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60
760화 상당히 실망스럽다
진양은 우선 도구들을 꺼내 훼손된 그의 시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찢어진 장기와 혈맥, 그리고 피부를 꿰맨 뒤 화장까지 마쳤다.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진양은 시신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하얀 광구 하나와 파란 광구 하나가 나왔다.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니 그의 시신에서 흘러나오던 원한과 죽음의 기운, 그리고 살기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관 뚜껑을 덮고 봉인은 하지 않았다.
‘역시 내 실력은 죽지 않는단 말이지.’
“묵양, 이 관은 유사도로 돌려보내도록 해. 장례는 녀석들이 치를 테니까.”
묵양이 시신을 보내러 간 사이, 진양은 계속해서 남은 두 구의 시신에도 작업을 이어갔다.
먼저 능력을 사용한 건 검을 쏜 노인의 시체였다.
비록 영태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나 그의 일격은 심지어 골왕조차 손을 뻗어 잡아야 할 정도로 강력했었다.
이 정도 공법이라면 기대해 볼 만도 했다.
노인에게선 유사도 두목과 마찬가지로 하얀 광구 하나와 파란 광구 하나가 나왔다.
진양은 그것을 곧바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마지막으로 소년 노인의 시신에 손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하얀 광구와 파란 광구가 나왔다.
진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상하군. 그래도 최근엔 운이 꽤 좋았던 것 같은데. 왜 전부 파란 광구랑 하얀 광구밖에 안 나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죄다 쓰레기만 나온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습득 능력에 필요한 과정들을 전부 생략한 것이다.
“젠장, 역시 귀찮아도 향은 피웠어야 했던 건가…….”
진양은 못을 박아 관을 봉인한 뒤 적당한 곳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의자를 꺼내 앉은 뒤 눈을 감은 채 습득 능력을 통해 획득한 광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건 유사도 두목의 것이었다.
하얀 광구에는 그가 손에 넣었던 진기한 재료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그것들은 그가 평생을 모아도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가 모시던 대인으로 추정되는 자는 재료들을 쏟아놓으며 한 장의 설계도를 건넸다.
그리고 그대로 밀실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설계도에는 각 재료의 이름과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다.
애초에 유사도 두목 같은 무식한 인간은 이런 귀한 재료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모든 것을 적어둔 것이다.
그러나 설계도는 단순한 건설 설계도에 불과했다.
진법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밀실이 완성되고 난 뒤 또 다른 누군가 찾아와 처리를 하기로 되어있는 듯했다.
설계도대로 완성된 밀실은 길이 삼 장, 넓이 일 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온갖 비싼 재료로 만들어진 밀실이라는 점뿐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밀실은 거점 지하 깊숙한 곳에 보관되었다.
크기가 크지 않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깔끔하게 숨길 수가 있었다.
한참을 살펴봤으나 진양은 그것이 무엇에 사용되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재료조차 절반 이상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었다.
이건 일단 나중에 알아봐야 할 듯했다.
이어서 파란 광구에는 기능서가 들어있었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건 없었다.
사해를 건널 때 주의할 점이나 방향을 잡는 법 등이 들어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해 항해술이 적힌 기능서였다.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능력 중 가장 쓸만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이 있었기에 유사도의 두목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 진양에게는 쓸모가 없었기에 추후에 필요할 때 다시 꺼내서 살펴보기로 했다.
계속해서 소년 노인에게 얻은 광구를 살폈다.
하얀 광구에는 그의 기억이 들어있었는데, 이번 일과는 크게 상관없는 기억들이었다.
아마 그가 인상 깊게 생각하던 기억인 듯했다.
그런데, 기억을 살펴보던 진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놀랍게도 소년 노인의 진짜 나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이었다.
보통 도궁 경지에 오른 수도사라면 적어도 칠천에서 팔천 년 정도의 수명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이건 개개인이 수련한 공법이나 수련 상태, 육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어떤 도궁 수도사는 심지어 이만에서 삼만 년이나 되는 수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소년 노인은 불과 수백 년 전에 도궁 경지에 올랐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이 정도면 대황 전체를 통틀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천재나 다름없었다.
신문을 열고 도궁을 세운 뒤 그다음 경지로 넘어가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마치 삼원 경지에서 신해 경지에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세 개의 경지가 하나의 경(境)을 이루는데, 도궁은 제 삼경에 해당한다.
이것은 생명과 영혼이 함께 본질적으로 큰 도약을 이루는 것이다.
