에 올려져 있는 모조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모두들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령호에서 경매를 하기로 한 건 훌륭한 결정인 듯했다.
모든 과정 중에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진양은 비록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약간의 눈속임을 하긴 했지만, 아마 다들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이건 진양의 잘못이 아니었다.
진양에게 잘못 걸려든 사람들의 잘못이었다.
이번 경매에 진양이 내놓은 물건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이곳에 들어온 손님들이 직접 경매에 올린 물건들이었다.
진양은 모습을 바꾸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서 모습을 바꾸는 건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습을 바꾼 채 경매장을 돌아다니던 진양은 지난번 보았던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초록색 피부, 반짝이는 머리, 몸 주위에 맴돌고 있는 기괴한 기운, 두터운 생기, 그리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까지.
마치 나무가 의인화된 것 같은 외모였다.
나무 인간은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니며 자신이 쓸만한 물건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진양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 기다려 주시지요.”
“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답해 준다면 보수는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진양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속으로는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나무 인간은 진양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인물이었다.
특별한 외모도 외모지만 그는 지난번 경매 땐 경매가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오다니.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당신에게 특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상당히 익숙한 기운인 걸로 보아 구면인 듯한데. 혹시 최근에 특별한 누군가와 마주한 적 없습니까?”
그는 얇은 가지를 꺼내 보였다.
잎사귀는 없었으나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건 삼생류(三生柳)의 가지입니다. 사악한 기운을 억제하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죠. 중상으로 인한 빈사 상태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생기가 유지되게 됩니다. 대답해 주신다면 이것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숨기실 것 없습니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 그런 것뿐입니다.”
진양은 상대가 건넨 가지를 받아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삼생류는 여족 구지(九支) 중 백여(白黎)라는 이름을 가진 성수(聖樹)였다.
여족 구지 중 일부는 외부와 접촉을 하기도 했다.
그 예로 적여(赤黎)가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완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는 일체의 접촉을 하지 않는 존재도 있었다.
그게 바로 백여다.
삼생류는 사실 삼생귀류(三生鬼柳)라고도 불렀다.
남해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휘두르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로 삼생귀류의 가지였다.
삼생귀류의 가지로 만든 법보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귀신의 경지를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소문이 돌고 돌아 나중에는 결국 세간에 퍼져있는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저 나무 인간, 백여의 사람인 건가?’
순간 머릿속에 빛이 번쩍하며 헌일이 떠올랐다.
현재 진양은 헌일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별한 기운이 흘러나왔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여족이 알아차린 걸지도 모른다.
구면, 그리고 삼생귀류까지.
헌일 외엔 다른 건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이 경매장이었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만약 밖이었다면 나무 인간은 두말없이 진양을 납치했을지도 몰랐다.
진양은 고민에 빠졌다.
특별한 사람이라.
최근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도 전부 하나같이 특별한 사람들로.
하지만 이들 중 누구를 대야 적당히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그에게선 왕성한 생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에 삼생귀류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아니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백여 중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일 것이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것으로 보아 영식정괴(靈植精怪)와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나무일 가능성도 있었다.
나무, 나무라면.
최근에 만난 나무 요괴가 있다.
“생각은 다 하셨습니까? 숨김없이 꼭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겐 상당히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되어있었다.
진양이 고개를 들고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순간, 도기에서 한 줄기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선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진양의 영혼을 뒤덮었다.
“이 정도면 보수로 섭섭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저 궁금한 게 있어서 묻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사실대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한층 더 간절한 목소리로 빌듯이 말했다.
하지만 진양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