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08
808화 딱 너밖에 없잖아
인형은 토막 난 시신을 진양의 앞에 내려놓았다.
진양은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그다음 시신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의? 이 녀석,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상당히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정의에겐 그나마 희생이 가장 적은 방식으로 죽은 것이다.
경계선을 밟아 인형을 자극한 걸 보니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듯했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공중에 떠 있는 비주를 바라보았다.
비주 근처에 떠 있던 인형 하나가 날아와 상대의 말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는 정천사의 감시하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명서까지 보여주었다.
‘이 녀석,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거야? 어쩌다 연나 일족까지 건드린 거지?’
연나 일족과의 관계는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편이다.
게다가 정천사의 감시하에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했으니 마음대로 죽일 수도 없다.
적어도 정천사의 체면은 지켜줘야 하니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장정의 이 녀석 똥 치워주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묵양, 사람들을 놔줘. 그리고 대표자 한 사람만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잠시 뒤.
중년 남자가 인형의 안내를 받아 저택으로 들어왔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인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여나 일부러 잘못된 길로 자신을 끌고 가 죽게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저택 안으로 들어온 그는 진양을 발견하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양을 알고 있다.
예전에 만나본 적이 있었다.
“진 선생, 오랜만입니다. 이런 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거 무례를 범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나마 상대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니.
이렇게 되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중년 남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누군가 저희 연나 일족의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명을 받고 놈을 추격하게 되었는데, 오다 보니 여기까지…….”
“그렇군요.”
진양은 상대의 말을 끊고 묵양을 향해 손짓했다.
“가서 놈이 가지고 있는 주머니를 전부 가져오도록 하고, 시신은 적당히 처리해서 뒷마당에 비료로 뿌리도록 해. 마침 잘됐네. 최근 들어 겁대가리 없이 덤벼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비료가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묵양은 시신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그가 끼고 있던 주머니 반지를 빼냈고, 그것을 가져와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꿀꺽-
남자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연나 일족에서도 어느 정도 서열이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아래 서열에 있는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눈앞에 있는 진양이라는 사람은 결코 경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저택 내부엔 외부에서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위협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남자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무례를 범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송에게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시간 나면 대영에 한번 놀러 오라고도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가 떠나고 난 뒤.
진양은 장정의의 시신을 챙겨 밀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능숙하게 그의 시신을 다시 이어붙였다.
벌써 몇 번이나 이 짓을 하다 보니 이제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작업이 끝나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장정의는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환경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진양에게 꼬리를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만큼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형, 과연 대단하십니다!”
“시끄러워. 괜히 아부하지 말고 똑바로 불어. 저 사람들 도대체 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당연히 임무를 제대로 완수했으니까 그런 거죠.”
장정의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주머니 반지를 퉤- 하고 뱉어냈다.
이어서 반지에서 수정으로 만들어진 관을 꺼냈다.
관 안에는 여인의 시신이 누워있었는데, 머리가 없는 시신이었다.
“사형, 이번에는 시키신 대로 제대로 해냈습니다. 물론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습니다만. 무슨 수로 여기까지 쫓아온 건지는 몰라도 아마 관 안에 들어있는 시신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진양은 관을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장정의에게 무언가를 시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정말로 연나 일족 가주의 관을 훔쳐 올 줄이야.
“사형, 그럼 전 이만 쉬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장정의는 사색에 잠긴 진양을 뒤로한 채 유유히 밀실을 빠져나갔다.
진양의 모습,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었다.
‘괜히 남아있다가 불똥 튈라. 얼른 나가야지.’
장정의가 떠나고 난 뒤.
진양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관뚜껑을 열고 조용히 가주의 시신에 손을 얹었다.
두 개의 파란 광구가 나왔다.
하나는 연둔법(煙遁法)이 든 기능서였는데, 대충 살펴보니 배우긴 쉬워도 익히는 건 어려운 그런 종류의 둔법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다면 보라색이나 황금색 기능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둔법이었다.
그러나 오직 연나 일족의 혈맥을 이어받은 자만이 그 정도 수준의 위력을 낼 수 있다.
‘또 쓰레기가 나왔군.’
진양은 다른 광구에 눈길을 돌렸다.
기억이 든 광구였다.
‘뭐야?’
지금까지 기억이 든 광구는 전부 하얀 광구였다.
그런데, 이건 파란색 광구에 들어있었다.
기억은 장면 대신 매우 미세한 움직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기껏해야 근육과 양손에 남아있는 기억이 전부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공법도 아니고 신통력도 아닌 순수한 근육 기억이라면 백옥 신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다.
천천히 익히다 보면 안에 기록되어있는 미세한 움직임과 그 방법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순수한 기술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다.
