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43
643화 뭘 또 이런 걸……
응룡은 신문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원한, 사기, 악념까지 모두 여기 있는 신문에 흡수당해서 거기까지는 여력이 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기억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진 선생께서는 이제 갓 신문 초입에 이르신 것에 비해 엄청난 기반을 가지고 계시긴 하나, 여기 있는 이 신문은 진 선생보다는 족히 두 경지는 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은 큰 족쇄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 역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진 선생께서는 총명하신 분이고, 또 사자결을 익히신 분이니 언젠간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성급한 결정은 삼가시지요.”
“물론 저도 언젠간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생각만 해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현재 진양이 가진 기반을 기준을 생각해 본다면 흑옥 신문은 진양보다 두 경지나 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일반적인 수도사였다면 세 경지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런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고 신문을 열 수 있단 말이지?’
애초에 그럴 힘이 있었다면 묘축을 가루로 만들어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뭐, 일단 이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죠. 그럼 제 사숙님께서 어떠신지 좀 봐주시겠어요?”
진양은 한쪽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몽의를 가리켰다.
“상고시대에서조차 극히 드물 정도로 훌륭한 기예와 용기를 지니신 분이시군요. 혹시 시간의 강을 훔쳐보셨던 적이 있으십니까?”
응룡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진양의 대답에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분께서는 방금 전 묘축과 함께 시간의 강으로 뛰어들려고 하시다 그만 그 순간에 갇혀버리고 마신 겁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의 강에 빠지시진 않은 것 같으니, 이만 다시 깨우면 될 것 같습니다.”
응룡은 응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은은한 황금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몽의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진양은 놀란 얼굴로 몽의를 바라보았다.
‘사숙님께서 묘축과 함께 동귀어진하실 생각을 하셨을 줄이야…….’
이어서 몽의의 몸을 뒤덮고 있던 기이한 힘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각상처럼 굳어있던 몽의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몸에 있는 힘은 여전히 사방으로 튀어 나갈 듯 들끓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광기가 서려 있었다.
“사숙님, 진정하세요! 접니다. 이제 다 끝났어요. 그러니 진정하세요!”
진양은 기겁하며 여전히 시간의 강으로 달려들려고 하는 몽의를 말렸다.
“응? 이건 진양의 목소리?”
몽의는 천천히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고,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사람은…….”
“사숙님, 이제 다 끝났어요. 묘축도 사라졌다고요. 여기 계신 분은 응룡 대인이세요. 여기 계신 분은 응룡 대인의 부인, 응백 소저고요.”
몽의가 다시 냉정을 되찾은 모습에 진양과 응룡, 그리고 응백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과거 시간의 강을 몰래 훔쳐보고도 겨우 눈 두 개 잃는 걸로 끝날 정도라면 그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충분히 가늠이 가능하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충분히 동귀어진하고도 남는다.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그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몽의가 진정을 되찾자 진양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한참의 설명이 끝난 뒤.
몽의는 새로운 검은 천을 꺼내 자신의 눈을 가린 뒤 진양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신문의 문제라면 나도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겠네.”
이어서 응룡과 응백에게 예를 갖추었다.
이로써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응룡이 응백의 손을 맞잡았다.
“진 선생을 따라가시오. 이곳은 진정한 대세계가 아니오. 오직 진정한 대세계에 가야만 기운을 받을 수 있소. 이런 곳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되오.”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가야 하오. 일단 살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내가 남긴 의식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말 것이오. 아직까지는 모두를 밖으로 내보낼 만큼 힘이 남아있긴 하지만, 더 이상 지체했다간 그마저도 불가능할 것이오.
걱정할 필요 없소. 언젠간 내 반드시 당신을 찾아가리다.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으시오.”
“흥, 또 저를 속이려고 하시는군요.”
“당신을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당신을 속인 적 없소.”
응백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응백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세계를 뒤덮고 있던 황금빛 햇살이 작은 빛 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기다란 빛의 강을 이루며 응백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세계는 점점 사라져갔고, 응백도 사라졌다.
남은 건 수정으로 만들어진 관 하나뿐이었다.
관속에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마치 잠이 든 것처럼 응백이 누워있었다.
바로 그때, 허공 속에서 빛이 번쩍이며 응룡이 나타났다.
응룡은 극진히 예를 갖추었다.
“진 선생,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진양은 응백의 관을 주머니에 잘 챙겨 넣은 뒤 몽의와 응룡을 따라 틈 밖으로 향했다.
청동관 밖.
