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24
624화 독한 놈이로군
늪에 빠진 분신은 진흙에 몸을 맡긴 채 진흙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분신은 몸을 움직여보았다.
처음에는 분명 물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압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손가락 끝만 아주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갑자기 엄청난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신은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으나, 움직일수록 더욱 강력한 압박이 그의 몸을 옥죄였다.
바로 그 순간.
진양은 분신이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분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이 진양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분신의 죽음이 생생하게 느껴진 것이다.
진양은 이래서 웬만하면 분신을 밖에서 죽게 놔두지 않았다.
죽은 뒤 머릿속에 전해지는 기억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느낌은 분신이 강력해질수록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선 강력한 분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빨려간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죽지는 않고, 가만히 있어도 죽지 않는다. 대신 움직이면 죽게 되는 거군.’
진양은 다시 분신을 하나 소환하여 절벽으로 보냈다.
이번에는 늪에 빠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도록 했다.
살아있는 상태로 나올 수 없다면 분명 어딘가 목적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 시진 뒤.
진양은 분신은 또다시 죽고 말았다.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기억을 살펴봐도 이상한 건 없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강력한 압박이 들어오며 분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진양은 다시 분신을 불러내어 물었다.
“혹시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화냈어?”
“그런 적 없는데. 그건 너도 느꼈을 거 아냐?”
“아니, 마지막 기억이 떠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없어져 버려서 말이야.”
“그래? 그럼 잠시만. 생각 좀 해보자…….”
분신은 죽기 직전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그렇게 한참 뒤.
녀석이 어렴풋이 기억난다는 듯 말했다.
“화를 내지는 않고 그냥 비참하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쉰 게 전부인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다녀와 봐. 이번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어차피 분신은 아까울 것도 없다.
그래봐야 머리카락 한 올 사라지는 게 전부이니 말이다.
그렇게 한 시진 뒤.
이번에는 분신이 무사히 살아있었다.
진양은 그제서야 몽의와 요모에게 말했다.
“일단 방법을 찾은 것 같긴 한데 정확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실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제 방법이 정답이라면 이 앞은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제 방법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무리해서 좋을 것 없다. 아무리 화신이라고 해도 연속으로 죽음을 경험한다면 본체인 네게도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혹여나 진양이 죽기라도 할까, 요모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매번 분신이 죽을 때마다 아주 잠깐이지만 진양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얼굴색도 새하얗게 변했다.
화신이 사망하며 일어난 힘의 역류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진심으로 진양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진양이 죽으면 자신도 죽을까 봐 그랬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오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진양 없이 그녀 혼자만 남는다면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일행 중 가장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건 바로 진양이다.
진양은 요모와 몽의 두 사람이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언어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곳에 대한 정보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진양은 항상 기발한 발상으로 방법을 찾아냈다.
“걱정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당신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죽어도 그냥 혼자 조용히 죽고 말지…….”
괜찮다는 말은 사실이다.
진양이 만들어낸 건 화신이 아닌 분신이기 때문이다.
분신은 화신과 달리 죽어도 본체에 큰 영향이 없다.
기껏해야 머리카락이 몇 가닥 사라진다는 게 전부다.
물론 사람마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양은 해당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런 사실까지 요모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대충 둘러대고 말았다.
하루가 지났다.
분신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흐르는 늪에 몸을 맡기며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한편, 지금껏 멈춰있던 오룡족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진양 일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또다시 며칠이 흘렀다.
양쪽 벽에서 흘러내리던 돌조각과 모래는 어느새 끈적한 진흙으로 바뀌어 있었다.
혹여나 실수로 조금이라도 화를 냈다간 계곡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됐다간 도망은 꿈도 꾸지 못할 그런 곳이었다.
때문에, 세 사람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던 진양이 갑자기 문득 멈춰 섰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분신이 죽었어요. 스스로 자결을 했네요.”
“뭐라도 발견했나?”
요모가 물었다.
진양은 사방에서 진흙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한번 둘러본 뒤, 잠깐 생각에 빠졌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아낸 것 같아요. 예상대로 앞쪽은 막힌 길이 확실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무념무상으로 늪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절대로 움직이거나 늪의 흐름에 저항해선 안 돼요.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늪의 압력에 의해 빈대떡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늪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죽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완전하게 몸을 맡겨야 합니다.
절대로 아무 생각도 해선 안 됩니다. 단순히 분노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감정도 가져선 안 돼요. 그랬다간 정말 끝장입니다.”
몽의가 물었다.
“그런데, 탈출로를 찾았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오?”
