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36
636화 산귀낭낭과 응룡
갑자기 진양이 눈을 번쩍 뜨며 양손에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이어서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광막이 갈라지려는 순간.
진양은 두 손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생소한 부문들이 진양의 손에서 흘러나와 백여 장 내의 땅을 빼곡하게 뒤덮었다.
이어서 진양의 힘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구중나생문(九重羅生門)!”
허공에 거대한 검은색 문의 허상이 나타나며 조금씩 실체화되었다.
차갑고, 냉정하며,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눌러 담은 듯한 묵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 기운은 순식간에 주위에 퍼져있는 검은 기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문이 아래로 떨어지며 규룡의 목을 강타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은 계속해서 지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공간 전체가 극심하게 뒤흔들렸다.
규룡의 머리는 그대로 폭발해버렸고, 그와 동시에 흘러나온 검은 기운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흑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 속으로 삼켜졌다.
남아있던 규룡의 몸통도 전부 검은 기운으로 돌아갔으나, 무형의 힘에 의해 문 속으로 전부 끌려가 버렸다.
잠시 뒤.
검은 기운이 모두 사라지자 거대한 문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주위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진양은 가쁜 숨을 내쉬며 제자리에 서 있었으나, 전혀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망할 녀석들. 굳이 금기의 공법까지 쓰게 만든단 말이지.”
신문은 도기와 마찬가지로 항상 신경 써서 보호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밖으로 꺼낼 수가 있다.
그리고 일부 강자들이 사망한 뒤 기해와 영태, 그리고 신문을 실체화시켜 큰 문파의 기반으로 삼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보통은 이와 같이 위험한 곳에 함부로 도기를 꺼내놓는 경우는 없었다.
손상되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양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두 개나 있는데 안 될 것도 없잖아.’
백옥 신문은 단순히 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지만 흑옥 신문은 단순히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때문에, 설령 박살 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심지어 흑옥 신문이 박살 난다면 오히려 그것대로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흑옥 신문이 박살 날 것까지 각오하며 내놓았으나,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흑옥 신문은 한 층 더 강해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고,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한층 더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이로써 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은 훨씬 더 멀어진 듯했다.
이건 진양의 앞길을 망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던 상관 없다.
반드시 복수해야만 한다.
“진양, 도대체 무슨 공법을 쓴 겐가?”
몽의가 놀란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전에 어떤 고수께 전수받은 금기의 공법입니다. 상당한 힘을 소모해야 하는 만큼 저조차도 간신히 펼칠 수 있는 공법이죠. 구중나생문이라는 공법인데, 실력의 한계 때문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공법입니다.”
비록 둘러대긴 했으나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흑옥 대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양은 몽의를 속이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묘축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적이 새파랗게 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밑천을 전부 드러낼 순 없는 법이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주위는 다시 정적을 되찾았다.
밤사이에 나타났던 규룡들은 전부 흑옥 신문에 의해 깔끔하게 삼켜져 버렸다.
진양은 대자로 뻗은 채 조용히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번에 많은 힘을 소모하여 지친 모습이었다.
물론 정말로 많은 힘을 소모한 건 아니고,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묘축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다.
진양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생각해야 할 건 많은데 늘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얽히고설키며 거대한 실뭉치가 되었으나, 아무리 고민해도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다.
흑옥 신문에 대한 일은 더 이상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애초부터 답 없는 상태로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은 한층 더 답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뭐, 어차피 열지도 못하는 거. 그냥 법보처럼 써먹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아니면 어느 강자에게 박살 나도록 그냥 놔두는 게 더 이득일지도.’
어쨌든 일단은 이곳에 대해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고민은 그쯤하고 이만 일어나시게. 곧 날이 밝을 걸세.”
몽의가 조용히 진양을 불렀다.
진양은 이미 과할 정도로 많은 생각에 잠겨있다.
이제 막 진급을 마친 수도사에겐 별로 좋지 않은 행동이다.
원래대로라면 진급을 마치고 하루 정도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안정화를 위한 수련을 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럴 수가 없다.
몽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고, 사방에 퍼져있던 기운과 기운으로부터 느껴지던 느낌도 완전히 바뀌었다.
밤이 완전히 지나간 것이다.
흑옥 신문이 떨어지며 지면에 일어났던 균열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다시 열린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가까운 언덕 위로 올라갔다.
사방을 비추는 햇살에 영혼마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밤의 기운도 완전히 사라졌다.
