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12
612화 네놈 때문이야!
진양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검둥이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역시도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얘기에 불과한 것 같아. 이것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문이거든. 보통 인간은 아무 목적 없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진 않잖아. 아마 당시에도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이야기를 꾸며낸 걸지도 몰라.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이런 터무니 없는 소문이 몇 개 더 떠오르긴 해. 예전에 응룡이 호기심에 엄청난 기연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싼 똥을 인간에게 먹이려고 했던 얘긴데, 인간은 차마 그걸 먹을 수가 없어서 손가락으로 푹 찍기만 했다고 하더라고. 근데 놀랍게도 손가락에 신통력이 생겨나게 된 거지.
이 외에도…….”
“그만!”
진양은 질색을 하며 녀석의 입을 막아버렸다.
‘정말 더러워 죽겠군.’
진양은 떠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삼안요괴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둥아, 좀 더 적극적으로 괴롭혀봐. 요즘은 좀처럼 쓸만한 정보가 안 나와서 말이야. 분발해야겠어.”
“진양,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삼안요괴가 씩씩거리며 진양에게 따지려고 했으나 진양은 이미 홀연 듯 사라지고 없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고 살펴보니 멀리 오룡 족장과 삼안 요모가 신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저러는 겁니까? 힘을 아껴도 모자랄 상황에 힘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다니.”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말싸움이 점점 격해지며 저렇게 된 것이오. 뭐, 그냥 싸우게 놔두시오. 이럴 때 감정이라도 분출해야지. 괜히 쌓아두기만 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오.”
아직은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척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 선생, 조심하는 게 좋을 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힘이 우리 모두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실력자들이 갑자기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뛸 리 없을 테니 말이오.”
“그래요? 전 딱히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 것 같은데…….”
정말이었다.
진양의 기분과 감정 모두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 * *
한 시진 뒤.
두 사람의 싸움은 마침내 끝이 났다.
오룡 족장은 얼굴 곳곳이 퉁퉁 부은 채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삼안요모는 옷이 다소 구겨지긴 했으나 오룡 족장에 비하면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에 한 시진 전까지만 가득하던 분노, 그리고 근심은 꽤 많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한쪽에서 팔짱을 낀 채 싸움을 구경하던 진양은 피식 웃어버렸다.
‘의미 없이 싸우고 나니 당연히 자괴감이 들 수밖에.’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또 한 번의 밤이 지나가고 나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 한 층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 요족이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원기를 마신다거나 대지를 부수는 등의 폭주는 아니었다.
대신 살아남은 일행을 노리기 시작했다.
여우처럼 생긴 그는 눈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호흡은 점점 가팔라 졌다.
이어서 땅 위로 엎드리자 진신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총알처럼 튀어 나가 한쪽에 누워 생각에 빠져있는 진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삼안요모가 나서서 진양의 앞을 가로막았고, 손가락을 뻗어 달려드는 요족을 향해 검은빛을 쏘았다.
요족이 공격을 피하는 순간, 삼안요모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어깨를 꿰뚫고 있었다.
이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도록 새하얀 실들이 뿜어져 나와 그녀를 꽁꽁 묶어버렸다.
머리와 한쪽 팔만 빼고 전부 꽁꽁 싸 매여진 요족은 꽥꽥 소리를 지르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이건 전부 다 저놈 때문이야! 우리가 여기 갇히게 된 건 저놈 때문이라고!”
그의 눈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입에선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였다.
삼안요모가 못마땅하다는 듯 그를 처치하려는 순간, 오룡 족장이 나서서 그녀를 막았다.
“이성의 끈을 놓은 게 아니라 잠시 흥분한 것 같으니 이만 얘기나 들어보도록 합시다.”
마치 오룡 족장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광기 어린 모습으로 발악하던 요족은 방금 전보다는 다소 진정된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놈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으신 겁니까? 만약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요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인간들은 아마 기다렸다는 듯 요국으로 밀고 들어와 남아있는 우리의 친구들, 형제들, 가족들을 도륙할 것입니다. 심지어 요혼마저도 전부 법보의 재료로 사용해버리겠죠.
이 모든 건 저 인간 때문입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자체가 함정이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이곳에 빠뜨려 전부 죽게 만들 생각이었을 거예요!”
