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21
621화 좋을 것 없다
삼안요모는 천천히 제단 앞으로 다가가 보물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그것을 만져보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때, 진양이 한마디 했다.
“학습 능력이 없군요. 얼마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벌써 잊은 겁니까?”
요모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녀는 아쉬운 듯 제단 위의 보물들을 쳐다보았으나, 어쩔 수 없이 손을 다시 거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누가 봐도 응룡과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게다가 일전에 응룡의 묘 안에서 겪었던 일, 그리고 이런 좋은 보물들을 한낱 힘없는 범인들이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괜히 물건을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전 잠깐 묘축 좀 만나고 올게요. 물건이 탐난다면 저와 몽 선생이 떠나고 난 뒤에 챙기도록 하세요.”
진양은 한 마디를 남긴 채 대전 뒤로 가버렸다.
진양의 말에 멋쩍어진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수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마을 밖.
어느 한 무리가 마을 근처에 나타났다.
하지만 온갖 기괴한 외모를 가진 것으로 보아 절대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들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부리나케 도망쳐버렸다.
한 남자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때, 뒤에 있던 개머리 요괴가 황급히 다가와 말했다.
“대인, 여기서 함부로 손을 쓰시면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있는 그 어떠한 물건도 건드려선 안 됩니다. 이를 어긴 자들은 단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죽어 나갔습니다.”
마을 근처에 나타난 무리는 다름 아닌 요족 무리였다.
비록 인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가진 자들이었으나,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이곳에 잠시 쉬어가기 위해 들린 것뿐이다.
매일 밤만 되면 접천봉 지대에 정체불명의 요괴들이 떼거지로 나타난다.
죽여도 죽지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 아주 지독한 놈들이다.
게다가 어떨 때는 지면과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나타나기까지 하기 때문에 이들이 상대할만한 존재는 아니다.
이곳 일대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산촌이 유일했다.
이런 식으로 나그네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마을에 들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요족이 찾아오자 나이 많은 한 노인이 나서서 이들을 묘축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산귀낭낭의 사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몽의와 삼안요모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막 후당에서 걸어 나오는 진양의 모습도 보였다.
“오, 오룡 족장님, 이런 곳에서 다 만나게 될 줄이야. 참 질긴 인연이네요.”
진양은 마치 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그의 태연한 모습에 오룡 족장은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아직 살아있어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짙은 살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세 사람을 모두 찢어놓을 기세였다.
그때, 뒤에 있던 개머리 요괴가 황급히 달려 나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대인, 참으셔야 합니다. 여기서 손을 쓰시면 큰일 납니다.”
오룡 족장은 거칠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그의 눈은 점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기운도 잠잠해져 갔다.
“요모, 진작 네년의 목을 따 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몽의, 내가 널 데려온 건 날 위험에 빠뜨리라고 데려온 게 아니다. 그러니 너 역시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양, 네 놈은 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섣불리 이곳을 벗어났다간 죽는 것만 못한 삶을 살게 만들어주겠다!”
“이봐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시죠. 전 그저 당신네들이 어떻게든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서 스스로 자결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다 운 좋게 지금처럼 살아남게 된 것이죠. 몽 선생님 역시 혼란한 마음에 자결을 하셨던 것뿐이고요. 요모 역시 여중호걸답게 스스로 장렬한 최후를 선택한 겁니다. 우리가 언제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기라도 했습니까?”
진양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운 하나는 오지게 좋은 놈이구나. 운 좋게 세계의 조각에서 탈출한 건 고사하고 흑석 미궁까지 뚫고 나오다니. 게다가 어디서 데려온 건지 그새 새로운 부하까지 데리고 다니다니 말이야.’
오룡족장은 콧방귀를 뀌며 부하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아무래도 이대로 살려두면 귀찮을 듯했다.
진양은 일단 참고 있다가 나중에 마을을 벗어나면 그때 놈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다들 이만 쉬고 계세요. 전 잠깐 한 바퀴만 돌아보고 올게요.”
진양은 일행은 남겨둔 채 산귀묘를 빠져나왔다.
묘축과 대화를 나눌 생각으로 그를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양 일행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할 생각으로 숨어버린 듯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마을 사람들이랑 대화를 나눠보는 수밖에.’
어쨌든 마을 사람들 역시 대대손손 이곳에 살아왔을 테니 그 누구보다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낮에 마을에 남아있는 건 대부분 부녀자들이나 노인, 혹은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밭으로 일을 하러 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남자도 없는 집에 불쑥 찾아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일하고 있는 밭으로 가보기로 했다.