틈 사이로 세 줄기의 빛이 튀어나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준 채 나판을 움직이고 있던 요모는 그제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쓰러졌다.
“이거, 왜 이렇게 안 돌아가는 거냐?”
그러나 응룡을 발견하는 순간 곧바로 경계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그리고 발톱이 응룡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요모, 진정해요. 이분은 응룡 대인이십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요.”
진양이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그녀의 발톱은 다행히 응룡의 코앞에 멈춰 섰다.
멍하게 상황을 살피던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쓰러졌다.
예를 갖추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삼안요족이여, 이 정도로 해 준 것만으로도 상당히 훌륭하군. 생전에 딱히 후손을 남기지도 않았고 어차피 죽어서 상관도 없으니, 만약 원한다면 내 혈맥을 가져가도 좋다.
자, 이건 나의 정혈이다. 이 정도면 용의 후예가 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물론 진짜 용의 후예와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응룡이 손을 펼치자 작은 황금색 구슬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분명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다소 붉은 기가 도는 구슬이었다.
요모는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찌나 감격했는지 그녀의 몸은 바들바들 떨려오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응룡 대인!”
요족의 혈맥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등급이 정해진다.
물론 혈맥의 등급이 높다고 해서 더 강한 건 아니지만, 일종의 고정 관념 같은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요족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었다.
오룡 일족이 많은 요족들의 존중을 받고, 또 많은 이들이 오룡 일족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건 바로 그들이 진룡의 혈맥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룡 족장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삼안요모지만 그녀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요족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요국에서도 암묵적으로 하등 요족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요모가 목숨까지 걸어가며 여기까지 온 건 바로 이 혈맥 때문이다.
물론 진정한 용의 후예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삼안요족은 진룡의 피를 이어받은 요족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응룡 형님.”
“응?”
응룡이 놀란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저를 그런 호칭으로 불렀던 사람은 과거에도 손에 꼽을 정도였었죠.”
“아무렴 어떻습니까? 형님께서 불쾌하지만 않으시다면요.”
친한 척하려고 해도 어차피 기회는 지금뿐이다.
무엇보다 말 한마디로 천 냥의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남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는 뜻이다.
응룡은 미소를 지으며 진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게 남은 정혈은 세 방울. 이 중 하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혈이라면 넉넉히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상처의 상태를 보니 한두 개로 해결될 수준은 아니군요. 그냥 전부 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룡은 정혈 한 방울과 가지고 있던 모든 용혈을 꺼내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진양은 용혈만 챙기고 정혈은 몽의에게 건넸다.
몽의는 한사코 거절하려 했으나 진양은 완강했다.
“이만 받으시지요.”
응룡을 힐끔 쳐다본 몽의는 두말없이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응룡의 정혈이라니.
이건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매우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만큼 용도도 다양하다.
하지만 진양은 그에게 최후의 보루로 쓰라고 준 것이다.
혹여나 나중에 강한 적을 만나도 시간의 강으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하는 대신 이것을 쓰라는 의미로 말이다.
응룡의 통 큰 선물에 요모는 상당히 흡족스러워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슨 보물을 받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보물을 손에 넣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어서 응룡은 하나의 광구를 진양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백이가 머물던 사당에 진법을 펼칠 때 썼던 물건입니다. 그녀가 이곳을 떠나게 된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이죠. 사양하지 말고 가져가시지요. 일종의 기념품입니다.”
진양은 하마터면 광구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 말은 산귀낭낭의 사당 안에 있던 모든 보물이 이곳에 들어있다는 뜻 아닌가?
이 귀한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전부 넘기는 것도 모자라 그저 기념품으로 삼으라니!
“크, 크흠! 이렇게 많이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가져가시지요. 어차피 여기 남겨둬봤자 쓸모도 없을 테니까요.”
응룡은 뒤쪽에 있는 청동관을 힐끔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만 가시죠. 바깥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응룡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모두들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거대한 세계의 조각이 떠 있는 대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진양은 몰래 응룡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응룡을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둘렀고, 요모는 곧바로 빛이 되어 세계 조각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손을 뻗어 조각 주위에 둥둥 떠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달을 떼어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손상된 달이긴 하지만 그래도 요족에게는 엄청난 성물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입니다. 웬만해서는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요족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대지 조각도 드리고 싶지만, 이건 이곳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고, 뭘 또 이런 걸 챙겨주시나요.”
진양은 말로는 사양하고 있었지만, 손은 습관적으로 달을 향해 뻗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