연체 수련은 강과 약을 적절히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이란 육신의 강도를 높여 강한 힘을 갖는 것을 말하고, 약은 육신에 대한 미세한 통제력을 뜻한다.
다시 관뚜껑을 덮은 뒤.
진양은 시신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쓸 만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건 아마도 머리가 없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상처를 보아하니 치열한 싸움 끝에 머리가 터져서 죽은 듯했다.
목에 남아있는 상처는 비록 어느 정도 처리가 되어있긴 했으나, 대충 봐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머리가 터진 게 아니다.
뒤에서 공격을 당해서 터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충분히 말이 된다.
연나 일족의 둔법은 도망에 매우 유리하게 만들어진 둔법으로, 가히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공법을 익힌 사람을 무슨 수로 죽인단 말인가?
아마 전투 중에 허공진경 전수자가 도망가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와 뒤통수를 노린 게 분명할 것이다.
물론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관을 챙겼다.
비록 위풍이 그녀의 손에 죽긴 했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법.
죽은 사람에게 분풀이를 할 수는 없다.
그저 매번 하던 것처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수밖에.
* * *
다시 배로 돌아온 연나 일족의 중년 남자는 가지고 온 반지를 천천히 연화시켰다.
그리고 새겨져 있던 원래 주인의 징표를 파괴했다.
이건 원래 주인이 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원래 주인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징표를 강제로 지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지를 열어보니 잡다한 물건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가 찾던 부장품도 전부 안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연나 일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애타게 찾던 물건들은 전부 안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가주의 관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들이 쫓던 자는 애초에 가주의 관을 훔친 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관을 훔치러 왔다가 마침 부장품을 도굴하러 온 자를 발견하고 그 자에게 전부 죄를 뒤집어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추측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었다.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자.”
* * *
진양의 손에는 날달걀이 들려있었다.
껍질이 없는 계란이었는데, 놀랍게도 진양의 손에서 원래의 형상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진양은 진원의 힘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손끝의 감각만으로 계란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뒤.
계란이 형상을 잃고 손에서 흘러내렸다.
진양은 진원을 흘려 손에 묻은 계란을 떨쳐냈다.
손은 다시 깨끗해졌다.
진양은 근육 기억에 기록된 미세한 감각을 연습하고 있었다.
입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수련 난이도는 어려워졌다.
그래도 백옥 신문을 강화시키지 않고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인 만큼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건방진 돼지 녀석. 사형한테 말해서 당장이라도 삶아 먹자고 할 테다!”
“사돈 남 말 하기는!”
마당 한쪽 구석에선 돼지가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장정의가 자리를 잡고 연신 돼지에게 말을 걸어대며, 자신의 휘황찬란한 업적에 대해 한참 자랑을 하고 있었다.
물론 돼지도 지지 않고 열심히 떠들어댔다.
돼지는 몇 명이나 되는 봉호도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도 살아남았던 얘기를 했다.
그러자 장정의는 그동안 몇 개나 되는 봉호도군의 무덤을 도굴했던 얘기로 맞받아쳤다.
이에 질세라 돼지는 세 여족 고수와 동시에 싸움을 벌였던 얘기로 응수했고, 장정의는 여족의 귀신 악단의 눈을 속이고 몰래 여족의 조상 무덤으로 숨어들었던 얘기로 받아쳤다.
두 녀석의 허풍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그러나 서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점점 더 심한 허풍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목에 핏대를 세우다 보니 두 사람 모두 어느 순간부터는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철면피 자식! 네 녀석이 사형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도 된다는 거냐? 허풍을 쳐도 정도껏 쳐야지.”
“그건 내가 할 소리!”
돼지가 되물었다.
“그리고 먼저 시작한 건 너잖아! 나라고 허풍 떨지 말라는 법 있어?”
“말했잖아.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봉호도군과 싸우고 살아남았다고?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게다가 그까짓 게 대수라고. 우리 사형은 벌써 몇 명이나 되는 봉호도군을 골로 보내셨다고. 겨우 싸운 거 가지고 허풍은 무슨…….”
“그 말이 더 의심스러운데…….”
돼지는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형이 어떤 사람인지 겪고도 못 믿겠다는 거냐? 이게 바로 지능의 차이라는 거야. 겨우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니까 돼지 곰탕이나 될 뻔했던 거지. 쯔쯧.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뒷마당에 솥이 걸려있길래 몰래 한 입 맛봤거든. 먹자마자 엄청난 힘이 느껴지던데, 돼지고기 냄새가 올라오는 게 딱 너밖에 없잖아.”
“…….”
분하긴 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돼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