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09
809화 들키면 알지?
“그건 그렇고 대영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한마디도 안 하던 녀석이 왜 갑자기 사형에겐 이렇게 고분고분해진 거야?”
“어쩔 수 없었다. 놈들이 날 쓸모없다고 판단하고 진양 대인께 식재료로 보내버렸거든. 그리고 봉호도군과 싸웠다는 건 사실이다. 다만 녀석들이 날 제압하고 내 몸에 봉인을 새겨넣었을 뿐이지…….”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장정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사실 나도 여러 세력의 조상 무덤을 도굴하고 다닌 건 맞아. 다만 재수 없게 풀리지 않는 저주에 걸린 이후로는 손 씻고 새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중일 뿐이지.”
장정의는 돼지가 한참 써 내려간 것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흥미로운 정보들로 가득했다.
장정의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기한 녀석이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거야?”
“내가 갇혀있던 곳은 중죄인들만 들어오는 천자호라는 감옥이다. 얼마나 갇혀있었는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적어도 일만 년 이상은 갇혀있었다. 그리고 내가 갇혀있던 곳은 천자호 내의 자백실 옆이었고.
놈들은 내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은 정보에 대해서 들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만 해도 천 년을 적어 내려가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정천사 녀석들은? 네가 이런 걸 알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거야?”
“당연히 모르지. 만약 알았다면 날 가만히 놔뒀을 것 같아?”
“하긴…….”
장정의가 문득 물었다.
“혹시 몸에 걸려있는 봉인 말이야. 풀고 싶지 않아?”
“풀고야 싶지.”
돼지가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장정의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나랑 힘을 합치는 건 어때? 넌 많은 걸 알고 있고, 난 귀신 같은 도굴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 여러 유적과 무덤을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때?”
“싫다!”
돼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앞으로는 그저 조용히 진 대인을 따라다니며 살 거다.”
다소 의외였다.
새롭게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권했는데도 넘어오지 않다니.
돼지는 장정의가 쳐다보건 말건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는 데 집중했다.
‘저런 덜 빠진 녀석에게 목숨을 맡기다니. 절대 안 되지!’
어차피 봉인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건 대놓고 적에게 목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진양이 손에 어떤 무시무시한 보물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괜히 다른 마음먹다가 들켰다간 그땐 정말로 돼지 곰탕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으로선 조용히 진양에게 고개 숙이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무엇보다 이곳엔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바로 진양의 자신을 집어넣었던 정체불명의 솥이다.
그곳에서 몸의 일부가 들어가는 순간 힘의 일부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봉인의 위력도 함께 빠져나간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이런 방법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으면 희망이라도 걸어볼 수 있다.
진양은 비록 쉽게 속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그에게 매우 모질게 굴었다.
어딜 가나 악의가 느껴졌다.
기껏해야 이방인일 뿐인데 왜 자신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로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돼지는 진양을 따르기로 했다.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다른 곳에 의탁하는 것보단 훨씬 더 믿을 만한 인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생각에 빠진 채 습관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때.
진양이 대문을 지나오는 게 보였다.
돼지는 황급히 붓을 내려놓고 쪼르르 진양에게 달려갔다.
“대인, 저기 있는 처음 보는 녀석이 함께 봉호도군의 무덤을 도굴하러 가자고 저를 꼬드겼습니다!’
장정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저 빌어먹을 녀석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던 녀석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진양은 녀석을 뻥 차버렸다.
그리고 장정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정의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주 잘못된 거란다. 설령 그 상대가 돼지라고 해도 절대 얕봐선 안 되는 거야. 알겠지?”
진양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돼지를 째려보며 뒷마당 쪽을 가리켰다.
억울하긴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돼지는 뒷마당에 걸려있는 솥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몸을 반쯤 담근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던 하반신이 다시 자라났다.
봉인의 힘이 조금이나마 미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는 진양 모르게 몰래 기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양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대인,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진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지금 녀석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봉인을 푸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작은 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다.
진양은 지금까지 돼지들이 쓴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녀석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죽은 사람과 연관된 내용인 것으로 보아 전부 감옥에서 보고 들은 내용인 듯했다.
그러나 당장은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일단은 알아두기만 하자.’
그런데, 그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 정보가 있었다.
첫째, 탈옥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만 년 이래 죄수들이 유일하게 탈출했던 사건이다.
그는 백 씨 성을 가진 도문 출신의 죄수였는데, 사라지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가명일 게 뻔하다.
