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58
858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
“다행히 영혼은 멀쩡하네. 아직 입마에 빠지거나 붕괴, 왜곡의 위험은 없는 것 같군. 다만, 마음은 이미 심하게 왜곡이 진행되었네. 의지는 여전히 굳지만, 회복과 왜곡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일세.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일세. 이 이상은 나도 무리인 듯하네.”
흘누는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진양에게 순순히 얘기해 주었다.
진양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물었다.
“어르신의 본존으로 살펴본다면 어떨까요?”
“크게 다르진 않을 걸세. 다만, 환심면구는 나도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라 말일세. 직접 모구를 살펴본다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군.”
흘누가 주왕이 있는 방을 힐끔 쳐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물론 자구(子具)를 살펴봐도 어느 정도는 알아내겠지만. 저자가 가지고 있는 걸 떼어내는 건 무리일세. 강제로 떼어내려고 하다간 영혼까지 함께 분리될 걸세.”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흘누는 다시 그림자가 되어 귀신령 속으로 사라졌다.
귀신령을 다시 챙긴 진양은 다시 문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주왕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전하, 그럼 건강하시고요.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나면 또 놀러 올게요.”
“누구냐? 도대체 누굴 데려온 것이냐?”
주왕은 두 손으로 유리 창살을 붙잡은 채 물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흐흐, 누굴까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진양은 씨익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온 진양은 곧장 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안명이 서 있었다.
“대인, 약속대로 딱 몇 마디 대화만 나누고 나왔습니다. 게다가 저런 꼴로 잡혀있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실 것 없습니다.”
“뭐 알아내신 거라도 있습니까?’
“확실히 의지는 완전히 왜곡되었더군요.”
“……그게 끝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뭐 더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습니까?”
“전조 세력의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허허……. 대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진양은 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한안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정천사조차 알아내지 못한 걸 어떻게 저따위가 알고 있겠습니까?”
“…….”
한안명은 입을 쩍 벌린 채 떠나가는 진양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에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또 속았구나!’
진양은 곧장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하실로 들어가 예전에 얻었던 환심면구를 꺼냈다.
내용물을 완전히 밀폐시키는 봉인 상자를 만든 진양은 그곳에 환심면구를 넣고 단단히 뚜껑을 닫았다.
그다음 제이검군을 호출했다.
흘누는 환심면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선 반드시 직접 살펴봐야 한다고 했었다.
물론 반드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은 보내고 살펴보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시키자니 썩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중간에 전조 녀석들이 눈치라도 챘다간 계획이 크게 틀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충분한 실력을 갖춘 제이검군에게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잠시 뒤.
제이검군이 진양의 저택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조금 다급한 건이라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걸 다른 분께 전해주시면 됩니다. 매우 중요한 물건이라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맡길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진양은 품속에서 큼직한 호리병을 하나 꺼냈다.
“이건 얼마 전에 새로 만든 탕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개선된 조리법으로 만들었으니, 형수님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문제없소. 어디로 가져가면 되겠소?”
“흑여에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제이검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챙겼고, 곧장 모습을 감추었다.
제이검군이 떠나고 난 뒤.
진양은 오늘 얻은 새로운 정보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마땅히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진 못했다.
일단 주왕이 환심면구에 의해 깊게 잠식되었다는 점은 확인되었다.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잠식될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그는 알아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태자, 조왕, 그리고 주왕까지 모두 사라진 이 순간.
가희를 태자로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쉬워졌다.
아니, 어쩌면 그녀를 태자로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영 입장에서 그녀를 태자로 받들어 모시려고 할지도 모른다.
본래 우물은 목마른 사람이 파는 법이니 말이다.
이보다 안전한 방법은 없다.
이렇게 되면 가희는 조왕이나 주왕처럼 불필요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본인이 태자 자리를 노리고 일을 벌이는 것도 아니니, 굳이 불필요한 사건에 휘말릴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여전히 주왕은 의심스러웠다.
일전에 손에 넣었던 명단은 전조 세력이 일부러 흘린 게 아니라 진양이 습득 능력을 통해 입수한 것.