여기까지 얘기한 그의 눈은 다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것 좀 풀어봐. 당장 날 풀어달란 말이야! 어서 놈을 죽여야 해. 너희들, 전부 다 한패지? 삼안요모, 요망한 것. 너 역시도 놈과 한패가…….”
그의 몸에서는 어느새 검은 마기까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화입마의 전조증상이었다.
그때, 번쩍하며 한 줄기의 빛이 요족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요족은 힘없이 축 늘어져 버렸다.
수천충의 고치는 죽은 그를 둘둘 말아버렸고, 이내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가 되어 삼안요모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라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오히려 녀석에게도 더 도움이 됐을 겁니다.”
삼안요모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오룡 족장은 멍한 얼굴로 요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에 미쳐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비록 그가 정신이 나간 상태인 것 맞지만, 그래도 말에 전혀 일리가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어서 오룡 족장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진양을 쏘아보았다.
“다음 달이 뜰 때까지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저자를 죽일 겁니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보시지요. 저도 궁금하군요. 진양이 먼저 죽을지, 아니면 당신의 목이 먼저 날아갈지 말입니다.”
삼안요모의 미간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또다시 으르렁대며 서로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진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고들 있네. 그런 의심을 했다는 건 애초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뜻 아닌가요?
다들 한배에 탄 거나 마찬가진데,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어떻게든 책임을 떠넘길 생각만 하다니.
뭐,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뭐라고 얘기하든 믿어주기나 하겠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진양은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바닥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몽의는 힐끔 한 번 쳐다보기만 할 뿐 계속해서 모형 제작에 집중했다.
삼안요모 역시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수련에 들어갔고, 오룡 족장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룡 족장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저도 압니다. 굳이 절 죽이셔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겠다는 것 아닙니까? 좋습니다. 그럼 굳이 힘 낭비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죠.”
진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공허의 세계에 몸을 던져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소원은 이루고 가겠군.”
이어서 진양은 몽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몽 선생님, 지금껏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깥이었다면 진작 스승으로 모셨겠지만, 단지 이곳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생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남의 손에 죽기엔 너무 억울해서 말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스스로 공허의 세계로 뛰어들렵니다. 그럼 건강하십시오.”
말을 마친 진양이 길을 떠나려는 순간.
삼안요모가 턱- 하고 진양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만은 진양이 죽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게다가 어딘가 이상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 번씩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불안한 마음을 분출해냈었다.
심지어 몽의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진양만이 속 편한 얼굴로 누워 코까지 골며 낮잠까지 즐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진양이 자결한다는 말은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룡 족장의 손에 죽기 싫다는 핑계를 댄다고 해도 말이다.
오룡 족장이 무슨 짓을 하건 자신이 나서서 막아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때, 진양이 남몰래 그녀에게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그동안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보답도 못 하고 가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절 도우려는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오룡 족장과 싸워서 다치는 걸 보고 싶진 않거든요.
게다가 그렇게 저를 살려주신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결국은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내다가 말라 죽을 테니까요.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삼안요모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절대로 어깨를 놓아주지는 않았다.
진양이 한숨을 푹 쉬며 한마디 덧붙였다.
“웬만하면 오룡 족장과는 싸우지 마시고요. 혹여나 저처럼 갑자기 삶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날이 온다면 저처럼 공허의 세계로 뛰어들도록 하세요. 아마 평생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죽기 전에 볼 수 있을 겁니다.”
진양은 평온한 눈빛으로 삼안요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순간 삼안요모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이 눈빛,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이건 지난번 진양이 망설임 없이 자폭을 하려던 순간 보여주었던 그 눈빛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감정을 아예 숨겨버렸다.
그러면서 천천히 붙잡고 있던 진양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빛이 되어 쌩- 하고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세계의 천장과 가까워지자 속도를 점점 줄여나갔다.
천장의 코앞까지 다가간 진양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세계의 끝이 만져졌다.
이어서 진양은 심호흡을 한 뒤 한 걸음 나아가 바깥에 펼쳐진 공허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한편, 지면에 남아있던 모든 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진양이 천장 너머 공허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양의 몸은 공허의 세계와 닿는 순간 무시무시한 혼란의 힘에 의해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