공기 중엔 상큼한 풀의 냄새가 가득했고,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비릿한 흙냄새와 물의 냄새도 은연중에 느껴졌으며, 들짐승 분변의 냄새도 어렴풋이 섞여 있었다.
썩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양은 마음과 정신이 한층 더 맑아진 기분이었다.
생기로 가득한 자연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두 사람은 산 정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곱게 머리를 땋은 소녀가 강가에서 수초에 한참 정신이 팔린 물소를 끌어당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물소는 그러거나 말거나 오직 수초를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화가 난 소녀는 가까이 다가가 소의 목덜미를 세게 꼬집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시 뒤.
서생의 모습을 한 남자가 행낭을 맨 채 다가왔다.
묘축과 똑같은 모습을 한 남자는 강가를 지나치며 소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간단히 코뚜레를 달면 해결될 일 아닙니까?”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건 싫어요.”
“그럼 녀석을 물 밖으로 끌어낼 수 없을 텐데요.”
“아니거든요! 배불리 먹으면 알아서 나올 거라고요.”
“왜 녀석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겁니까?”
“그러고 싶으니까요.”
소녀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 서생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응건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곳이 곤륜입니까?”
진양은 멍한 얼굴로 조용히 장면을 지켜보았다.
“산귀낭낭인가요?”
“그렇다네. 똑같이 생겼지? 미간의 신운(神韻)이 다소 옅고 천진난만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녀가 확실하다네.”
진양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몽의가 이곳에 산귀가 묻혀있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에는 산귀만 묻혀있는 게 아니라 응룡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기억들,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함께 묻혀있었다.
한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진양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의 실마리가 잡혔다.
진양의 추측이 틀린 게 아니었다.
산귀와 응룡은 정말로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이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습만 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되었다.
검둥이의 말이 맞다.
당시 응룡의 신분으로는 산귀와 어떠한 관계도 이어질 수가 없다.
하지만 진양의 말도 맞다.
신분 차이가 꽤 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한 여인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고 흔적까지 남긴다?
그건 그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 다른 답은 없다.
과거 산귀는 평범한 인간 소녀에 불과했고, 그러다 우연히 성인이 되어 인간 세상으로 숨어든 응룡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
그 뒤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세세하게 추측할 순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결과가 이어졌는지는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소녀는 모종의 이유로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응룡은 미처 그녀를 구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생기만 끊어진 그녀로부터 아직 흩어지지 않은 영혼만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응룡은 그녀를 부활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선택하여 그녀를 새로운 생명체로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산귀다.
산귀는 산을 기반으로 누군가 올린 원력(願力,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비롯된 힘)을 먹고 산다.
그녀는 곧 산이고, 산은 곧 그녀다.
이러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응룡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언젠간 해탈하여 속박을 벗어나고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부활한 것과 큰 차이가 없게 된다.
어쨌든 이성은 같으니 결국 몸뚱이만 교체한 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귀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은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산이 무너지면 기반을 잃는 것이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상고시대에 천지를 뒤엎을 만큼 큰 전쟁이 있었다.
당시 상고 천정과 지부 모두 그야말로 박살이 났었고, 한때 존재하던 신산(神山)도 전부 무너져내렸다.
그 당시 살아있던 산귀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평범한 산귀들이 이런 엄청난 난리에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남은 건 잿더미 뿐이기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어서 천지원기까지 사라져버리며 산귀의 생육 조건마저 사라졌고, 오늘날 산귀는 그저 전설 속에나 존재하게 되었다.
물론 응룡의 신분과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녀를 위한 산 하나 마련해 주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만큼 분명 아무 산이나 골라주진 않았을 것이었다.
방금 두 사람은 대화 중 이곳이 곤륜 부근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곤륜은 상고시대에 수많은 신산들이 모여있던 곳이다.
그러므로 응룡은 아마도 곤륜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곤륜은 이미 상고 말기에 완전히 파괴되어 모습을 감추었고, 이에 대한 기록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참을 추측하고 나니 진양은 그동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세세한 내용까지 전부 다 들어맞진 않겠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산귀는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죽으면 사라지게 될 아름다웠던 기억들, 응룡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들도 모두 이곳에 남아있게 되었다.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진급하면 그만큼 머리도 좋아지는 건가? 어째서 예전에는 이런 느낌을 느낄 수가 없었던 걸까?’
진양이 정신을 차렸을 때, 몽의는 어느덧 언덕을 내려가 강가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