만약 진양이 습득 능력을 사용하여 명단을 입수하지 못했다면 이들의 존재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후의 순서가 바뀐다면 성질도 바뀌게 되는 법!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 * *
며칠 뒤.
청란이 가희의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산귀낭낭의 사당과 관련된 모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애초에 산귀에 대한 전설은 상고 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었기에 때문에 크게 반감을 가지는 범인은 없었다.
거기에 영제의 지시에 따라 사당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반대하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요괴의 공격을 피해 사당으로 들어온 범인들이 산귀로부터 보호를 받았다는 미담이 퍼지며 산귀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아졌다.
그리하여 이곳저곳에서 공봉을 받은 응백은 상당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대로 계속해서 힘을 회복해 나간다면 괴산에 대한 지배력도 순조롭게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조 세력의 본거지를 찾는 일도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었는데.
몇 달 채 지나지 않아 벌써부터 본거지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소식이 전달된 것이다.
진양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던 것.
가희가 편지를 보낸 건 소식을 전하는 것 외에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진양은 편지를 내려놓고 눈을 감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만약 전체적인 과정 중에 진양이라는 요소가 사라지게 된다면, 과연 상황은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모든 결과는 주왕의 승리였다.
현재 주왕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남은 시간 내에 모구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주왕은 완전하게 세뇌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제도 그를 더 이상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만약 진양의 생각대로 주왕이 정말로 전조와 결탁을 했고, 또 대국공이 주왕을 죽일 생각이라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만약 주왕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정말로 전조 세력과 손을 잡은 것이라면?
대국공이 정말로 주왕을 대제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게 모두 사실이라면 전조 세력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 자신들의 본거지를 발견하게 만들고, 모구를 찾아내게 만들 것이다.
그들의 본거지는 괴산 어딘가에 있다.
얼마 전부터 괴산은 대영과 협력 관계를 맺었고, 현재 산귀와 대영의 대제희는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여기서 아주 작은 단서 하나만 흘려도 산귀가 본거지를 발견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대제희를 통해 대영에도 알릴 수 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결코 그 누구도 이 상황이 만들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강력한 산귀까지 업은 대영이 전조 세력의 본거지를 습격하고 모구를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찾아낸 모구를 파괴하면 주왕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진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국공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일단 소식을 기다려보자.’
대국공의 본거지가 순조롭게 발견된다면 지금까지의 추측은 모두 사실이 될 것이다.
“청란 소저, 가희 소저에게 전해주세요. 일단은 모른 척하시고,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시면 된다고요. 물론 응백 소저에게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도 전해주세요.”
청란은 진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으나, 그대로 전하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 * *
한 달 뒤.
가희는 이도로 복귀하기 위해 응백의 동굴을 나섰다.
괴산과 대영의 경계 지점을 지날 무렵.
네 명의 도궁 수도사의 기운이 멀리서 느껴졌다.
그런데, 기운을 감지한 가희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들에게서 태자 운구 행렬을 습격했던 도궁 강자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는 수도사들이었기 때문에 결코 착각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된 것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서 그들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비술을 사용했다.
사방에서 검은빛을 뿜고 있는 광막이 형성되며 가희를 십여 리 내 범위에 가둬버렸다.
마치 철장처럼 말이다.
광막으로 만들어진 철장은 점점 범위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광막에 닿은 것들은 돌이나 나무, 생명체 할 것 없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져갔다.
아무래도 닿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가희는 침착하게 손을 뻗었고, 그녀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렸다.
화염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장검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허공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장막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장막이 갈라지며 틈이 벌어졌다.
가희는 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검을 집어넣어 틈을 강제로 벌렸다.
그렇게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틈이 만들어졌다.
틈 너머로는 허공이 이어져 있었다.
가희는 곧장 허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허공 너머로 들어서는 순간.
철장 밖에 새로운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네 개의 허상으로 나뉜 가희는 검을 든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네 개의 허상이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한 곳에 빛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네 명의 가희가 다시 하나로 모이며 하나의 가희로 돌아왔다.
그녀는 검을 거둬들였다.
순간, 힘겹게 철장을 유지하던 네 명의 도궁 수도사의 일곱 구멍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들은 불꽃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