다만, 그가 한때 도문의 전도인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이어서 둘째, 전조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예전에 정천사에서 전조 현경사의 요직에 올라있는 인물의 후예를 붙잡아 고문하여 얻은 정보다.
과거 현경사의 사주는 멀리 해외로 도피한 후 종적을 감추었는데, 전조 대제의 어떠한 계획 때문이라고는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내용이라면 진양은 알고 있었다.
해외로 도망친 사주는 호량으로 갔고, 그곳에서 천현종을 세웠다.
앞서 말한 붙잡힌 죄수는 당시 현경사의 서열 이 위의 직계 후손이었던 것.
그는 자백을 통해 자신의 조상이 도망을 치기 전에 어떤 임무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떤 고대화를 숨기라는 임무였는데, 절대로 대영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야 한다는 임무였다.
그는 고대화를 들고 멀리 동해 어느 구석에 있는 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수련 경지를 폐지하며 스스로 폐인이 되었고, 다시 한 단계씩 수련을 시작하여 그곳에서 작은 가문을 세웠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라면 정천사에서도 조사를 했으나, 평범한 범인이라는 것 외에는 크게 알아낸 것이 없다고 한다.
그저 말년에 우연히 얻은 공법으로 수도사가 되긴 했으나, 죽을 때까지 겨우 영태 경지에 밖에 오르지 못한 그런 인물인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그는 그 섬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진실은 세대교체가 될 때마다 전임 가주가 죽기 직전에 후임 가주만 따로 불러 조용히 얘기하는 형식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거듭되며 일부 정보가 사라졌다.
때문에, 고대화의 존재와 그것이 환해 일족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에 숨겼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진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현경사와 환해 일족이 동시에 엮여 있는 일이라니!
게다가 완벽한 신분 세탁을 위해 자신의 경지를 스스로 폐지한 것도 대단한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영태 경지까지 오르다니.
이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건 그만큼 복잡한 무언가 얽혀있다는 뜻이다.
과거 현경사 사주는 끝까지 사해를 사수하며 현경사 비밀창고에 대한 비밀을 지켰었다.
그렇다면 서열 이 위의 인물은 상당히 신뢰와 중임을 받고 있던 만큼 지키려고 했던 비밀 역시 상당한 가치가 있는 비밀이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이 비밀을 파낼 수만 있다면 뱀 문양 남자, 그러니까 전조의 대국공 정지에게 크게 한 방 먹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이미 놈들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이번에는 가희와 그 일행에게 알 수 없는 악독한 수단까지 동원했다.
만약 진양이 이화접목을 사용해서 해독해 주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까지도 독 때문에 혼미한 상태로 지냈을지도.
어쨌든, 놈들을 방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는 합환문도 연루되어있긴 하지만 급하게 놈들을 손봐줄 필요는 없다.
환합문은 비록 정상급 실력자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여러 사람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집단이다.
어떠한 사람과 얼마나 얽혀있는지는 그 범위부터 종류까지 너무 다양하여 헤아릴 수가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전조의 거사에 동참했을 리는 없다.
당장은 정보도 충분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도 정해진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합환문을 건드려봐야 좋을 건 없다.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하고 귀찮아질 수도 있다.
고대화에 대한 실마리를 조사하기 위해선 동해로 가야 하고, 합환문의 일을 조사하려면 동쪽 국경지대로 가야 한다.
그리고 마침 가희의 첫 순방지역은 동쪽 국경지대였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정지를 건드릴 수 없다면 일단은 합환문부터 손을 보는 게 맞을 듯했다.
일전에 쌍둥이 자매를 보자마자 합환문이 전조 녀석들과 결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만 합환문의 요녀를 사고파는 건 이미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전조 사람들에게 파는 것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팔려 온 요녀가 맹독술 같은 걸 배웠을 리는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독을 사용하려면 합환문 내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올라있어야 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료를 내려놓았다.
“부지런히 쓰도록 해. 계속해서 쓸만한 정보를 내놓는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솥에서 목욕도 하게 해 줄 거고, 네 봉인을 풀 방법도 찾아줄 테니까. 물론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말리지 않겠어. 다만, 나한테 들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돼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진양은 애초부터 자신의 잔꾀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했던 말도 전부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사방에 빽빽하게 깔려 있는 금제를 뚫고 자신이 했던 말을 몰래 들었던 걸까?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지? 그땐 솥에 빠져 죽어도 난 모르는 거다.”
“알겠습니다.”
돼지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가치 있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해도 선을 넘는 순간 진양을 결코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