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38
938화 의심이 자리 잡아가다
진영으로 돌아와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묵양도 돌아왔다.
진양은 그날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물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와 싸웠던 자들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리고 이틀 뒤.
대연에 심어둔 첩자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환해 대장로는 무사히 대연 진영으로 돌아갔으나, 태자가 함께 보냈던 세 고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의 혼등도 모두 꺼졌다고 한다.
하지만 대장로가 무사히 진영으로 복귀했을지는 몰라도 아무 피해 없이 멀쩡할 리는 없을 것이다.
훼멸구가 폭발하는 순간 확신했다.
대장로는 결코 방어나 둔법, 살초 등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환술로 멀쩡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이 붙어있다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진양은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참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 적은 뒤 위흥조에게 부탁했다.
“대인, 이걸 대연의 황태손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흥조의 미간이 있는 대로 다 찌푸려졌다.
그는 하마터면 묵양의 주먹에 맞아 만신창이가 될 뻔했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진양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게요?”
“어허,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제가 언제나 음모를 꾸미는 사람으로 보이시는 겁니까? 정 못 미더우시면 직접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못 보여드릴 것도 없으니까요.”
위흥조는 기다렸다는 듯 봉투에 든 서신을 꺼냈다.
그러나 펼치려는 순간 태연한 진양의 모습을 보곤 도로 봉투에 집어넣었다.
‘보아하니 또다시 개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닌 것 같군.’
위흥조는 곧바로 수하를 시켜 서신을 보내도록 했다.
* * *
며칠 뒤.
진양이 보낸 서신은 황태손에게 전달되었다.
서신 내용을 확인한 황태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연의 황태손에게.
꼭 알고 있어야 할 일 같아서 서신을 씁니다. 다만, 믿지 말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얼마 전에 나의 첩신호위가 환술에 걸려 완충지대로 끌려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환술에 속아 대연의 강자들을 침입자로 오해하고 때려죽이는 일도 있었고요.
이 일을 벌인 건 환해 대장로입니다. 현재 그는 ‘진정한 대연의 후계자’인 대연 태자와 손을 잡았죠.’
‘진정한 대연의 후계자’라는 말에 황태손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졌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환해 대장로와 큰 원한을 지고 있는 사이입니다. 아마 일전에 음영자객을 보낸 건 태자의 짓이겠죠?
현재 환해 대장로는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기회를 노려 놈을 죽일 생각인데, 혹여나 복수에 함께 할 생각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물론 거절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비록 모든 일의 원흉은 환해 대장로이지만, 대연 강자를 때려눕힌 건 결국 제 첩신호위입니다. 제게 복수를 하고 싶으시다면 흔쾌히 받아들이도록 하죠. 다만…….’
진양이 보낸 서신에 완곡하게 타이르는 등의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빙빙 둘러 말할 것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시작되었으며, 심지어 싸우고 싶으면 언제든 덤비라는 듯한 말까지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 내용은 더욱 신뢰가 갔다.
이건 전부 사실이 분명했다.
다만, ‘진정한 대연의 후계자’라는 말은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질 않았다.
마음 같아선 진양의 머리를 베어 공놀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지금으로선 진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태자를 제거하는 게 더 큰 이득이었다.
“여봐라, 가서 안태자(贗太子, 가짜 태자)가 새로 영입한 고수에 대해 조사해 오도록 하라. 궁에 있는 모든 자료를 뒤지고, 그의 신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도록.”
잠시 뒤.
수하가 새로운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들고 왔다.
과연, 예상대로 태자는 그에게 가짜 신분을 덧입힌 상태였다.
그가 영입한 새로운 고수는 환해 대장로가 확실했다.
황태손의 눈에 강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장로가 태자에게 갈아탄 것도 괘씸했는데, 공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사람까지 희생시킨 것이다.
이건 결코 간과하고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황태손은 거칠게 자료를 내려놓으며 주위의 참모들에게 명령했다.
“그 망할 늙은이를 어떻게 제거하면 좋을지 무엇이든 말해 보시오.”
* * *
같은 시각.
대연의 태자에게도 한 통의 서신이 날아들었다.
‘비록 환해 대장로 녀석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는 공과 사는 구분하는 사람이라 이 서신을 보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만법지서는 확실히 윤제에게 얻은 원본이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당신은 아마도 대장로가 가진 만법지서의 열쇠 때문에 손을 잡기로 결정했을 겁니다. 저도 그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고요.
다만, 놈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자입니다. 협력자를 배신했던 것도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고요. 괜히 나중에 가서 당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서신은 유령 선장으로서 보내는 거니 참고하도록 하시고요.
