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73
573화 재료부터 챙기자고
“반면, 괜찮겠나?”
잠시 고민하던 반면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양쪽 모두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면 승산은 오 할 정도입니다. 여기에 전하까지 보호해야 한다면 승산은 삼 할 정도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알겠다. 일단은 최선을 다하거라.”
모용가악이 고개를 끄덕이자 반면이 옥련 밖으로 나섰다.
홀로 옥련에 남은 모용가악은 품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가죽으로 만든 부전을 꺼내 들었다.
모용가악은 꺼내든 황금 부전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적진 한가운데 도착하고도 안심하고 있던 이유다.
대영 신조 내에서는 이도와 가까울수록 안전하다.
적어도 대영 신조의 사람들은 그가 대영 신조의 영토 안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안전하지 않은 곳.
그곳은 바로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완충지대다.
그의 수중에 들린 황금 부전은 대연 신조의 대제가 직접 만들어준 것.
아주 오래전에 그의 아버지가 대제로부터 직접 하사받았다가 현재는 모용가악이 물려받았다.
대연 신조의 영토 내에서 이것을 발동시키면 곧바로 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래는 대제가 멀리 나가 있는 신하를 급히 소환할 때 사용하던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데, 예전에 폐태자가 군대를 통솔하느라 외부에 나가 있을 때 대제가 참언을 듣고 그를 불러들이기 위해 연달아 세 장이나 만든 것 중 하나였다.
당시 요국과 대연 중간에 상고의 고수가 남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발견되었는데,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은 전쟁으로 이어졌었다.
원래대로라면 여유롭게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동굴까지도 차지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폐태자가 발을 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대제의 소환에 불응한다면 이는 곧 대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
진퇴양난의 상황 가운데 그는 결국 항명을 택했다.
곧바로 소환에 응하지 않고 먼저 요국과의 전쟁을 끝나고 난 뒤에 소환에 응한 것이다.
이에 대제는 자신이 들었던 참언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장 큰 벌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피어난 의심의 불씨 때문에 수년 뒤 아주 사소한 일로 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모용가악은 씁쓸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쥐어진 황금 부전을 바라보았다.
한때 부친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렸던 물건이 이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보물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옥련 벽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변하며 바깥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반면의 몸은 새카만 혈성살기로 뒤덮여있었다.
이미 광폭 상태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적을 모두 쓰러트리기 전까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용가악은 점점 더 밝은 빛을 뿌려대고 있는 용수수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옥련 중앙으로 가서 미리 설치해둔 진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모용가악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어서 옥련 아래쪽 지면에서 은은한 빛이 일어났다.
빛은 곧장 땅속을 파고들었다.
땅속으로 숨어든 모용가악은 둔지법(遁地法)을 펼치며 조용히 완충지대 쪽으로 이동했다.
* * *
같은 시각.
지면에서는 반면이 광란의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흑의인(黑衣人)들은 두려움 따위는 잊은 듯 용맹하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한 사람이 반면에 의해 산 채로 반으로 찢겨나가며 혈무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혈무 속에서 또 다른 흑의인이 나타났다.
그는 빠르게 다가와 반면에게 달라붙었다.
반면이 분노로 가득 찬 고함을 내지르자 짙은 살기가 피어오르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인해 반면에게 달라붙어 있던 흑의인은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콰광-!
흑의인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혈무가 피어올랐다.
이어서 뿜어져 나온 파괴의 기운이 반면의 등 뒤를 덮쳤다.
반면은 잔상을 남기며 지면으로 추락해버렸다.
이를 본 혹의인들은 곧장 벌떼처럼 그가 추락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콰과광-!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며 일천 장이나 되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반면은 온몸의 뼈가 부러졌고, 육신은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반쯤 튀어나온 그의 한쪽 눈알은 허망하다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완충지대.
대연 신조에서 온 노인과 위흥조는 여전히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고 감히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뒤를 돌아서는 순간 상대에게는 기회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흥조는 전장 쪽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안타깝군. 일생 동안 전장을 돌며 꽤 많은 양의 혈성살기를 모은 것 같은데……. 허나 그런 것이 죽은 뒤에는 결국 무슨 의미가 있겠나?
반면은 자신과 싸우는 자들이 전부 칠살악전을 익힌 사람이라는 사실은 죽기 직전까지도 몰랐을 걸세. 심지어 자아를 잃은 자들이라는 것도 말일세. 그들이 강행한 자폭의 여파가 반면의 몸에 있던 방대한 양의 혈성살기를 자극했을 걸세. 그리고 자극받은 기운은 역으로 그의 심장을 찌르는 무기가 되어버리고 만 거지.