밭에 가보니 사람들은 한참 씨를 뿌리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모두들 바빠 보였기에 선뜻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양을 묘축에게 데려갔던 노인은 밭 한쪽에 앉아 사람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진양은 노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르신, 제가 뭐 도울 거 없겠습니까?”
“뭐하러 여기까지 왔나?”
“마냥 공짜로 쉬어갈 순 없잖아요.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서 말입니다. 나름 제 성의이니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양이 바닥에 떨어진 곡괭이를 주워 밭으로 향하려 하자 노인이 다가와 진양을 말렸다.
“어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손님에게 일을 시키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괜찮습니다. 어차피 남아도는 힘인걸요. 걱정 말고 푹 쉬고 계세요. 남은 밭은 제가 모두 마쳐놓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곧장 밭으로 간 진양은 엄청난 속도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노인은 피식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략 반 시진 뒤.
진양은 노인 집 앞에 펼쳐진 대부분의 밭을 모두 갈았다.
그 사이, 어느새 옆집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진양이 엄청난 속도로 밭을 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진양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이만 접고 돌아가서 쉬도록 하시죠. 남은 땅은 전부 제가 다 갈겠습니다. 어차피 이것 말고 다른 일도 하셔야 하잖아요.”
진양은 사람들이 대답을 할 틈도 없이 곧바로 남은 밭도 모조리 갈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나선다니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밭을 가는 속도도 그렇고 실력도 꽤 훌륭했기에 사람들은 별말 없이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진양 혼자 남게 되자 진양은 곧바로 한 무더기나 되는 분신을 소환해냈다.
“다들 열심히 일해!”
강력한 분신은 하나밖에 만들 수 없지만 겨우 삼원 정도의 경지라면 수백 개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소환되자마자 다짜고짜 밭일을 하게 된 분신들은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씩 바닥에 떨어진 곡괭이를 주워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한 시진 뒤.
모든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진양은 그사이 황무지 사이로 멀리 떨어진 강과 이어진 커다란 물길을 파냈다.
일련의 작업을 마친 진양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마침 각자의 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마을로 돌아왔다.
이들은 마을로 돌아오기 무섭게 진양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잡으며 자신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진양은 못 이기는 척 이들과 함께 가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나자 한 무리의 노인들이 한곳에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양은 기다렸다는 듯 그곳으로 가서 자신이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진양이 대신 밭일까지 해주었으니 노인들은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자네가 지금 물은 것들은 묘축님께서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하신 내용들이긴 하네만. 어차피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또 밭일도 도와줬으니 얘기해 주도록 하겠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일전에 꽤 위험한 일을 당했었거든요.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죠. 내일 떠나려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해서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래전부터 마을 대대로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네. 밤이 되면 바깥은 아주 위험해지는데, 이때 마을을 벗어난 사람들은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밤이 되면 남쪽에는 괴물이 나타나거든.
반대로 북쪽에는 괴상한 늪이 펼쳐져 있지. 예전에 묘축님께 들은 적이 있는데 그곳은 비명의 늪이라는 곳이라고 하더군.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는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네. 평소에는 그냥 지나가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만약 그곳을 지나다가 화를 내면 평범하던 땅이 갑자기 늪으로 변해 그 사람을 삼켜버린다고 하는군.”
노인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젊은이, 자네가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또 비명의 늪으로 가려고 하는 이유도 잘 알겠네만.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네. 그러니 가지 않아도 된다면 웬만해선 가지 않도록 하시게나. 허나 정 가야 한다면 묘축님께 조언을 구해보시게나. 적어도 우리보단 많은 걸 알고 계신 분이니 도움이 될 걸세.
그나저나 내 조부님께서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던 적이 있다네. 당시…….”
모두들 진양이 꺼낸 영주를 한 잔씩 마시고 나니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술의 힘 덕분인지 모두들 거리낌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전설이나 정보들을 털어놓았다.
진양은 그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해두었다.
대화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자 진양도 산귀묘로 돌아왔다.
한편, 산귀묘에서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몽의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튼 채 조식(調息)을 하고 있었고, 삼안요모와 오룡 족장은 날카롭게 날이 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웬일로 보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 과거에는 발견하는 광맥마다 전부 오룡 일족의 것이라고 우기더니. 이번에는 어째서 참고 있는 것이냐?”
“닥쳐라! 요모, 여기서 벗어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게다.”
그때, 대전 안으로 들어온 진양이 삼안요모를 말렸다.
“요롱 족장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말에 속겠습니까? 여기 있는 물건들을 만지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쯤에서 다들 그만 하세요. 어쨌든 다들 같이 들어 왔잖아요. 그러니 함께 힘을 합쳐 나갈 방법을 찾아봐야죠. 더 이상 으르렁대며 싸워봤자 서로에게 좋을 것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