누군가는 빠른 속도로 신문에 입문할 수는 있으나, 신문 경지에서 죽을 때까지 막혀있는 경우도 있었다.
광구 속에는 수많은 기억의 단편들이 들어있었다.
그가 열 살이었던 시절, 당시에 그는 대연 신조의 사람이었다.
당시 북두성종에서 대량으로 제자들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북두성종의 사람이 소년 노인이 살고 있는 성지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겐 천부적인 재능이 부족했다.
특히 북두성종에서 필요로 하는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관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그를 찾아왔고,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그 사람을 따라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비경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법을 전수받고 있었다.
그곳에서 전수되고 있는 공법은 수명을 불태워 수련 경지로 바꾸는 공법이었다.
모를 뽑아 자라게 만드는 다소 극단적인 공법이긴 했으나 어쨌든 수련 속도는 상당히 빠른 공법이었다.
그러나 신해에 이르고 나서는 기반이나 재능이 부족하여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에 봉착한 자들은 쉴 틈이 없었다.
수명을 태우더라도 경지를 높인다면 수명이 연장되겠지만 더 이상 경지를 높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수련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년 노인은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며 마침내 오늘날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도궁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의 도궁에서 발목이 묶이게 되었다.
현재의 경지까지 달려오긴 했으나 더 이상 남은 수명은 얼마 없었다.
천여 년 동안 고행과 전심수련을 이어나갔으나 진전이 없었다.
이쯤 되니 그는 경지를 포기한 채 다른 공법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사용한 공법이 바로 그 공법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수도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경험이나 견문, 학식 등도 전혀 없었다.
그가 위장으로 진양을 속이긴 했으나 그건 위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는 누군가의 발목을 잡아놓는 공법에 상당히 능숙했다.
그래서 그가 오게 된 것이다.
만약 이번 임무만 무사히 완수한다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귀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고, 또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는 임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버리는 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사실상 눈앞의 위급한 상황을 덮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 다시 되돌릴 수도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은 소년 노인의 일생에 대한 기억이었는데, 특별한 것도 없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삶에 대한 기억이었다.
진양은 혀를 끌끌 찼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약하다 싶었더니. 버리는 말이라 그랬던 거군.’
상대의 허를 찌른 만큼 상당한 실력자를 보낼 줄 알았는데.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무리 약한 도궁 강자라고 해도 신문 수도사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만약 진양이 지금까지 꾸준히 실력을 쌓아오지 않았다면 그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년 노인의 기억 속에 딱히 쓸만한 공법은 없는 듯했다.
중간에 나왔던 공법은 후환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눈앞의 상황부터 해결할 때나 쓰는 공법이다.
이런 공법 따위엔 관심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전조가 오래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해 왔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만했다.
녀석들에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말이 남아있을까?
아무리 부족한 도궁 강자라곤 하지만 무심하게 내던질 정도라면 분명 쓸만한 도궁 강자도 꽤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분명 습격은 이번 한 번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 얻은 단서들은 아주 대략적인 단서들 뿐이다.
단순히 이걸 가지고 추측한다고 해서 추후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단서를 가지고 더 알아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을 더 해봐야 할 듯했다.
진양은 이어서 다음 기능서를 살폈다.
수명을 불태워서 경지를 올리는 공법이 아닌 진양의 발목을 붙잡아두었던 공법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허공진경에 기록된 정공보술(定空寶術)이라는 공법이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이것은 공간 자체를 붙잡아두는 공법이었다.
허공진경을 익힌 수도사들은 시시각각 허공을 드나들며 수련을 해야 하는데, 만약 그곳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다시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정공보술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혼란한 허공을 그대로 고정시킨 뒤 탈출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보조 공법이었다.
물론 도망치는 적의 발목을 잡는데도 상당히 탁월한 효과를 가진 공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한다.
자신과 동급인 상대나 혹은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의 경우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년 노인은 허공진경을 익힌 게 아니라 단순히 보술 하나만을 익혔다.
때문에, 기껏해야 자신 주위의 공간을 붙잡아두는 게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진양에게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마찬가지로 당장 진양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공법이었다.
허공진경이라는 기초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배운다고 하더라도 계륵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허공진경을 배울 생각은 없었다.
설령 눈앞에 허공진경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건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지금 상태에서 경전을 익힌다면 앞으로 일만 년 이상 백옥 신문을 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쓸만한 게 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소년 노인에겐 쓰레기나 다름없는 공법이 나왔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유사도 두목에게선 그나마 쓸 만한 사해 항해술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