그리고 절 물 먹이려고 했던 건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건 조만간 두고 봐야 될 일인 것 같습니다.’
태자와 황태손에 대해서는 이미 철저한 조사를 마쳤다.
그들은 대영의 죽은 태자와는 달리 뼛속까지 자만과 자부심으로 꽉 차 있는 자들이다.
물론 진양이 보기에 두 사람 모두 천한 놈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이런 녀석들에겐 좋게 말해선 통하지 않는다.
순한 말로 타일러봤자 비웃기만 할 뿐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얼굴에 침을 먼저 뱉고 시작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음 같아선 진양의 목을 따고 싶은 심정일진 몰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장로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또 의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진양의 직설적인 말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진양의 말이 진실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과연, 상황은 진양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태자는 서신을 받자마자 곧바로 심복을 불러 서신을 전달한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하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마땅히 의심할 것도 없었다.
서신을 가져온 사람 역시 그의 심복이었으니까.
그는 서신을 전달받자마자 곧바로 태자에게 가져온 것이다.
그가 중간에 서신에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 리는 없다.
자세한 내막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그저 서신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진양이 쓴 서신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안에 적혀있는 내용을 읽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대장로에 대해 뒷조사를 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확실히 대장로에겐 찜찜한 전과가 있다.
이건 결코 씻을 수 없는 낙인과도 같다.
환해 일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도 전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일은 이전에도 잦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양이 만법지서의 열쇠에 대한 일까지도 추측해낸 걸 보니 태자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협력은 핑계고 사실은 만법지서를 노리며 접근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만법지서를 가지고 환해로 도망쳐버린다면 다시 그를 잡아 올 방법도 없다.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무엇보다 대장로는 아직까지도 열쇠를 그에게 넘기지 않고 있었다.
사실 대장로는 열쇠를 빌미로 많은 조건을 요구해왔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만법지서를 열고 난 뒤 공법을 배울 수 있도록 임대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조건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조건은 앞서 말한 조건을 제외하고도 한 개가 더 남아있다.
바로 연나 일족과 환해 일족의 혼사를 성사시키는 일이었다.
게다가 반드시 연나 일족의 직계 여인을 환해 일족의 남자와 혼인시켜야 한다고 했었다.
대장로는 만법지서의 열쇠는 혼사가 성사되고 난 다음 넘기겠다고 했다.
이전에 협상을 할 때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당시엔 그저 환해 일족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비록 힘은 없어도 적어도 환해의 환수 정도는 동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먼저 상대의 조건을 들어줘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환해 일족의 전과가 상당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대장로는 이미 온갖 이득은 다 본 상태다.
여기에 열쇠를 이용해 만법지서를 열고, 또 그것을 빌린다는 핑계로 도망까지 간다면?
태자의 입장에선 이것만큼 손해일 수가 없다.
대장로는 환술의 고수다.
마음만 먹으면 흑심을 품고 만법지서를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태자의 이런 의심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환해 일족이 이미 저질러 온 일들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대연 신조로 넘어온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대영을 배반하고 신임 대제를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도망쳐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태자의 마음에는 이미 깊은 의심이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별말 하지 않았다.
비록 연나 일족처럼 대연에 뿌리를 내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환해 일족 전체가 당분간은 대연과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하루 뒤.
태자가 심복들과 한창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대제의 생신 선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물론 대제의 생신은 매년 찾아오기에 크게 특별한 건 없었고, 또 올해의 생신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지만 선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물은 태자와 황태손이 매년 가장 크게 고민하며 경쟁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책사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꺼냈다.
“고민하실 것 뭐가 있겠습니까? 마침 환해 일족과 손을 잡지 않았습니까? 비록 아직은 밝히진 않았지만 언젠간 밝히셔야 할 일. 이번 생신을 기회로 삼으면 되지요.
여기에 대장로께 부탁드려 특별한 환수까지 한 마리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듯합니다.”
태자는 고개를 돌려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뭐, 나는 괜찮은 생각 같소. 마침 대제의 생신 때 이 사실을 밝힌다면 대장로의 신분에도 맞는 대우일 테니 말이오. 대장로, 그럼 특별한 환수로 한 마리만 부탁하겠소.”
태자는 대장로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대장로는 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환수 한 마리인데, 그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대장로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다음 날.
대장로가 어린 환수를 한 마리 데리고 나타났다.
장성하고 나면 거대한 이무기가 되어 대영 궁성처럼 성벽을 지키게 되는 환수였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물은 대제에게 전달되었다.
환해가 대영을 배반하고 대연 태자와 손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도 완전히 밝혀지게 되었다.