진양의 눈빛에서 다른 뜻을 읽어낸 것이다.
“급할 거 뭐 있어요? 그리고 이런 좋은 정보를 얻었으면 오룡 족장에게도 공유해 줘야죠. 한시도 저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고마운 사람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요모와 몽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독한 놈이로군.’
그렇게 일행은 요모의 길 안내를 받아 오룡 족장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양쪽 벽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던 진흙은 어느덧 폭포를 이루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폭포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고, 지면에 남은 공간도 점점 협소해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진양이 예상한 대로였다.
어쨌든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쫓은 끝에, 마침내 멀리 오룡 족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이끌던 요족은 이미 절반 이상이 죽어 나가고 없었다.
그는 남은 요족을 데리고 다시 길을 돌아오는 중이었다.
흘러내리는 진흙에 의해 앞길이 완전하게 막혔기 때문이었다.
“족장님, 또 만나네요. 이게 바로 인연이라는 걸까요?”
진양은 환하게 웃으며 오룡 족장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룡 족장은 재빨리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눈을 떴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양 일행을 노려보았다.
“내 뒤로 따라오고 있었을 줄이야. 영악한 놈들. 개머리 그 녀석도 네 놈들 짓이지?”
“아이고, 족장님 오해입니다. 전 남의 주머니에 보물을 몰래 집어넣는 능력 같은 건 발휘할 줄 모르거든요. 그저 본인의 욕심 때문에 벌어질 일일 뿐이랍니다. 뭐, 어떻게 보면 제가 녀석을 함정에 빠뜨린 것도 맞긴 하지만요.
족장님, 그래도 생각보단 똑똑하시네요. 이렇게 빨리 눈치를 챌 줄은 몰랐거든요.”
“제 발로 나를 찾아오다니. 단단히 미쳤구나. 남은 부하들이 얼마 없다고 해서 날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오룡 족장이 손끝으로 진양을 가리켰다.
“놈들을 전부 죽이되 반드시 저 인간 녀석부터 죽여라. 나머지는 순서에 상관없이 죽여도 좋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족들이 진양 일행을 에워쌌다.
그러자 진양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요! 뭐가 이렇게 급한 겁니까? 은원은 나중이고 일단은 여길 벗어나는 게 우선 아닙니까? 여기서 치고받고 싸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서 알려드리러 온 것뿐입니다.”
이어서 양쪽에서 흘러내리는 진흙탕을 가리켰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냥 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지금까지의 은원도 용서해줄 만하지 않나요?”
순간 오룡 족장의 가슴 속으로 무언가 욱하며 올라왔다.
오룡 족장은 재빨리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고 나서야 차갑게 대꾸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다들 뭣들 하느냐! 어서 놈을 죽이라니깐!”
요족들이 달려들자 삼안요모가 몽의와 진양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녀가 대신 나서서 이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혼전이 벌어졌다.
요족 족장은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요나 되는 존재가 한낱 인간 따위를 감싸고 들다니. 네년이 요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나름이구나. 허나 굳이 죽겠다고 달려드는데 말리진 않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룡 족장도 삼안요모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주위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양쪽으로 흐르는 진흙탕은 여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몽의와 진양은 요족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적어도 진양보다 한 경지는 더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싸운다면 어떻게든 꺾을 수 있는 수준이긴 하나, 지금처럼 다수가 달려든다면 승산이 없다.
진양은 싸움에서 밀리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이런 속 좁은 늙은이 같으니! 용서해달라고 먼저 찾아온 것도 모자라 힘겹게 알아낸 정보까지 공유해줬는데. 용서해주진 못할망정 날 죽이려는 거냐! 당장 그만두지 못해? 너 같은 속 좁은 인간이 오룡 일족의 족장이라니!”
오룡 족장은 눈을 감은 채 멈춰 섰고, 일부러 오묘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날카로운 손톱이 오룡 족장의 어깨를 꿰뚫자 선혈이 튀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며 순간적으로 솟구쳐오르던 분노를 억눌러버렸다.
그러나 진양은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건 노인이건 늙으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 다 마찬가지인가 보네. 이보쇼, 내가 당신을 살려주는 건 오룡 일족 전체를 구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좀팽이같이 구는 법이 어디 있어? 당장 그만 두라니깐!”
‘좀팽이’라는 말에 오룡 족장의 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삼안요모는 내버려 둔 채 곧바로 진양을 향해 내달렸다.
그의 뒤로 삼안요모가 쏜 손톱이 화살처럼 날아와 등을 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