모용가악의 첩신호위 중 가장 강한 자가 쓰러졌는데. 정말 안 가봐도 되겠나? 이제 남은 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쓰러질 걸세. 모용가악은 아직 완충지대까지 움직이진 못했을 터. 그가 이곳에서 죽어버린다면 나도 난감하다네.”
위흥조의 도발에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곤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용가악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움직인다면 위흥조 역시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살아남은 흑의인들이 옥련을 박살 내며 남아있는 사절단 사람들을 하나씩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를 살펴도 모용가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모용가악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몰래 빠져간 듯했다.
물론 어쩌면 아예 애초부터 사절단과 따로 움직였을 수도 있다.
노인은 바둑판과 바둑돌을 꺼냈다.
“어차피 서로 싸워봤자 득이 될 것도 없을 테니. 그럴 바엔 차라리 바둑으로 승부를 보는 게 어떻겠나? 지는 사람이 물러나도록 하지.”
아무 말 없이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위흥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애초에 위흥조는 이곳에 누군가를 죽이러 온 게 아니다.
그의 목적은 모용가악이 대영 신조의 땅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
그 외의 것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조차 없다.
반대로 그와 마주 앉은 노인에겐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다.
일단은 모용가악이 자리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뒷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위흥조의 발목을 붙잡아두는 일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허공에 바둑판을 둔 채 다른 것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바둑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전장에 살아남은 건 일부 흑의인이 유일했다.
이들은 완충지대로 도망간 자를 추적하기 위해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진양과 묵양이 전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두 개의 기운이 맹렬하게 맞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정천사 사람들의 앞길을 막은 것이었다.
“일단 재료부터 챙기자고.”
깊게 파인 구덩이 아래로 내려오니 처참하게 죽어있는 반면의 시신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의 몸에서는 어느덧 사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눈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성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집념은 여전히 강했기에 주위에 퍼져있는 혈성살기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묵양이 조용히 반면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자 혈성살기가 빠른 속도로 묵양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혈성살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반면의 몸 위로 피어오르던 사기도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아쉽군.”
진양은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주위에 있던 흙으로 그의 시신을 덮어주었다.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기 때문에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모든 걸 마친 진양은 대연 신조 방향으로 추격해가는 흑의인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예상대로 모용가악은 다른 이들은 버련둔 채 혼자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반면이 이리도 쉽게 쓰러질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다.
심지어 허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보아하니 대연의 태자도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 듯했다.
이러고도 아직 남은 게 있다면 새롭게 계획을 다시 짜야 할 듯했다.
“묵양, 가자. 녀석들보다 먼저 쫓아가서 상황을 살펴야 해.”
“그 황손이라는 녀석을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멍청해도 여기서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대연 신조 방향으로 갔을 리는 없잖아.”
이어서 진양이 검은 구체를 꺼내 바닥에 던지자 새까만 재가 사방을 뒤덮었다.
진양은 묵양과 함께 기운을 최대한 숨긴 채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여섯 시진 정도 지나자 진양은 추적자들을 추월하여 어느덧 대연 신조의 국경 부근에 도착했다.
묵양은 수경으로 변하며 대연 신조 쪽을 비추었다.
국경선 밖에 있는 완충지대에 대군이 이동했던 흔적이 보였다.
그 외에 몇몇 고수들이 국경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도 발견됐다.
이들은 쥐 잡듯 주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 살아있는 존재를 발견한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곧바로 살수를 썼다.
누가 봐도 모용가악을 마중 나온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대연의 태자라는 놈도 보통이 아니군. 이렇게까지 철저히 준비했을 줄이야.’
무슨 핑계를 댔는지는 몰라도 꽤 강력한 고수들까지 동원한 걸로 보아 아예 이걸로 끝장을 낼 생각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해 꽤 오랜 시간 준비한 게 확실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용가악은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애초에 숨겨둔 패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모용가악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대연의 태자가 훤하게 꿰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누가 봐도 모용가악은 대연 태자의 상대는 아니었다.
“묵양, 완충지대를 따라 서쪽으로 가자.”
“서쪽은 왜?”
“완충지대 동쪽은 두 명의 고수가 대치 중이잖아.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두 고수가 지키는 곳을 뚫고 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설령 목숨을 걸고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승산은 없겠지만 말이야. 이렇게 되면 놈이 갈 곳은 서쪽뿐이야. 아마 봉쇄선을 지나 곧바로 대연 신조로 가려고 할 거야.”
묵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양을 태운 채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삼 일 정도를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묵양의 수경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었다.
주위를 뒤지고 다니는 고수들 중 한 사람이 서쪽으로 칠천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모용가악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진양과 묵양은 수경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빠르게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