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24
724화 진양을 죽이겠다는 말
진양은 잠깐의 고민 뒤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대인, 며칠 고민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인 만큼 충분히 고려할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이곳에 머무셔도 좋고 다른 곳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뭐, 대황에 처음 오신 거라면 이 기회에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일 겁니다.”
진양이 떠나고 난 뒤.
황영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차구가 사라지고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황영은 다시 붓을 들어 마지막 남은 부분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에 그려진 교룡의 눈에 점을 찍는 순간.
교룡이 살아나며 춤을 추듯 날아올랐다.
교룡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방을 경계했다.
그러나 황영을 발견하는 순간 조용히 그녀의 손안으로 들어가 잡혔다.
“목씨 가문의 힘이 더해진다면 초조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을 얻게 되겠군.”
하루 뒤.
진양은 별원을 빠져나왔다.
설령 이위의 모습으로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에게나 목숨을 바친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과 목씨 가문의 전승이 실전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황영과 그의 일당은 공짜로 목씨 가문의 후손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다.
일단 빚을 지게 만들면 알아서 넘어오게 되어있다.
환심면구를 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환심면구를 착용하고 있으면 마음속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목씨 가문의 보복을 목적으로 그들의 거사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이위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전조의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환심면구는 사람의 마음을 홀려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게 만들고 점점 더 최종 목표에만 집착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결국은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아예 마음속을 뒤틀어버리게 된다.
별원을 빠져나온 진양은 마치 대황에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멀리 가진 않았다.
그저 성지 근처를 돌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돌아다니는 동안 감시자는 따라붙지 않았다.
아마도 환심면구를 믿고 그냥 풀어준 듯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진양은 활동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갔다.
그리고 며칠 정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때.
이분이 먼저 진양을 찾아왔다.
아마도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인 듯했다.
진양은 여전히 잔뜩 고민하는 듯한 모습만 보였을 뿐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분은 곧바로 돌아가 이 사실을 황영에게 보고했다.
황영은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예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구나. 이위 역시 속으로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단지 이성의 끈을 아직 놓치지 않고 있을 뿐이지.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본심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빠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안에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양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저택 쪽의 정보를 습득했다.
다행히 본체가 직접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했다.
‘벌써 세 달이나 지났군. 이 정도면 됐다.’
진양은 다시 별원으로 돌아가면 황영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한편 황영은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진양이 무려 세 달이나 버틸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 *
“결정했습니다. 목씨 가문의 원한을 이대로 묻어버릴 순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던 집안 어르신께서 임종 전에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보복은 나중에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참으라고 말이죠. 허나 지금은 때가 왔습니다. 이미 전승까지 손에 넣은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진양은 굳은 결심을 한 듯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영제, 그놈은 반드시 제 손으로 죽게 만들 겁니다.”
황영은 진양에게서 불타오르는 강력한 의지를 느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굳은 의지에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과연, 환심면구의 성능은 믿을만하군. 게다가 면구를 쓴 사람에게 이런 본심이 있다면 그보다 더 완벽할 순 없지.’
특히 진양의 마지막 한마디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봐도 거짓으로 한 얘기는 아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의지, 그리고 무섭게 피어오르는 살기까지.
환심면구로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만큼 의지가 굳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건 환심면구가 만들어낸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쯤 되니 황영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대부분 진양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실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동안 단절되었던 대황의 소식을 정신없이 살펴보고 있을 때.
우연히 진양 자신의 자료를 보게 되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현재 진양의 앞에 놓여진 자료들은 전부 황영이 살펴보라고 준 것들이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하라는 뜻으로 준 것들이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전조 사람들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목표로 삼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자료였다.
“여기 진양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바다에서도 상당히 이름을 알린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설마 이자도 영제의 충견이 되어버린 겁니까?”
“그렇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대영 신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처리해야 될 수많은 목표들 중엔 그도 포함되어있다. 해족과 대영 신조의 정세가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든 건 전부 그가 크게 힘을 써 준 덕분이다. 특히 북방 국경지대의 안정에도 큰 힘을 써 주었지. 뿐만 아니라 남만 지역과 대영 사이의 정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전부 다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아마 모두 보았을 것이다. 놈은 비록 고수라고 불릴 만큼 강한 실력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 영향력은 이미 웬만한 고수를 능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다시 대영 신조로 돌아온 대제희의 뒤에서도 훌륭한 참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죽는다면 대제희는 오른팔을 잃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북방 국경지대의 분쟁도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아끼는 제자가 대영 신조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황천마종의 최양평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것이다. 이로써 남쪽 국경지대의 정세도 위태로워지겠지. 그리고 그건 동해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진양 그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에 불과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로선 그를 죽이는 것이 가장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다.”
황영은 숨김없이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위가 환심면구에 완전히 홀려버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한편 진양은 크게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가 되어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허나 이건 계획의 일부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대황을 떠나있었으니 일단은 최근의 정세부터 살펴보도록 하거라. 당장 네가 해야 할 일은 없다. 추후의 있을 더 큰 계획을 준비하도록 하거라.”
혹여나 진양이 솟구치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 갑자기 영제에게 보복을 하겠다며 달려들기라도 할까봐 이런 얘기를 한 것이다.
“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진양은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인 뒤 손에 들고 있던 진양에 대한 자료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대영 신조의 충견, 반드시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의 목소리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력한 살기가 묻어있었다.
황영은 새로 합류한 이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직접 나선 게 헛수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당히 흡족스러워 했다.
최근 여러 계획들이 미끄러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 속에서 순조롭게 일이 풀리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이위는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만족하는 건 진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모습으로 완벽하게 황영의 무리에 잠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훨씬 더 많은 비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적들이 알아서 정보를 가져다주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이를 계기로 황영 앞에서는 더욱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코 이위의 본심에 어긋나는 말은 해선 안 된다.
설령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반드시 한 번 더 생각을 거치고 뱉어야 했다.
그나마 황영을 다루기 쉬운 건 이전에 있었던 일들 덕분이다.
그녀는 진양이 목씨 가문의 유일한 후손이라고 이미 굳게 믿고 있었다.
아무리 진양 자신이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조사를 하면 결국 목씨 가문 내에 이씨 성을 가진 누군가 나오게 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 환심면구의 성능을 과도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양이 면구를 쓰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내지 않는 이상 절대로 진양을 의심할 일은 없어 보였다.
진양이 황영에게 두 번이나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을 때, 그녀는 진양이 결코 빈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상대의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감별해내는 특별한 능력이나 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진양은 영제와는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이였다.
때문에 어떻게든 영제를 죽이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진양을 죽이겠다는 말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말이었다.
그가 죽이려는 건 거북이처럼 머리를 숨긴 채 저택에 숨어있는 ‘가짜 진양’이다.
그는 이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전부 진실이었다.
아마 장정의도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진양은 결코 기이과 같은 귀한 물건을 아무런 대가 없이 줄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정의는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황을 예상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자료를 모두 살핀 진양은 혹여나 잊어버리기라도 할까봐 곧장 해안으로 들어가 자료의 사본을 만들어두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진양이 한 일은 매일 자료를 살펴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진양을 사칭한 자에 대한 내용은 지금까지 읽은 자료엔 없었다는 점이다.
진양에게 살신전을 쏜 자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고, 사라진 오십 개의 살신전에 대한 행방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황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많은 권한을 부여받긴 했으나 아직은 부족한 듯했다.
어쩌면 현재 진양이 살펴본 자료들은 핵심 자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양은 애초에 밖에서는 더 이상 답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온 것이다.
권한을 높일 방법이야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그중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진양’을 처치하는 것이다.
‘좋아.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